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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5화 (5/207)

#5화. Chapter 1. 영웅 사냥 (4)

“크윽!”

염의준이 고통에 겨운 비명을 흘렸다.

잘린 팔이 하늘로 솟구치는 걸 보며 나는 내심 되뇌었다.

됐어, 이대로라면 내가 이긴다.

철권이란 별칭에서 드러나듯 염의준은 두 주먹을 주된 무기로 삼는 자다. 그중 한 짝이 없어졌으니 전력이 급감할 건 당연지사.

본래도 내가 유리했는데 놈이 치명적인 손해를 입은 지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당황에 떨리던 염의준의 표정이 변한 건 내가 조심스럽게 승리를 예감하던 그때였다.

투콰아아앙!

포탄이 터진 듯한 폭음에 이어 내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벽에 처박히기 직전에야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다급히 사태를 파악했다.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

외팔이 된 염의준이 살짝 내뻗은 오른손을 굳게 쥐고 있다.

놈에게선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자조적으로 읊조릴 뿐이다.

“얼빠진 짓을 하고 있었군.”

그러더니 천천히 내게로 걸어온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놈의 눈빛이 강해진다.

그에 호응하듯 전신에서 뿜어내는 힘의 파동도 끝을 모르고 치솟아갔다.

나는 직감했다.

아마도 이게 진정한 염의준이리라.

<세계의 수호자>의 조연 캐릭터이자 36 영웅의 일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해 그의 안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것이다.

마력과 신체를 움직이는 감각.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투쟁심.

그러면서도 결코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부동심.

본능과 경험의 양대 축을 토대로 한, 전투 상황에서의 기민한 판단력.

종합해 ‘실력’이라 일컬어야 할 그것을 상당 부분 되찾은 듯했다.

팔 하나를 잃었음에도 종전까지의 그 퇴물과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기세를 선보이며 놈이 입을 뗐다.

“너는 누구지?”

“…….”

내가 답하지 않자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일급 테러조직 팬텀. 구성원은 열 명 남짓으로 추측되며 전원 A급 이상의 고위 능력자. 보스를 포함해 모든 조직원의 신원이 불명확하나 작전 수행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자가 존재. 그 책임자가 너지?”

“잘 알면서 왜 묻지?”

“시간을 좀 벌고 싶었거든.”

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회장 주위로 소란이 일었다.

나와 그를 제외한 이들이 도망쳐 적막한 공간에 십여 명의 각성자들이 진입해왔고, 즉시 나를 빙 둘러싼 포위망을 만들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염의준이 설득하듯 일렀다.

“포기해라. 용기는 가상했다만…… 넌 여기서 못 빠져나간다. 순순히 체포당하겠다면 적어도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주지.”

“개소리하네.”

태연하게 되받자 놈이 언뜻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친다.

물론 나로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을 따름이었다.

자기편 숫자가 많아지니 여유가 생기나 본데…… 천만의 말씀이다.

여유 시간을 벌고 싶었던 건 그쪽만이 아니니까.

휘유웅-

슈아아아악!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허공의 공간이 검게 물들었다. 도합 세 곳.

이내 공간이 쩌억 갈라지며 찢겨나갔고, 그곳을 통해 제각기 체구가 다른 세 개의 인영이 등장했다.

안개에 휘감겨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

남자 한 명은 상당히 훤칠한 체형이었고 또 한 명은 어마어마하게 기골이 장대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여자는 눈에 띄게 몸집이 가냘팠다.

……생각보다 늦게 보내줬네.

마음속으로 불평한 나는 그들에게,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멤버들에게 전했다.

“방해 못 하게 막기만 해. 목표는 내가 단독으로 처리하고, 그 후에는 알아서 해산.”

“오케이.”

“뭐야, 기껏 불러놓고선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알겠어요.”

키가 훤칠한 남자의 시원스러운 수긍.

덩치가 큰 남자의 불만스러워하는 반문.

체구가 가녀린 여자의 나지막한 대답.

저마다 다른 반응이었으나 어쨌든 셋 다 지시에 응했고, 다시금 일대일의 국면을 만들어낸 나는 염의준에게 다가갔다.

“덤벼 봐.”

“이젠 쉽지 않을 거다. 내가 이 주먹으로 때려죽인, 너 같은 범죄자 새끼들이 한둘인 줄 아나?”

오른손 주먹에 힘을 주며 놈이 도발하듯 건넨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한쪽 팔만 쓴 적도 있나? 이번에는 싫어도 그래야 할 텐데.”

“……언제까지 건방지게 지껄일 수 있나 두고 보지.”

쿠웅!

놈이 땅을 박차고 내게 접근했다.

가진 힘의 총량은 아까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하지만 싸움의 양상이 완연히 달라졌다.

염의준이 쉴 새 없이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부우웅!

콰아아앙!

