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역발상
몽계에서 데려온 수도사들은 모두 열이었다. 열 명이었는데 몽계를 빠져나오자 셋은 부상을 치료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진신과 분신이 분리되면서 적잖은 체력을 소모하는데, 부상을 당한 그들은 그 과정을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리크토가 도착하자마자 심문을 한다고 하다가 죽여버렸다.
너무 흥분한 탓이었다.
리크토는 아직 수도사들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상관없다는 식이었지만 카시마르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왜?”
카시마르가 리크토를 제지했다. 그러자 리크토가 멀뚱한 눈빛을 보냈다. 왜 말리냐는 식이었다.
“너무 흥분한 상태야. 또 금방 죽일 거야.”
“다 죽이지는 않을 건데? 나도 그 정도 판단은 해.”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거야. 죽이지 않고도 고통을 주는 방법은 충분히 있으니까.”
“이 일은 내가 주도한 일이야.”
“그래. 그리고 넌 내 아래에 있지.”
카시마르와 리크토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건 내 실수였어. 처음부터 제대로 정리를 했어야 됐는데 말이야. 이제부터는 내게 제대로 예를 갖추도록 해. 리크토.”
“······.”
카시마르의 직접적인 이야기에 리크토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있던 리크토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무슨 의미로 하는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앞으로의 활동에도 더 좋겠는데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지? 리크토?”
카시마르가 내뿜는 기세는 만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마냥 낮게만 봤던 카시마르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했고, 많은 일을 이룩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이었다.
이번 일도 그랬다. 카시마르가 수도사들을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리크토는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어야 했다. 그런 생각이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면서 카시마르가 키니와의 대결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
카시마르가 다시 한 번 다그쳤다. 그러자 리크토가 말했다. 그는 큰 약점이 있었고, 이미 한 번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시마르는 리크토와의 관계를 정리한 다음 강숭이를 바라봤다. 리크토가 이번 거래를 제대로 완수했다면 카시마르는 이전과 같은 관계를 계속 유지했을 터였다.
그게 리크토의 능력을 더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 했으니까. 그런데 상황을 지켜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카시마르는 서열을 다시 확립하고 리크토를 수하로서 컨트롤 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숭아.”
“네. 선생님.”
“저택으로 간다.”
카시마르는 수도사와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가지고 저택으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리크토. 이번 일에 대한 것은 나중에 분배를 하도록 하지.”
“······.”
카시마르의 이야기에 리크토는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카너.”
“예.”
“리크토의 수발을 들 자들을 뽑아서 보내주도록 해.”
“네?”
카시마르의 말에 카너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리크토도 완전히 우리 쪽이야. 그러니 도움을 주어야지 안 그래?”
“아. 네.”
“여기를 빨리 정상화 시켜야 리크토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네.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카시마르는 잡아온 수도사들을 강숭이에게 맡겼다. 강숭이는 고문 기술도 뛰어났지만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있어서, 고문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상대의 욕망을 캐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심문과 관련된 일은 강숭이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게 늘 고민이었지만 카시마르는 강숭이를 다루는 법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카너는 저택으로 돌아오는 즉시 믿을만한 사람들을 선발했다.
“그런데 조금 걱정인 게 있습니다.”
“무엇이 걱정이지?”
“리크토님에게 보낼 자들을 선별하기는 했는데 이게 묘합니다. 가문의 인원을 차출해서 보내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말입니다.”
“뭐가 아깝다는 거야?”
“리크토님은 흥분을 잘 하지 않습니까. 지금 선별한 인원들도 다 아까운 인재들인데······.”
“리크토가 그들을 죽일까봐 걱정된다는 거지?”
카시마르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을 거야. 그들이 내 눈과 귀라는 걸 리크토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럴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래. 대신에 하인들에게 속내를 비치지 않겠지. 그래도 상관 없어. 감시할 용도로 보낸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용도라고 말씀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말 그대로 리크토의 저택이 빨리 활성화 되길 바래서 보낸 거야.”
“감시할 용도로 보낸 게 아닌데 리크토님은 감시라고 느낀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지 않을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판단한 리크토는 그래. 쇼맨쉽이 있지. 그는 내게 독대를 요청 했을 수도 있는데, 굳이 다 보는 앞에서 가죽을 벗는 모습을 보여줬어.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했지만 그게 모든 걸 내려놓은 모습을까?”
