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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캐로 멱살 캐리-198화 (198/205)

# 198

박제

오정룡과의 대화는 늘 즐거운 부분이 있었다. 트레이너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오정룡은 유중악이 가지고 있지 못한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고, 그를 통해 재미난 발상을 많이 쏟아냈다.

“사원에 집중해. 내가 보기에는 계단 세계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이미 고인물이기 때문이야.”

“고인물?”

“고착화가 너무 오랫동안 진행되어서 굴러들어온 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거지. 제일 큰 건 그 안에서의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게 제일 큰 거고. 그 세계는 유저들이 크라고 만들어놓은 세계가 아닌 거 같아. 게임이면 어느 정도 스텝 바이 스텝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잖아.”

“보통 형식의 게임과 다르기는 하지. 이런 게 클리쉐 비틀긴가?”

“이건 클리쉐를 비튼 게 아니라 클리쉐를 개무시했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지금 유저들 중에는 오히려 계단 세계로 넘어가는 걸 그닥 반기지 않는 부류도 있어.”

“넘어와 보지도 않았잖아.”

“그래도 들리는 게 있으니까. 직접 해보지는 못했지만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리에 다들 놀라는 거지. 솔직히 지금 루테스 대륙만 해도 탐험이 안 된 곳이 꽤 많잖아. 거기다 컨텐츠도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고. 계단 세계가 너무 일찍 풀렸어. 원래 이건 준비된 컨텐츠가 다 끝나고 대부분의 유저가 더 올라갈 곳이 없을 때쯤에 풀렸어야 하는 거였어.”

“일이 꼬인 거지 뭐.”

“그 꼬인 일의 중심에 있는 게 너고.”

오정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잘 수습하고 있는 것 같던데.”

“수습은 무슨. 운영진들은 할 수만 있다면 널 갈아마시려고 할 걸? 준비 된 게 제대로 착착 풀려야 그 효과가 좋은 건데, 계단 세계라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떡하니 풀려버렸으니 흥미가 팍 줄어드는 거지.”

“그래도 신규 유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면서.”

“그거야. 이벤트를 빵빵 터트리니까 그렇지. 온라인 말고도 오프라인에서도 그렇고. 이상하게 그런 쪽으로는 운영을 잘해. 번 만큼 투자를 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기존 유저들한테 섭섭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다 떠나서 일단 재밌는 요소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계속하는 거겠지. 그보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뭔데?”

“혹시 신이나 신의 수하들이 너한테 접근한 적 있냐?”

“신의 수하? 그건 또 뭐야?”

“없나 보네.”

“애초에 계단 세계에는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들어올 수 없는 거 아니었어?”

“그건 우주적 존재만 해당하는 거고. 너 저번에 이야기 안 들었냐?”

“들었어.”

“그때 다 설명했었잖아. 들어가 있는 신들 있다니까. 아무튼 우주적 존재가 아닌 자들은 들어갈 수 있어. 가호 받을 때 나오던 면접관들 있지?”

“있지.”

“그들도 따지고 보면 우주적 존재의 아래에 있는 하위 신이야. 북유럽 신화의 신들 정도 되면 그래도 아주 높은 등급의 신이겠지만 그들도 우주적 존재라고는 할 수 없어.”

“그런데 왜 뜬금없이 신의 사자?”

“원래 아우터 갓 쪽을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신들은 엘더 갓쪽 인물이라고 봐야 해. 근데 우리 예전에 이야기 한 게 있었잖아. 계단의 세계에 대한 내기로 분열이 시작되었다고. 그중에 아우터 갓 쪽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계단 세계에 들어간 신이 꽤 있나 봐.”

“그래서 그게 왜?”

“그들이 아주 오랜만에 문을 연 너한테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어. 그래서 물어본 거야.”

“그래?”

“아무래도 널 밀어주려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그들도 우주적 존재가 아니잖아.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고 해도 계단 세계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으니 모르지.”