풍압만으로 강철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주먹질이 이어진다. 왼팔의 공백으로 중간중간 동작에 틈이 생겨났으나 그조차도 마력과 양쪽 발을 사용한 공격으로 어렵지 않게 메워간다.

과연 최하위라고는 하나 36 영웅에 이름을 올린 자.

무척이나 빠르고 강했으며,

그러나 내게 미치진 못했다.

조용히 마력을 끌어 올리며 나는 주위의 상황을 훑었다.

“가만히 있는 놈 안 죽이고, 오는 놈은 다 죽인다. 신중하게 결정해.”

일견 친절한 어조였으나 섬뜩한 경고를 담아내며 대치 중인 키가 훤칠한 남자.

“힘 좀 쓴다는 놈들이 그것밖에 안 되나? 제대로 해봐라!”

한껏 흥을 내며 적들을 휘몰아치고 있는 덩치 큰 남자.

“…….”

체구가 가녀린 여자는 말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 그녀의 열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닿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베어낸다.

저 정도면 나중에 퇴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더 지켜볼 것도 없을 듯해 나는 마력을 최대한으로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

어깻죽지에 생겨나 있던 검은 날개가 한껏 크기를 키웠다. 내 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이 있던 염의준까지 덮을 수 있을 만큼.

“……!”

놈이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하지만 신속하게 평정심을 회복했고, 자신이 준비하고 있던 일격을 쏘아냈다.

내가 아는 기술이다.

<세계의 수호자>에서 염의준이 필살기처럼 애용하던 공격.

그걸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 건 이시혁과 정세빈, 우리 부모님이셨다.

‘그거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냐?’

이시혁이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염의준은 이윽고 답했다.

‘낯간지럽게 기술 이름 같은 거 굳이 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쓰면 되지.’

‘나도 찬성.’

정세빈이 별다른 감흥 없이 의견을 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런 그녀를 애타는 눈길로 바라본 염의준은 내심 기술의 이름을 결정했다.

철권(鐵拳).

그가 죽는 날까지 절대로 털어놓지 않겠다고 다짐한 감정.

절친한 친구의 연인이자 오래전부터 사랑해온 여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 공격이,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오른손이 염의준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헉!”

놈이 울컥 핏덩이를 토해냈다.

팔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와 손에 쥔 심장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놈을 죽일 듯이 응시했다.

놈이 꺼질 듯이 희미한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넌…… 누구지……? 왜, 무슨 목적으로…….”

나는 놈의 눈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직 그에게만 들리도록, 그러나 분명하게 답했다.

“복수야.”

이미 숨이 멎기 직전인 놈의 귓가에다 대고 명확하게 일렀다.

“이시혁과 정세빈. 우리 엄마 아빠의 복수.”

“……!”

놈이 경악해 눈을 크게 치뜬다. 나는 이어서 추궁했다.

“당신…… 우리 엄마 좋아했지? 그래서 우리 아빠가 균열 막으러 갈 때 그걸 엄마한테 숨기고, 방관했잖아.”

기실 복잡하게 머리를 굴린 건 아니리라.

이시혁이 죽는다고 해서 정세빈과 자신이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시혁이 향한 곳에선 필연적인 죽음 이외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본인도 균열을 발생시키는 데 한몫 거들었으니까.

그래서 정세빈이 그곳에 가지 못하도록 정보를 감췄고, 뒤늦게나마 심각성을 깨달은 정세빈은 이시혁을 쫓아갔고, 결국엔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입에서 피거품을 뱉어내며 염의준이 더듬거렸다.

“도, 진아…… 그건…….”

“닥쳐.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염의준은 여태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론 누군가와 깊게 사귄 적도 없었다.

처음엔 정세빈을 잊지 못해서였겠지.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으나 마음 깊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어서.

이시혁과 정세빈이 죽은 이후로는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해졌을 테고.

그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염의준은 나를 자식처럼 아꼈다.

친구인 이시혁의 아들이니까.

내 부모인 이시혁과 정세빈의 죽음에 자신이 일조했으니까.

무엇보다 평생을 사랑한 정세빈의 아들이니까.

그리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놈을 죽이는 데서 나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사무치게 후회되는 건 하나밖에 없어.

내 소설 속에서 염의준이 정세빈을 사랑한다고 묘사한 것.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그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직해왔던 것.

단지 그것뿐이야.

너 같은 놈을 조연이랍시고 등장시킨 것.

오른손으로 심장을 꿰뚫은 그대로 왼손을 염의준의 머리에 올렸다.

검은 마력이 놈의 육신을 모래처럼 흩어냈고, 놈이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미안, 정말 미안하…….”

“됐고 꺼져.”

구차한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다른 건 다 무의미하잖아.

쓸데없이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건 사양이야.

스아아아아-

일찍이 염의준이었던 살과 피와 뼈가 회색빛의 재로 변해 흩날렸다.

그리고, 내 시야에 홀로그램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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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의 탄생>의 최종 챕터 ‘영웅 사냥’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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