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Chapter 6. 균열 (3)
그리고 그녀를 쫓아 달려가던 진유리는 문득 의문을 품었다.
‘뭐 저렇게 빨라?’
전력을 다해 뛰고 있건만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가진 마력으로도, 그걸 다루는 기술과 육체에서도 결코 자신이 밀리지 않을 텐데.
뒤처진 걸 분하다 여기는 건 아니다. 그런 경쟁의식을 되뇔 여유가 없으니까. 정말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때까지도 하늘의 갈라진 틈은 계속 넓어져 갔고, 진유리는 이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세아가 돌연히 뛰쳐나갔는지.
‘오빠 때문인가?’
지금 가는 방향이 그쪽이었다. 서상욱 교수의 연구실이 자리한, 운동장에서 가장 인접한 건물 왼편. 진유리와 나란히 뛰어가고 있던 유해빈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세아, 같이 가! 아, 진짜 발에 모터 달았나. 야! 잠깐, 스탑!”
그리고 유해빈의 제지한 시점에서 조금 지난 뒤.
타닥-
갑자기 이세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따라오는 반 친구들과 합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목표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서상욱 교수의 연구실은 건물 4층. 그녀가 발 디디고 선 곳에서 십수 미터 이상 높은 위치였고, 이세아는 한가롭게 계단이나 오르내릴 겨를이 없었다.
콰아앙! 퍼엉!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녀는 곧장 뒤편으로 마력을 발산했다. 그 추진력을 이용해 돌진하며 창문을 산산이 부숴냈고, 건물 내부로 단번에 진입했다.
깨진 유리 파편이 매일 아침 공들여 손질하는 머리칼과 교복, 희고 깨끗한 살갗에 닿는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세아라는 사람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전혀 상상도 못 할 목소리로, 애달프게 소리쳤다.
“오빠! 오빠아-!”
학생이고 교직원이고 모두 대피했는지 4층 복도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이세아는 서상욱 교수의 연구실 앞에 섰고,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찼다.
퍼걱! 투웅!
두꺼운 문이 강제로 뜯어지며 뒤로 기울었다.
‘……없어.’
연구실 안을 샅샅이 훑어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도진도 다른 사람들과 대피한 걸까?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지만…….
휴대전화를 살펴봐도 오빠에게서 연락이 오진 않았다. 균열의 영향권에 있어 메시지를 주고받기 힘든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걸 인지하면서도 이세아는 몹시 불안했다.
쿠아아아아앙-!
바깥에서 굉음이 울렸다. 아마 균열이 완성된 거겠지. 피신하기엔 벌써 늦었고, 그녀를 쫓아온 유해빈이 황당해하며 질책했다.
“아니, 너희 오빠 어련히 알아서 도망치셨을 건데 그걸 꼭 이렇게 확인까지 해봐야 알아?”
“하…….”
진유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만 내쉰다.
너희가 따라와 놓고선 왜 인제 와서 타박이냐고, 오빠 걱정에 정신이 없긴 했어도 이세아는 그런 배은망덕한 생각까지 하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사과했다.
“……미안.”
이어서 교복 안주머니에다 오른손을 찔러넣었다. 손으로 충분히 감쌀 수 있는 크기의 금속이 매만져졌고, 그걸 꺼내며 마력을 주입했다.
위유우웅.
무기질적인 소리가 난 다음, 이세아의 오른손엔 어느새 가느다란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도진이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선물해준 휴대용 무기였다.
그즈음 진유리가 차갑게 일렀다.
“사과해봤자 소용도 없는 거 별로 안 듣고 싶네.”
“저건 또 말을 저딴 식으로 하네. 너랑 내가 따라왔지 얘가 와달라고 했냐?”
그러나 쌓인 감정이야 어쨌든 두 사람도 교복 안감에서 자그마한 쇳덩이를 꺼냈다. 곧 감당해야 할 일을 예감한 것이다.
슈우우우-
크르륵……. 그와아아악!
허공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몬스터가 세 마리 나타났다. 신장이 삼 미터를 훌쩍 넘기고 전신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괴물들. 놈들이 세 사람을 향해 접근해왔고, 유해빈과 진유리가 거의 동시에 입을 뗐다.
“공평하게 하나씩 맡자. 내가 왼쪽.”
“난 가운데.”
이세아는 자동으로 오른쪽 놈이었다. 검에 푸른 마력을 주입한 우등생 셋이 몬스터들을 일대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별것도 아닌데?”
유해빈은 꽤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거세게 짓쳐 들어오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고, 빈틈을 노려서 팔다리 근육을 차근차근 끊어낸다.
쉬익- 스아악!
이세아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조차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물러날 정도로 휘몰아치는 공세.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검이 몬스터의 목을 잘라냈다.
반면에 진유리는…….
