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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1화 (11/207)

#11화. Chapter 3. 제일고 (1)

홀로그램 상으로 나타나는 ‘특성’.

그걸 분류하는 방식은 총 세 가지다.

우선 첫 번째로 자동발동형.

지금은 A+ 랭크의 ‘순간예지’로 진화한, <마신의 탄생>의 주인공 보정 특성 ‘직감’을 예로 들 수 있겠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전투 상황에서 위기에 처하는 등 필요한 순간이 오면 저절로 발현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 내 귓전에다 대고 속삭이는 듯한 감각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하려나.

너 그거 그렇게 막으면 팔 하나 날아가니까 알아서 해라, 라는 식으로.

순간예지로 바뀐 다음엔 아직 발동될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명색이 A+ 랭크니 뭐가 좋아져도 아주 단단히 좋아졌겠지, 라는 기대감을 내심 품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상시발동형.

이건 내 능력 자체에 작용하는 개념이다.

전투력 전반이나 마력, 신체적인 측면 등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준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

<킬 더 이블>의 최종보스 보정으로 얻은 ‘검은 심장’이야 S 랭크씩이나 되니 그 정도에서 그치진 않을 듯하다고 짐작은 하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 안 써봐서 확실치는 않다.

당장은 특별히 좋은지도 모르겠고 현재 내 체감상으로는 아무 효과도 없이 그냥 ‘마력 먹는 하마’ 정도의 짐 덩어리일 뿐이지만, 그래도 끝내주게 좋은 특성이긴 할 거야.

아무렴 최종보스 보정인데 응당 그래야지.

이제 마지막으로 수동발동형.

이 분류는 세 종류의 특성 중에서도 가장 스킬에 가까운 능력이다.

내가 원할 때 발동해서 활용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스킬이랑 구분도 잘 안 되는데…… 상대적으로 비전투적인 능력에 더 가까우면 스킬이 아니라 수동발동형 특성으로 분류된다.

가령 지금 내가 발동한 특성, A 랭크의 ‘엿보는 눈’처럼.

아이템이든 마법적인 구성체든, 어쨌든 마력과 연관된 거라면 그것의 근본적인 원리와 효과, 취약점까지 모든 요소를 모범 답안처럼 파악해낼 수 있었다.

특성이 A 랭크니까 아이템이나 마법 기준으로도 A급까지는 엿보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거고, 방금 교수가 보여준 구성체는 기껏해야 B급이나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러면 몰라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그거야 내 입장이고, 경악한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교수가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비워냈다.

그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도진 군, 아, 이렇게 불러도 괜찮겠죠? 면접이야 더 볼 것도 없고,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

“그럼요. 말씀하시죠, 교수님.”

“음…… 이 질문이 실례가 된다면 미안해요. 도진 군은 체내에 마력이 잘 모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가?”

“아뇨, 맞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아무리 의욕이 없다손 치더라도 열다섯 살까진 역대 최고 수준의 유망주였잖아.

훈련을 등한시하더라도 마력에 대해 타고난 감각까지 극도로 저하되는 건 이상하지.

그래서 홀로그램은 내게 교묘한 술책을 제시했다. 아예 재능 자체를 잃어버린 것으로 속이라고.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이 둔해지고, 보유 마력의 총량이 줄어들었다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게다가 그러기 위한 특성과 스킬도 전해줬다.

내가 지닌 재능을 감출 수 있도록, 그 어떤 정밀검사로도 드러나지 않도록.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제 나는 중등 과정의 학생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마력만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연희만 제외하면 아무도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으니 다시금 속이는 것도 간단하고.

“삼촌…… 염 위원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요 며칠 마력이 전보다는 잘 움직여지는 것 같고요. 마법역학도 교수님을 뵙기 전에 책을 보고 왔는데, 오랜만에 공부하니 이것도 재밌던걸요.”

미리 마련해둔 해명을 읊으니 교수가 알 만하단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돌아가신 염 위원이 도진 군을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았어요. 실은 염 위원에게는 최대한 배려를 해달라고 부탁받았거든. 인제 보니 그럴 필요까지도 없는 듯해서, 염 위원이 지금의 도진 군을 보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워.”

앞의 말은 내가 염의준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교수 본인의 연구까지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고, 학생들 수업 진행과 관련해서 교보재 준비 정도만 해주면 된다고 했지.