“명단은 있어? 계단 세계로 넘어간 신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들 꽤 많이 넘어간 모양이더라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게이트의 면접관으로 활동하거나, 외부에서 엘더 갓의 시종으로 일하는 것 같더라고. 물론, 그들 중에서 엘더 갓으로 아예 승격한 신들도 있고.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명단은 하나야. 피지오라는 놈인데. 찾을 수 있으면 찾아봐.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피지오? 그런 신이 있었어?”

“바꾼 이름이지. 피지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을 거야.”

“원래 이름은 뭔데?”

“그걸 몰라. 다만 고대 석판에서 발굴한 정보니까. 확실해. 메소포타미아 쪽 출신의 신이래. 진짜 이름은 네가 만나서 물어보던가.”

“뭐, 바빠서 찾을 수나 있겠어? 형이 빨리 넘어와서 찾아보던가 해.”

“그때까지 네가 찾지 못하면 그렇게 하지. 참고로 그쪽에서 사자를 보내던, 네가 그쪽을 찾던 반대로 그쪽이 유저를 찾아오던. 유저가 그들을 만나면 도움을 주게 되어 있어.”

“뭐야? 퀘스트 같은 거야?”

“응. 그러니까 말을 해주지.”

“아니. 그럼 처음부터 퀘스트라고 하던가.”

“아이씨. 대충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아무튼 찾아 봐. 너 요새 그쪽에서 방구 좀 낀다며.”

“아우터 쪽 신인 건 확실한 거지?”

“어. 근데 네가 아우터 쪽이던 엘더 쪽이던 뭔 상관이야.”

“왜 상관 없어. 나 이제 사냥개라니까.”

“그게 그냥 퀘스트라니까. 외부에서 넘어간 신들은 최초로 조우한 외부 유저에게 아이템이나, 기술, 힘 등을 전수해야 된다고. 그게 그들이 계단 세계에 들어올 때 건 조건이라니까. 입장료. 그래. 입장료 같은 거라고.”

***

카시마르는 카너가 올린 보고서를 보는 중이었다. 수도사들이 들고 있던 아이템들은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베젝트의 거울은 아주 활용 가치가 높은 아이템이었다.

“그 거울을 쓸 수 있는 자들은 마터칸의 수도사들 뿐인 것 같습니다. 그들도 엔렌즈를 소모해야 쓸 수 있는 아이템이고요.”

“우주적 존재의 힘이 깃든 아이템인 건 맞는 건가? 아니면 다른 특수한 아이템인 건가? 보통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은 그런 식으로 발동되지 않잖아.”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런데 알아본 바로는 우주적 존재의 힘이 깃든 아이템이 맞습니다.”

“그러면 그쪽에서만 사용하는 방식이란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거울은 수도사들을 이용해서만 쓸 수 있겠군.”

“그걸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왜? 좋은 무기 아닌가?”

“그건 사용하실 수 있는 무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이쪽 지역에서 그런 물건을 사용하다 흔적이 남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거기다 그 물건은 마터칸의 수도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아닙니까.”

“포섭은 잘 진행되고 있어. 강숭이가 약점을 잡았으니까. 마썬이라는 그들의 우두머리 여인이 약점이라고 하지 않았나?”

“예. 그 수도사들의 사명이 그 여인을 지키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이용하면 수도사들을 이용할 수 있을테니 베젝트의 거울을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하지만 그걸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혹시 그들을 사원에 들여보낼 생각이십니까?”

“맞아.”

카시마르의 대답을 들은 라코이 카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카시마르는 어리숙하던 외부의 인사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아주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거 묘수로군요. 그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은 이쪽 존재들에게는 무척 강력할테니까요.”

“그래. 사원의 존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겠지.”

“그리고 그 안에서는 흔적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테고요.”

“그러니까. 팔번토에 가서 적당한 건물을 알아보도록 해.”

“사원에서 너무 멀면 안 되겠군요.”

“그렇지. 수도사들도 드나들어야 할 테니 너무 눈에 띄는 곳이어도 안 돼.”

“그러면 차라리 사원 주변에 있는 땅을 매입하고, 그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저택을 이용한 다음 지하에 길을 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로 해야 보안 문제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데요.”

