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Chapter 5. 징계 (3)
“교수님, 저요!”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
자신을 지목해달라고 열띤 어조로 요청하는 학생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적잖이 미묘한 심경이었다.
그야 애들 수업 참여가 활발하고 의욕이 높은 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기꺼워해야 할 일이지.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여러분, 저를 그렇게 공격해보고 싶어요?”
농담 같은 어조였지만 어떤 면에선 진심으로 물어본 말. 그러자 열화와 같은 대답이 터져 나왔다.
“네-!”
“아…… 그래요?”
이 자식들 지금 눈빛이 정상이 아닌데…….
꼭 그런 느낌이었다.
길거리나 오락실에 있는 펀치 기계. 자기가 최고 점수를 내리라 다짐하며 기대감에 가득 찬 그 표정.
졸지에 마력 측정하는 기계 신세가 된 나는 마지막 남은 권위로 지시했다.
“다섯 명씩 모여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승부를 가리고, 거기서 또 세 사람을 정해요. 오 분만 드리면 되겠죠?”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란 말이었다. 하고 싶은 애들이 저렇게 많은데 딱 한 명만 시키기도 뭐 해서 세 명으로 늘렸고.
이윽고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활기찬 외침이 들려왔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야, 너 늦게 냈어. 반칙했으니까 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그래도 어린 애들이라고 아주 신이 나서 가위바위보 삼매경에 빠져 있다. 저것만 해도 다들 재밌어하는 듯한데…… 이러면 내가 보탤 필요도 없지 않으려나?
잠시 그런 관측도 해봤으나 낙관적인 희망에 불과했고, 지원자 중 최후까지 살아남은 세 명이 강의실 앞으로 내려왔다. 저마다 의욕이 흘러넘치는 얼굴,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었다.
“교수님, 저부터 해도 될까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볼이 빵빵한 데다 체격도 조금 통통한 편인 남자애가 나섰다. 얘는 무기술보단 마법 전공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해요, 학생 이름이 심정현이었죠?”
“아, 네! 사용할 마법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고개를 젓자 심정현을 비롯해 학생들 상당수가 의아하단 기색이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설명을 이었다.
“속성, 계통, 급수, 위력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돼요. 실전에서 적에게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주진 않죠? 발동할 때 주위 기물이 파손되지 않을 마법. 그 정도 조건만 지켜주면 충분해요.”
“어, 음…… 알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힘차게 답한 심정현이 강의실 입구 쪽에 섰다.
그리곤 양손을 모아 정면으로 뻗으며 외쳤다.
“시작하겠습니다!”
“마력에 제한을 두지 말고, 있는 힘껏 해봐요.”
+
-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A)
+
심정현의 양손 주위로 새파란 불길이 생겨난 그 시점에 나는 이미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화(火) 속성. 방출 계통. 4급 중상위. 위력은 사람 하나쯤 가뿐히 바비큐로 구워낼 수 있는 수준.
대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콰아앙!
대포처럼 쏘아낸 마탄이 내게 짓쳐 들어왔고, 강의실 뒤편의 누군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세아였다.
다른 애들이야 옆에 서상욱 교수도 있고, 제안한 사람이 나니까 어련히 믿는 구석이 있으리라 싶겠지만…… 내 동생은 그리 편하게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다. 애가 좀 틱틱대긴 해도 심성은 되게 착하단 말이지.
내심 흐뭇해하며 나는 배리어를 활성화했다.
슈우우우…….
“어, 어어?”
심정현이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자신이 발동한 마법이 내 배리어에 막혀 돌연 자취를 감추는 걸 목격한 탓에.
다른 애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일제히 배리어 중심부로 시선을 집중한다.
마술사가 쓰는 모자처럼 중앙이 움푹 들어간 구성체가 심정현의 마력을 흡수해 빛을 더해가는 장면을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다.
그즈음 세아가 주춤주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맨 뒷자리에다 또 제일 구석이라 눈치챈 사람은 유해빈 외에는 없었고, 실실 웃으며 무어라 종알대는 친구를 흘겨본 세아가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걱정을 한시름 덜었겠지.
“이렇게 흡수 계통의 배리어 구성체는 외부 타격에, 특히 방출 계통의 공격에 상당한 보호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의 마법을 재빨리 파악해야 효율이 증대되고요. 그러면 다음 학생?”
