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3화 (3/207)

#3화. Chapter 1. 영웅 사냥 (2)

***

염의준이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문장이면 충분하다.

첫 번째, 이십여 년 전 세상을 구한 36 영웅의 일원.

두 번째, 마석 관련으로는 국내 굴지이자 세계적으로도 한 손에 꼽히는 기업 ‘산일’의 다음 대 주인.

후자로서의 그에겐 나 같은 날백수와 만날 이유가 없으니 오늘 부른 목적은 전자에서 기인하겠지.

죽은 친구 아들놈이 자꾸만 엇나가고 있으니까.

밥 한 끼 사주면서 정신 좀 차리라고 다독이려는 목적에서.

하지만 막상 식사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요새는 그래, 하는 일은 잘 되고?”

“그냥, 준비하는 건 몇 개 있는데…… 열심히 해보려고요.”

나는 조금 멋쩍어하는 태도로 답했다.

실제론 쥐뿔도 없는데 대강 둘러대는 것처럼.

그걸 저쪽도 눈치채고 있을 테지만, 그런 만큼 더더욱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진 말아 달란 것처럼.

한데 내 한심한 대답에 염의준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그리곤 은근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

“실은 삼촌이 취직자리를 봐둔 게 있어서 도진이 네 의향을 물어보려고 부른 거란다. 오랜만에 조카 얼굴도 보고.”

“취직자리라고 하시면…….”

놀라면서도 내가 언뜻 내비친 흥미에 기꺼워하며 염의준이 말을 이었다.

“학교에 자리가 하나 나서 거기에 너를 추천할까 했지.”

들어보니 이런 말이었다.

얼마 전,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교에서 마법역학 과목의 전임 교원이 사표를 냈다.

인원 보충이야 크게 무리가 없고 적당히 사람 차출해서 쓰면 되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나를 떠올렸다고.

거론된 학교는 내 동생이 재학 중인 국립 제1 아카데미. 우연의 일치로 마법역학이란 과목도 내 동생이 오늘부터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이었다.

“교수 성격이 살짝 괴팍하긴 해도 네가 할 일은 별로 없을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본인이 도맡아서 해야 직성이 풀린다더구나.”

솔직히 엄청나게 좋은 제안이었다.

다른 건 할 필요 없이 수업만 도와주면 된다니까. 교수 본인의 연구는 누가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고.

결과적으로 내 업무라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강의와 관련한 것뿐이다. 그러고서 월급은 사회 초년생의 평균 임금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

“도진이 네가 대학 과정까지 다녔지?”

“네, 작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그러면 교원 자격증도 있을 거고.”

중고등학교에 대학 과정까지 총 십 년이 걸리는 제1 아카데미 커리큘럼. 한 해 입학자는 전국에서 딱 삼백 명 받는다.

하지만 제적, 자퇴, 전학 등 다양한 사유로 고등 과정까지 마치는 사람은 이백 명에 못 미치고, 대학 과정은 애초에 입학하는 사람이 오십 명도 안 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부분 현역으로 나가버리니까.

그리고 꾸역꾸역 대학 다니는 애들은 졸업 요건으로 교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나도 그걸 따긴 했다. 설마하니 나한테 이거 써먹으라고 제안할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죄송하지만 며칠만 고민을 좀 해봐도 될까요?”

“그래, 좋은 자리인 건 확실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렴. 세아도 오빠랑 같이 학교 다니면 좋아할 거고.”

“그건, 글쎄요…….”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갈 것 같은데.

세아는 내 동생 이름이다.

이세아. 오빠를 무슨 집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대하는, 쌀쌀맞지만 내 목숨보다 소중한 동생.

술잔을 입으로 가져간 염의준이 문득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학교 얘기가 나오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 시혁이랑 세빈이. 그 친구들이랑 참 재밌었는데.”

내가 썼으니 듣지 않아도 잘 아는 이야기다. <세계의 수호자>의 1부에 해당하는 아카데미 파트.

이시혁과 정세빈이 번갈아 가며 전교 1등을 다퉜고, 염의준은 뭐라 해야 할까……. 말하자면 안정적인 5위권이었다.

말수가 적은 편에, 성격이 무던하고, 지닌 재능이 뛰어나면서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여러모로 믿음직한 조연 캐릭터.