“아닙니까?”
“모든 걸 내려놓기 싫어서 가죽을 벗은 거야. 실제로 그 뒤에 그는 당당하게 요구 사항을 늘어놓았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
카시마르의 이야기를 들은 카너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카너는 똑똑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카시마르가 잡아낸 부분을 캐치하지 못한 건, 이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너는 유능한 보좌관이기에 리크토의 이슈 말고도 신경쓸 게 많이 있었다. 카시마르와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어. 리크토를 다루는 법을.”
“어떻게 말입니까?”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 돼.”
“너무······.”
“단순한 대답인가?”
카시마르가 카너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카너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생명체의 생혈을 흡수해서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피부는 스케치의 빈 공간처럼 하얬다.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외관이었지만 지금 카시마르의 주변에 있는 인물 중에는 그나마 제일 온기가 느껴지는 인물이 라코이 카너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리크토를 다루는 방법이야. 리크토는 불멸의 굶주림 소속이지만, 언제든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소속을 버릴 수 있어. 내 휘하에 있지만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지. 그러니 충분히 보상을 주어야지. 그러는 동안은 리크토가 배신하지 않을테니까.”
“그의 능력을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엔렌즈를 취급하고 몽계 통신을 이용하고 엘더 쪽의 인사들과 거리낌 없이 거래할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이면 높게 평가해줘야지.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있잖아.”
“이번에 저희 다 죽을 뻔 했습니다.”
“강숭이가 수도사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낼 거야. 일단 당분간은 리크토의 비위를 맞춰주도록 해. 그는 활용 가치가 아직은 많아. 그건 카너 보좌관도 인정하는 부분 아닌가?”
“네. 그렇지만 너무 믿으셔서는 안 된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당한 게 있는데 또 당할 수는 없지.”
카시마르의 말에 카너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
강숭이에게 수도사의 심문을 맡기고 유중악은 코즈믹 게이트의 접속을 해제했다. 접속을 해제하니 오정룡이 빵을 집어 먹고 있었다.
“일찍 나와 있네?”
“크게 할 일이 없어서 말이야. 근데 넌 요새 다시 바빠진 거 같다? 이 시간에 접속 자주 안 하는 거 같더니. 뭐 일 터졌냐?”
“다시 일이 생겨서.”
“무슨 일? 사냥꾼 찾았어?”
“그건 완전 보류 중이야. 정보가 확실해야지 잡던가 하지.”
“하긴 그렇겠다.”
“형 쪽은 어때?”
“말도 마라······.”
오정룡과 유중악은 게임이 끝나면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덕분에 오정룡은 유중악의 상황에 대해서 대부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오정룡은 그 정보를 길드원에게 절대로 오픈하지 않았다. 오픈하는 정보도 있었지만 오픈할 때는 유중악과 상의한 뒤에 오픈했다. 그러다 보니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 또 늦어지겠네?”
“그렇게 되는 거지. 그래도 걱정은 마. 늦어지는 만큼 제대로 준비해서 넘어갈테니까.”
“형네가 제일 먼저 넘어오는 건 맞아?”
“응. 그렇게 될 거야. 다른 쪽은 이미 정보도 제대로 완벽하게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우리는 일단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잖냐. 다만 너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 방법 때문에 이렇게 애를 먹는 거지.”
오정룡의 길드에서 선별된 인원이 동시에 계단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 넘어간다 하더라도 이상한 곳에 떨어지면 변수가 너무 많았다. 재수가 없으면 시작부터 고위 존재를 만나 몰살 당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브시안 연합에서는 선별된 인원이 카시마르의 영향력이 닿는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다행인 부분은 일단 방법은 찾은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방법은 찾았지만 시간이 딜레이 되고 있는 상황.
답답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라브시안 쪽 사람들은 준비를 더 견고히 하면서 상황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뭐, 누가 먼저 넘어오는지는 크게 상관 없지만 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빨리 넘어오면 좋을 거 같아. 그래야 더 쭉쭉 올라갈 수 있을테니까.”
