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주캐로 멱살 캐리-205화 (205/205)

# 205

서스펙트

“진즉에 말을 하지 그랬냐.”

“선생님이 말을 듣기도 전에 두들겨 패시지 않았습니까요!”

강숭이가 훌쩍이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카시마르가 강숭이를 다독여줬다.

"진짜 너무하십니다요!"

"미안하다. 미안해."

"됐습니다요! 진짜 너무하셨습니다요."

"그래서 엉? 내가 미안하다고 했으면 됐지. 뭐, 나만 잘못했어? 진즉에 말을 했어야지. 누가 하지 말래? 엉?'

"선생님이 때리셨잖아요!"

"누가 맞으래?"

"네?"

"누가 맞으랬냐고. 억울하면 피했어야지. 엉?

"아니... 알겠습니다요."

"그래. 알아 먹었으면 됐어. 난 또 네가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 알았지. 큰그림을 그린 줄 알았어.”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요. 계약서가 선생님에게 있지 않습니까요!”

“그러니까 계약서만 있으면 우주적 존재가 되어도 네 능력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있다는 그 이야기지?”

“그렇습니다요!”

“그런데 나는 조금 이상하다?”

“또 뭐가 이상합니까요.”

“그냥 네가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 같단 말이야. 솔직히 네 이야기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데?”

“그건 달로스 그 양반··· 아니 달로스님이 제 힘의 영향을 안 받는 거 보면 알지 않습니까요.”

“안 받는지 받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이참에 족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자. 달로스 그 양반이 네 아버지인 거 아냐?”

“뭐, 그렇긴 합니다요.”

“근데 사이가 왜 그렇게 안 좋은 건가.”

“아오. 말도 마시지 말입니다요. 이야기 하자면 엄청 깁니다요.”

“널 만들었을 정도면 달로스는 최상위 우주적 존재라고 봐도 되는 거지?”

“등급으로 따지자면 그럴 겁니다요. 달리 달로스 우주가 척박하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우주 내에서 크기로 따지면 가장 큰 곳 중 하나입니다요.”

“하긴 그곳의 지배자니 급이 좀 높긴 하겠네.”

“지배자말입니까요?”

“아니야?”

“아닙니다요. 거기 지배자는 저죠.”

“네가 아니라 너 였겠지.”

“음! 그렇긴 합니다요.”

“그럼 지배자가 아니면 뭐냐?”

“창조주죠. 달리 달로스 우주를 달로스님이 만든 겁니다요.”

“거기서 너는 지배자 노릇을 했고?”

“그렇습니다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있어. 달로스 그 양반은 너처럼 불효막심한 녀석을 대체 왜 만들었냐?”

“하아. 이게 이야기 하자면 엄청 깁니다요.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요. 우주적 존재들도 저마다 성향이 다르듯이 잘 하는 게 다르다고. 달로스님이 잘하는 건 시간과 공간을 주무르는 일. 쉽게 말해서 창조하는 것입니다요. 근데 달리 달로스라는 거대한 우주를 노리는 다른 우주적 존재가 많았습니다요. 그래서 달로스님은 달리 달로스를 지키기 위해 카이로를 만들었습죠.”

카이로는 대단한 능력의 용이었다. 달리 달로스가 자신의 영향력을 많이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주 강력했다. 문제는 달로스가 만든 카이로가 너무 강하다는 게 문제였다. 달로스도 컨트롤이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존재.

그래서 달로스는 카이로를 잡기 위하여 강철 원숭이를 만들었다. 힘은 없지만 카이로를 잡기에는 딱 좋은 존재. 그런 염원을 담아 강철 원숭이를 만들었고, 강철 원숭이는 우주적 존재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까지는 이야기가 딱 좋네. 근데 대체 왜 사이가 틀어진 거야?”

“그건 뭐 달로스님이 절 봉인하려고 했습니다요.”

“봉인?”

“카이로를 죽였으니 제가 필요 없어진 겁니다요.”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어차피 카이로도 우주적 존재니까 다시 살아날테고, 그러면 네 힘이 다시 필요한 거 아닌가? 그때쯤에는 다른 방법을 쓰려고 생각해둔 게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닙니다요. 정확히 말하자면 카이로는 우주적 존재가 아니었습니다요.”

동파육은 솥에 들어가서 보글보글 졸여지고 있었다.

“음? 뭔가 이상한데. 그게 가능해?”

“강하다는 것에는 제한이 없으니까요. 우주적 존재라고 하면 보통의 미물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죽일 수 있지만, 그들이 모두 전투에 능함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요.”

“근데 기준이 조금 이상하잖아.”

“이상할 거 없습니다요. 아무리 강력해도 우주적 존재가 되려면 확립된 자아가 있어야 합니다요. 나를 나로 인지할 수있어야 우주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요.”

“뭔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한 마디로 지능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잖아.”

“어. 그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요.”

