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23화 (23/207)

#23화. Chapter 5. 징계 (5)

***

이걸…… 뭘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잠시 강의실을 둘러보니 결론이 내려졌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적당히 수습할 문제는 아니라고.

강의실 내부가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책상과 의자가 부서져 널브러져 있고,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듯하나 목격자가 아주 많았다. 소란의 중심에 서 있는 내 동생 세아는 오른손에 마력을 가득 실은 채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중이고.

그 바로 뒤에서 넘어질 듯 위태롭게 휘청이던 진유리가 몸을 일으켰다. 눈빛에서 서슬 퍼런 분노를 뿜어내며 이를 악물었고, 나는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만!”

“아…….”

“후우, 후…….”

흠칫하며 몸을 떤 세아가 나직한 소리를 흘렸고, 진유리는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게…… 허어, 참…….”

나와 함께 온 서상욱 교수가 난처해하는 눈치로 중얼거린 말. 그나마 원만히 수습할 방법을 떠올린 나는 그에게 일렀다.

“교수님, 이 애들은 제가 데려가도 될까요?”

“그래 주겠나?”

“네, 애들 인계하고 연구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음…… 그러면 학생들 다음 수업 교수님들께는 내가 설명을 해두겠네.”

조금 미안해하면서도 서상욱 교수는 몇 마디 훈계만 하곤 자리를 떠났고, 나는 데려가야 할 문제아들의 명단을 뽑았다.

“이세아 학생, 진유리 학생.”

“……네.”

“네, 교수님.”

“학생들은 나 따라서 가요. 그리고…… 유해빈 학생도.”

“네? 저도요?”

“억울하다는 말은 못 한다는 거 학생도 알죠?”

“어…… 네.”

시치미를 떼던 유해빈이 수긍했다. 이 자식이 어딜 자기만 쏙 빠져나가려고. 은근슬쩍 마력 쏘아내는 걸 내가 다 봤는데.

“다른 학생은 또 관련자 없어요? 없으면 세 명만 나 따라와요.”

내 말을 듣곤 진유리의 친구들로 보이는 일행 세 명이 주춤주춤 나섰다.

유해빈, 진유리, 세아까지 전부 다 해서 여섯 명.

사고뭉치 병아리 여섯을 데리고 나는 몇 년 전까진 이따금 들를 일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바로 교무실이다.

제일고는 일반적인 고등학교와는 조금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대학과 고등학교를 절반씩 섞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2학년부터는 문·이과를 나누듯 무기술·마법·마검술까지 셋 중 하나로 주전공을 정해야 하며, 자기 전공 강의와 마법역학 같은 공통과목을 따로 듣게 된다.

현재 2학년 재학생은 총 175명.

그래도 명색이 고등학교라서 학년 내에서도 반이 나뉘고, 조례와 종례는 각 교실에서 따로 한다. 올해 2학년은 대략 삼십 명씩 여섯 분반.

공교롭게도 내가 데려온 여섯 명 모두 마검술 분반인 1분반. 그리고 더욱 공교롭게도 1분반 담임은 나랑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어, 그래. 도진아. ……음?”

술에 취한 사람처럼 항시 얼굴이 벌건 중년 남자가 나를 맞이하다가 뒤에 졸졸 따라오는 여섯 명을 보곤 의아해한다.

내가 여기 3학년 다닐 때 담임 선생님. 그렇게 엇나가지 말라고, 너는 하면 되니까 잘 좀 해보라고 타일러도 말 안 듣던 제일고 최고 문제아가 교직원으로 취직해서 돌아왔으니 어떤 의미에선 금의환향이라 해야 할 일이겠지만…… 오늘 여길 찾은 이유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지.

나는 1분반 담임이자 내 과거 담임 선생님에게 조심스레 알렸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게…… 이 애들이 조금 다툼이 있어서-”

“싸웠다고?”

“네, 정확히 말씀드리면 조금은 아니고 좀…….”

아무리 궁리해도 둘러댈 말을 찾기 어려워 그냥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강의실 난장판 만들면서 치고받고 싸웠습니다. 혼 좀 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던 담임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했다.

