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Chapter 1. 영웅 사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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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의 탄생>의 최종 챕터 ‘영웅 사냥’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철권’ 염의준의 살해
-보상은 챕터 클리어와 작품 완결 특전을 합산해 지급할 예정입니다.
-에필로그 ‘장례식’을 거쳐 <세계의 수호자>의 정식 속편인 <???>로 이어집니다.
-속편의 제목은 에필로그 ‘장례식’ 이후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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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나는 곧장 오른팔을 휘둘렀다.
퍼엉! 퍼어엉!
우리 조직원들과 싸우고 있던 자들이 내가 쏘아낸 마력을 피해 황급히 물러났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경악스러워하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36 영웅의 일원이자 국내에선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물.
철권 염의준이 고작 테러리스트 따위와 싸우다 죽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조직원들에게 명했다.
“임무 완료. 아까 말한 대로 즉각 해산한다. 나중에 연락할 테니 그때까진 소란 피우지 말고 대기.”
“이봐, 이렇게 감질나게 할 거면 왜 부른 거지? 하다못해 여기 있는 놈들이랑은 신나게 싸워도 되는 거 아닌가?”
“너 혼자 싸우든가 말든가, 나는 간다.”
덩치 큰 사내가 어이없어하자 키가 훤칠한 남자가 냉소적으로 답했다.
기실 같은 조직에 소속돼 있긴 하나 그들은 딱히 친한 사이가 아니다. 심지어 서로의 정체조차 알지 못할 정도.
보스가 발현해준 안개로 몸을 감싸고 있고, 겉모습을 바꿨으며, 그것도 모자라 가면까지 쓰고 있는 탓이다.
다른 조직원의 신상명세를 아는 건 오직 두 사람. 보스와 나뿐이다.
아무래도 좋게 말하면 듣지 않을 듯해 나는 조금 어조를 강하게 해서 재차 일렀다.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야. 꾸물대지 말고 이동해라.”
이미 허공에는 네 개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보스가 준비한 마법. 나와 조직원 셋이 각자 타고 갈 워프 홀이었다.
키가 훤칠한 사내는 간단히 손을 들어 인사하곤 공간 너머로 사라졌고, 덩치 큰 사내도 불만을 내뱉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체구가 가냘픈 여자가 나를 응시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또 봐요.”
“수고했어.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먼저 가.”
“……고마워요.”
헌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는 사이 여자까지 워프 홀을 지나서 퇴각했다.
빠르게 몸 상태를 점검해본 결과 마력에는 적잖이 여유가 있었다.
그중 일부를 끌어내 커다란 공 모양의 마탄을 생성하며 헌터들에게 경고했다.
“쓸데없이 접근하지 마라.”
거기서 더 가까이 오면 이걸 날릴 수밖에 없어.
그러면 당신들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은 죽을 거고, 나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고 싶진 않아.
내가 마음속으로만 되뇐 말이 그들에게 전해지진 않았겠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덤벼드는 이는 없었다. 겁먹은 기색을 내비치는 그들과 말없이 대치하기를 십여 초.
누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그마한 틈이 생겨났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마탄을 내동댕이쳤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지며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연기와 불길이 자욱하게 치솟는 가운데 나는 땅을 박차고 뒤로 뛰었다.
워프 홀의 마력이 나를 어딘가로 보내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술병이 놓여 있는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왔니?”
마침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여자가 여상스럽게 물었다.
내가 몸담은 조직 ‘팬텀’의 보스.
우리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먼저 끌어들인 아군.
안개의 마녀 서연희.
물론 그조차 그녀의 진실한 정체라 할 순 없다.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최후의 장생종.
불로불사의 경지에 오른 초월적인 존재.
지금은 내 또래의 여성으로 신분과 외견을 바꾸고 있는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을 더했다.
“10시 25분…….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왜 이렇게 늦게 보내줬어요.”
어렴풋하게나마 감탄이 담긴 말을 무시하고 나는 다짜고짜 그녀를 책망했다.
나 혼자였어도 성공할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조직원들이 일 분이라도 더 늦게 당도했다면…… 아마 많이 귀찮아졌을 거다.
염의준 말고도 죽어 나갈 헌터들이 여럿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내 나름대로는 주의해달라고 항의한 것이었건만 서연희가 대수롭지 않단 식으로 되받았다.
“정확히 타이밍 맞춰서 보낸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말렴. 한 잔 마실래?”
“주세요.”
