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2화 (2/207)

#2화. Chapter 1. 영웅 사냥 (1)

***

삐빅, 삐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전자음이 머리맡에서 울렸다.

베개 언저리로 손을 뻗으니 덜덜 진동하는 휴대전화가 잡힌다. 실눈을 뜨고 확인한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17분.

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어난 게 짜증스러워 나는 곧장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윽-

알람이 꺼지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고, 그대로 잠을 청하려던 그 순간.

삐빅, 삐비빅- 우우우우웅!

아까보다 더욱 격렬한 소리가 내 정신을 억지로 일깨웠다.

“아 씨…….”

그제야 어젯밤에 1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놓은 게 떠올랐다. 오늘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도.

“진짜, 세상에 나 같은 오빠 없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오전 6시 40분. 늦지 않게 일어난 덕분에 시간은 넉넉했다.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든든하게 먹고 가라고 콩나물국과 반찬까지 얼추 다 만들어갈 즈음 동생 방의 문이 열렸다.

미리 설거지부터 처리하던 나는 뒤편에 서 있을 동생을 쳐다보지 않고 일렀다.

“씻고 나와. 오늘 개학식인데 밥 먹고 가야지.”

“…….”

대답 없이 발걸음 소리만 들리더니 이내 욕실 문이 쾅 닫힌다.

쌀쌀맞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태도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푸념을 내뱉었다.

“저거, 저 버르장머리 없는 게.”

예전엔 안 그랬는데 갈수록 오빠 말을 개똥으로 안단 말이지. 상당히 기가 차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비닐 랩을 씌운 그릇을 식탁에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얼마간 지나자 바깥에서 동생이 등교 준비를 하는 기척이 들렸고, 애가 집을 나설 듯한 타이밍에 방을 나와서 물었다.

“밥 안 먹고 가게?”

“입맛 없어.”

핑계임이 뻔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미쳤다고 네가 차려준 밥 먹고 나가겠어?’라고 안 하는 게 어디야.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동생에게 일렀다.

“오빠 밤에 늦게 올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또 술 마시러 가?”

“뭐,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

조용히 나를 쏘아보던 동생이 몸을 홱 돌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따위의 인사는 없이 그대로 현관문을 빠져나갔고, 홀로 남은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동생이 손도 대지 않은 아침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늘은 특히나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한 숟갈이라도 먹고 갔으면 좋았을걸.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음식을 대신 해치우며 자평했다.

“……맛있네.”

밥을 먹고 정오까진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오늘 일정이 빡빡하긴 해도 죄다 오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라서.

그중 첫 번째 약속은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옛날 지인과의 식사자리다. 바꿔 말하면, 내가 쓴 소설에 등장했던 캐릭터이기도 하고.

마침 그 사람에게서 메신저 앱으로 연락이 왔다.

-염의준: 도진아, 세 시까지 삼촌 회사로 오렴.

-염의준: 아니면 삼촌이 말해놓을 테니까 차 타고 올래? (12:06)

-이도진: 아뇨 괜찮습니다

-이도진: 세 시 전에 늦지 않게 찾아뵐게요

-이도진: 나중에 뵙겠습니다 아저씨 (12:15)

간단히 대화를 정리하곤 옷을 챙겨 입었다. 바로 약속 장소로 출발하려는 건 아니고, 가기 전에 들를 데가 있었다.

오늘은 차 끌고 나가면 여러모로 번거로울 것 같아 택시를 잡아탄 나는 기사님께 목적지를 일러드렸다.

“남산공원 쪽으로 가주시겠어요?”

지난 십 년간 못 해도 달에 한두 번씩은 꼭 다녀온 곳. 거기엔 우리 부모님의 추모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

<세계의 수호자>라는, 내가 예전에 쓴 판타지 소설이 있다.

이세계의 악마들이 침공해 오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뭉친 세계 각지의 영웅들이 그걸 막아내 평화를 되찾는다는 내용.

가장 비중이 높은 등장인물은 역시 주인공인 이시혁과 히로인인 정세빈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모르고 자랐던 이시혁.

마도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가문이 멸문한 원수를 갚기 위해 차가운 복수심을 불태우며 살아온 정세빈.

