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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22화 (22/207)

#22화. Chapter 5. 징계 (4)

이세아는 자신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린단 것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런데도 듣는 이에게는 무척 선명하게 스미는 추궁이었다.

진유리를 비롯한 서너 명의 학생이 답하지 않자 그녀는 재차 입을 열었다.

“너야?”

“아…… 그러니까-”

진유리의 옆에서 걷고 있던 여학생이 머뭇거리며 뭐라 변명하려 했고, 확신에 가깝게 짐작하던 이세아로선 그 정도만 해도 행동하기에 충분한 근거였다.

콰악!

“아!”

짧은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별안간 오른손을 뻗은 이세아가 여학생의 어깨를 잡아챈 것이다. 거의 어깨를 부술 듯이 손에 힘을 준 채로, 상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일렀다.

“아까 뭐라고 했는지 내 눈 보고 다시 말해봐.”

“잠깐만! 이거 좀 놓고-”

상대가 다른 쪽 팔로 저항하려 했으나 이세아의 왼손에 막혔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명령했다.

“빨리 말해. 뭐라고 했는지.”

물론 그 이후엔 고작 어깨 좀 쑤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참지 않을 때는, 정말로 참지 않아야 하니까.

진유리가 끼어든 건 그때였다.

타악!

손을 휘둘러 이세아와 여학생 사이를 떼어낸 그녀가 경고하듯 말했다.

“일 크게 만들기 싫으면 적당히 해. 민서도 사과하고-”

“적당히?”

터억, 쿠웅!

맨 처음 망발을 지껄인 여학생, 윤민서의 어깨를 다시 잡았다가 거세게 밀쳐 바닥에 내동댕이친 이세아가 진유리를 향해 다가갔다.

“‘적당히’라고 했어?”

“왜, 내가 못할 말 했니? 함부로 폭력 쓰는 거 회장으로서 말리는 건데 문제 있어?”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뭐?”

진유리는 물론이고,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해빈을 제외한 모두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항상 조용조용하던 이세아가 내뱉으리라곤 상상도 하기 어려운 표현이었으니까.

싸늘한 적막을 만들어낸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 경고하는데 앞으로 우리 부모님이랑 오빠 얘기 입 밖에 꺼내지 마. 한마디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 그렇게 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당장 맹세해.”

“……못 하겠다면?”

뻔뻔한 대답에 이세아는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겨우 발휘했다. 몸을 돌려 마법역학 수업이 있었던 강의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진유리는 그 행동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녀도 강의실로 향했고, 다른 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 그들을 따라갔다.

확고한 전교 2등이자 가끔은 전교 1등인 천재.

비록 전교 10위권이지만 잠재성만 놓고 보자면 능히 3위 이내에 들 수 있으리라 고평가받는 원석.

그리고 제일고에서 교과 성적이란 ‘싸움 실력’과 같은 의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쨌든 다들 어린 나이였고, 뜻밖의 빅매치에 은근히 들떠서 수군거렸다.

“쟤네 갑자기 왜 싸워? 유리멘탈 수업 때 발려서 또 심술부렸나?”

“몰라? 근데 나 이세아 저렇게 빡친 거 처음 보는데 좀 신기하다. 쟤도 욕 같은 거 할 줄 알았네.”

“아, 들어 보니까 패드립쳤다는 거 같더라.”

“진짜? 진유리가?”

“응, 본 애들이 그랬다던데?”

“와…… 세아한테 패드립? 진짜 개쓰레기네.”

“솔직히 이세아가 정의구현 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안 되지 않으려나……?”

개중에 드물게 상식을 갖춘 몇몇 아이들은 이 상황을 말릴 사람을 찾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유해빈이었다.

“야, 좀 말려봐.”

진유리보다도 강하고 이세아와 친한 친구. 학생 중에 유일한 적임자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나치리만큼 단출했다.

“내가 왜?”

“어, 어?”

언뜻 기대까지 담긴 시선으로 강의실 내부의 상황을 지켜보며 유해빈이 말을 이었다.

“맨날 시비 건 사람은 진유리고, 이세아가 안 참겠다는데 내가 무슨 권리로 말려? 괜히 참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지.”

“아니, 그래도…….”

논리적으로는 합당한 대답이었으나 말을 건 남학생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상하다……. 유해빈이 이런 애였던가? 사교성 좋고 성격이 밝은 애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왜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재밌어하는 것 같지?