갑자기 울분이 치솟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던 말을 겨우 삼키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만약 누가 돌아가게 해준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그러자 염의준이 마찬가지로 씁쓸해하며 답한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우린 그 이상으로 잘 해낼 수 없었을 거야. 네 아버지도, 네 어머니도, 나도, 다른 친구들까지 각자 최선을 다했으니까. 내가 후회되는 건 너희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단지 그것뿐이란다.”

“그건…… 아저씨가 잘못하신 일이 아니잖아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재해였다.

아무 전조도 없이 십수 년 만에 나타난 초월적인 규모의 균열.

그걸 단 두 사람이 막아낸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나와 어린 세아는 전혀 바라지 않는 희생이었다.

“너도 다 컸다고 내가 너한테 위로를 다 받는구나.”

무척 대견해하는 목소리. 염의준이 친자식을 대하듯 애틋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 시선을 피하고, 내 표정을 가리며 답했다.

“언제까지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슬픈 건 슬픈 거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지.

염의준이 말없이 술을 한 잔 따라줬다. 조심스레 술을 들이켜고는 그에게 말했다.

“이번엔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슬픔과 기쁨이 섞인 기묘한 표정으로 염의준이 술잔을 내밀었다.

상당히 길게 이어졌던 식사는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염의준은 나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으나 그에겐 밤부터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다. 나도 이후로 다른 약속이 있고.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 뵐게요, 아저씨.”

“그래. 학교에는 내가 말을 해둘 테니 네 쪽으로 연락이 갈 거란다.”

커다란 세단 뒷좌석에 탄 염의준이 마지막으로 내게 일렀다.

“잔소리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열심히 하렴. 시혁이도 세빈이도 그러길 바랄 거야.”

“……네.”

공손히 답하며 몸을 숙여 인사했고, 이내 염의준이 탄 차량이 저 멀리 도로로 사라져간다.

홀로 남은 나는 그제야 나직이 한마디를 되뇌었다.

“개소리하지 마.”

죽은 사람은 소원 따위를 가질 수 없다.

말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그러니 저자가 멋대로 지껄인 말은 그저 산 사람의 기만에 지나지 않아. 한낱 버러지의 위선.

시계를 보니 오후 7시 30분이었고, 나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 하나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마쳤어요. 어디로 가면 되죠?”

<맨날 가던 곳. 9시까지 와.>

여유로운 목소리. 수화기 너머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자기는 벌써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좀 애매하게 남겠는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장 출발하기로 했다.

9시까지 오라고만 했지 그 전에 오지 말라곤 안 했잖아.

삼십 분 정도가 흐른 뒤.

나는 요즘 자주 왔던 라운지 바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면이 있는 직원 하나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오빠 왔어요? 언니 아까 한 시간 전? 그쯤 먼저 오셨는데.”

“룸에 있죠?”

“네, 저번에 같이 오셨던 그 방이요.”

고맙다고 말하곤 2층 제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는 프라이빗 룸.

노크도 없이 바로 들이닥치니 안에서 혼자 칵테일을 홀짝이던 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9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

“뭐 어때. 오면서 목말랐는데 나도 한 잔 줘요.”

넉살 좋게 답한 내가 비어 있는 술잔을 내밀자 여자가 질책하는 어조로 나무랐다.

“요즘 회사는 사장한테 술 달란 말 마음대로 하게 되어 있어?”

“우리가 회사예요?”

“넓게 정의하면 그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웃기는 소리 하네. 이런 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어딨다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비스듬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본 여자가 양주를 넘칠 만큼 따라주며 물었다.

“염의준이 뭐라니?”

“제일고에 자리 알아봐 놨다고 조교 하라던데요.”

“조교? 널 뭘 믿고.”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를 무슨 자기 아들처럼 보던데 이러고 사는 거 신경 쓰였나 보죠.”

“‘네가 내 아들이었어야 해…….’ 뭐 이런 건가?”

“아마도요.”

비웃음을 담은 빈정거림에 동의하자 여자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살면서 본 인간 중에 걔가 찌질하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들 거야.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나이 먹을수록 그렇게 되나 보죠. 예전에는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응? 언제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어릴 때부터 찌질했는데.”

“얼추 이십 대 중반까지? 그때까진 아닌 척하고 살았죠.”