“그니까 이야기를 슬 들어보니 카이로라는 놈은 전투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일종의 병기 같은 거고, 그래서 우주적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요!”

“그럼 앞뒤가 안 맞잖아!”

“뭐가 말입니까요?”

“카이로가 엄청 센 놈이라며? 우주적 존재들도 막을 수 있을만큼.”

“그렇습니다요.”

“그런데 우주적 존재는 아니고?”

“맞습니다요.”

“이게 어디서 자꾸 머리를 굴려. 무슨 유주얼 서스펙트냐? 너 지금 이야기 막 지어내는 거지? 이 새끼 뒤에 사진 있는 거 아냐!”

빠각!

카시마르가 카이로의 꼬리로 강숭이의 머리를 쳤다. 강숭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아니 왜 때리십니까요!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요!”

“오냐.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러면 네가 어떻게 카이로를 잡았냐? 카이로는 우주적 존재가 아니라며? 그러면 잡을 수 없는 거 아니냐?”

“아! 선생님! 아까 제가 한 말 못들으셨습니까요? 달로스님이 절 왜 만드셨습니까요.”

“카이로 잡으려고?”

“그렇습니다요. 카이로는 제가 능력이 없건 있건 저한테는 안 되는 놈입니다요!”

“그니까 카이로는 원래 너한테 안 되는 놈이었고, 다른 우주적 존재들은 네가 태어날 때 우주에서 받은 능력 때문에 네 앞에서는 약해지는 거고?”

“그렇습니다요.”

“너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구나?”

“에이. 선생님. 그걸 인제 아셨습니까요. 제가 원래 좀 잘 나갔습니다요.”

“그래서 그 뒤의 이야기는?”

“무슨 뒤 이야기 말입니까요?”

“달로스가 널 봉인하려고 했다며. 근데 봉인하지 못한 거 아냐? 넌 네 부하들한테 배신당해서 추락했다면서.”

“맞습니다요. 제가 역으로 달로스님을 공격했습니다요. 그래서 절 봉인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요. 그 긴 시간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요.”

“그래서 네가 달리 달로스의 지배자 행세를 한 거였구나?”

“그렇습니다요.”

“찰스랑 오른우 이런 애들이랑 짜고?”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

“그러다가 하도 네가 나쁜 짓을 저지르니까 밑에 애들이 반란 일으켜서 넌 도망친 거고?”

“넵.”

“참나. 달로스 그 양반이 널 살려둔 게 용하다. 용해.”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요. 전 계약만 어기지 않으면 큰 문제 없습니다요. 제가 달로스님을 봉인할 때 주고 받은 딜이 있어서 말입니다요.”

“봉인? 네가 달로스를 봉인했었다고?”

“제가 당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요.”

카시마르는 강숭이와의 대화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굳이 우주적 존재가 되지 않아도 힘을 얻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 완성된 것 같습니다요.”

“그럼 들어가자.”

동파육이 든 냄비를 들고 조서가 있는 무덤으로 들어섰다.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 작은 관이 하나 있었다.

“저기에 조서가 있는 거냐?”

“그런 것 같습니다요.”

강숭이는 들고 있던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동파육 냄새가 무덤 안에 솔솔 퍼져나갔다. 강숭이는 동파육이 든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멧돼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 뒤 동파육 쪽으로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평범할 게 없는 멧돼지의 모습이었는데, 그게 바로 찰스가 만들어놓은 수호자 센싱이었다.

센싱은 동파육을 금세 다 먹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애초에 클리어라하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었다. 레시피대로 동파육을 조리해서 먹이는 것이 센싱을 클리어하는 일종의 암호인 셈이었다. 물론, 관리자 외에는 알지 못하는 암호라서 카시마르도 찰스와의 연이 없었다면 절대 클리어하지 못했을 터였다. 클리어뿐만 아니라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거였다.

“찰스랑 똑같이 생겼네?”

관을 열어본 카시마르가 말했다. 관 안에는 찰스와 똑같이 생긴 돼지가 누워 있었다.

“미세하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요.”

“미세하게 잖아. 거의 똑같은 거지.”

“이놈은 팔계 중에서도 가장 성질이 더럽습니다요. 그다지 세지는 않은데 성질이 드러워서 아마 팔계 중에서 가장 많은 살상을 한 녀석일 겁니다요.”

“큰 기대도 안 했다. 네 친구들이 다 그렇지.”

“아무튼 깨워 보겠습니다요.”

“깨워봐.”

강숭이는 룰북에 적혀 있는 그대로 주문을 외워서 조서를 깨웠다. 잠시 뒤 조서가 일어났다.

“이 거적 떼기 같은 원숭이 새끼! 골을 파먹어주겠서!”

“뭐? 뭘 파먹어?”

“엉? 형이 여기 왜 있서?”

조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숭이를 바라봤다. 강숭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카시마르를 바라봤다.

“선생님. 카이로의 꼬리 좀 빌려주시겠습니까요?”

“그래.”