그러나 의구심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퍼엉! 콰아앙!

벌써 싸움이 시작되고 말았으니까.

안 되겠다 싶었던 남학생은 다른 몇 명과 함께 복도를 달려나갔다. 누군가 중재할 교직원을 데려오려는 거겠지.

유해빈은 그것까지 제지하진 않았다.

‘그건 좀…… 이미지랑 너무 안 맞고.’

그렇게 내심 중얼거리며 슬쩍 손가락을 튕겼다. 미세하게 흘러나온 마력이 진유리의 움직임에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들었다. 수세에 몰려 있던 이세아가 간신히 빠져나와 거리를 벌렸고, 다시금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격전이 이어졌다.

‘그래도 친구니까.’

이 정도는 도와주겠지만 그 이상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이세아 본인의 일이고, 본인의 의지로 나섰으니까.

다만 그렇기에 누가 이길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지면 좀 많이 창피할 건데…… 에이, 모르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세아가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일 테니까.

사실 이세아도 알고 있었다. 진유리와 싸우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오늘까지 족히 사 년 이상.

그간 진유리와 수업 시간에 대련한 적은 열 번이나 스무 번을 우습게 넘기고, 그중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때로는 질 걸 알더라도 싸워야 할 때가 있으니까.

설령 지더라도 이젠 멋대로 지껄이지 못하게 혼쭐을 내주겠다. 이번 한 번을 끝으로 오빠가 학교에 있는 동안 그의 귀에 쓸데없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만들겠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친동생 아니라고,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오빠가 지금보다 더 그녀를 버겁게 여길지도 모르니까.

입양된 자식.

이시혁과 정세빈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

이세아는 그걸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어떻게 그때까지 모를 수 있었냐고 한다면……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여덟 살의 봄. 하루아침에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이세아는 빠르게 전학을 갔다.

본래 다니기로 예정되어 있던 학교에도 그녀가 이시혁과 정세빈의 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조차 마음이 놓이지 않아 부모님의 지인들이 힘을 써준 것이다.

집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 정말로 이세아가 어떤 이들의 자식인지 아무도 모르고,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만한 곳을 골라서. 학교생활에서 보호자가 해줘야 할 일들도 수월하게 처리해줬다.

성장하고 나니 그들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영웅의 자식이라고 위험에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했기에.

다만 일찍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만은 원망스러웠다.

오빠도, 부모님의 지인들도, 어째서 말해주지 않은 걸까. 영원히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그녀가, 부모님을 잃고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그녀가 받아들이긴 지나치게 무거운 일이라 여겨서였을까?

그래도…… 최소한 대비라도 하게 해줬다면.

이세아 자신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알게 되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양자라는 사실을 수업 시간에 우연히 들었다.

“그래서, 사 년 전에 갑자기 발생한 대균열을 막아내고 이시혁 영웅님과 정세빈 영웅님이 서거하셨어요.”

“선생님, 서거가 뭐예요?”

“아, 나 그거 책에서 봤는데. 죽었다는 뜻일걸?”

“조용, 조용.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들인데 말을 예쁘게 해야지, 그렇죠?”

6교시 마지막 수업 도중 나온 부모님 이야기. 이세아는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아주 드물게나마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 의도치 않게 그녀의 부모님을 언급하는 일이.

대체로 존경과 선망이 담긴 말들이었으나 가슴이 괜히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이세아는 의문을 품었다.

이젠 조금은 이해하고 있지만…… 자신이 그들의 딸이라는 걸 굳이 감춰야 할까, 하고.

어쩌면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부모님의 기억을 깊이 새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 오빠한테 엄마 아빠 얘기 들을 때도 더 좋잖아.’

그리움이 담긴 오빠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의 부푼 상상이 까맣게 물든 건 그 직후였다.

“그 뒤로 두 분의 아드님인 이도진 군은 지금 제1 아카데미 고등부에서 음…… 열심히 공부 중이고, 여러분 또래 따님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까진 선생님도 자세히 모르겠네요.”

당시만 해도 이세아는 오빠의 좋지 않은 평판을 잘 알지 못했다. 성적이 떨어져 어른들이 꾸중하는 건 몇 번 본 적 있지만, 그런 건 오빠를 따르고 사랑하는 마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저 오빠 이야기가 나와서 들떴고, 자신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와서 더욱 귀를 쫑긋 세웠다. 정확히 그때까지만.

