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Chapter 7. 유해빈 (2)
***
“으아아아아……!”
유해빈이 새된 목소리로 내지른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속절없이 하늘로 떠밀려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서연희가 내게 일렀다.
“저 애를 중심으로 반경 이백 미터 공간.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야.”
“고마워요.”
유해빈이 떨어뜨린 편의점 봉투를 주우며 나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봉투 안을 살펴보니…… 미리 전자레인지로 데워둔 치킨 도시락과 빨간색 콜라가 들어 있다.
도시락 종류도 그렇고 음료 고른 것도 그렇고, 이 자식 먹을 줄 아는 놈이네.
맛잘알이라는 점은 호감이 간다고 생각하던 그즈음, 서연희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단 듯이 물었다.
“근데 정말 이것만 해주면 되니? 이왕 하는 김에 더 도와줘도 괜찮은데. 쟤 약한 것 같진 않더라고.”
“그 정도예요?”
서연희의 기준으로 ‘약하지 않다’라는 평가가 나올 실력. 팬텀의 정규 멤버로 활동해도 손색이 없단 뜻이다. 말하는 뉘앙스로 볼 때 유해빈은 그 이상인 듯싶었고.
“물론 네가 이기겠지만…… 썩 만만친 않을걸? 너한테 팔 잘릴 때의 염의준보다는 쟤가 셀 거야.”
당시의 그가 퇴물 신세긴 했어도 일개 고등학교 2학년이 36 영웅의 최하위권보다 강하다는 건…….
“쟤 평범한 인간은 아니죠?”
“글쎄? 네가 해본다며?”
서연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지금이라도 도와달라면 그럴 의향이 있다는 제스처로 읽혔고, 그녀에게 편의점 봉투를 건네며 나는 짧게 거절했다.
“이거 도시락 식기 전에 끝내고 올게요.”
그야 지원을 받으면 편하겠지. 오늘은 서연희의 컨디션이 괜찮은 날인 데다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마법사로서만 도와주더라도 상당히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누군가의 개입 없이 내 선에서 처리해야 했다.
그러자 서연희가 입꼬리를 올리며 생긋 웃는다.
“그래? 그럼 다녀와.”
“잠깐만 보고 계세요.”
슈아아아-
하늘로 날아오르자 마침 속박에서 벗어난 유해빈이 으르렁거렸다.
“진짜 이번 한 번까지만 경고할 거야. 세아든 누구한테든 절대 말 안 할 거니까, 이대로 돌아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선을 넘으면 나도-”
피슈웅!
내가 쏘아낸 마력이 유해빈의 옆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고, 아주 가느다란 핏줄기가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일부러 빗나가게 만든 공격.
나는 조소를 담아 물었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넌 나랑 싸워야 해.”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그제야 결심이 섰는지 유해빈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나도 없지만, 실력을 알아봐야 하고 퀘스트도 완수해야 하는 터라 짐짓 의미심장한 말투를 꾸며서 답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좋아. 후회하지 마.”
숨을 한 번 크게 내쉰 유해빈이 양손을 모았다.
짙푸른 마력이 응집되며 어두운 밤을 밝혔고, 이내 크게 외친다.
“---- --- --!”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인간의 언어라기보단 짐승이 낼 법한 소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콰아아앙!
휘황찬란한 빛을 머금은 마탄이 내게 접근해왔다.
타앙! 터엉!
위력이 강한 건 물론이고 공격과 공격 사이에 결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마탄의 세례를 나는 차분하게 쳐냈다.
슈우우우…….
내가 튕겨 낸 마탄은 서연희가 쳐놓은 결계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별로 지친 기색도 없이 유해빈이 기합성을 냈다.
“하아아압!”
맑고 낭랑한 목소리. 이어서 하늘이 반짝반짝 빛났다.
방금까지 쏜 마탄은 단지 견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걸 위해서였겠지.
결계 내부의 공간 전체에 잔류해 있던 유해빈의 마력이 일제히 연결됐다.
“이건 어떻게 못 할걸!”
상하, 전후좌우. 전방위에 걸친 화망이 나를 노렸고, 유해빈의 말대로 피하거나 쳐낼 공격이 아니다.
맞고 죽든 받아내든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해.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콰아아아아-!
어깨를 중심으로 흘러나온 검은빛이 푸른 마력을 짓밟고 사그라뜨렸다.
쿠웅!
허공을 박찬 나는 당황해하는 유해빈에게 접근해 물었다.
“이게 전부야?”
“칫!”
유해빈이 교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적어도 팔 한 짝은 잘라낼 만한 빈틈이 보였지만 못 본 척하며 기다렸고, 작은 쇳덩이에서 변형된 검이 내 심장을 노리고 공격해왔다.
위이잉-
나도 같은 방식으로 검을 꺼내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가볍게 받아쳤다.