“뭐야! 이거 뭔데! 엉? 나 뭐야? 나 봉인된 거였서?”

"응. 그런 거였서."

조서는 머리를 흔들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강숭이가 막대기 형태의 꼬리를 마구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 다시 자라고! 다시 보니까 찰스가 그나마 괜찮은 놈이라는 걸 알겠어!”

비록 상위 우주적 존재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하위 우주적 존재라지만 팔계는 엄연히 우주적 존재였다. 그들 중 하나의 인격인 조서도 결코 약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숭이 앞에서는 그들은 그냥 미물에 불과했다.

조서는 다시 잠들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피투성이가 된 조서는 다시 쓰러졌다. 조서가 다시 잠들자 종이 한 장이 카시마르에게 주어졌다. 그게 다른 무덤의 수호자들을 없애는 열쇠인 셈이었다.

***

팔계의 무덤을 도는 일은 순조로웠다. 종이 한 장만 보여주면 수호자들이 알아서 사라졌고, 그 뒤는 조서와 같은 방식으로 관을 열어 깨우고 두들겨 패서 다시 재우면 그만이었다.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지만 강숭이가 있어서 이렇게 일이 수월한 것이라는 것을 카시마르는 잊지 않았다. 여러모로 강숭이가 사기 캐릭터에 가까운 녀석인 셈이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요. 테스트라는 놈인데. 팔계 중에선 첫째입니다요. 제일 머리 좋고 차분한 녀석이지요.”

“그놈들 중에서 그나마 그렇다는 이야기겠지?”

“그렇습니다요.”

마지막 무덤에 들어섰다. 그곳에 있는 수호자는 널널한 옷을 입고 평범한 체격의 사내였다. 그는 무덤을 보고 앉아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카시마르도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아스투리아스.

사내의 손은 분주하고 움직였다. 사람의 몸에 돼지 얼굴을 한 사내. 오크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선생님. 제가 음악에는 조예가 없어서 말입니다요. 저거 지금 잘 치는 겁니까요?”

“아니. 술 몇 잔 걸치고 치는 듯한 느낌이네. 다 틀리는데 너무 뻔뻔하게 치니까 그럴듯 해 보일 지경이야.”

곡을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도무지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연주는 형편 없었다.

“야!”

참다 못한 강숭이가 사내를 불렀다. 그러자 연주가 멈췄다.

“조용하라. 가장 위대하신 분이 잠들어 계신다. 연주가 끝나면 너희에게 죽음을 선······.”

“지랄하고 자빠졌네. 연습이나 해! 새끼야!”

강숭이는 뛰다시피 제단 위로 올라가서 발길질을 했다. 그리고 얼른 이전 무덤에서 얻은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받은 사내는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바닥에는 그가 지니고 있던 클래식 기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님.”

“왜?”

“이거 꽤 좋은 물건인 것 같습니다요.”

“그래?”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요. 잘 챙겼다가 감정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요?”

“······.”

강숭이의 제안에 카시마르는 가늘게 눈을 떴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요?”

“이제는 뭘 해도 의심부터 들잖아.”

“아니!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요. 좋은 거 같다고 말씀 드린 것도 죄입니까요!”

“자꾸 유주얼 서스펙트가 떠올라. 아오! 짜증나! 왜 나를 이렇게 의심 가득하게 만들어! 엉? 절름발이 되어 볼래?”

“서···선생님! 원래 선생님 잠시 침착하시죠! 지금 이렇게 화낼 타이밍 아닌 것 같습니다요!”

“뭐? 이제는 내가 화내는 것에도 의도를 숨겨놨냐?”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아픕니다요! 아파요!”

그러나 카시마르는 이미 카이로의 꼬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강숭이는 테스트의 관 앞에서 다시 한번 거하게 두들겨 맞았다.

***

테스트를 다시 두들겨서 재우자 팔계의 어금니로 만든 갑옷이 주어졌다. 갑옷이라고 해봤자 허름하게 생긴 목걸이에 불과했다. 이빨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

“이게 갑옷이라고?”

“그렇습니다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진짜 갑옷 맞습니다요. 이게 투명 갑옷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목걸이를 착용하면 효과는 나타납니다요.”

카시마르는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는 강숭이가 하는 말이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카시마르였다. 카시마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강숭이가 얼른 무릎을 꿇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아! 선생님! 저 오늘 정말 많이 맞지 않았습니까요.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요. 이제 진짜 그만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야. 누가 보면 내가 동물 학대라도 하는 줄 알겠다. 엉? 진짜 그래? 학대가 무엇인지 보여줄까?”

“아닙니다요! 진짜 거짓말 아니니 한 번 착용보시지 말입니다요.”

둘은 목걸이가 갑옷이냐 아니냐를 놓고 다시 한번 논쟁을 벌였다. 결론은 강숭이의 말이 진짜였다.

이로서 카시마르는 계단 세계의 그 어떤 아이템보다도 강력한 아이템을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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