자기 딴에는 나를 챙겨준다고 그렇게 가닥을 잡아둔 거겠지만…… 글쎄, 딱히 감격스럽진 않네.

내가 주목한 부분은 교수가 슬쩍 흘린 뒷말이었다.

‘그럴 필요까지도 없는 듯하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명쾌하게 해석해낼 수 있었다. 이 아저씨, 아무래도 나를 실컷 부려먹을 작정인가 본데…….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의미심장한 눈길, 은근히 열기가 깃든 목소리로 교수가 제안했다.

“도진 군은 교원 자격증도 있으니 차라리 조교가 아니라 내 직속의 연구 교수로 들어오는 게 어떨까 싶네만.”

“연구 교수라고 하시면…….”

“교수라는 직함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일단은 계약직이니 의무 같은 건 거의 없어요. 수업 권한이 늘어나고 내 연구에서 가끔 도움을 요청하려는 정도니까. 그래도 일반 조교와는 연봉이나 입지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

“저야 감사한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거 합법이냐는 거다. 내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쪽이 좋긴 한데…… 낙하산이라고 욕먹으면 오히려 역효과니까.

그러나 교수가 대수롭잖게 답했다.

“규정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해요. 제일대 졸업자 중에 특히 두각을 보이는 친구들은 종종 이런 케이스가 있어.”

“아…… 그렇군요.”

여태까지 주절주절 구슬리는 말들은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

나는 귀찮으니까 학교 와서 상황을 좀 보고, 가능하면 네가 수업도 도맡아서 해라.

하는 김에 내 연구에서 계산 노예도 부탁한다.

얼추 그런 뜻 아니려나.

이거 염의준에게 들은 것과는 이야기가 다른데.

자기 연구에 누가 개입하는 걸 싫어한댔잖아.

역으로 말하면 ‘엿보는 눈’의 효과가 그만큼 대단했단 뜻이기도 할 테지만…… 아무튼 괜히 속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망설인다고 생각한 건지 교수가 쉴 새 없이 설득을 이어나가려 했다.

“사실은 나도 도진 군 부모님을 두어 번 뵌 적이 있지. 직접 대화한 건 아니고 먼발치에서 본 게 전부지만…… 대단하셨어. 유치한 말이지만 이 세상에 주인공이 있다면 꼭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속말을 삼켰다.

실제로도, 주인공이었어요.

“그런 분들의 아들이고, 도진 군도 의욕이 생긴 것 같으니 내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인데…… 본인 생각은 어때요.”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내비치며 답하자 교수가 기꺼워하며 웃었다.

이 아저씨 진짜 되게 좋아하네…….

계약직이라니까 <킬 더 이블>의 1권이 끝나고 제일고에 머물 필요가 없어지면 적당히 구실을 대서 때려치울 수 있겠지?

살짝 드는 불안감을 달래며 오른손을 뻗는 교수와 악수했다.

약속을 일찍 잡은 터라 채 정오도 되지 않은 무렵 집에 돌아왔고,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는 거실엔 세아가 있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지 머리칼은 대충 귀엽게 묶고 있다. 잠옷과 일상복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쳐 있는 옷을 입은 채로 이제 막 라면에 한 젓가락 올리려는 순간.

곧장 졸래졸래 다가간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 한 입만.”

“…….”

애써 무시한 세아가 다시금 젓가락을 고쳐 쥐었지만, 굴하지 않고 더욱 애처로운 목소리로 부탁했다.

“오빠 한 입만 주면 안 돼?”

“……다 먹어.”

새침하게 답한 세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장 부엌으로 향해서 냄비에 물을 올리는 걸 보니 자기는 새로 하나 끓이려는 모양이었다.

진짜 한 입이면 되고, 저럴 것까지는 없는데…….

나랑은 라면 한 젓가락도 나눠 먹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마음이 상당히 아픈 일이지만, 어쨌거나 남이 끓인 라면을 손도 안 대고 홀랑 먹는 것만큼 흡족한 일도 많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라면 냄비를 자세히 내려다보니…….

“……이거 왜 이래.”

아주 물이 한강 수준이었다.

이래서 미련 없이 나 먹으라고 준 거구나…….

좀…… 어, 좀 되게 많이 씁쓸하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국물은 내버려 두고 면이라도 건져서 먹으려는데 면발조차 간이 거의 배어 있지 않아서 괴상한 맛이 났다.