“아, 선생님 나 그거 알아요! 딸은 친딸 아니고, 입양아일 수도 있다고 아빠가 그랬는데 정말이에요?”

“……?”

처음에 이세아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딸이 아니라 입양아라는 말.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담임 교사의 대답이 이어진 다음에야,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이 있었긴 한데…… 글쎄요, 정확한 건 아니라서.”

“안 정확하다는 게 진짜라는 말 아녜요? 친자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 정확해? 예전부터 비밀로 하려다 보니까 걔는 어디 학교 다니는지도 모르고, 숨어서 사는 거지.”

“그만, 이만하면 다들 잠 다 깼죠? 수업 계속할게요.”

담임 교사가 분위기를 환기했으나 아이들은 연신 수군거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영웅들이 거둔 딸에 대해서.

이세아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친구들이 걱정 어린 물음을 건넸으나 답할 여유가 없었다. 청소 시간과 종례 시간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교하자마자 집으로 달음박질했고, 거의 쓰지 않던 컴퓨터를 켜 몇 가지 단어 조합을 끊임없이 검색해나갔다.

이시혁 정세빈 딸.

이시혁 정세빈 입양.

이시혁 정세빈 자식.

이도진 동생.

이도진 여동생.

이도진 여동생 입양.

이세아.

이세아 입양.

떠오르는 키워드를 모두 동원해 인터넷 기사를 샅샅이 뒤졌다. 위키 사이트, 동영상 사이트, 커뮤니티. 정보가 있을 만한 곳은 아는 대로 전부 들어갔다.

하지만 거의 나오는 게 없었다. 마치 이세아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에 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꼭 의도적으로 지우고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바꿔 말하면…….

비록 추측성이지만 눈에 띄는 글과 댓글이 있긴 했다.

특정 시기에 정세빈이 전혀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그러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흐윽…….”

울음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며 이세아는 어딘가로 향했다. 수년 전까지 부모님이 쓰시던 서재. 거기엔 꽤 여러 권의 앨범이 있었다.

이도진이 수시로 그녀에게 보여준 앨범들이다.

부모님의, 오빠의, 자신의 과거가 담긴 사진들.

이세아는 그중에 십 년 이상 예전 것들만 꺼내어 들었다.

날짜가 찍힌 사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녀를 품에 안은 이시혁과, 그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정세빈과, 그들 가운데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도진.

그녀가 아장아장 걷고 있는 사진. 이도진이 엉엉 울고 있는 그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 사진.

지금의 이세아보다 훨씬 어린 오빠가 갓난아기인 그녀를 안고 있는 사진.

거기서 더 과거로 넘어가자 그녀를 빼고 세 명만 앨범에 등장했고, 이세아는 그사이에 응당 있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없어.’

왜 여태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앨범으로 남은 어머니 정세빈은, 단 한 장의 사진에서도, 배가 부른 모습이 없었다.

“으…… 으흑.”

이세아는 시야가 핑핑 도는 걸 느꼈다. 현기증이 나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기절하듯 바닥에 몸을 누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은 어느새 오후 네 시. 곧 오빠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세아는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오빠한테 물어봐야겠지. 그렇게 하면 답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웠다. 자신은 틀림없이 이세아라는 사람이고 어제와 똑같은데,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듯한 막막함이 밀려왔다.

자기 정체성 같은 말까진 알지 못했으나 이세아는 지금, 자신이 마치 가짜가 돼버린 것만 같았다.

오빠에게 대답을 들으면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고, 이세아는 결코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여전히 동생으로서 오빠에게 이쁨받을 수 있게.

그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

선물을 사려고 해도 돈은 없고, 그녀는 부엌을 바라봤다.

‘해볼까…….’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음식을 만드는 것 정도였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요리에 능숙하던 이도진과 달리 이세아는 요리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이도진이 그녀가 부엌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모든 걸 도맡아서 한 탓이다.

그러니까, 직접 요리를 만들면, 오빠가 기특하다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친남매가 아니란 게 밝혀져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아껴주지 않을까.

결심을 마친 이세아는 부엌에 섰다.

“아얏!”

두 시간 남짓 동안 이세아는 뜨거운 냄비에 손을 세 번 데였다. 칼에 손을 두 번이나 베였다. 욱신거리고 베인 상처가 따가웠다. 그리고 완성한 건…….

