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Chapter 5. 징계 (2)
자신이 아닌 이도진에게만 주목이 쏠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상욱 교수가 곧장 수업을 시작했다.
“으흠…… 지난 시간에 이어서 74p부터 계속할게요. 오늘이 3월 16일이니까…… 19번부터 한 장씩 읽어봐요. 95p에서 멈추면 됩니다.”
3과 16을 더해서 19번.
본인 나름대로는 논리를 갖춘 선정이었으나 학생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교과서에 적힌 알아먹지도 못할 문장의 나열이나마 머릿속에 담으려고 애썼다.
바로 이전 시간에 겪은 충격을 토대로 모두가 결론 내리고 있었으니까.
서상욱 교수의 수업 방식은 ‘전혀’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이후 진행될 이도진의 강의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래도 주의 깊게 들어두는 편이 좋다고.
이세아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만 갈수록 잠이 솔솔 오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라는 거야…….’
집에서 한번 책을 펼쳐봤을 때부터 혼자선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 물론 예습은 실패로 돌아가 채 일 분이 지나기 전에 책을 덮어야 했고.
‘……이게 고등학생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외부 마력의 제어와 흡수가 어쩌고 하는데, 표기만 한글로 돼 있을 뿐 내용은 외계어에 가깝게 느껴진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교과서를 다 읽고, 뒤이어 서상욱 교수가 해설을 빙자한 졸음 공격을 감행할 때까지 줄곧.
전멸에 가깝던 교실 분위기가 일변한 건 그 시점부터였다.
“자, 오늘 나갈 진도는 여기까지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이도진 선생님이 실습을 도와줄 거예요.”
짝짝짝짝-!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의실에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일었다. 기대와 해방감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열렬한 환호.
권력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음에도 수업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는지 서상욱 교수가 흡족해했고, 단상 앞으로 나선 이도진은 옅게 기뻐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입 모양으로만 웃는다.
문득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걸 이세아는 들을 수 있었다.
“진짜, 너무 잘생겨서 말이 안 나온다……. 옷발도 미쳤고, 그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멋있네. 우리랑 몇 살 차이지?”
“스물다섯이라니까…… 일곱 살 차이?”
“생각보다 얼마 안 나네?”
맨 뒷자리의 이세아는 의식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해괴망측한 대화에 저절로 눈을 흘겼다.
‘정신 나간 거 아냐?’
말이 일곱 살이지 밥을 더 먹었어도 최소한 칠천에서 팔천 그릇은 더 먹었을 어마어마한 차이다. 더군다나 엄연히 성인과 미성년자로 나뉘는데 어딜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대는 건지.
그야 잘생기고 옷발이 잘 받는다는 건 인정하지만, 집에선 목 부분이 늘어난 티셔츠에 몹시 추울 때만 제외하곤 사시사철 반바지 차림이란 걸 저 애들은 모르고 있다.
집 밖에서 번지르르하게 꾸민 모습 말고 그런 내밀한 실태까지 목격한 다음에도 터무니없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이세아로서는 의문이었고, 이도진이 마이크를 들었다.
“다들 주말 잘 보냈어요?”
“네-!”
경쾌한 대답에 그가 씨익 웃는다. 그리곤 마치 으름장을 놓듯이 이어서 물었다.
“오늘 내용은 좀 어려울 건데…… 잘 따라올 수 있겠어요?”
“네-!”
방금보다도 한층 열의가 깃든 대답. 재차 미소를 지은 이도진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슈우우우-
허공에 생성된 마력 구성체.
저번 수업 때와는 내뿜는 빛의 색이나 모양이 달랐다. 마치 커다란 양탄자의 가운데 부분만 눌린 것처럼, 조금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입체적인 사각형이었다.
“지난 시간엔 체내 마력이 발산될 시에 발생하는 반동 에너지를 해소하는 구성체, 그걸 배웠어요.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죠? 오늘은 반대로 외부의 마력 에너지가 여러분에게 전달될 때, 그걸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워볼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분이 알고, 또 사용하고 있는 방어 마법 상당수가 이 구성체의 원리를 토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아시겠죠?”
“……근데 상욱이는 왜 저렇게 설명 안 해줬대? 거짓말 안 치고 내가 책 읽은 거 녹음해서 틀어만 놔도 상욱이보단 안 졸리게 수업 잘할 듯.”
유해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중얼거린 말을 받아친 건 왼편에 앉은 진유리였다.
“교수님도 저거랑 똑같이 말씀하셨어. 수업 제대로 안 들은 사람은 이해 못 했겠지만.”
“웃기시네. 그래서 님은 상욱이랑 도진 씨 둘 중에서 한 명 수업만 들을 수 있으면 누구 들으쉴?”
“……도진 씨?”
조용히 반문한 이세아가 노려보자 별생각 없이 주절거리던 유해빈이 당황해 변명을 주워섬겼다.