사오 분쯤 지나서 새로운 라면을 다 끓인 세아는 그대로 부엌에서 젓가락질을 시작했고, 겨우 면만 해치운 나는 그릇을 치우며 세아에게 알렸다.

“오빠 취직 확정됐다?”

“…….”

“원래 조교로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교수님이 오빠를 좀 좋게 보셨나 봐. 연구 교수 직함으로 출근하기로 됐어.”

세아는 하나만을 물었다.

“언제부터?”

“서류상 절차 밟아야 해서 며칠 걸리는데 그래도 목요일 강의부턴 오빠도 수업 같이 들어갈 거야.”

“휴우…….”

세아가 내쉰 한숨에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너무 빠르다고.

나는 장난스럽게 말을 더했다.

“오빠가 과제물 체크도 하고 이것저것 할 거니까 잘 보여야 할걸? 아, 동생이라고 점수 잘 주고 그럴 건 아닌데 그래도 수업 중에 모르는 거 있으면-”

“학교에서는, 동생 말고 학생으로만 대해.”

쓸데없이 친한 척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이 정도로 상처받을 거였으면 진작에 내 멘탈은 가루가 됐을 거다.

“그럼 학교 말고 집에선 동생 오빠 사이 맞지?”

“…….”

세아는 아무런 말 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라면만 먹었다. 저건 또 잘 끓였네.

“찬밥 남은 거 있는데 반 공기만 줄까?”

“……됐어.”

단출한 거부로 대화가 끝났으나 그것만 해도 근래 들어 세아와 가장 얘기를 많이 나눈 하루였다.

취직해서 접점이 늘어나면 더 나아질 거고.

천천히, 한 걸음씩 사이가 좋아지면 돼.

서두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면서 기다리면 돼.

내가 오빠니까.

***

3월 11일 목요일, 오후 한 시에 가까워진 시각.

“흐아…….”

입을 가리며 작게 하품한 이세아를 보며 옆자리의 유해빈이 물었다.

“너 졸려?”

“그냥, 좀.”

이세아는 굳이 세세하게 말하지 않고 둘러댔다.

오늘부터 오빠가 수업에 들어올 게 신경 쓰여서 밤잠을 설쳤다고 답하기도 뭐했으니까.

실은 심장도 쿵쾅쿵쾅 뛰고 있지만, 그건 더더욱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고.

그즈음 유해빈이 여상스럽게 말했다.

“난 지금부터 졸릴 계획임.”

“왜?”

“다음 수업 마법역학이잖아. 그 교수가 월급 꼬박꼬박 받아가는 게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건 이세아로서도 동감이었다.

2학년 필수과목인 마법역학.

끔찍하게 어려웠고, 끔찍하게 재미가 없었다.

실습이라도 많이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가르치는 교수는 학생들보다도 더 의욕이 없다.

수업 내내 교과서를 줄줄 읊어대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연을 보여주는 게 전부.

오빠인 이도진이 들어오기로 한 걸 미리 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딴짓을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오후 한 시가 되어 강의실로 교수가 들어왔다. 어쩐지 평소보다 밝은 표정이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인 건 바로 그때였다.

“뭐야? 누구지?”

“미친, 개잘생겼다 진짜…….”

학생들 대다수가 놀라서 수군거렸다. 교수를 따라 들어온 젊은 남자 한 명을 바라보면서.

이세아는 물론 놀라지 않았다. 집에서 맨날 보는 얼굴이니까.

‘……잘생기긴 했어.’

각성자로서의 실적에 뒤지지 않을 만큼 눈이 부신 외모로도 유명한 이시혁과 정세빈, 그들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모습.

그리고 여타 학생들과 조금 다른 의미로 놀란 건 옆자리의 유해빈과 넓은 강의실에서도 항상 지정석처럼 맨 앞자리에 앉는 진유리 정도였다.

“뭐냐?”

“이제 설명할 거야.”

유해빈이 툭 던진 질문에 이세아는 저쪽한테 들으라는 의미로 짧게 답했다.

이내 교수가 일렀다. 오늘부터 수업을 도와줄 연구 교수이니 알아두라고.

그리곤 곁에 선 젊은 남자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한 발 앞으로 나선 남자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이도진이라고 합니다. 다들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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