“일단, 그러면 상담실로 좀 가자. 도진이, 아니지, 이도진 선생님도 와서 상황 설명 부탁해요.”

나도 아는 게 많지는 않은데.

하지만 세아가 핵심인물로 연관된 사건이고,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 상담실로 들어갔다.

대략 이십 분쯤 지났을까. 여섯 명 각각의 증언을 교차 검증한 결과 죄과의 티어가 나뉘었다.

1 티어. 아예 대놓고 싸움판을 벌인 이세아와 진유리, 몰래 싸움에 끼어든 유해빈. 그중에서도 굳이 나누면 먼저 폭력을 행사한 세아가 제일 잘못했고, 그다음이 진유리, 세 번째가 유해빈. 어쨌든 셋 다 물리적으로 행동했으니 교칙에 따라 징계가 원칙이다.

2 티어, 최초 원인 제공자라 할 수 있는 윤민서. 얘는 징계까지는 아니고…… 반성문 몇 장 쓰고 세아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는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수준이겠지.

3 티어, 세아가 옆에 있는 걸 알면서 신경도 안 쓰고 쑥덕댄 나머지 둘. 얘네는 살짝 빠져도 되는데 의리로 따라온 느낌이 강하게 드네.

종이에다 뭘 계속 써나가던 담임이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일렀다.

“세아, 유리, 해빈이. 너희 셋은 원래 징계 위원회까지 열어야 하는데…… 셋 다 원하지 않으면 학적부에 안 남기고 교내봉사로 깔끔하게 끝내자. 괜찮지?”

안 괜찮으면 너희가 뭘 어쩔 거냐는 어조였지만 애들을 배려한 제안인 건 분명했고, 셋 다 얼른 동의했다.

“민서는 내일까지 반성문 다섯 장 써서 종례 시간까지 선생님한테 제출해라. 너희 둘은…… 앞으로 그러지 말고. 다들 못된 말 해서 미안하고, 폭력 써서 미안하다고 선생님이랑 이도진 선생님 보는 앞에서 화해하고.”

솔직히 나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 동생한테 계속 시비를 걸고, 부모님까지 들먹였다니까. 하지만 여기서 내가 나서 봐야 세아가 난처해지기만 하겠지. 그래서,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긴 하는 세 명이 사과하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이상한 말 해서 미안…….”

“나도, 편애 이런 거 아닌 거 아는데, 미안…….”

“나는…… 그, 얘기 함부로 해서 미안해…….”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안색이 창백하던 세아가 작게 일렀다.

“……밀쳐서 미안해.”

그렇게 2 티어와 3 티어 쪽은 그런대로 원만하게 마무리가 됐는데, 1 티어 셋이선 아직도 개판이네.

진유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유해빈은 딱히 아쉬운 것도 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고, 세아는 자꾸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머뭇거린다. 이번엔 내가 등을 떠밀어줘야겠지.

“세아야, 사과해야지.”

교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오빠로서 해준 말이었다. 먼저 사과한다고 지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오늘 일에서는 진유리보다 세아가 훨씬 잘못한 거니까.

그러자 세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겨우겨우 실낱처럼 희미한 말을 자아낸다.

“……미안.”

“나도, 말리려고 한 거긴 한데 단어 선택을 잘못했어. 사과할게.”

“난 끼어들어서 미안했다.”

진유리가 마치 사과를 받아준단 식으로 답했고, 유해빈은 그걸 못마땅해하는 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 이쯤하고 이도진 선생님은 이제 가 보셔도 돼요. 내가 애들 좀 더 타이르고 수업 보낼 테니까.”

“네, 선생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 뭘. 이도진 선생님 어른스러워진 것도 보고 나야 좋지. 번호 안 바뀌었으면 나중에 연락할 테니 식사라도 한 끼 해요.”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담임에게 정중히 인사한 나는 상담실을 나섰고, 내가 문밖으로 나가던 그때도 세아는 시선을 떨구고만 있었다.