‘왜 잘 안 되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훈련한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손발이 평소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고, 몬스터의 반응 또한 시뮬레이션으로 상대한 것과는 느낌이 딴판이었다.
우워어어!
쿠웅! 퍼어엉!
몬스터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주먹의 범위를 힘겹게 벗어나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시야에 언뜻 비친 장면. 이세아에 이어 유해빈까지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내고 있었다.
‘내가 쟤들보다 못하다고?’
기실 실전 경험이 없다시피 하니 그녀 쪽이 정상이겠지. 유해빈과 이세아가 기이할 정도로 잘 싸운 것이다.
재능을 타고났으나 오히려 노력파에 더 가까운 그녀였기에 난생처음 겪는 몬스터와의 싸움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하지만…….
진유리는 구차하게 그런 변명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못하는 건 그냥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 외에 다른 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최소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어…… 유리멘탈 쟤 좀 도와줘야겠네.”
“내가 할게.”
유해빈과 이세아의 대화.
몬스터의 위협적인 공격보다도 되려 그 말들에 더욱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진유리는 악을 쓰며 검신에 마력을 쏟아냈다.
“입 다물고, 가만있어!”
콰아아아아-!
폭포수 같은 마력이 그녀의 검 주위로 물결쳤다.
슈아아악!
이어진 손길에 따라 휘둘러진 검이, 몬스터를 단 일격에 두 동강 냈다.
“하아, 하아…….”
“오…… 하니까 잘하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유해빈이 중얼거린 말. 그때 아래층에서 전투의 소음이 들려왔다.
쿠웅! 펑, 퍼엉! 콰아앙!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 세 사람은 운동장과 1층 문 사이에서 십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이 몬스터 무리와 싸우고 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즉각 가세했고, 삼십 초쯤 지나서 전투가 일단락됐다.
운동장에선 이미 몬스터들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상황. 놈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아서고 나서, 2학년 학생 한 명이 이세아에게 일렀다.
“세아야, 이도진 교수님이 너 찾으셨는데…….”
“……뭐?”
대답은 한 박자 늦게 나왔다. 멍한 얼굴로 되묻는 이세아에게 2학년 학생이 더듬더듬 설명을 이었다.
“아까, 같이 계셨거든. 너 뒤뜰에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방금 막 그쪽으로 가셨어.”
오빠가 학교 안에 있다. 동생 때문에 피신하지 못했고, 지금은 그녀를 찾으러 혼자 위험한 곳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안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이세아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아까 왔던 뒤뜰로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당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슈우우우우…….
운동장 한가운데에 검은 안개가 짙게 일렁였고,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그곳을 중심으로 드리워졌다.
체고는 족히 십 미터에 근접했고, 인간이나 그것과 닮은 존재라기보단 네 발로 다니는 공룡에 가까운 형상.
“하…… 시발, 기분 잡치게 하네.”
유해빈이 아주 드물게도, 차가운 말투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대로 평정을 유지하던 조금 전까지와 아예 딴판인 태도. 진유리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직감할 수 있었다. 가장 강한 몬스터가 등장했다고.
쿠웅, 쿠우웅.
몬스터가 천천히 걸어온다. 1층 입구를 향해서.
쿵, 쿠웅.
걸음이 조금씩 빨라진다.
그리고, 크게 한번 발을 굴렀다.
콰아앙!
눈 깜짝할 새에 접근해온 몬스터가 건물 입구를 모래성처럼 부숴냈다.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 일부분이 초토화되고 말았으나 다행히 다친 이는 없었다. 저런 단선적인 공격에 당할 만큼 서투른 사람이 제일고에 진학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지를 상실한 악룡을 연상케 하는 몬스터가 연이어 사람들을 공격해나갔다. 사람 몸통을 몇 개나 붙여놓은 것처럼 두꺼운 꼬리를 휘두르는가 하면 입에서 불길을 내뿜기도 했다. 이세아는 초조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며 놈에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스아악!
마력이 실린 검이 단단한 외피를 가르고 들어갔다.
쿠워어어!
괴물이 사나운 눈길로 이세아를 노려봤고, 유해빈과 진유리가 합류했다.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굳은 어조로 유해빈이 이른다.
“이세아, 진유리. 삼십 초만 버텨줘라. 내가 저놈 편하게 보내주려니까.”
뭘 하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람은 잠자코 응했다. 마력을 집중시켜 밀도를 올리는 감각 면에서는 제일고 내에 유해빈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콰앙! 퍼어엉!
이세아와 진유리, 다른 학생들과 교직원들까지 달려들어 괴물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으아악!”
쿠웅!
꼬리에 얻어맞은 학생 두엇이 튕겨 나가다 벽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다.
“피해!”
쏟아지는 불길에 학생들을 밀쳐낸 교직원이 대신 공격을 받아내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진유리에게도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쿠와아아!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진유리는 흘끗 유해빈 쪽을 쳐다봤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고, 여기서 피해버리면 모든 게 헛수고로 돌아갈 터.