“어? 아냐, 말이 헛나왔어. 도진이 형이지.”
“……도진이 형?”
“아니, 그러니까…… 이도진 교수님.”
“너희 잡담하려거든 나가서 해. 시끄러워서 수업 안 들리니까.”
진유리가 괜히 핀잔을 준 건 아니었다. 오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크게 갈래는 세 가지입니다. 반탄, 궤도 수정, 흡수. 반탄은 일반적인 실드 마법 전반, 궤도 수정은 원거리 간섭 계열에 해당하고, 흡수의 대표적인 예시는…….”
이도진이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 손길을 따라서 반구 형태의 보호막이 그의 주위에 일렁였고, 학생들이 경악해 숨을 삼켰다. 제일고 2학년쯤 되면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본 경험이 있는 고위 마법.
“3급 마법 ‘배리어’. 상대가 쏘아낸 마력 중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구성체의 완성도, 시전자가 지닌 마력 지배력과 순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잘만 되면 계통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마법에 대한 피해를 제로에 가깝게 만들 수 있죠. 가령 작고하신 정세빈 제일대 명예 교수께서는…… 현존하는 모든 방어 마법이 배리어의 아류이거나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말씀하셨고요.”
강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세빈’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이도진의 표정은 묵묵했으나 그가 정세빈의 아들이란 건 이곳에 자리한 전원이 알고 있으니까.
적막을 깬 건 구석에서 논문을 훑고 있던 서상욱 교수였다.
“잠깐, 도진 군. 정세빈 선생님이 정말 그런 견해를 보이셨나?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자네도 알다시피 계통적으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잖은가.”
“처음 배리어를 배울 때 그렇게 알려주셨습니다. 관련해서 논문을 하나 적어볼까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나 서상욱 교수는 되려 그 말이 전제하는 바에 주목했다.
“처음 배리어를 배울 때 말씀하셨다……. 그 말인즉슨 십 년도 더 되었다는 건데…….”
“네, 그쯤 됐습니다.”
이윽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었다.
“중학교 일이 학년이 배리어? 말이 안 되는데.”
“에이, 이런 데서 허세 부리려고 거짓말하겠어?”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고.”
“옛날에 진짜 개천재였다더니 맞긴 하나 보네.”
이도진을 향한 경외가 감도는 강의실에서 오로지 이세아만 고개를 떨궜다.
그녀는 꿈에도 알지 못하던 일이다.
기억조차 희미한 부모님과 천재였던 오빠. 세 사람만이 나눈 대화.
또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아마 많고도 많았겠지. 그중엔 이세아 자신에 관한 것도 있었을 터였다.
그녀는 모른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구성원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혼자만 너무 어렸으니까.
상냥한 설명을 듣고,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고, 그녀가 성장하기 전에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즈음 시선이 느껴졌다. 옆자리의 진유리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길로 자신을 보고 있었고, 이세아는 애써 되뇌었다.
‘……피해의식이야.’
괜히 넘겨짚지 말자.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 기분 나빠하거나 과민반응하지 말자. 직접 듣게 된다면 절대로 참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진 티를 내지 말자.
이젠 학교에 오빠도 있으니까.
“으흠, 그래. 도진 군은 수업 끝나고 나랑 연구실 좀 같이 가지. 수업 계속해요.”
학자로서 지닌 열정에 정신이 팔려있던 서상욱이 간신히 수업 시간이라는 걸 자각하고 일렀다. 이도진이 설명을 이어나갔고, 어느덧 학생들이 실습할 차례가 왔다.
대체로 지난 수업과 대동소이했다.
그런대로 잘 해내지만 어설픈 구석이 보이는 구성체. 하지만 이도진의 지적을 듣고 나서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강의실을 여유롭게 걷던 이도진이 왼쪽 제일 뒷자리 부근에 다다랐다.
그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유해빈 학생, 이세아 학생, 진유리 학생. 셋이 차례대로 해봐요. 삼십 초 시간을 줄 테니 셋이 상의해도 좋고, 옆 사람에게서 훔칠 수 있는 건 훔쳐도 좋아요. 방어 구성체는 맞선 상대가 어떤 걸 해냈는지 알아채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니까.”
“그냥 하겠습니다.”
재빨리 답한 건 진유리였다.
슈아아아…….
이도진이 시연해 보인 것과 같이 중앙이 움푹 들어간 양탄자 형태의 구성체. 잠시 살피던 그가 이내 개선할 부분을 일렀다.
“가장자리와 흡수 부위의 연결이 좀 부실하네요. 따로 만들어서 합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평평한 사면체 가운데를 마력으로 누른다는 느낌으로 해보면 더 좋아질 겁니다.”
“…….”
진유리가 멍하니 이도진을 올려다봤다. 어떻게 거기까지 알았냐는 듯이 의아해하는 눈길.
