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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9화 (19/207)

#19화. Chapter 5. 징계 (1)

3월 14일, 오전 열한 시 삼십 분경.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세아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다.

또각, 또각.

거실에서 부러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려오고 있다.

슬쩍 엿보니 세아가 무언가를 계속 깨물어 먹는 중이다.

겉면에 초콜릿이 발려 있는 길쭉한 막대과자, 빼빼로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오물오물하는 광경.

보고 있으려니까 진짜 신기하네…….

쟤도 마냥 어린 건 아니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어떻게 저만큼 귀여울 수 있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오빠의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까진 내 알 바 아니다.

어쨌든 내 눈에는 엄청 귀여우니까.

토끼가 쪼그려 앉아서 풀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한데 바로 그때.

정면을 보고 있던 세아가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먹는 모습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대응하지 못했고, 싸늘한 질문이 날아왔다.

“……왜?”

“어? 아냐, 좀 있다 밥 먹을 건데 과자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이것까지만 먹을 거야.”

새침하게 답한 세아가 봉지에서 빼빼로를 두 개 꺼냈다.

보통 이것까지 먹는다고 하면 지금 먹고 있는 걸 지칭하지 않나?

농담 삼아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쌀쌀맞은 기색이 적잖이 가신 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라 그쯤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밥 다 되면 말할게.”

“…….”

대답 없이 빼빼로만 오물거렸으나 거의 티가 나지 않게,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걸 포착할 수 있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며 나는 홀로그램에 심심한 사과와 감사의 말을 함께 전했다.

대답 이상하게 했다고 욕해서 미안하고, 또 고맙다.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편의점에서 기어이 십만 원을 채운 간밤의 나도 칭찬해주고 싶고.

만 원치쯤 담으니까 홀로그램 메시지가 떴었지.

‘그 이상 사 봐야 돈만 낭비하니까 적당히 사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

하지만 사뿐히 무시한 나는 비싸고 맛있어 뵈는 것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전부 담았다.

데이터 쪼가리가 뭘 안다고. 효용이 없어도 동생 과자 좀 많이 사 먹일 수도 있는 거지.

홀로그램과 관련한 효과는 만 원이 한계치지만, 사두면 집에 남긴 하잖아. 아침부터 내내 군것질을 해대는 세아만 봐도 몹시 뿌듯한 심경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왜? 입맛 없어?”

“아냐.”

작게 부정하는 세아였지만 하는 말과는 달리 젓가락질이 영 시원찮았다. 거의 밥알을 하나씩 골라내는 수준으로.

아무래도 과도한 군것질이 원인인 듯한데, 점심밥을 제법 열심히 만든 터라 약간 낙담이 들긴 하네.

그렇게 이삼 분쯤 지났을까.

억지로나마 몇 숟갈 먹던 세아가 문득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가?”

“딱히? 어제 애들 하도 힘들게 놀아서 나 부를 사람도 없을걸?”

차마 재밌게 놀았다는 표현을 쓰긴 뭐 해서 둘러대니 세아가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그리곤 조용히 질문을 이었다.

“친구들 말고는?”

“오빠 만나는 사람 없다니까.”

세라랑 파혼하고 나면 서연희가 변장한 신분과 사귀는 거로 해두는 게 편하겠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선 떳떳하게 말을 못 하지.

세아는 도통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더 추궁하진 않았고, 겨우겨우 밥을 반 공기가량 비웠다.

“남은 건 오빠가 먹을 테니까 줘.”

“내가 먹던 거잖아.”

질색하며 되받은 세아가 몸을 일으켰다.

자기가 남긴 걸 빠르게 처리하고, 밥솥에서 새로 한 공기를 퍼담아 식탁에 올렸다.

뜻밖의 친절에 당황한 나는 오늘 유난히 상냥한 면모를 보이는 동생에게 물었다.

“나 먹으라고?”

“배고프다며.”

아까우니까 남길 거면 나 주란 말이었지 굳이 더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성의를 봐서 밥그릇을 가까이 두고, 관계 회복에 청신호가 켜진 것에 용기를 내어 제안했다.