두 번째로 나선 건 심정현과 반대로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학생이었다. 그 애가 선택한 방법은…….
휘유우우웅-
강의실에 돌풍이 몰아쳤다. 풍(風) 속성에 5급 상위. 마력을 실은 바람으로 배리어를 흩트리려는 계산이다. 시도 자체는 참신했지만…….
휘유우, 스으으으…….
배리어 근처로 올 때마다 바람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마치 세차게 돌던 팽이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회전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결국엔 완전히 잦아들었다.
“와, 와…….”
“정성훈 학생, 시도는 아주 좋았어요. 하지만 여기 보이는 것처럼 배리어 구성체엔 별다른 영향이 없었죠?”
“네, 어차피 둘 다 마력이니까 부딪쳐서 흐트러지게 할 수 있지 않나 했는데…….”
“정성훈 학생이 마법을 발동한 직후에 내가 어떤 처리를 했는지 알면 이해가 될 거예요.”
특별한 건 아니었다. 지(地) 속성의 마력을 살짝 가미한 정도.
“아, 그래서…….”
“배리어라고 다 같은 배리어가 아니고, 응용하기 나름이라는 걸 기억해둬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단히 훌륭한 시도였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어느덧 시계는 오후 2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진유리가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진유리 학생,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요?”
“……물론이죠.”
곧장 답한 진유리가 양손을 들어 올렸고, 그녀의 왼손과 오른손이 제각기 다른 형태의 마력을 내뿜는다. 그걸 보곤 강의실 앞쪽에 자리한 학생 하나가 중얼거렸다.
“복합 마법…….”
복수 속성의 동시 구사. 중첩, 혹은 복합이라 명명되는 고난도 기술이다.
진유리가 선택한 건 수(水) 속성과 뇌(雷) 속성.
먼저 왼손을 떨쳐낸다. 물줄기를 연상케 하는 마력이 배리어 코앞까지 다가왔고, 그녀가 곧장 오른손까지 휘둘렀다. 파지직 소리와 함께 위협적인 뇌전이 물줄기를 휘감았다.
“교수님, 조심하세요!”
경고하는 말과 달리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마법을 펼쳐낸 진유리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그래, 선생이고 뭐고 실력으로 해보자는 거지.
나는 배리어에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력만을 더했다.
콰아아아-!
학생들 자리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게 서상욱 교수가 처리해두지 않았다면 강의실 전체가 난장판이 됐을 법한 파동.
그리고 적막이 찾아왔다.
“아…….”
망연자실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는 진유리. 나는 담담히 일렀다.
“속성과 계통 측면에서 유리한 상성의 배리어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자신이 있다면 이렇게 순수한 마력으로 맞받아치는 것도 전투의 양상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마력 증진과 기술적인 공부. 둘 다 게을리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짝짝짝-!
그렇게 두 번째 수업도 나름대로 성황리에 끝이 났고, 이번엔 질문을 받을 새도 없이 서상욱 교수가 나를 자기 연구실로 끌고 가버렸다.
“도진 군, 거기 앉게.”
“네, 그런데 어떤 일로 부르신 건지…….”
“일단 차부터 한잔하고. 커피가 좋겠나, 녹차가 좋겠나?”
“녹차로 하겠습니다.”
전기 포트에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일이 분쯤 지나 녹차를 건네주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서상욱 교수가 운을 뗐다.
“아까 수업 때 도진 군이 했던 말 있잖은가. 정세빈 선생님이 기고하시려 했다던 논문. 이런 부탁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
“글쎄요…….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당시엔 제가 어린 나이라 자세한 이야기까지 듣진 못했습니다. 배리어를 배우면서 얼마간 들은 게 전부인데-”
“그 정도만 해줘도 고맙지. 내 섭섭하게 대우하진 않을 거야. 실마리야 자네가 제공하는 거고, 나랑 같이 주저자로 해서 논문 하나 써보면 도진 군 경력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어조로 서상욱 교수가 나를 설득하려던 그때였다.
쾅, 쾅!
연구실 바깥에서 누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무척 다급해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안에 계세요?”
“응?”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은 서상욱 교수가 눈썹을 찡그리며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서 있는 건 마법역학 수업을 들은 학생 몇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알렸다.