다음은 유해빈이었다.
“오…… 제가 보기엔 괜찮게 나온 것 같은데요.”
“유해빈 학생은 감각이 좋네요, 잘했어요.”
“에이, 이 정도는 해야죠. 감사합니다!”
진유리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인정하긴 싫으나 그녀보다도 결과물이 좋긴 했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음…… 이세아 학생?”
시종 차분하던 이도진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망설임이 스몄다.
이세아는 그걸 ‘잘할 수 있을까’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마력을 끌어냈다.
그리고 이어진 이도진의 평가는…….
짝짝짝.
작게나마 손뼉을 친 그가 들뜬 기색으로 일렀다.
“좋아요, 아주아주 잘했어요. 흠잡을 데가 없고, 오늘 본 구성체 중에서 제일 완성도가 훌륭해요.”
극찬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이세아는 의문을 품었다. 기쁜 감정보다는 ‘정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생이라고 일부러 칭찬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찬찬히 살피니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었다.
“오우, 오…….”
“…….”
감탄하는 유해빈과 은근히 눈동자가 떨리는 진유리. 둘의 반응을 보아하니 결과물이 꽤 괜찮은 편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싱긋 웃은 이도진이 다른 쪽으로 향하려 하던 그때.
“교수님?”
“진유리 학생, 왜 그러죠?”
이도진을 불러세운 진유리가 도전적인 어조로 청했다.
“저번 수업 때 구성체를 다시 검사받을 수 있겠냐고 여쭸었는데…… 가능할까요?”
그러더니 슬쩍 이세아를 쳐다보는 모습.
이세아는 그제야 맨 앞자리 지박령이 굳이 이쪽으로 이동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비교하려고.’
자신도 이도진에게 구성체를 검사받기로 했으니까. 바로 옆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려는 심산이리라. 이미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이 그들을 흥미로워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말없이 한숨을 내쉬던 이도진이 눈으로 묻는다. 해도 되겠냐고. 이세아는 대답 대신에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진유리 학생이랑 이세아 학생, 둘이 동시에 해봐요. 지난 수업 때보다 어떤 점이 나아졌고 어떤 점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알려줄게요.”
“네, 교수님.”
“……네.”
나란히 앉은 진유리와 이세아. 둘 사이로 눈빛이 오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으으으…….
파아앙!
이세아 쪽에서 흘러나온 고요한 소리.
그에 반해 진유리는 힘차게 구성체를 자아냈다.
강의실이 씻은 듯이 조용해졌고, 이도진이 낮게 일렀다.
“진유리 학생 잘했어요. 저번 주에 지적했던 걸 거의 다 고쳤네요.”
“……감사합니다.”
우쭐할 법도 한데 진유리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그리고 이세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의 눈빛에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기쁨을 읽었다.
“이세아 학생은…… 이게 만약 시험이었고 채점을 내가 했다면, 학생한테 최고 점수를 줬을 거예요.”
단지 교수로서가 아니라 오빠로서 자랑스럽다는 게 선명히 묻어나오는 말.
그걸 마음속에 똑똑히 새긴 이세아의 기분도, 이도진이 보내는 눈빛과 정확히 같아졌다.
***
지금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 중이다.
애들 지적을 마치고 강의실 앞으로 돌아와서 공간 전체를 올려다봤다.
다들 잘했고, 열심히 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세아다.
편애하면 안 되지만, 그런데도 편애가 들어있는 걸 부정하진 않겠지만, 내 동생이 제일 잘한 건 엄연한 사실이지.
강의실에 들어올 때보다 애 표정이 훨씬 밝아 보인다.
혼자 연습하겠다길래 내심 마음이 쓰였는데, 우리 세아가 하면 되는 애긴 해. 되게 기특하고 뿌듯했다.
흐뭇한 마음을 가다듬고 손목 시계로 확인한 시각은 오후 2시 50분. 수업이 마치려면 십 분쯤 남았다.
여기서 대강 정리하고 끝내도 되겠지만…… 동생이 잘 해냈으니 오빠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네.
“그럼 한 가지만 더 보여주고 오늘 수업 마치도록 할게요.”
서상욱 교수에겐 미리 허락을 받아뒀다.
적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애들한테도 자극이 될 거라던데……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려는 의도가 훤했지만 나도 저러는 게 편하니까 상관은 없지.
타악.
학생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반투명한 배리어가 내 반경 1M 공간에 생성됐고, 그 중심에 자리한 구성체까지 시각화해 드러났다. 거기까지 마치곤 애들에게 일렀다.
“배리어 마법에서 외부 충격에 구성체가 어떤 형태로 운동하는지 실제로 보여주도록 할게요. 한 사람, 앞으로 나와서 공격 마법을 발동해주면 됩니다. 해보고 싶은 사람 있나요?”
내 말이 떨어진 직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