“그래? 또 무슨 일이 있었어?”
카시마르는 최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오정룡에게 설명했다.
“용병 업체라······ 그거 우리가 가서 도와주면 딱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아쉬운 생각이 들긴 했지.”
“최대한 빨리 넘어가보긴 할게. 그래서 이제 엔렌즈 취급하면서 사원 돌라고?”
“어.”
“이야기 들어보니까 난이도가 헬 난이도 던전은 명함도 못 내밀 거 같은데 괜찮겠냐?”
“일단 암흑 사원은 리크토가 좀 돌아봤다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돌 수 있겠지. 그 다음이 문제겠지만.”
“근데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그 수도사들 잡아 왔다며?”
오정룡이 턱끝을 쓰다듬으며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응.”
“그 수도사들의 능력은 아우터 쪽 존재들에겐 치명적이라며.”
“어. 그렇지.”
“그러면 그 친구들 포섭해서 사원 돌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응?”
순간 유중악의 눈빛이 빛났다. 뭔가 번쩍인 거였다.
“어려우려나? 하긴 광신도들이 시킨다고 그런데 들어가서 돌겠냐.”
“아냐. 아냐. 약점만 제대로 잡으면 가능한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거 같아. 막말로 지금 리크토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만 해도 굉장히 도움 된다고 했으니까. 시도는 해볼만 해.”
“그래?”
“오. 땡큐야. 형. 한 번 알아보긴 해야겠어.”
“그거 안 되더라도 리크토한테 압수한 물건들 네가 적극 활용하면 사원 도는데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어차피 사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니까. 어떤 아이템을 쓴다고 해도 문제 없는 거 아냐.”
“그렇지. 근데 그건 차선책이고. 수도사 이거 잘 이용하면 사원 클리어할 수도 있겠는데?”
오정룡의 의견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주적 존재의 사원들은 대부분 엘더 갓, 아우터 갓 영역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정룡이 말한 공략 방법은 사실상 카시마르와 같은 유저들만이 할 수 있는 공략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원 클리어하면 보상 장난 아니겠지?”
“당연한 걸 왜 물어. 거기다 내가 알기로는 아직 사원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존재가 없어.”
“진짜?”
“계단 세계에 사원들이 꽤 있긴 한데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까. 나서질 않는 거지. 굳이 목숨을 걸고 클리어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야 고위 존재들이. 이건 엘더 갓 쪽 존재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엘더 갓 쪽에도 그런 사원이 있냐?”
“있지.”
“그놈들도 그레이트 올드원 애들 처럼 들어오면 다 죽이고 그러는 거야?”
“엘더 갓 쪽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 중에도 포악한 놈들은 있을테니까. 근데 그쪽에 대한 정보는 솔직히 내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정보 자체도 제한적이고. 말은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엘더 갓 쪽에 있는 사원들은 시작부터 개방되지 않았을까 싶어.”
“엘더 쪽 인사들에게 오픈하고 처음부터 도움을 주었다는 건가?”
“그렇지. 어쨌든 우주적 존재와 직접적인 교신이 끊어진지 오래잖아. 그래서 초반에 엘더 쪽 인사들이 우세를 보였고 그래서 그들이 가진 영역이 아우터 보다 넓은 거고. 그렇게 보면 얼추 이야기가 맞춰지는 거 같지 않아?”
“반대로 아우터 쪽 애들은 본성을 따라서 더 폐쇄적으로 변한 거고?”
“응.”
“확실히 그 이야기는 확인이 필요하겠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아우터 영역 안에 있는 사원들만 다 개방이 끝나도 힘의 균형이 확 달라질 수 있겠어.”
“그거야 가능할 때 이야기지. 쉽지 않은 곳이야. 사원들은.”
“아무튼 네 이야기 들어보면 계단 세계는 진짜 난이도가 적당한 게 없는 거 같다. 게임한다기 보다는 그냥 가상 현실, 아니 환생 체험하는 거 같아.”
“나도 종종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을 정도로 리얼해. 루테스 대륙도 리얼한 편이었는데, 여기는 더 그렇게 구현이 되어 있지.”
“덕분에 더 짜릿하지?”
오정룡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