+
<킬 더 이블> 1권의 두 번째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3월 28일 자정까지 제일고 2학년 유해빈을 육체적으로 완전하게 굴복시킬 것
-클리어 보상: OX 질문 2회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답변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추가 보상이 존재하며, 유해빈과의 관계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
퀘스트가 클리어되었다는 알림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차라리 기절시키거나 제압하라는 조건이었으면 벌써 달성했을 텐데, 굴복시키라는 건 아예 저쪽이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콰아아아아아-!
유해빈의 몸에서 그전과도 비교할 수 없이 폭발적인 마력이 용솟음친 건 그 시점부터였다.
“흐으읏……!”
가녀린 신음 같은 말이 그 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원래도 마력의 총량이나 지배력 면에서 어지간한 A급 헌터 따위는 하찮게 치부할 정도였건만 지금은 그보다도 족히 두세 배 이상 강대한 기세를 내뿜고 있다.
“하아, 하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는 유해빈의 외견에서 평소 다른 부분이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마력적인 빛을 띤 눈의 동공이, 세모꼴로 좁아져 있다.
서연희는 눈치채고 있었겠지. ‘염의준 이상’이라고 말한 건 이것까지 계산해서 내린 평가일 테고.
“이세아한테…… 사과 안 할 거야.”
혼잣말처럼 되뇐 유해빈이 허공을 박찼다.
콰앙! 쉬아아아악-!
소리는 뒤늦게 쫓아왔다. 일 초를 잘디잘게 쪼갠 순간이 지난 다음. 내 지척에 다다라선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나는 막아냈으나 힘의 여파를 미처 다 해소하진 못해 튕겨 나갔고, 귓전에 서연희의 말이 들려왔다.
<괜히 데리고 놀지 말고, 할 거 있으면 빨리 해결해. 일 분 안에 못 끝내면 내가 처리해야 하니까.>
결계 내부의 상황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밤 서울 상공을 순찰하는 각성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이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 순찰대가 이쪽으로 온다는 말일 텐데…….
어차피 제한시간도 며칠 안 남았고, 쓸 때가 되긴 했지.
+
-이도진
[생명력: 3,856/4,371]
[마력: 4,263/4,809]
[신체]
근력 75 / 민첩 81 / 체력 74 / 내구 72
[소질]
지능 7.2 / 매력 8.0 / 의지 6.9 / 감각 7.5
+
<세계의 수호자>엔 상태창이라는 설정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면상 공개되진 않았으나 작가인 내가 설정상 잡아둔 기준 정도만 존재했다.
가령 생명력과 마력 합산이 일만이면 36 영웅급.
신체 포인트 70은 S급 헌터, 80이면 36 영웅급, 완결 시점의 이시혁과 정세빈은 90 이상.
소질 포인트 5는 평범이고, 6이 수재, 7은 천재.
8부터는 역사에 남을 재능이라 해도 무방하고, 9는 인간이 도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다.
세계관 최고 미녀인 서연희의 매력 수치가 9.7이었지.
외모만 가지고 결정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아무튼 서연희쯤 돼야 9를 넘길 수 있는 게 소질 포인트였다.
내가 이 세상에 환생하고 나서도 저런 수치들이 가시화되진 않았다. 저게 보인 건 부모님의 장례식, 홀로그램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
[미수령 보상]
1) 마력과 생명력 포인트 666p
2) 신체 포인트 13p
3) 소질 포인트 4p
-모든 보상을 수령했습니다!
+
나는 쓰지 않고 있던 모든 포인트를 실제 수치로 변환했다. 전부터 생각해둔 터라 배분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마력과 생명력은 각각 절반씩.
근력 4, 민첩 5, 체력 2, 내구 2.
지능 1.5, 의지 1.1, 감각 1.4에 매력은 딱히 상승시키지 않았다. 감각을 현시점의 상한선인 8.9까지 올리는 게 중요하니까.
+
-이도진
[생명력: 4,189/4,704]
[마력: 4,596/5,142]
[신체]
근력 79 / 민첩 86 / 체력 76 / 내구 74
[소질]
지능 8.7 / 매력 8.0 / 의지 8.0 / 감각 8.9
+
그리 작은 변화는 아니었고, 이젠 단언할 수 있었다. 설령 염의준이 전성기 때의 실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할지라도…… 지금이라면 내가 우세하리라고.
유해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콰앙!
더욱 강해진 마력과 근력을 통해 나는 유해빈의 주먹을 꽉 잡았다.
쉬아악-!
날아든 발길질에 무릎을 세웠다.
퍼걱!
“아앗!”
흉험한 전투 중에도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찡그린 유해빈이 다급히 외친다.
“잠깐만, 타임! 뼈 맞았다고요, 뼈!”
“……너 이게 장난 같냐?”
“어차피 죽일 생각도 없잖아! 죽이려면 벌써 죽였을 거면서!”
“…….”
이 자식 가만 보면 눈치 빠르고 잔머리도 잘 돌아간단 말이지. 굳이 따지면 장점이라고 해야 할 부분이려나.