“큰일 났어요! 교실에서 싸움 났는데, 세아랑 유리랑…….”
“교수님, 정말 죄송하지만 다녀와서 말씀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나도 가세.”
이내 나와 서상욱 교수, 학생들까지 모두 강의실로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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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익명 (글쓴이)
날짜: 3/16 15:01
제목: 와... 역시 이조딘 선배님 완전히 강의실을 뒤집어 놓으셨다......
내용: 진짜 최고의 교수... 와... 수업이 달라진 거 같애 진짜 안 쓰는 강의법...
댓글:
-익명 1: 와... 얼굴 옷발 목소리 강의력... 그대로 그냥.. 이도진.. 나타나네... 와......
-익명 2: 아니 근데 진유리 ㄹㅇ 찍힌 거 아님? 첫 수업은 걍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은 ㅋㅋㅋㅋ 도진쿤 다른 애들은 상성 맞춰서 친절하게 해주고 진유리만 힘으로 찍어눌렀잖슴
└익명 3: 아 ㅋㅋㅋ 그러면 동생한테 자꾸 시비 거는데 합법적으로 벌 안 주겠냐?
└익명 5: 나라도 세아 같은 애가 여동생이면 무조건 복수하지
-익명 4: 유리야 더 늦기 전에 세아한테 그랜절 박고 앞으로 시비 걸지 마 아무리 그래 봐야 세아가 더 예쁨 ㅎㅎ
└익명 6: 성적은 진유리가 더 좋잖아
└익명 7: 오늘 보면 몰라? 세아가 나서는 거 안 좋아해서 대충 하는데 막상 제대로 하면 유해빈이랑 최소 동급이지
└익명 9: 아무도 진유리가 더 예쁘다고는 반박 안 하네 ㅋㅋㅋㅋㅋ
-
“…….”
제1 아카데미의 학생들 전용의 익명 커뮤니티.
그곳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진유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함께 걷던 친구들이 조심스레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신경 쓰지 마.”
“근데 익명이라고 말 진짜 막하네. 이거 어떻게 잡아낼 수 없나?”
“됐어, 저런 거 일일이 마음에 담아둬서 뭐해.”
아무렇지 않게 답한 진유리였지만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익명 게시판에다 멋대로 지껄인 글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거기에 적힌 내용은 일부분이나마 사실이었다.
‘하면 잘하니까…….’
성적으론 전교 1등을 다툰다지만 진유리는 자신의 재능이 학년에서 최고라고 여기지 않았다. 유해빈에 대면 얼마간 손색이 있다. 이세아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굉장히 드물게 그걸 다시금 확인한 날이 되었고.
‘더 열심히 하면 돼.’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에겐 그들이 가지지 못한 끈기가 있었다. 그것까지도 재능의 범주에 포함한다면, 자신은 또래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집에 가면 오늘 배운 것부터 복습하고, 예습까지 원래 하던 만큼 하려면…….’
아마 밤을 꼬박 새워야겠지. 그런 건 대수롭지 않았다. 그에 상응하는 성과가 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무렵 친구들이 원망이 어린 투로 말을 꺼냈다.
“근데…… 솔직히 편애하는 감 있긴 하지 않나?”
“누구?”
“도진 쌤. 이세아 쟤만 특별대우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그렇긴 해.”
진유리는 답하려 했다. 자신은 딱히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고.
결과물이 좋지 않았을 때는 이세아도 냉정하게 평가했다.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했다.
단지 그뿐이니까 괜한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게다가 바로 근처에 이세아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들리게 해봐야 좋을 게 없다고.
하지만 그에 앞서서, 문득 한 명이 중얼거렸다.
“친동생도 아닌데…… 되게 예뻐하네?”
“……!”
그 말을 듣자마자 진유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세아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 무표정하게, 조용히 묻는다.
“방금, 뭐라고 했어?”
***
이세아는 생각했다. 그간 많이 참았다고.
장례식장을 나선 길에서도 참았다. 오빠를 들먹이는 말을 참았다.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참았다. ‘역시 정세빈 마법사님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듣고서도 참았다.
오늘도 참았다. 오빠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언급할 때 진유리가 자신을 보는 걸 참았다.
그리고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절대로 참아서는 안 되는 말을, 마침내 대놓고 들었으니까.
마음을 활활 태우는 분노를 담아 그녀는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