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Chapter 3. 제일고 (2)
“이도진이라고 합니다. 다들 잘 부탁해요.”
상쾌한 기운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어조.
하지만 백수십 명의 2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진 않았다.
“……이도진?”
“어? 아!”
이도진이란 이름을 듣곤 절반 가까운 학생이 의아해하거나 불현듯 생각났단 듯이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강의실 제일 뒤편의 구석을 본다. 다름 아닌 이세아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
자신에게 쏠리는 이목에 이세아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럴 순 없었고, 애써 모른 척하며 책상에 펼쳐놓은 교과서로 시선을 내리깔 뿐이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유해빈이 은근히 즐거워하는 눈치로 일렀다.
“남매가 둘 다 인기쟁이네.”
“……조용히 해.”
아이러니하게도 견디기 어려운 불편함을 얼마간 해소해준 것도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이도진이었다.
학생들의 미묘한 반응에도 동요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그가 이내 칠판에 무언가를 써나갔다.
제1 아카데미 교원 전용의 메일 주소.
그리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서상욱 교수님을 도와 마법역학 과목의 수업 보조를 맡게 됐습니다. 제 메일과 연락처니 강의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이쪽으로 질문해주세요.”
맨 뒷자리의 이세아는 백 명 가까운 학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칠판을 찍거나 펜으로 종이에다 필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수의 것이라면 또 몰라도 조교나 연구 교수의 신상정보를 이렇게 많은 학생이 적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다.
여자와 남자 성비를 따지면 어림잡아도 7대3 이상의 비율로 기우는 게 특히나 생경했고.
저들 중 상당수가, 단순히 수업과 관련해서 바삐 연락처를 적는 건 아니리라.
‘……잘생기긴 했어.’
이도진이 강의실에 들어온 직후에 떠올린 생각을 이세아는 다시금 되뇌었다.
180대 중반의 큰 키.
체형도 모델처럼 쭉 뻗었고, 별달리 운동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몸이 아주 탄탄하다. 이건 집에서 매번 봐오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일 터.
그리고 짓는 표정마다 제각기 다른 매력을 자아내는 이목구비는…… 솔직히 이세아는 여태 살아오며 오빠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도 그리 여기는지, 이세아 본인의 주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즈음 각각의 자리마다 전면부에 설치된 스크린을 보던 유해빈이 감탄하며 말을 건넸다.
“야, 어우, 이야…… 너네 오빠 화면으로 봐도 좀 심하게 멋있는데.”
괜히 받아줬다간 오늘 수업 두 시간 내내, 아니,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 나서까지 놀릴 기회를 엿볼 것 같아 이세아는 무시하고 자기 자리의 스크린만 쳐다봤다.
다행히 소란은 그 정도에서 그쳤고, 서상욱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에, 지난 시간에 진도가 51p까지 나갔던가? 출석번호 7번이 52p 첫 단락부터 쭉 읽어봐요.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3월 2일 화요일이 첫 수업이었고, 그날은 여러 사정상 강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오늘이 세 번째 수업이라고 해야겠지.
고작 두 번의 수업으로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외계어에 가까운 문장이 이어지는 교과서를 50p씩이나 나간 것도 한숨이 나오는데 수업 내용은 더더욱 참담했다.
대강 아무 학생이나 지목해서 교과서를 읽게 시키고, 교수 자신이 똑같은 내용을 한 번 더 읽으며 부가적인 설명을 한다.
그리곤 두꺼운 참고 인쇄물을 나눠줘서 읽게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연습문제를 풀라고 한 다음 답을 풀이하고, 마지막으로 교수가 간단히 시연을 보여주는 과정.
두 시간 동안 그것만 반복하다가 수업이 끝나는 것이다.
저절로 잠이 솔솔 오게 만드는, 어떤 마법적인 수단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지루한 교수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오히려 이세아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이대로만 가자…….’
그러면 오빠가 나설 차례가 많지 않겠지.
조교나 연구 교수의 참여도가 높은 수업도 있으나 마법역학 과목의 서상욱 교수는 그 정도로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여태 하던 것처럼 책 읽고, 문제 풀고, 시연하는 정도라면 오빠가 도울 일은 별로 없을 듯했다.
-라는 게 이세아의 어설픈 판단이었고,
안타깝게도 서상욱 교수는 그녀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수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전까지의 강의에선 대개 5에서 10p 간격으로 끊어서 세 번에 걸쳐 진도를 나가더니 오늘은 어째 20p를 넘게 통으로 읊어대는 데서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73p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할 설명을 이어나간 서상욱 교수가 문득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이걸로 자기 역할은 끝났단 듯이.
그리고 대뜸 이도진을 호명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도진 선생님이 앞선 내용을 정리하고 직접 시연해줄 테니 다들 집중해서 듣길 바라요.”
이세아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타까움, 혹은 초조함이나 긴장.
어쩌면 그것들 전부.
종합해서 ‘걱정’이라고 일컬어야 할 감정이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속을 메워갔다.
‘왜? 어째서……?’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오빠한테 저런 걸 시키는 걸까.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고등 과정 땐 제일고 전체에서 하위권이었다고 알고 있다. 제일대에서 보낸 4년은 졸업장을 받은 게 신기하단 평가를 들었다고 하고.