‘맛없어.’

요리라고 칭하는 것도 어폐가 있는, 음식 재료를 섞은 결과물. 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은 맛이었지만 인제 와서 새로 뭔가를 해보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한데 그즈음, 이도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빠: 세아야 오늘 오빠 좀 늦을 거야 많이 늦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자

-오빠: 내일 토요일이라고 너무 늦게 잠들지 말고 나중에 집에 가면서 전화할게 (18:10)

간혹 이럴 때가 있었다. 올해 들어 더욱 잦아진, 이도진의 늦은 귀가.

평소였다면 서운해하면서도 기다렸겠지. 그러나 오늘 이세아는 다만 겁을 먹었다.

왜 하필 오늘일까. 어쩌면 오빠가 자신이 알게 됐단 걸 눈치챈 걸까. 그래서 집에 오지 않는 걸까.

두려운 상상은 끝을 모르고 뻗어 나갔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고, 앞으론 돌봐줄 사람을 구해줄 테니 따로 살라고.

얼굴도 비치지 않고 그렇게만 전할지도 모른다.

오빠가 그녀를 버려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세아는 자신의 상상이 터무니없는 억측이란 걸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두려워하면서, 오빠가 귀가하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이 쉬지 않고 흘렀다.

식탁에 앉아 있다 깜빡 잠이 들었던 이세아가 깨어났을 땐 자정에 다다른 무렵.

접시에 담아낸 요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이세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형체가 다 뭉개진 무언가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목 안으로 넘기자마자 토기가 치밀었다.

화장실로 달려간 이세아는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게워냈다. 입을 씻고,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그리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거울을 응시하며 양치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하나도…… 안 닮았어.’

날카로운 인상이면서도 한편으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시혁의 얼굴.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의 정세빈. 두 사람 다 키가 컸고, 오빠인 이도진에겐 그들의 모습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앳된 얼굴과 가녀린 체구에선 도저히 부모님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고, 해서 이세아는 마침내 확신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자식이 아니구나, 라고.

그리고 다음 순간.

“…….”

이세아는 빛무리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걸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력의 각성 현상이었다.

늦게 올 거라던 이도진은 토요일 아침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몸이 피곤해 친구 집에서 그만 자버렸다고, 연락하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하다며 이세아에게 진심 어린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녀는 짧게 괜찮다고 답했다.

“집에 별일 없었지?”

“응……. 근데 오빠.”

“왜?”

“나…… 각성했어.”

그것 하나만 말했고, 입양에 관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집 안에는 이미 어제의 흔적이 남겨져 있지 않다. 채 1/3도 먹지 못한 요리는 버렸고, 설거지도 말끔히 끝냈다. 꺼냈던 앨범들은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뒀다.

당분간은……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확실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제 그랬듯이 두려워서.

하지만 그 두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도진이 돌아오기를 뜬 눈으로 밤새 기다리며,

너무나도 무서워서 방의 불을 환하게 켠 채로,

이세아는 난생처음.

아주 조금이지만.

오빠가 미워졌다.

‘당분간 물어보지 않겠다’라는 결심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한번 입을 다물자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고, 그 반동으로 말수가 적어졌다. 차츰 오빠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를 밉게 보는 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갈수록 집에 잘 들어오지 않으니까.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술을 마시고 오거나 담배 냄새, 어떨 땐 여자 향수 냄새까지 났으니까.

동생은 뒷전으로 두고, 집에 들어올 때만 챙기고, 자기 멋대로 사는 오빠. 변함없이 오빠를 사랑하는 만큼 오빠가 미워졌다. 이세아는 그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입양에 관한 대화는 그녀가 제일중에 진학하기로 확정된 이후에 이루어졌다.

“세아야, 잠시만 이리 와볼래? 오빠가 너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서.”

“……뭔데?”

이세아는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직감했다. 제일중에 입학하면 더는 숨기기 어렵고, 이래저래 말이 나올 테니까. 이젠 말할 때라는 거겠지.

예상했던 것처럼 이도진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일렀다.

그녀가, 이시혁과 정세빈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이세아는 담담하게 답했다.

“……알고 있었어.”

“……어?”

놀란 얼굴과 목소리. 그녀는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차분한 말투를 꾸미며 말했다.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았고.”

