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솥
카시마르는 탈타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긁어모으라고 명령했다. 그의 약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타밀라의 물감을 쓸 정도의 결단을 했으면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둔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리크토님이 적당한 상황을 만들어서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건 탈타드가 눈치를 채지 못해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적당한 상황이라면?”
“사원은 이상한 낌새를 느낄 테고, 이괴는 출몰했다는 정보가 없으니 활용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고위 환수나 마수 아니면 용족을 사냥한다고 하겠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철저하게 행동할 겁니다. 일이 틀어지면 곤란해지는 건 리크토님도 마찬가지니까요.”
“잘 협조해서 처리하도록 해. 그리고 탈타드와 약속을 잡은 건 어떻게 됐어?”
“정말 만나실 생각입니까?”
“왜?”
“굳이 그를 만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계획을 세우셨지 않습니까.”
“그가 무례하게 굴까 싶어서 그러는 거야?”
카시마르가 물었다. 그러자 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제가 전달해드린 것보다 그의 발언은 수위가 셉니다.”
“강숭이를 데려갈 거야.”
“아.”
“정보로 파악한 것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건 다르니까.”
강숭이는 상대방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을 지녔다. 편차가 심하긴 했지만 대체로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운이 좋으면 상대의 약점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강숭이가 심문에 능한 것이었다. 상대가 쥔 패를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그걸 이용해 정보를 빼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약속을 잡겠습니다.”
카너가 고개를 숙였다.
***
탈타드는 3미터 정도 되는 개구리 같이 생긴 자였다. 그가 베닉 일족과 친한 이유는 그도 마족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같은 마족이어도 벨로바 같은 왕족 수준의 등급 높은 마족은 아니라고 했다.
개구리라고 해서 적당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탈타드는 개구리라기 보다는 두꺼비와 메기를 섞어놓은 듯한 생김새였다. 생김새는 양서류과가 맞았는데, 길게 늘어진 수염이 있어서 얼핏 보면 메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렇게 찾아오신다고 달라지는 건 없소.”
탈타드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모습.
차를 내오기는 했지만 반기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암흑 사원에 대해 아는 가이드가 당신밖에 없으니 이렇게 찾아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카시마르는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탈타드는 후하고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당신에 대해서 들은 바 있소. 하지만 정말 암흑 사원을 클리어할 수 있다고 보는 거요? 이쪽에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 같소. 우주적 존재가 남긴 건축물들은 보통의 던전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에요. 그중에서도 암흑 사원은 최고 난이도지. 추종자들이 밖으로 나와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뿐이지 그 안에서는 여전히 괴물들이 득실 거린단 말씀이야. 차라리 다른 추종자들의 건축물이 공략하기 더 쉬울 거요. 그들은 종종 밖으로 나와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 피해를 입기도 하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클리어한 자들이 없소. 왜 그렇겠소? 그만큼 위험한 일이니까 그렇다는 거요.”
“그 위험한 곳을 당신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듣기로는 3층까지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안 된다는 거요. 그곳은 또 하나의 세계요. 층의 개념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지. 3층이라는 건 대충 사원의 3할 정도를 탐색했다는 개념이오. 물론, 이것도 그저 예상에 불과하지.”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입니다. 오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가는군요. 역시 당신은 제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카시마르는 적절히 탈타드의 기분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 이유는 탈타드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당신이 사냥꾼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소. 거기는 나라 신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도 죽어 돌아오는 곳이란 말이오. 근데 당신을 보시오. 당신의 영향력이 나와 함께 했던 자들보다 나은 것 같소?”
“대신 제게는 든든한 동료가 있습니다. 저희 팀이 여덟 갈래의 길을 최단 시간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겠지요.”