두 사람은 내가 다녔고, 지금은 내 동생이 다니고 있는 국립 제1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기술과 마법 분야에서 각각 수석.

둘 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장학금을 받고자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얘가 잘하긴 해’라며 차츰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게 됐고, 여러 번의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며 유대감이 깊어졌고, 나중엔 겉으로 으르렁거리긴 해도 사실은 서로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러선 달리는 댓글 대부분이 ‘답답해 죽겠는데 쟤네 언제 사귀어요?’ 같은 것들이었고.

물론 그들은 행복해졌다.

서로가 품은 마음을 확인해 연인이 되었고, 마침내 세상을 구했다.

그게 둘이 스물다섯 살 때인데…… 공교롭게도 지금 내 나이와 같았다.

새삼 부모님이란 존재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네.

나는 스물다섯 먹고도 요 모양 요 꼴로 사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 나이에 세계에서 으뜸가는 영웅으로 행복한 가정까지 꾸리셨다.

……그러면.

이왕 그랬으면.

그 뒤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랑 내 동생이랑 넷이서 같이.

[서른여섯 영웅의 수좌, 영웅 중의 영웅. ‘수호자’ 이시혁과 ‘대마법사’ 정세빈을 기리며]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읽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커다랗게 세워진 남녀 한 쌍의 동상이 보인다.

양손으로 잡은 검 끝을 땅으로 향하고 있는 남자와 지팡이를 쥐고 그의 곁에 서 있는 여자.

잘생기고 예뻤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나는 들리지 않을 말을 건넸다.

“엄마, 아빠. 나 왔어요.”

무덤은 국립묘지에 있지만 그건 형식상의 치장에 불과하다. 우리 부모님은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으니까.

난 그래서 무덤보다는 이 광장에 오는 게 좋았다.

현충원은 너무 칙칙해. 여긴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밝은 편이라 이쪽이 훨씬 마음에 내킨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가끔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멋들어진 동상이 정말로 그분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여기로 이사했을 뿐이고, 사람들이 감사를 전하는 걸 받아주고, 내가 찾아오면 웃으면서 반겨주시고.

“……나는 뭐 그렇다고요.”

넋두리처럼 얘기하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나를 언급하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도 들린다.

“쟤가 걔지? 이도진. 요즘도 자주 오나 보네?”

“마음 못 잡고 저러는 거 되게 좀 불쌍하다…….”

당사자가 근처에 있는데 수군거리는 게 실례이긴 해도 저 정도면 양반이었다. 적어도 욕은 안 하잖아.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선 나를 대놓고 조롱거리로 삼고 있다.

부모님 유산으로 맨날 술이나 퍼먹고 다니는 한심한 놈이라고. 꼴에 제1 아카데미 나와선 몬스터와 싸울 생각조차 안 하는 겁쟁이라고.

영웅이 남긴 유일한 오점이라는 댓글도 기억에 남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딱히 틀린 표현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열다섯 살까지 나는 엄마 아빠의 재능을 한몸에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학교 과정을 끝낼 무렵엔 ‘그래도 반의 반절 정도는 따라간다’라는 식으로 평가가 낮아졌지만, 그때까진 정신적인 충격으로 슬럼프가 찾아온 거라고 다들 이해해줬다. 게다가 그 정도만 해도 내 또래 중에선 뛰어난 수준이었고.

하지만 고등학교 땐 이미 전교 등수를 뒤에서 세는 편이 두 배는 더 빠를 지경에 이르렀고, 더는 구구절절한 변명을 댈 상황이 아니었다.

대학 과정이야 아예 졸업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고.

그러니 나는 내게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을 바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욕하든가 말든가 맘대로 떠들라지. 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거니까.

나도 안 보이는 데서는 제법 열심히 살고 있다고.

데엥, 데엥-

그즈음 맑은 종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광장에 자리한 시계는 어느덧 두 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

“……또 올게요.”

요새 워낙에 바빠져서 드문드문 찾아뵀지만 오늘 일이 끝나고 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 거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는 추모 광장을 떠났다.

슬슬 염의준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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