슈아악!
그녀는 검신에 마력을 가득 모았다. 가당찮단 듯이 내려다보던 괴물이 입을 쩍 벌렸고, 그때 이세아가 뛰쳐 올랐다.
푸슛.
괴물의 한쪽 눈을 정확히 그어낸 일검.
목이 찢어지라 비명을 지른 놈이 고통스러워하며 마구잡이로 주위를 부수어댔다.
“아…….”
그 공격에 휘말린 이세아가 힘없이 내동댕이쳐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은 진유리 자신 차례.
투웅!
워낙 거대해서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이나 사실은 압도적으로 강하고 빠른, 꼬리에 마력을 담아 쳐낸 공격. 그걸 바라보며 진유리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꼴사납게 당하기만 하라고?’
이세아가 저만큼이나 활약했는데?
지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세아를 대할 때 떳떳할 수 있도록 잘 해내고 싶었다.
괜히 주는 것 없이 밉고, 예쁘긴 심각하게 예쁜 주제에 아닌 척하는 것도 싫고, 성격도 안 맞고, 대판 싸우기도 했고, 자신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서 이세아가 폭발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 학교에서 이세아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는 건 자신이니까.
그러니 그녀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
이세아보다 잘하려고 하면, 그래서 이세아보다 잘 해내면, 그러면 다른 건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니까.
지난 사 년간 같은 학교에 다니며 진유리는 그걸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쉬아아아-
그녀의 검에 일렁이던 마력이 일순간 짙어졌다.
위맹한 기세로 다가오는 꼬리가 그 검에 닿더니, 가볍게 잘려나갔다.
으갸아악!
몬스터는 괴로워했지만 움직임을 멈추진 않았다. 곧바로 달려와선 진유리를 들이 받아버렸다.
강한 충격에 그녀의 의식이 흐릿해졌고, 유해빈이 검을 휘두르는 광경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푸쉬익!
괴물의 거구가 1/3 가까이 잘려나갔다. 유해빈이 기진맥진해 비틀거렸고, 괴물이 마지막 힘을 짜내 휘두른 앞발에 맞아 나가떨어져선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리고, 괴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소란이 잦아들자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건물 내로 접근해왔고, 진유리는 꺼지기 직전의 의식을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저 멀리 이세아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으니 완전하게 기절한 건 아니겠지.
“야, 이세아…….”
실낱같이 작은 목소리. 들리지 않은 듯했다.
피를 강처럼 흘리면서도 몬스터가 어렵사리 자세를 정돈했다. 그놈보단 훨씬 약하지만 건재한 몬스터들이 그르렁대며 쓰러진 이들을 훑었다.
그리고.
칠흑처럼 새까만 안개에 휩싸인 인영이 건물로 걸어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누구?’
혼미한 와중에도 의아했다. 대체 누굴까. 안개로 감싼 터라 정확히 분간할 수는 없었다.
인영이 이세아에게 걸어갔다. 엎드려 있던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인영이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를 쓸어내리자 이세아가 잠든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때 진유리는 왠지 인영이 자신을 쳐다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내 그가 손을 휘둘렀다.
펑, 퍼엉!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천장이 터져 나갔다. 마법 공학으로 가동되고 있던 CCTV의 연결을 타고 흘러간 초고도의 마법 구성체. 그것이 저장되어 있던 영상을 모조리 지워냈다는 걸 진유리는 알 수 없었다.
인영이 몸을 돌렸다. 손에는 검푸른 마력이 휘황찬란하게 깃들어 있었고, 그가 손을 가볍게 내젓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몬스터들이 스러졌다.
최후의 한 놈. 죽음의 목전에 다다라 있던 거대한 괴물이 인영에게 접근한다.
한데 놈과 마주한 인영이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손을 그어 올렸다.
파아앗-!
잘린 상처를 따라 괴물이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잘렸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을 목격한 진유리는 흐릿하던 정신이 얼마간 돌아오는 걸 느꼈다. 이윽고 인영이 진유리 쪽으로 걸어왔다.
자세를 낮추고, 겨우겨우 눈만 깜빡이고 있는 그녀를 조용히 응시한다.
진유리는 그제야 알았다.
‘아…….’
이목구비가 잘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저 눈은 특정할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워낙 인상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눈빛에 서린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진유리의 몸과 마음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누군가를 저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 같은 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인영이 그녀에게 명령했다.
“잊어라.”
단출한 말이 귓가에 닿은 직후.
진유리의 의식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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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령 보상]
1) 마력과 생명력 포인트 666p
2) 신체 포인트 13p
3) 소질 포인트 4p
4) 스킬 (랭크 A~S, 항목 중 택일)
5) OX 질문 1회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답변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마신의 탄생>의 클리어 보상 중 ‘스킬’을 습득합니다.
-스킬 ‘인식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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