그런 사람에게 대체 뭘 하라는 걸까.
마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아예 시연을 똑바로 해낼 수 있을지조차도 장담하지 못하는데.
행여나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라고.
그즈음 이세아는 강의실 앞쪽의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다. 진유리, 그녀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듯한 얼굴.
“……!”
진유리라는 애를 알게 되고 햇수로 오 년째.
며칠 전 장례식장을 나서며 있었던 일에 이어 두 번째로, 이세아는 진유리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분노를 느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건 그러려니 넘기려 했다.
대꾸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도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를 비웃으며 자신에게 상처를 주려 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자 그를 끌고 들어온다.
이세아는 그것만은 참아넘길 수 없었고, 그러나 연단의 중앙으로 나선 이도진이 시원스럽게 꺼낸 말에 그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법역학을 몰라도 마력을 사용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흥미를 끄는 서두.
“하지만 마법역학을 숙지해서 그 원리를 안다면 가지고 있는 힘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배워야 한다는 의미.
“마력은 물리적인 에너지의 일종입니다. 초기 연구에서는 둘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현대에 들어선 마력을 물리법칙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간주하고, 그러한 전제를 토대로 체계적인 계산 공식과 법칙이 만들어지고 발견되었습니다. 마법역학을 이해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확신에 찬 말이 이어진다.
“마력은 결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마력을 자유롭게 쓰고 있잖아요?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에요.”
옅게 미소를 지어 분위기를 환기한 이도진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휘익- 슈우우우…….
허공에 하나의 구체가 나타났다.
청색으로 빛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균형미를 갖춘 마력 구성체.
이세아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서상욱 교수가 귀찮아하며 보여줬던 것보다도 완성도가 높았다.
이윽고 이도진이 일렀다.
“이게 기본입니다. 오늘까지 여러분이 배운 모든 내용이 이 자그마한 구성체 하나에 담겨 있어요.”
이어진 설명은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십 분쯤이었을까.
그러나 오늘 수업을 중심으로 해서 이전 시간에 학습한 내용까지 핵심만 간추려 아주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요약했고, 그가 어떠한 화두를 제시할 때마다 허공에 떠 있는 마력 구성체가 부드럽게 일렁이며 변화해나갔다.
“아니…… 이해가 안 되네. 상욱이는 왜 저 쉬운 걸 그따위로 설명해준 거야?”
유해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험담한 말이 이세아한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나도 쉬워진 수업 내용과 그걸 물 흐르듯이 설명해주는 이도진을 응시하면서.
비단 그녀만이 아니다.
이전까지의 수업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이해가 잘 되는 기현상에 학생들 전원이 숨죽여 이도진의 말을 경청했고,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위잉.
마력 구성체 바로 옆에 계산식 여러 개가 기재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몇 줄의 식마다 관련 공식과 교과서 어디에 그게 쓰여 있는지까지 나와 있었고, 숫자를 채울 수 있는 빈칸도 마련되어 있었다.
“27p 하단, 체내 마력이 외부로 발출될 때 반작용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마력을 쓰다 보면 가끔 근육이 결리는 현상. 이걸 올바르게 익히면, 그럴 일이 거의 없어질 겁니다.”
이도진이 마력 구성체에 여러 차례 마력을 주입했다. 전해지는 힘마다 구성체가 운동하는 정도가 다르고 형태가 변화하는 양상도 달라졌다.
“구성체 자체는 만들어낼 수 있겠죠? 다들 책상 위에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지금부터 한 명씩 돌아가면서 확인하고 개량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도록 할게요.”
강의실 곳곳이 빛으로 번쩍였다.
소음이 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오직 이세아만이 멍하니 경악에 차 있었다.
“와…… 들은 대로만 따라서 하니까 쉬운데? 야, 이세아, 내 말 안 들려? 야!”
유해빈이 다그치는 말에 언뜻 정신을 차린 이세아는 강의실을 둘러봤다.
“계산식은 다 잘 활용했는데 마력 배분에서 약간 문제가 있어요. 세 번째 회로는 절반만, 다섯 번째랑 여섯 번째 회로로 마력을 더 흘려봐요.”
넓은 강의실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이도진이 학생들을 봐주고 있었다.
피드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다. 학생 한 명마다 두세 마디 정도.
그런데도 지적을 받은 학생들이 그걸 토대로 다시 구성체를 만들면, 눈에 띄게 결과가 좋아진다.
“너네 오빠 진짜 1타 강사시네……. 야, 이세아! 정신 좀 차리래도? 이리로 오잖아.”
“어, 어?”
강의실 왼쪽의 학생들을 거의 다 봐준 이도진이 이세아의 자리로 오고 있다.
“이러면 되는 거죠?”
“좋아요, 흠잡을 데 없네요.”
전교 1등인 유해빈은 가볍게 통과.
그제야 겨우 집중한 이세아가 마력을 자아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고 시도만 했다.
퍼엉!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
너무 당황해서 마력이 지나치게 주입된 것이다.
“…….”
“어, 음…….”
망연자실한 이세아를, 마찬가지로 할 말을 잃고 내려다보던 이도진이 조심스럽게 일렀다.
“그으, 이세아 학생…… 다시 한번 해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