“여덟 갈래의 길 전은 큰 의미가 없소. 여덟 갈래의 길에 만족할 거였으면 내가 그 팀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거기다 최단 시간. 그거 솔직히 벨로바님의 힘 덕분인 거 아니오? 바알 일족의 천재. 날 때부터 아바타를 부렸다는 그분 말이오. 듣자하니 아바타를 다섯 개 이상 부린다고 하던데. 그분이 있으니 당연히 여덟 갈래로 가는 길이 빠르지 않았겠소? 거기에 나오는 돼지들은 잡스러운 존재라 의미 큰 의미가 없다는 거요.”
“계속 같은 말만 하게 되는군요. 그러니 탈타드님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혹시 가이드 비용이나 배분이 문제라면 저희 쪽에서 최대한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카시마르의 행동은 사냥개의 사냥꾼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지체 조심스러웠다. 사냥개의 사냥꾼이 아니라 상인인 라코이 카너가 할법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탈타드는 더 기세가 올라 있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시오. 아무튼 난 당신 팀에 합류할 생각 없소. 어떤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렇소.”
카시마르는 조금 더 탈타드를 설득했다. 그러나 탈타드는 요지부동이었다.
“오늘은 아쉽게 돌아가지만 생각이 바뀌시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카시마르는 끝까지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강숭이를 소환했다.
“어때? 잘 파악했어?”
“네. 선생님. 잘 살펴봤습니다요. 저놈 심지가 약한 녀석입니다요. 잡아다가 조금만 두들기면 말을 아주 잘 들을 겁니다요.”
“그게 다야?”
“그걸로도 충분해 보입니다요.”
“겨우 그거 듣자고 저놈 비위를 맞춘 줄 알아? 더 없어?”
“가문에 대한 애착이 좀 강한 편입니다요. 하지만 이건 마족들은 다 그런 것 같았습니다요. 벨로바, 베르긴도 비슷한 성향이었으니 말입니다요..”
“가문에 대한 애착이라······. 벨로바나 베르긴과 비슷한 정도면 큰 약점은 안 되겠는데?”
“그보다는 강합니다요. 마족이라는 놈들 본질이 그렇습니다요. 약해빠진 놈들이 무리 지어서······.”
강숭이는 카시마르의 시선에 스스로 말을 멈췄다.
“간단하게 이야기 해. 약점이 될 거 같냐. 안 될 거 같냐.”
“될 거 같습니다요.”
“확실해?”
“네. 그렇습니다요.”
“그럼. 일이 좀 쉬워지겠군.”
***
이틀 뒤.
리크토가 탈타드와 약속을 잡았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리크토의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사냥개의 정식 일원이었고 무엇보다 불멸의 굶주림 소속이었기 때문에 탈타드는 큰 의심을 하지 않고 있었다.
카시마르는 그 사이에 호위대와 벨로바에게 타밀라의 물감을 쥐어주었다.
이들은 카시마르를 따라서 리크토의 저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벨로바 일행은 탈타드의 저택으로 움직일 거였다.
탈타드가 리크토의 저택으로 움직이는 시간에 맞춰서.
“저택이 소박하군요.”
탈타드가 리크토를 보자마자 말했다.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어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사냥을 준비 중이신 겁니까?”
“안에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고. 그대가 좋아하는 하늘 듀공 고기를 준비해뒀어.”
“오. 그 귀한 것을. 감사합니다. 근데 모습이 좀 달라지신 듯 하군요.”
“운 좋게 귀한 가죽을 얻었지. 어때?”
“더 보기 좋습니다.”
“그래. 이 가죽이 내게도 더 편해.”
탈타드는 카시마르를 대할 때와 달랐다.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카시마르는 그 모습을 리크토의 저택 안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탈타드와 리크토는 응접실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걸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근데 왜 직접 나와 계십니까? 하인들을 부리지 않으시고요.”
“귀한 손님인데 직접 나와야지. 얼마 전에 하인들을 싹 바꿔서 일손이 부족하기도 하고 말이야.”
“오늘따라 저를 너무 띄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디 용암곰이라도 사냥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용암곰은 용암에서 사는 곰인데. 여기서 말하는 곰은 흔히 일컫는 곰이 아니었다.