“그게 가능해?”

“그쪽 전문가를 고용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쪽은 그렇게 해. 단 저택의 크기는 좀 규모 있게 구하도록 해.”

“어느 정도로?”

“용병들의 숙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카시마르의 말을 들은 카너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피지오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아?”

“피지오 말입니까?”

“그래. 그런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 하더군.”

“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엘더 쪽에서 활동하는 존재의 이름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또 노선을 갈아탔을 수도 있기는 한데······”

“노선이요?”

“그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 아우터 쪽 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한 번 찾아봐 줘. 오래 걸릴까?”

“워낙 넓으니까요. 저조차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찾기는 걸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잘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신경 좀 써줘.”

***

카너와 대화를 마친 카시마르는 심문 장소로 움직였다. 강숭이는 신난 표정으로 수도사들을 고문하는 중이었다. 카시마르를 본 강숭이는 얼른 다가와서 심문 내용을 쪼르르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마썬이라는 여인이 핵심입니다요. 저 여인만 잘 이용하면 저 수도사들은 완벽하게 컨트롤 가능합니다요.”

“뭐하는 여인인데? 그쪽에서 위치가 어떻게 되는 거야?”

“마터칸의 성녀와 같은 위치입니다요. 저 수도사들의 사명은 저 여인을 죽지 않게 호위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들이 특수한 신분인데도 몽계까지 와서 리크토와 거래를 했던 겁니다요.”

“성녀?”

“리비언인가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요. 아우터 갓 쪽 존재들이 잡아먹으면 힘이 강력해진다는. 그런 존재인 겁니다요.”

“그러면 움직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네?”

“그렇습니다요.”

카시마르는 즉시 벨로바를 불렀다. 벨로바가 도착할 때 카너도 같이 왔다. 그 짧은 사이에 카시마르의 지시를 이행하고 온 것이었다. 카시마르는 얻은 정보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마터칸의 리비언이면 팔아 넘기는 것 만으로도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습니다.”

“그건 나중에 선택할 문제고 일단은 그때 몽계에서 저 여인이 보여주었던 능력이 우주적 존재의 아이템을 사용한 게 아니라더군. 그냥 저 여인이 타고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라는 거야. 저 정도면 상당히 높은 등급의 존재라고 봐도 되지 않아?”

“설마 저 여인도 같이 사원에 들여보낼 생각입니까?”

벨로바가 물었다.

“그 생각도 잠깐 해봤습니다. 근데 그건 좀 위험할 것 같더군요.”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분명히 숨기고 있는 내용이 있을 거고, 그건 저 리비언과 관련된 것일 겁니다. 저들의 사명이 저 리비언을 보좌하는 것이라면 저 리비언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이야기겠죠. 그렇다면 저 리비언을 박제해버리십시오.”

“박제 말입니까?”

“네.”

“박제를 한다면 죽지 않겠습니까?”

“박제는 언제든지 다시 풀 수 있습니다. 주인의 의지 없이는 풀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리비언을 활용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확실하게 저 수도사들을 묶어둘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특히 박제의 증표를 주인님의 육체에 문신으로 새기게 되면 카시마르님이 죽는 즉시 박제도 사라지게 됩니다.”

“끔찍하지만 확실한 방법이긴 하겠군요.”

“어쩌면 수도사들도 그걸 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카너가 끼어들었다.

“그래?”

“네. 솔직히······ 저렇게 멀쩡한 상태의 리비언이 아우터 쪽의 존재에게 잡히게 되면 깔끔하게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취급을 받게 되거든요. 괴팍한 취미를 가진 존재도 많습니다. 신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변형시켜서 노예로 부린다거나, 또 다른 리비언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죠. 리비언의 자식은 리비언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으니까요.”

카너의 이야기를 곰곰이 들은 카시마르는 수도사들의 리더 격인 마리오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했다.

“어떤가? 받아들이겠나?”

“······ 그렇게 하겠소.”

마리오스가 덤덤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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