# 195
마터칸 수도회(2)
마터칸은 탄생을 주관하는 엘더 갓으로 알려져 있었다. 탄생을 주관한다고 해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길 것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터칸은 가장 공격적인 활동을 펼치는 엘더 갓 중 하나였다.
당연히 마터칸을 숭배하는 사제들도 공격적이었다. 그러니 반응이 별로 좋을 수가 없었다.
“반응이 별로군.”
“좀 그렇습니다. 마터칸은 광신도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이라서요. 그들은 두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말인가? 아니면 전투에 대한 두려움?”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마터칸은 탄생을 주관하는 우주적 존재라서 이들을 믿는 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명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명은 그자가 목숨을 버리더라도 평생에 걸쳐서 수행해야하는 것들이죠.”
“신기하네. 실제로 그런 사명이 주어지나?”
“그래서 생각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마터칸이 진짜 계시를 내려주는지 그쪽에서 알아서 판단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쪽 내부의 일이라······.”
“어쨌든 감이 좀 오네. 그 사명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가볍게 버릴 수 있을 정도다 이거지?”
“네. 이건 근데 그쪽 광신도들마다 교리가 다 달라서요. 어쨌든 마터칸은 사명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하는 자들입니다.”
“갑갑할 것 같긴 하군. 그런데 그런 자들이랑 거래를 했다는 건가?”
카시마르가 리크토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리크토가 어깨를 들썩였다.
“그놈들은 내가 사냥개인줄 몰라.”
“그렇지. 상상도 못하겠지. 사냥개인줄 알았으면 거래고 뭐고 살려두기나 했을까?”
벨로바가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리크토가 다시 한 번 어깨를 들썩였다.
“근데 어떻게 들키지 않은 거야? 그놈들은 귀신같이 알아볼텐데.”
벨로바가 물었다.
“몽계 통신을 썼습니다.”
몽계 통신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있었구나.”
카시마르는 몽계 통신을 알지 못해서 카너를 바라봤다.
“몽계 통신은 접선을 위한 또 다른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거리제약이 없이 계단 세계에 있기만 하면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이용했었죠.”
“통신이면 들판에서도 되는 게 아닌가?”
“그런 통신과는 조금 다릅니다. 몽계 통신은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강압적인 초대장과 비슷한 능력인가?”
“다릅니다. 그곳은 실체를 가지고 이동되는 것이지만 몽계 통신은 분신이 만들어집니다. 분신을 가지고 몽계에 진입하는 겁니다.”
“근데 왜 몽계지?”
“잠을 자는 것으로 그곳에 접속하기 때문입니다.”
카시마르는 현실에서 코즈믹 게이트로 접속하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몽계 통신이 그런 모티브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부분은 실체는 이곳에 존재한 상태로 접속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능력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는 건가?”
“네. 그리고 그곳에서 죽으면 이곳에서도 목숨을 잃습니다.”
“외상값으로 무얼 받기로 했지?”
리크토에게 물었다.
“이전과 똑같아. 그쪽의 아이템들을 받기로 했지. 근데 이번에 받을 아이템들은 이전 보다 좋은 것들이야.”
“창고에 있는 아이템들도 상당하던데요. 그보다 좋은 아이템들이란 말씀입니까?”
카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너는 라코이 가문의 사내였기 때문에 아이템의 가치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연하지. 주는 엔렌즈가 얼마인데. 솔직히 이것도 아주 싸게 넘기고 있는 거라고.”
“엘더 갓쪽이 밀고 들어오면 네가 주범이라고 알고 있을게.”
벨로바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고 전쟁이 난다면 벌써 났어야죠. 그리고 전쟁은 저희 같은 하위 존재들에게는 기회가 아닙니까.”
“어떻게 사냥개의 일원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굶주림에서 왜 널 받아준 거지?”
“그건 벨로바님이 알 필요 없죠.”
리크토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벨로바로를 바라봤다. 벨로바의 눈빛이 잠시 매서워졌다. 그러나 둘이 대놓고 반목하지는 않았다. 둘 다 카시마르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접선을 하기로 했지?”
“준비가 되면 바로 연락해서 만나려고 했지. 엔렌즈 수량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이 맞출 수 있었어.”
“외상값 받으러 간다며?”
“가는 김에 거래도 하는 거지. 몽계 통신을 여는 데는 비용이 꽤 많이 들어.”
“몽계 통신이 금지된 이유가 무엇이지? 카너?”
“금지된 이유는 이괴들의 출몰 원인이 몽계 통신인게 밝혀져서입니다.”
“이괴?”
“아시다시피 이곳은 드림랜드로 가는 길목에 만들어 졌지요. 그곳이 확장된 곳이 바로 이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드림랜드 혹은 온 우주에서 근원이 있습니다. 근데 이괴는 그렇지 않아요.”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중립 존재와 다른 건가?”
“다릅니다. 이괴는 기괴하고 파괴적인 존재니까요. 이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려 합니다. 거기다 빠르게 강해지기 때문에 발견 초기에 처리하지 않으면 피해를 엄청 키울 수 있습니다.”
“몽계 통신이 그런 이괴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는 거로구만?”
