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4화 (4/207)

#4화. Chapter 1. 영웅 사냥 (3)

***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나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검은 상복을 입었다. 내 옆에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세아가 울고 있었다.

어린 동생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먹이며 내게 물었다.

“오, 오빠…… 있잖아, 죽은 거면…… 아빠랑 엄마랑…… 이제 모, 못 보는 거야……?”

아마 세아가 조금 더 어렸다면 둘러댔을지도 모르겠다. 영영 못 보는 게 아니라 잠시 어디 먼 곳에 가신 것뿐이라고. 그러니 곧 돌아오실 거라고.

하지만 영특한 내 동생은 죽음이란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 또한 그걸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십수 번은 들은 질문에 계속 같은 답을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응, 엄마랑 아빠랑은, 이제 같이 못 사니까…… 오빠랑 둘이서 살자. 오빠가 엄마 아빠 대신에 세아 잘 키울 거야.”

그건 대답인 동시에 다짐이자 약속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 가족이라곤 우리 둘밖에 안 남았으니까.

다행히 나는 헌터 일에 제법 재능이 있고, 나 하나 앞가림하는 거야 자신이 있었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일까지 병행한대도 어떻게든 되겠지.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내 동생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울 수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그런 말들을 부모님께 전했고…….

세아가 새된 목소리로 외친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

“싫어, 둘이 살기 싫어! 엄마 아빠랑 넷이서 같이 살 거야-!”

장례식장에 온 이들이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는 세아를 꼭 끌어안으며 되뇌었다.

솔직히 나도 안 믿겨.

왜 돌아가신 건데? 이해가 안 돼.

소설 주인공이랑 히로인이잖아. 결말이 난 이후로도 행복하게 사는 게 정석 아니냐고.

이딴 후일담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해? 적어도 난 티끌만큼도 바라지 않았어.

혼란스러운 사고의 흐름은 급기야 책임을 돌리고 탓할 대상을 찾는 데까지 이르렀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의 존재로 인해 이런 사태가 초래되었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

그건 바로 작가인 나였다.

나 때문인가? 내가 소설 속에서 부모님 자식으로 환생해서?

그래서 뭔가 꼬여버려서 두 분이 돌아가신 거야?

이윽고 헛된 기대감이 얼핏 들었다.

정말로 나 때문이라면…….

그러면…… 만약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엉켰던 게 풀어지고, 어쩌면 두 분이 살아 돌아오시지 않을까?

온몸을 활활 불태우는 듯한 죄책감과 자기 혐오.

나는 그 순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고, 그러나 느닷없이 나타난 홀로그램이 내 결심을 막아섰다.

+

<세계의 수호자> 후속 외전, <□□>의 프롤로그 ‘장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당 외전이 종료된 이후, 정식 속편 <???>로 이어집니다.

-<□□>의 주인공 이도진이 <???>의 최종 승리자가 될 시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원하는 보상을 선택해주세요.

+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우리 부모님의 소생이라고.

그러자 홀로그램이 일렁였다.

+

-<□□>의 주인공 이도진이 요청한 <???>의 클리어 보상을 확인합니다.

: <세계의 수호자>의 주인공 이시혁과 히로인 정세빈의 소생

-요청하신 보상의 수준에 따라 <□□>의 제목을 결정합니다.

: <마신의 탄생>

-<마신의 탄생>의 주인공 이도진이 <???>에서 맡게 될 역할을 결정합니다.

: 최종보스

+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우는 세아의 등을 쓸어 내려주며 나는 홀로그램에 기재된 내용을 정리했다.

내가 쓴 소설의 후속 외전이 있고,

나는 그 외전의 주인공이다.

외전이 끝나면 정식 속편이 시작되며,

내가 속편의 최종적인 승자가 된다면 클리어 보상이 주어진다.

나는 클리어 보상으로 부모님의 소생을 택했고,

그걸 토대로 후속 외전의 제목은 <마신의 탄생>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정식 속편에서 내가 맡을 역할은,

주인공이 아니라 최종보스다.

간단하네.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제목이고 최종보스고 그딴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든 간에 이기면 부모님이 돌아오신단 거잖아.

난 그거면 충분해.

그즈음 다시 홀로그램이 비쳤다.

+

<마신의 탄생>의 프롤로그 ‘장례식’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장례 기간 내에 ‘안개의 마녀’ 서연희를 아군으로 끌어들일 것.

-클리어 보상은 소요 시간과 신뢰도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

세아를 안은 양팔에 힘을 한 번 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닿아 있던 온기와 멀어지자 세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오빠 왜……? 어디 가……?”

“세아야, 잠깐만? 오빠 잠시만 어디 좀 다녀올게. 금방 올 거야.”

다급한 내 말에 세아가 있는 힘껏 고개를 도리질했다.

“싫어, 같이 가. 오빠 따라갈래. 나도 같이-”

“안 돼.”

강한 어조로 답하자 세아가 놀라서 입을 다문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나는 간신히 참아내며 몸을 돌렸다.

소요 시간과 신뢰도에 따라 보상이 나뉜다고 했지. 그렇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아까 내일 또 오겠다고 내게 말했고, 방금 장례식장을 나서는 걸 봤다.

내일이나 그다음 날도 언제 단둘이 마주할 기회가 있을지 몰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려는데…… 그동안만 세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근처의 사람들에게 부탁하자 선뜻 그러란 대답이 돌아왔다.