“밥 다 먹고 오빠가 공부 좀 봐줄까? 마법역학 구성체 만드는 거 다시 검사한다고 했잖아. 모르는 거 오빠가 봐주면-”

“……연습하고 있어.”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는 대답에 기특하단 마음이 절반, 아쉬운 마음이 절반이었다.

진유리 같은 애는 상대도 못 되게 도와줄 수 있는데.

***

다음날인 3월 15일, 월요일.

오전에는 학교로 출근했다. 내일 수업 준비를 마치고, 아예 나를 자기 직속 연구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상욱 씨의 구슬림을 흘려넘기고 퇴근까지 완료.

기왕 밖에 나왔으니 장을 본 다음 귀가하고 싶어 마트로 향했다.

애매한 시간대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뭐 괜찮은 거 없나 반찬거리를 눈여겨보고 있는데…….

“저기요.”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웬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피부가 아주 새하얀 데다 잡티 하나 없이 맑았고, 화장기가 옅은 얼굴의 이목구비는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줬다.

신장은 160cm 전후려나. 큰 키는 아니었으나 신체비율이라던가 체형이 흠잡을 데 없이 예뻤다.

하나 더 특징적인 건 동양인치고도 눈에 띄게 새까만 머리카락.

걸음에 따라 살랑이는 머리칼을 가지런히 하며 여자가 내게 다가온다.

근데 좀 이상하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외견이라서.

이윽고 여자가 가까이 오자 명확해졌다.

이 사람…… 세아랑 좀 닮았지 않나?

더 정확히 말하면, 세아가 성인 되고 이삼 년 지나면 이렇게 자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춘 여자가 대뜸 말했다.

“그쪽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 주실 수 있어요?”

“……네?”

반사적으로 그런 반문이 나왔다.

어디 길거리나 카페도 아니고, 마트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곧장 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어요.”

구구절절 말할 것 없이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거절. 그러나 여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금 청했다.

“딱 봐도 없어 보이는데 거짓말이죠? 그러지 말고 번호 주시면 안 돼요? 제가 살 테니까 카페라도 가서-”

“죄송합니다.”

단호하게 말을 끊고 카트를 몰아나갔다.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네. 딱 봐도 없어 뵈는 사람한테 마음에 든다고 번호는 왜 물어봐.

주머니에 뒀던 휴대전화가 진동한 건 그때였다.

우우웅-

“…….”

화면에 나타난 발신인의 이름을 보자마자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재밌어요?”

<그러게 달라고 할 때 주지 왜 거짓말을 해?>

“아니…… 재밌냐고요.”

“재밌으니까 장난치는 거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방금 나한테 번호 물어본 여자가 생글거리며 답했다.

겉모습은 바뀌었어도 그 정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름 아닌 서연희였다.

뭔가 되게 묘한 느낌이라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거 세아 따라 한 거죠?”

“아닌데? 그냥 만든 건데?”

“바꾸긴 왜 바꿨어요.”

당분간 저 모습으로 다닐 작정인가 본데…… 난 반대다.

예전이 더 좋았어. 세아 보는 것 같아서 기분도 이상하고, 전체적으로 별로야.

하지만 서연희가 흥얼거리듯 답했다.

“전에 그 모습으로 좀 오래 다녔잖아? 요새 이래저래 일도 많았고, 슬슬 바꿔야지. 새 번호는 카페 가서 알려줄게.”

“저 장 봐서 집 갈 건데요.”

“아직 하나도 안 샀잖아?”

“…….”

결국 서연희와 함께 마트를 나섰다.

행여나 누가 볼까 봐 택시를 잡아타 번화가로 향했고, 내린 곳에서 바로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곤 그제야 물었다.

“그래서, 왜요? 저희 당분간은 사리는 게 낫지 싶은데.”

최소한 이번 달까진 팬텀으로서의 활동을 자제하려고 생각 중이었다. 조금 지나치게 존재감을 드러낸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적절한 시기가 오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하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지.

그러나 서연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 그것 때문은 아냐. 너한테 새 얼굴도 익히게 하고, 그냥 차나 한잔하고, 학교에서는 어떤지, 그것도 좀 궁금해서. 어제는 바빠서 별로 얘기를 못 나눴잖아?”