계단 세계에서의 곰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수행을 쌓아 높은 존재로 탈바꿈하는 환수의 일종이었다. 그중에서도 용암에 서식하는 곰들은 수행 막바지에 이른 존재로 그 영향력이 세계신보다도 강할 정도였다.
용암곰을 잡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용암곰이 용암 밖으로 나오는 시기를 계산해야 했다. 용암곰은 한 번 용암 안으로 들어가 수행을 시작하면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백 년까지도 용암 속에서 수행을 계속하기에 용암곰이 나오는 시기를 계산해서 공격하는 게 최선이었다. 용암곰은 용암에서 나왔을 때 가장 약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약해진 시기에도 용암곰은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나라신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잡기 힘들 정도의 강력함.
탈타드가 용암곰을 언급한 것은 현재 계단 세계에서 용암곰이 가장 강력한 몬스터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용암곰이라······ 잡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한 번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군. 굉장히 아름답다던데 아닌가?”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
“다 왔네. 근데 먼저 온 손님이 있는데 괜찮겠지?”
“손님? 다른 손님이 있단······.”
탈타드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의 눈에 의자에 앉아 있는 카시마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는 수도사들과 호위대 몇 명이 함께 있었다.
“뭐, 괜찮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데······.”
탈타드는 밖에 있는 하인을 부르려고 했지만 부를 수가 없었다. 리크토의 차크람이 어느 새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크람이 탈타드의 피부에 살짝 파고들었다.
탈타드는 목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는 저항을 포기했다. 그의 피부는 가문의 전투술로 단련되어서 웬만한 금속보다 단단했다. 그런데 리크토의 차크람은 너무도 쉽게 그의 피부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사냥개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낀 것이었다.
“탈타드님 아니십니까? 다시 뵙게 되는군요.”
카시마르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탈타드의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커다래졌다.
***
탈타드는 3미터가 넘는 거구였다. 보통 사람이 보았다면 괴물이라고 기겁했을 모양새였는데, 계단 세계에서 이 정도 존재는 그나마 준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베르긴이 전투할 때의 모습은 탈타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했으니까.
벨로바도 생김새로 따지자면 그에 뒤지지 않았다. 리크토는 생김새는 예쁜 여인이었지만, 가죽을 벗겨서 입고 다니는 괴물이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정상인 게 없는 자들이 돌아다니는 세계.
그게 바로 계단의 세계였다.
카시마르는 바뀐 세계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적응을 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이쯤 되면 생각이 좀 바뀌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안 그렇습니까?”
탈타드는 거대한 솥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거대한 솥을 보면 그 밑에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을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도 밑에 장작은 없었다.
“안 그래요?”
“으으으읍!”
탈타드가 반응이 시원하지 않자 카시마르가 가까이 가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탈타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탈타드가 들어가도 공간이 훤히 남을 정도로 거대한 솥. 탈타드는 발가벗겨진 채 포박되어 그 안에 들어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탈타드님이 사냥꾼인 저를 박대해도 저는 아무렇지 않았단 말입니다. 저는 그냥 기다리자고 했어요. 탈타드님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사람들이 말이죠. 그러시면 안 된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라고 굳이, 굳이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탈타드님을 다시 뵙게 되었군요.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죠?”
카시마르는 능글맞게 탈타드를 압박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탈타드는 더 거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제 수하들이 말입니다. 좀 거친 면이 있어서요. 탈타드님을 산 채로 넣어서 삶아 먹자, 아예 담금주를 만들어 버리자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카너 보좌관.”
“예!”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이 사람아. 안 그래?”
“······.”
"그래? 안 그래?"
"예. 좀 잔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덜 잔인한 방법을 쓰기로 했어요. 다행이죠? 탈타드님은 운이 아주 좋은 겁니다. 제가 수하들보다 마음이 여리다는 걸요.”
카시마르가 탈타드의 눈앞에다 얼굴을 내밀고 부드럽게 말했다. 부드러운 카시마르의 음성이 탈타드의 귓가로 파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