“나 참,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애가 뭘 안다고. 염의준이 이십 대 중반이라고 해 봐야 넌 응애 응애 하는 아기였잖아?”

“똑똑해서 척 보고 알아봤어요.”

농담처럼 받아치자 여자가 피식 웃는다.

그리곤 자기 술잔을 따르며 충고하듯 일렀다.

“술 많이 마시진 말고. 일하려면 정신이 멀쩡해야지.”

“이거 한 잔만 마실게요.”

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호박빛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간다. 뱃속이 살짝 타오르는 듯한 감각.

여자와 나 사이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문 바깥에서는 희미하게 음악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도 들렸다.

고요한 시간이 계속해서 흘렀고, 마침내 오후 열 시에 다다라가던 그때.

여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도진아.”

“네.”

“난 가끔 그런 상상을 하거든. 네가 지금 이러는 거, 시혁이랑 세빈이가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자식 키워놨더니 나쁜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슬퍼하진 않을까…… 하고. 네 생각은 어때?”

흥미로워하는 표정. 시험하는 듯한 말투.

나는 단출하게 답했다.

“상상해 봐야 의미 없어요. 죽은 사람은 그런 거 생각 못 하니까.”

그러자 여자가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고개를 주억이며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열 시 다 됐네. 이제 일하러 가봐야지?”

권태로움에 잠겨 있던 여자의 눈빛이 어느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몸속에 흐르는 마력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쉬이익-

바람결에 커튼이 스치는 듯한 소리.

그와 함께 내 신체에 변화가 일었다.

골격이 줄어들고, 이목구비가 바뀐다. 몸 전체가 검은 안개에 휘감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일렀다.

“한 시간 안에 돌아와. 오래 처리하고 있기 귀찮으니까.”

“그만큼도 안 걸릴 거예요.”

“까먹을 뻔했네. 이거 가지고 가고.”

어디서 생겨났는지 여자가 오른손에 가면 하나를 쥐고 있었다. 내게 건네길래 받아들며 불평했다.

“어차피 겉모습 다 바꿨는데 이런 걸 굳이 써야 합니까?”

“우리 콘셉트인데 지킬 건 지켜야지.”

“아, 예……. 암요, 암요. 중요한 문제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너 말투가 왜 그러니?”

“네? 왜요?”

천연덕스럽게 되받아치니 여자가 상당히 못마땅해하며 픽 내뱉었다.

“……됐어, 여하튼 잘 하고 오렴.”

“네, 보스.”

“쬐끄만 게 이럴 때만 보스지.”

영화 대사를 흉내 내듯 답한 말에 투덜거린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타악-

힘찬 소리가 울렸고, 나는 내가 방 안을 벗어나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염의준과 나눈 대화.

여자가 내게 했던 질문.

아무런 의미도 없어.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바꿔서 말하면.

살아나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쿠웅!

충격음과 함께 내 양발이 땅을 밟았다. 정확하게는 단단한 대리석 바닥.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아까까지 머물던 바의 프라이빗 룸이 아니라 호화로운 파티장이었다.

정장과 드레스를 멀끔히 차려입은 이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봤고, 다음 순간엔 사방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블러디 포그가 어쩌고저쩌고. 검은 악마가 어쩌고저쩌고.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낯뜨거운 별칭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면 쓰고 있는 게 이럴 땐 장점이 있단 말이지.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정면을 향해 걸었다.

삼십 미터쯤 앞에, 오늘 내가 처리해야 할 목표가 서 있다.

서른여섯 영웅의 말석.

S급 헌터 염의준.

가까이 접근하기에 앞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자 나는 시야 한구석을 바라봤다.

거기엔 오직 내게만 보이는 홀로그램이 일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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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호자> 후속 외전, <마신의 탄생>의 최종 챕터 ‘영웅 사냥’이 진행 중입니다.

-클리어 조건: ‘철권’ 염의준의 살해

-보상은 챕터 클리어와 작품 완결 특전을 합산해 지급할 예정입니다.

-해당 챕터가 마무리된 이후, 에필로그 ‘장례식’을 거쳐 <세계의 수호자>의 정식 속편인 <???>로 이어집니다.

-<마신의 탄생>의 주인공 이도진이 요청한 속편 <???>의 클리어 보상을 재확인합니다.

: <세계의 수호자>의 주인공 이시혁과 히로인 정세빈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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