“오빠, 같이 가! 오빠!”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는 게 두려웠는지 세아가 울면서 칭얼댄다. 나는 이를 악문 채 장례식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곧 주차장 부근의 외진 구석에서 담배 연기를 흘려보내는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의 성숙한 여성으로 보이는 외견에 키가 상당히 컸다. 175cm 정도.

이목구비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띠었고, 표정도 꼭 그와 어울리게 무감했다.

내가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단조로운 어조로 물었다.

“응? 할 말이라도 있니?”

나는 정면에 서 있는 여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안개의 마녀’ 서연희.

36 영웅의 일원이자 역대 최연소로 1급 마법사 자격을 획득한 마법의 천재.

성격은 냉소적이고 무뚝뚝한 편이며 나이는 서른일곱으로 우리 부모님보다 세 살이 어리다.

나한테는 작은 이모뻘인 사람인데, 내가 어릴 적엔 일 년에 두어 번은 우리 집에 찾아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린애였던 날 그렇게까지 아끼진 않았으나 흥미본위로 몇 번 놀아준 적도 있다.

길지도 않고, 대략 오 분이나 십 분 정도씩만.

그리고 거기까지가, 이 여자의 ‘표면적인’ 프로필이다.

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주인공인 이시혁과 정세빈조차도 몰랐던 정체는 따로 있다.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장생종(長生種).

천 년이라는 수명의 한계를 넘어 불로불사의 경지에 오른 괴물이자 세계관 최강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 중 하나.

나는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는 그녀의 진정한 이름을 말했다.

아니, 말하려고 했다.

“일레-”

쿠우웅!

불과 두 음절을 떼기도 전에 내 심장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공기가 아예 사라진 것만 같다.

무거운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전신으로 압박감이 들이닥쳤다.

타악.

절반쯤 남은 담배를 튕겨 불씨를 날린 서연희가 내게 한 걸음씩 걸어온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넌…… 뭐지? 도진이가 맞는지 묻는 게 아니야. 틀림없이 그 애가 맞는데……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시혁이랑 세빈이도 모르는 걸…….’이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에서 깨달은 게 있었다.

겉으로야 선배니 언니니 존칭으로 불렀지만 역시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반말을 쓰고 있었네.

하기야 아주 가끔 서연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도 그랬으니까. 실제 살아온 세월을 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그녀가 손을 슬쩍 내저었고, 겨우 무형의 속박에서 풀려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남들이 모르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날 도와주세요.”

“내가 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서 너처럼 어린 애를 도와달란 거지?”

어이가 없다는 뉘앙스의 말에 나는 준비하고 있던 제안을 입 밖으로 냈다.

서연희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조건을.

일순간 그녀의 눈빛에 경악이 스쳤고,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면…… 그래, 네가 원하는 게 뭔데?”

그때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마신의 탄생>의 프롤로그 ‘장례식’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장례 기간 내에 ‘안개의 마녀’ 서연희를 아군으로 끌어들일 것.

-소요 시간: 10/10

-신뢰도: 8/10

-클리어 보상의 산정을 위해 항목을 선택해주세요.

1) 마력

2) 신체 능력

3) 기술

4) 정보

+

내가 고른 건 정보였다.

우리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해 밝혀지지 않은,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는지.

그리고 홀로그램이 한 줄의 정보를 알려줬다.

+

<세계의 수호자>의 주인공 이시혁과 히로인 정세빈의 사인

: 광의적 관점에서의 타살

+

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억누르지 않으면 뭔가가 흘러넘칠 것만 같아서.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진정할 때까지 서연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고히 선언했다.

“복수요.”

그 뒤로 십 년이 흘러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됐다.

그간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었다.

이시혁과 정세빈 이래로 최고의 재능이라던 평가는 휴짓조각처럼 의미를 잃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 세아는 나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약혼자는 나를 혐오하고, 그 때문에 약혼도 파혼 직전에 이르러 있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힘과 정보를 얻었다.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한 배신자들의 이름을 일부나마 알아냈다.

그놈들을 쓰러뜨릴 힘을 기르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석이나마 36 영웅의 일원인 염의준을 몰아붙일 수 있을 만큼.

스아아아-

나를 휘감고 있는 검은 안개가 짙어졌다.

체내에서 응집된 마력이 극한까지 높아진 밀도를 버티지 못해 몸 밖으로 뻗어 나간 것이다.

흘러나온 마력이 굳어져 형태를 이루었다.

마치 양쪽 어깻죽지에 검은 날개가 생겨난 듯한 형상.

온몸이 피에 젖어 있는 염의준이 긴장한 눈길로 나를 주시했고, 그 비루한 행색에 나도 모르게 조소를 짓고 말았다.

훈련을 게을리한 데다 이십 년 넘게 유의미한 실전 경험이 없는 퇴물.

그게 당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이유야.

그리고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감히 우리 부모님께 돼먹지 못한 감정을 품어 그분들의 죽음에 일조한 것.

그래서 당신을 죽이는 거야.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고, 그분들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콰아아앙-!

검은 날개의 형태를 띤 마력이 폭발했다.

거기서 추진력을 얻은 나는 눈 깜짝할 새에 염의준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가쁜 호흡을 고르던 놈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고, 아주 약간 반응속도가 늦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서걱!

내가 뻗어낸 마력의 칼날이 놈의 왼팔을 가볍게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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