한데 전의가 꺾인 건 또 아니다. 애써 자세를 바로잡고, 날카로운 동공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이걸로도 안 되면 나 더는 힘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죽여서 닭튀김을 해 먹든 노예로 써먹든 알아서 하라고.”
“…….”
닭튀김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널 노예로 왜 써. 물론 그거랑 별 차이 없이 부려먹을 생각이 있기는 한데…….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말과 별개로 유해빈의 전신에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양손을 모아 내 쪽으로 펼치더니 세차게 외친다.
“--- ---!”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나라의 언어와도 닮지 않았을 말. 문득 서연희의 전언이 내게 들렸다.
<그건 결계 뚫을 것 같은데? 피하지 말고 받아내 주면 안 될까?>
그 정도는 나도 알지.
서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검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
유해빈이 눈을 크게 치떴다. 현재 내 모습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챘다는 것처럼.
하지만…….
+
<킬 더 이블> 1권, ‘아카데미의 천재 마검사’가 진행 중입니다.
-1권 태그: [아카데미] [로맨스 X] [캐릭터 중심]
-진행률: 72.6%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1권 종료 시점,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 ---의 제1 아카데미 내부 주목도를 상회할 것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어기진 않았다.
발각이란 단어.
그건 외부인에게 들켰다는 걸 의미하니까.
내부인에게는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단어지.
물론…… 내부인이 되기로 정해진 존재에게도.
제일고 2학년 유해빈.
전교 1등이자 촉망받는 각성자.
<킬 더 이블>이라는 소설 내에서, 얘는 사실 주인공의 믿음직한 동료가 아닐 거다.
그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는, 최종보스의 부하 역할이라고 해야 옳을 터였다.
채 성장하지 못한 주인공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최종보스가 쓸 만한 부하를 한 명 영입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잖아.
만약 <킬 더 이블>이라는 소설을 읽는 독자분들이 계신다고 해도, 그들이 이 시점에서 알 수는 없는 일이고.
쿠오오오오오-
유해빈이 발산한 마력의 흐름이 내 눈앞에 이르렀다.
검은 날개로 몸을 감싼 나는 그 중심부를 관통하며 접근했고…….
콰아아아!
마침내 유해빈이 쏘아내던 마력이 끊겼다.
“아, 어…….”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눈을 깜빡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고 머리에다 손을 올렸다.
“좀 자라.”
“흐으아아앗! 아, 아아…….”
잠시 비명을 지르던 유해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졌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려 하길래 목덜미를 잡고 함께 하강했다.
근데 이 자식 뭐가 이렇게 가볍지?
아무리 많이 잡아도 55kg도 안 될 것 같은데.
키가 170cm에도 못 미치니 저체중까진 아니지만…….
“잘 먹고 다녀야 크지.”
역시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건 내가 먹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땅을 밟으니 서연희가 치익- 콜라 캔을 열며 흥얼댔다.
“도시락 식는 거 싫어서 빨리 끝낸 거야?”
여상스러운 질문에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아뇨, 아니에요.”
그래도 남이 돈 주고 산 건데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
“도진이 너 눈을 왜 그렇게 뜨니? 나도 새로 사서 채워놓으려고 했는데.”
“암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누나 말씀이 다 옳습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누나라고 부르면서 비꼬면 봐주겠지 생각한 거면…… 날 아주 제대로 본 거야.”
농담을 주고받으며 둘 다 미소를 지었고, 자리를 이동하며 서연희가 물었다.
“근데 지금 밝혀도 괜찮겠어? 하기 싫다면 어쩌려고.”
“뭐, 정 안 되면 정신지배 걸어주세요. 제가 따로 처리해도 되고.”
“도진아…….”
“네?”
“너 방금, 진짜 나쁜 애 같았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뭘 인제 와서 그래요.”
한가로운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
유해빈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몸 상태.
‘……멀쩡한데.’
체내의 마력 흐름은 정상이다.
다만 신체가 결박되어 있고, 마력을 끌어내려 하면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거라는 것쯤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저벅, 저벅.
어둑한 시야 속에서 남자 한 명이 걸어왔다.
씨알도 안 먹히리라 생각하면서도 유해빈은 우선 부탁해봤다.
“이것 좀 풀어줘요.”
“그전에 얘기부터 하고.”
가까이 오자 남자의 얼굴이 명확해졌다.
지금껏 살면서 많은 존재와 맞닥뜨린 유해빈으로서도 이전에 본 적이 없을 만큼 잘생긴 이목구비.
이세아의 오빠이자 마법역학 교수인 이도진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자세를 낮췄고, 유해빈과 시선을 맞추며 다짜고짜 묻는다.
“너 정체가 뭐냐?”
“후우…….”
유해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숨겨봐야 소용없겠지. 죽일 생각은 없는 듯하니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었다.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유해빈은 자신의 정체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피난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