“……언제부터?”

이때는 거짓말을 했다.

“얼마 안 됐어. 중학교 가는 거 때문에 뭐 좀 찾아보다가.”

“그래……? 왜 오빠한테 안 물어보고-”

“별로, 상관없잖아.”

짧게 답한 이세아는 오빠의 표정을 눈여겨봤다.

걱정과 안도가 엿보인다.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안도는 뭘까.

설명할 부분이 줄어서 다행이라는 걸까.

최근에 알았다고 했으니까, 최근 일 년 이상 점차 남매 사이가 서먹해진 것의 원인은 아닐 거라고 여기는 걸까.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시혁과 정세빈의 딸. 그녀의 이름이 이세아라는 사실이 세간에 공개되며 친딸이 아니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이세아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고, 다만 그걸 가지고 흥밋거리로 삼으려는 애들이 보이면 그러기 전에 경고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세아의 싸늘한 어조가 섬찟했든지, 다들 그렇게까지 심성이 나쁘진 않았는지, 아니면 둘 다였을 수도 있겠지. 여하간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빠와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이세아는 이제 오빠의 대외적인 평판을 잘 안다. 집에선 그러지 않지만, 밖에서 하고 다니는 행동은 소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오빠의 사고방식과 언행에 있어 입양된 동생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으리라.

부모님과 살던 집에 같이 사는 존재니까, 이세아라는 사람 자체보다는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닐까.

필요 이상으로 곡해하는 거란 걸 알면서도, 오빠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이전, 과거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 여동생이라는 존재는 거기에 큰 비중이 없다.

그러니까, 오빠만 소중한 자신도 한편으론 그를 미워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 편하니까, 그 정도는 친동생이 아닌 자신에게도 허락되지 않을까.

하지만 전제조건은 있다. 단 한 번도, 오빠를 미워하기만 한 적은 없다. 정확히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만큼, 꼭 그만큼 미웠다.

그리고…… 이제 오빠가 겨우 마음을 잡았는데.

예전보다도 더 잘해주려고 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것 같은데.

친동생이 아니니 뭐니, 그런 말들이 떠돌아서 오빠가 생각을 바꾼다면. 저 애도 얼추 컸고 고등학생이니까, 라면서 손을 놔버리게 된다면.

이세아는 그런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정리해야 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그 누구도 그따위 말을 지껄이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콰앙!

진유리가 쏘아낸 마력을 이세아는 간신히 피해냈다. 빠르고 강한 공격. 본래라면 피하지 못하고 되받아쳐야만 했겠지. 그걸로 빈틈이 생겨 열세에 처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달랐다.

몸이 잘 움직였다. 마력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쾅, 콰앙!

이세아는 바닥을 박찼다. 전후좌우 불규칙적으로 뛰어다니며 진유리의 마법을 피해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경악에 물든 진유리의 얼굴에다 이세아는 발을 차올렸다.

쉬이익!

피싯-

목을 크게 틀어 피해낸 진유리의 머리칼이 이세아의 발끝에 걸렸다.

머리칼 끝이 잘려나가고 약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세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퍽, 퍼억! 콰앙!

“이익……!”

방어에 전념하던 진유리가 분한 듯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양팔에 붉고 푸른 마력이 일렁였다. 복합 마법, 계통은 신체 강화. 저 마법을 구사하며 반격하기 시작하면 밀리는 건 이세아 자신일 터.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티잉-

미약한 소음.

진유리의 팔에 서린 마력이 얼핏 흐려졌다. 원거리 마력 간섭. 그녀가 분노한 눈길로 강의실 문 쪽을 바라봤다. 유해빈이 힘차게 외친다.

“죽여버려!”

이세아는 이미 오른손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왼팔을 떨쳐내 진유리의 주의를 끌었다. 가까이 접근하며 왼발로 그녀의 정강이를 찼다.

“아…….”

진유리의 몸이 휘청이며 기울었다. 이세아는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 오른손에 모인 마력을 전부 실어내면 진유리가 중상을 입을 거란 걸 망각하고 있었다. 신경과민에 가까울 정도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원래 해낼 수 있는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마력을 가늠하지 못했다.

쿠아아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세아의 주먹은 진유리의 코앞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공격이 적중하기 바로 직전.

“이세아-!”

이세아는 뒤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내 반사적으로 돌아본 곳. 이도진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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