무척 풀이 죽은 모습이라 마음이 쓰이고 걱정됐지만…… 일단 할 일부터 해야겠지. 서상욱 교수의 연구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마침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하니 논문 얘기는 목요일에 자세히 나누자고.

이미 오후 세 시 반을 넘긴 시각. 나는 짐을 챙겨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에 탑승해 서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왜?>

“저 상담 좀 해줄 수 있어요?”

<상담? 무슨 상담?>

나는 자초지종을 알려줬다. 세아가 친구들이랑 싸웠는데 그게 돌아가신 부모님과 내 일로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거기서 제가 세아 감싸고만 돌 수는 없으니까 사과하게 했고, 표면적으로는 정리가 됐어도…… 집에 오면 어떻게 대해야 애가 상처를 안 받을지, 그게 가늠이 잘 안 돼서요.”

<넌 어쩌고 싶은데?>

“저야 잘 타이르고 속상해하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죠.”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지 왜 나한테 묻는담?>

“……네?”

나로선 황당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이 무작정 다가가기엔 남매 사이가 썩 살갑지 않으니까. 그게 좋냐 싫냐를 떠나서 사실이 그렇잖아.

그렇게 답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서연희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심한데 딱하고, 딱한데 한심하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도진아, 내가 여태까진 너 부려먹는 처지에 이렇게 말할 자격도 없고 해서 잠자코 있었는데…… 하나만 물어볼게. 너한테 세아는 어떤 의미야?>

“동생이죠.”

피가 섞이지 않았다거나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내 동생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나한테는 하나 남은 가족이다.

그리고…… 서연희가 넌지시 일렀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세아한테 너무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마.>

그 말의 진의를 살피기도 전에 나는 묻고 있었다.

“의미부여 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세아한테는, 그래. 걔한테는 네가 부모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겠지. 보호자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고. 근데…… 시혁이랑 세빈이한테 미처 못 드린 사랑을, 그걸 세아한테 무작정 쏟으려고 하지 말란 거야. 걔는 네 동생일 뿐이잖아? 너한테, 걔가 부모님 대신이 될 수는 없어. 그러면 안 돼. 세아가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아서, 꼭 그것 때문에만 네가 잘해주는 걸 곡해한다고 생각하지 마. 걔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을걸? 부담스럽고, 좀 안 좋게 말하면 네가 자기를 부모 대신 사랑을 쏟을 대상으로 여긴다고. 그걸 알아채고 있으니까 애가 자꾸 엇나가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그게…… 그렇게 잘못됐어요?”

반문하면서도 깨닫고 있었다. 서연희의 말이 옳다고.

나는 이세아라는 애를, 온전히 이세아로만 보지는 않는다. 당연히 동생으로서 소중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다.

내 소설에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

세아는 내게 이 세상이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존재 자체로서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 남은 가족이니까…… 이시혁과 정세빈, 내 부모님에게 미처 다 쏟지 못한 애정까지 그 애한테 주고 싶었다.

한데 서연희는 내가 잘못하는 거라 말하고 있다.

정황을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아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단호히 지적할 만큼 잘못됐다 여기는 거다.

언제나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조력자.

그리고, 내가 많이 아꼈던 소설 속의 등장인물.

나한테 그녀는, 존재 자체로 내가 이 세상에 쏟았던 노력과 애정을 증명해주는 사람이다.

만약 서연희의 말이 옳다면…… 내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주 많이 실례가 되는 걸까.

이윽고 그녀가 일렀다.

<너는 머리도 좋고 애가 똑똑하니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너무 참견하는 것도 좋을 게 없으니까 네 힘으로 고민해봐. 오빠가 학교에서 사고 친 동생을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그리곤 전화가 끊겼다.

실컷 타박을 들었는데도 굉장히 후련한 기분이었다. 히터를 틀어 따뜻한 바람이 감도는 차 안에서 나는 떠올려봤다. 세아한테 오빠로서 제일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

마지막 수업과 종례를 마칠 때까지 극도의 저기압 상태이던 이세아는 홀로 교정을 걸었다.