답하며 잔을 들자 서연희가 술병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온더록스 잔에 가득 따라준 호박빛 액체를 단숨에 들이켜고 헝클어져 있는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와 함께,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내 외견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몸에 묻은 흙먼지와 핏자국을 비롯한 전투의 흔적도 말끔히 지워졌다.
한데 그즈음.
서연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어조로 슬쩍 일렀다.
“입고 있는 것도 벗어. 소각해야지.”
“…….”
논리적으로야 옳은 말이다.
작전에 들어가기 직전, 서연희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옷을 갈아입었다.
원래 내 옷은 저 구석에 널브러져 있고, 괜히 증거물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 지금 착용 중인 전투복은 없애버려야겠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일 분만 나가줘요.”
“왜? 옷 벗은 것부터 소각하고, 흔적 남은 거 있으면 지우고, 그다음에 갈아입어야지.”
“……흔적은 내가 마력으로 태울 수 있으니까 좀 나가주면 안 됩니까?”
“네 실력을 어떻게 믿고. 어설프게 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너만 곤란해지는 줄 알아?”
“거 참, 핑계도 좋네요…….”
“핑계? 무슨 핑계?”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던 서연희가 별안간 깨달았단 것처럼 손뼉을 쳤다.
그리곤 꼭 놀리는 듯한 말투로 흥얼거렸다.
“도진아, 너 혹시 내가 네 몸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착각하는 거니? 내가 너 응애 응애 하는 아기 때부터 봤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랬는데?”
“그런 적 없잖아요.”
기저귀를 갈아주긴 무슨.
잠깐 놀아주다가도 좀 곤란해진다 싶으면 바로 나 몰라라 우리 부모님 불렀는데 설마 그랬으려고.
“그거야 네가 어렸을 때라 기억을 못 하는 거지.”
“원체 똑똑하게 태어나서 어릴 때 일도 잘 기억합니다.”
안타깝게도 내 저항은 거기까지였고, 이후로 굴욕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숨을 푹 쉬며 입고 있던 걸 모두 벗자 서연희가 손가락을 튕겼다.
전투복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핏자국 같은 흔적이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이나 테이블, 집기까지 꼼꼼히 살핀 서연희가 드디어 반가운 말을 일렀다.
“이제 됐어. 보고 있기 민망하니까 빨리 옷 입으렴.”
“안 보면 되잖아, 안 보면.”
투덜거리며 옷을 챙겨 입은 나는 방을 나설 채비를 했다.
테이블 안쪽 소파에 앉은 채로 물끄러미 지켜보던 서연희가 언뜻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바로 가려고?”
“더 있어 봐야 뭐해요. 세아 집에 혼자 있을 텐데 가봐야죠.”
“그래……? 세상에 너만큼 동생 챙기는 오빠도 없지 싶네.”
“그거 칭찬이죠?”
단출하게 되받은 나는 잔에 조금 남은 술을 비워냈다. 그리고 문을 나서려는데, 서연희가 작게 흘린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장례식에서 보자. 오늘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푹 자고.”
“네.”
우린 작전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서연희는 나를 배려해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염의준을 죽인 것에 어떠한 가책을 느끼는 건 결단코 아니다.
그냥, 뭐랄까.
나 자신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입맛이 씁쓸했다.
아직 늦은 시간도 아니니 일찍 들어가면 세아가 티는 안 내도 좋아하려나?
내심 그런 기대를 품으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서연희는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잔 끝에 넘칠 정도로 찰랑거리는 술을 비워내고,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쬐끄만하던 게 언제 다 컸다고.’
이도진.
그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오만 가지 감정이 섞여서 독특한 빛을 자아낸다.
문득 십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시혁과 정세빈의 장례식장.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한 이도진은 도움을 청하는 대가로 어떤 조건을 제시했다.
서연희로서는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너무나도 솔깃한 제안.
<날 도와주세요.>
<내가 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서 너처럼 어린 애를 도와달란 거지?>
그러자 그가 답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목소리로.
확신에 찬 어조로.
<당신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의도치 않게 영생을 누리게 된 그녀의 오랜 염원.
완전한 무로 소멸하는 것.
이도진은 그걸 이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요즘엔 별로 간절하지 않게 됐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궁금하긴 했다.
이도진은 과연 그가 자신 있게 전한 확언을 달성해낼 수 있을지.
그때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영생자라 해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서연희는 다만 다가올 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지금은 그걸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