“네. 이괴는 몽계와 계단 세계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존재라고 밝혀져 있지만 정확한 건 아닙니다. 몽계 통신이 금지된 이후에도 이괴는 종종 발생했으니까요.”
“그거야 이런 놈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벨로바가 리크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몽계 통신이 마냥 나쁜 건 아닙니다. 편리하니까요. 거기다 이괴는 특별한 코어를 지니고 있는데 그게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최상위 우주적 아이템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하니까요.”
카너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 코어가 특별한 능력이 있나?”
“그걸로 아이템을 만들면 그렇습니다. 다만 코어를 채취하려면 이괴가 직접 내어주거나 죽인 다음에 획득해야합니다.”
“이괴가 죽으면 코어가 깨져버리니 사실상 완전한 코어를 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깨진 코어 조각을 구하는 것이지요. 코어 조각도 나름의 가치가 있긴 합니다.”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 정도로?”
“코어 조각을 많이 사용한다면 더 좋은 아이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죠.”
“그것 때문에 몽계 통신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몰래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 이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까?”
“예. 정확하십니다.”
“그러면 연락을 해. 바로 보자고.”
카시마르가 리크토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지금. 이 정도 인원이면 충분하지 않아? 여기 벨로바도 있는데 말이야.”
“뭐······.”
“아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안 될 이유는 없지. 다만 위험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엔렌즈를 취급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근 거나 마찬가지야. 바로 연락해. 다들 상관 없겠지?”
카시마르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벨로바와 호위대가 힘차게 대답했다.
***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마터칸 수도회에서 연락이 왔다. 늘 보던 그곳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접속하면 바로 알아차리지 않나?”
“몽계 안에서는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용했던 거였군?”
“네. 거기다 그 안에서는 상대의 정체에 대해 묻지 않는 암묵적인 룰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럼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접속하도록 하지.”
카시마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크토가 마이크 같이 생긴 접속 장비를 내려놓고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그 안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리크토가 나눠준 알약을 삼키자 다들 금방 스르륵 잠이 들기 시작했다.
일행은 몽계 안에서 모습을 바꿨다. 카시마르는 모습을 바꿀 필요가 없었지만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 일행의 변장이 끝나자 리크토는 몽계 안쪽 길로 안내를 시작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도시가 하나 등장했는데 유령도시처럼 텅텅 빈 모습이었다.
“진짜 많이 변했네.”
벨로바가 말했다.
“이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까?”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럼요. 그때는 발 디디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체를 숨기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단순히 물건만 거래되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제일 큰 노예 시장이기도 했죠.”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입니다. 이곳은 출구와 입구가 같습니다. 그리고 무척 많지요. 이곳에 접속한 숫자만큼 출구와 입구가 있는 셈인데, 접속한 유저는 들어온 곳으로 나가야 원래 있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올 때와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래 있던 곳에 있던 실체들이 이동하는 것인가요?”
“예.”
“그건 정말 신기하군요. 그렇다면 굉장히 먼 거리도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지요. 아주 손쉽게 이동 가능합니다.”
“범죄에 악용되기도 했겠군요.”
“그건 좀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장비를 원래 있던 곳에다 놓고 오지 않습니까.”
“그렇죠.”
“도망자가 도망을 친다고 해도 그 장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추적은 가능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범죄에 이용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요. 먼 거리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니까요.”
리크토는 허름한 상점 안으로 일행을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마터칸쪽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바이킹처럼 생긴 자들이었다. 검은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리크토는 앞으로 나서서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1분 정도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 리크토는 엔렌즈 한 상자를 꺼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났다.
리크토가 엔렌즈를 꺼내놓자마자 제일 선두에 선 마터칸 수도자가 로브 안쪽에서 거울을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거울을 꺼내 들자 빛이 환하게 쏟아졌고 리크토, 호위대, 벨로바, 카너까지 모두 눈을 찌푸리며 휘청거렸다.
“역시 외괴의 추종자들이었군.”
이들이 말하는 외괴는 우주의 외신들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우터 갓들을 외우주의 괴물 정도로 낮게 부르는 의미라고 할 수 있었다.
마터칸의 수도자들은 로브 안쪽에서 무기를 꺼내서 달려들었다. 라코이 카너는 휘청거리다 못해 기절해서 쓰러진 상태였고, 호위대들도 대부분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거울의 빛을 받은 리크토는 정신은 멀쩡했지만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벨로바는 재빨리 적응하고 움직이려는 중이었다. 그는 벌레들을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놈부터 처리해라. 저놈이 제일 저항력이 높구나.”
제일 뒤쪽에 있던 마터칸의 수도자가 명령했다. 그가 이들의 우두머리였다.
카시마르는 이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거울의 빛이 카시마르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거래할 생각이 없었나?”
카시마르의 질문에 마터칸의 수도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 상황에서 말을 하다니 배짱이 좋네. 대부분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다가 더 걸려드는데 말이야.”
거울이 비추는 빛은 거미줄과 같은 용도였다. 아우터 쪽 존재들을 속박시키는 용도의 거울.
그러나 카시마르는 아우터 갓에게서 탄생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수도자들은 카시마르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카시마르는 뿔을 소환해서 거울을 들고 있는 수도자에게 날렸다. 보통의 아이템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