오후 여섯 시. 혹시나 하고 휴대전화를 살폈지만 오빠에게서는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날씨라 바람이 쌩쌩 불고 공기가 몹시 차가웠다. 교복 외에 외투를 걸치지 않고 등교했던 이세아는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마음이 되려 그보다 더 춥다고 느꼈다.

‘어쩌지…….’

오빠에게 괜한 말이 들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오히려 결과가 최악에 가까웠다.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 동생을 그가 뭐라고 생각할까. 집에선 쌀쌀맞게 구는 주제에 쓸데없이 밖에서 문제나 일으킨다고 언짢아하지 않을까.

그렇게 비추어지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엄연한 사실이었다. 변명할 말도 없고, 오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설령 생각이 난다손 치더라도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그즈음 교문에 이른 그녀는 도로를 살폈다. 어쩌면 오빠의 차가 있을까,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희미하게 기대하면서.

하지만 익숙한 차량은 보이지 않았고, 이세아는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투욱.

등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옆을 바라보니 그녀의 몸에 따뜻한 외투가 걸쳐져 있었다. 어느새 조용히 다가온 이도진이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한마디를 건넸다.

“잘-하는 짓이다.”

“…….”

핀잔? 힐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정이 서려 있는 말. 이세아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이도진이 이어서 말했다.

“아침에 춥다고 패딩 입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춥지?”

“……어?”

이세아는 당황해 되물었다. 그런 얘기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그녀가 외투를 입을 때까지 기다려준 이도진이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오빠 화 많이 났어.”

“……알아.”

그다음에 이어질 말이 있었으나 이세아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빠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지 못해서. 이세아에게 있어 오빠와의 관계에서 무지라는 건, 두려움과 정확히 같은 의미였다.

그런데 이도진이 전혀 뜻밖에도, 재차 타박했다.

“오빠 화 많이 났다니까? 걱정도 되게 많이 했고. 물론 그쪽에서 나쁘게 말해서 너도 엄청 화났겠지만, 그래도 폭력 쓴 건 잘했다고는 말 못 해. 오빠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세아는 그제야 답할 수 있었다.

“잘못했어……요.”

“요는 무슨 요야. 언제부터 존댓말 썼다고. 아무튼 앞으로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진짜지?”

“……응.”

이도진이 씨익 웃는다.

“이번엔 처음이니까 넘어가는 거야. 추운데 빨리 집에 가자.”

“……차는?”

“집에 놓고 왔는데? 걸어갈 거야. 아니면 택시 타고 갈까?”

“……아냐, 걸어가.”

“그래, 가면서 저녁 메뉴 뭐 먹을지 생각해놓고.”

이세아는 어쩐지, 오늘 오빠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 무작정 감싸고, 그녀에게 쩔쩔매는 게 아니었다. 걱정했다고, 화가 났었다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주고 있다. 오빠가 동생에게 응당 그리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세아도 마침내, 혼자 힘으로 말할 수 있었다.

“미안해…… 오빠.”

“어?”

이도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오빠’라고 부른 게 언제였더라. 이세아 자신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 방금 오빠라고 했지?”

“……나 갈비 먹고 싶어.”

이세아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집에 재료가 없으니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자는 오빠의 말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광경을 유해빈은 멀찍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백 미터 상공. 사물의 형체를 구분하기도 힘들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버티고 서 있는 게 불가능한 공간에 머물며 손뼉을 쳤다.

‘좋네, 좋아.’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생기고 교내봉사 같은 귀찮은 징계를 받게 되긴 했지만…… 저건 꽤 흐뭇한 장면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다.

‘이도진…….’

사람 구실 못하는 작자인 줄 알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마력에 대한 감각만을 놓고 본다면, 여태까지 본 인간 중에 제일이었다.

‘한번…… 시험 삼아 건드려볼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에서만, 친구의 오빠이자 영웅의 아들이 어떤 위인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아마 재밌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하며 유해빈은 아름답게 웃었고, 곧 허공에 머물던 신형이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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