“……그렇긴 하죠.”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 잠자코 수긍했다.

원래 호텔에서 이것저것 의논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무튼…… 출근은 언제까지 하려고?”

해석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지까진 묻지 않겠지만, 내가 목적한 바를 언제쯤 이룰 수 있는지.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답했다.

“글쎄요, 다음 달? 그때쯤 끝날 것도 같은데 그 이상 더 다닐진 당장은 모르겠네요.”

+

<킬 더 이블> 1권, ‘아카데미의 천재 마검사’가 진행 중입니다.

-1권 태그: [아카데미] [로맨스 X] [캐릭터 중심]

-진행률: 27.4%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1권 종료 시점,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 ---의 제1 아카데미 내부 주목도를 상회할 것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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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부터 오늘까지 고작 나흘. 그동안 진행률이 15% 가까이 올랐다.

누군지 완전하게 특정할 수는 없는 주인공의 행적에 맞춰서 변동이 생기는 거니까.

자기 나름대로 어떤 사건을 겪었든, 훈련을 열심히 했든, 여러 일이 있었겠지.

시간의 흐름과 진행률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1권 종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조만간 사건이 터질 거고, 나는 내 역할에 맞게 행동하면 될 뿐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아직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최종보스로서.

“계획은 세워둔 게 있어요.”

“뭔데?”

“도움 요청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가서 말씀드릴게요.”

홀로그램이 내게 부여한 퀘스트는 제1 아카데미 내부 주목도를 올리는 것. 단지 그것밖에 없다.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으로 그걸 이루어내는지는 오롯이 내게 달려 있지.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서연희에게 물었다.

“자체 휴강이라는 말 알아요?”

“땡땡이?”

대학생들이 맘대로 수업 빼먹는 걸 지칭하는 말.

나는 씨익 웃으며 일렀다.

“저도 그거 하려고요.”

학생들만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수업 담당하는 교수에게도 휴강의 권한은 있다.

***

3월 16일 화요일, 오후 한 시에 가까워진 시각.

이세아는 오른편 자리의 유해빈이 구시렁대는 말을 한 귀로 흘려넘겼다.

“아, 되게 쩨쩨하네. 그거 하나 얼마나 한다고.”

“네가 사 먹어.”

“수업 곧 있으면 시작할 건데 언제 매점 갔다 오냐. 그러지 말고 한 조각만 주라.”

그러면서 은근슬쩍 손을 뻗는다. 목표는 책상 한쪽에 놓인 과자 봉지. 하지만 이세아는 예리하게 쳐냈고, 유해빈이 뜨악한 기색으로 묻는다.

“아, 와…… 너 지금 과자 하나 때문에 친구 때렸냐?”

“내가 언제 때렸어. 뺏어 먹지 말라고 막은 거지.”

“그건 그렇다 치고 군것질 좋아하지도 않던 애가 어제부터 왜 과자를 입에 달고 살아?”

“맛있어서.”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그야 맛있냐 맛없냐를 따지면 전자지만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빠가 사준 선물이니까. 그래서 먹는 거다.

‘이거까지만 먹고 남은 건 아껴 먹어야지…….’

집에 쟁여둔 건 한 번씩, 정말 먹고 싶을 때만 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후 한 시가 다 되어갈 무렵.

탁, 스윽.

강의실 제일 뒷자리로 걸어온 누군가가 이세아의 왼편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두고 의자를 빼냈다.

책상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던 유해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뭐냐?”

“여기 사람 없잖아. 난 앉으면 안 돼?”

지정석이나 마찬가지인 맨 앞자리에서 갑작스레 이동한 진유리가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그냥 네 자리 가, 응?”

“싫으면 네가 앞으로 가면 되잖아?”

“…….”

티격태격 언쟁을 주고받는 둘을 사이에 두고 이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오늘 수업이 순탄치는 않을 것 같은 예감에.

그즈음 바깥에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강의실에 자리한 학생들이 일제히 잡담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봤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본래 교수인 서상욱. 하지만 그는 중요치 않았다.

단 한 번의 수업으로 학생들에겐 실질적인 교사 역할로 올라선 남자. 이도진이 넓은 강의실을 둘러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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