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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33화 (33/207)

#33화. Chapter 8. 학회 (4)

찬물을 끼얹는 발언에 장내가 씻은 듯이 조용해졌고, 일부 참석자들이 의아해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음…… 정 선생 속셈이야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갈 만한 문제이긴 하지.”

“어쩌면 여기서 털고 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구먼.”

대체로 의혹 제기를 인정하는 분위기. 한태강은 동석한 길드원에게 물었다.

“신빙성이 있는 발언인가?”

그러자 길드원이 애매하다는 어조로 답했다.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터무니없는 음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정당한 의혹 제기라고 느낄 사람도 적지는 않을 듯싶군요.”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마학 연구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도진 군이 저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단 건 틀림없지만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참석한 회원 대부분이 저것과 크게 차이 없는 수준의 답변을 해낼 수 있을 거고, 마학 연구는 가진 지식과 지능보다 마력을 다루는 감각이 더 중요한 분야라-”

“실제로 아이디어를 낸 게 저놈인지, 실험 데이터를 확보하는 측면에서 공헌했는지, 그건 입으로 나불대는 것만 듣고는 모르는 일이다…… 이건가?”

“정확합니다. 사실 자주 일어나는 시비도 아니고 특히나 이 정도 급의 연구라면 편의를 봐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만…….”

“업보라는 거군.”

한태강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서상욱 혼자서 진행한 연구였거나 그의 주도하에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었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전까지 마법역학 분야에서 아무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도진과 서상욱의 공동 연구. 더군다나 실질적인 핵심은 이도진이었고, 서상욱 본인은 부수적인 작업에 치중했단 주장에는 아무래도 신빙성이 부족했다. 이도진이 그간 낭비한 세월이 익히 알려져 있기에.

그가 제1 아카데미 교원으로 임용된 건 고작해야 3월 초. 서상욱과 연구를 시작한 지는 한 달도 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업적을 이뤄냈단 건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라리 서상욱이 그동안 힘써온 연구에 그가 숟가락만 얹었다는 가설이 훨씬 설득력 있겠지.

길드원이 긴가민가하면서 한태강의 말에 답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저걸 보니…… 저로선 연구진이 결백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군요.”

본래 거무죽죽한 안색이 시뻘게진 서상욱 교수가 단상 아래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뭐? 이봐, 정성민이! 당장 그 발언 취소하고 도진 군에게 사과해! 나는 방금 발표에서 단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네. 도진 군, 이도진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무슨 근거로 허무맹랑한 추측을 하고, 나와 도진 군을 모욕하는진 모르겠지만-”

“그리 떳떳하면 당당하게 증명해 보게나. 그러면 될 게 아닌가?”

“뭐, 뭐라? 당신 정말 그딴 식으로 나올 거야!?”

정성민이라 불린 중년인이 천연덕스럽게 되받자 서상욱의 얼굴이 숫제 터질 듯 분노로 달아올랐고, 차분하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건 이도진이었다.

“교수님,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도진 군, 내 말 잘 듣게. 여기서 이대로 넘어가면 나중엔 수습이 어려워. 확실하게 따져서 다신 저런 말을 못 지껄이게 해두는 게 맞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듯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으음…… 그런가?”

잠시 고심하는 듯하던 서상욱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언뜻 기대까지 서린 표정. 이윽고 마이크를 쥔 이도진이 단호한 눈길로 정성민을 내려다봤다.

“질의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제2 아카데미 대학부에 계신 정성민 교수님 맞으십니까?”

“어험, 그래요.”

“제가 들은 바로 논문의 결론보단 그 연구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여쭈시는 거로 이해했는데…… 정정하실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 정확히 봤어요. 학자라면 그런 부분도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하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태연하게 답한 이도진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음?”

정성민은 물론이거니와 백 명의 참석자 대다수가 놀랐다.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좌중에 떠돌았고, 정성민이 걸어가는 걸 보며 한태강이 길드원에게 물었다.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증명할 방법이 있나?”

“글쎄요……. 설령 구성체를 잘 구현한다 해도 겨우 본전입니다. 연구는 이미 발표됐고, 의혹을 완벽하게 가라앉히긴 힘들겠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단 정도는 증명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외통수라고 봐야 합니다.”

“으음…….”

속내를 알 수 없는 침음성을 흘려낸 한태강이 단상을 올려다봤다.

마침 단상에 이른 정성민에게 이도진이 무언가를 요청했고, 정성민은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명료하게 들은 한태강은 이도진의 의도를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었다.

‘증명하겠다는 거군.’

이도진과 정성민이 멀리 거리를 벌려 마주했다.

정성민이 양손을 펼친다. 그의 손바닥에서 나온 마력이 형태를 이뤘고…….

콰앙!

빠른 속도로 이도진을 향해 날아갔다.

그 장면을 목격하며 몇몇 이들이 경악성을 냈다.

“B급 아닌가?”

“저걸 어쩌려고!”

경악을 넘어선 침묵이 회장 전체를 사로잡은 건 그때부터였다.

“허어…….”

“내가 뭘 본 건지…….”

묘사하자면 이런 광경이었다.

정성민의 마력이 이도진이 펼쳐낸 배리어에 닿자마자 흡수됐다.

반탄 계통의 방어 구성체가 그러하듯 마력을 도로 튕겨 냈다.

이제는 정성민이 아니라 이도진에게 통제권이 넘어간 마력이 허공에 흩어졌다.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흩뿌리면서.

이곳에 자리한 모두가 한 사람을 기억해냈으리라.

대마법사 정세빈. 마력의 모든 속성을 다뤘던 천재 중의 천재. 그녀의 마력도 무지갯빛을 띠었다.

이 순간, 그녀의 아들인 이도진이 보여준 것처럼.

그의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저는 계통과 속성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일반적으로 B급 이상이라 통용되는 마법을 제게 쏘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B급 이상이라…….”

“하지만 논문에 적힌 대로라면…….”

근처 테이블에서 주고받는 말은 한태강으로서도 궁금한 점이었다. 도통 알아먹기 힘든 내용이긴 했으나 논문의 결론 가운데 일부는 그도 알고 있었다.

이도진과 서상욱의 고안해낸 방어 구성체. 그건, 적어도 현시점에선 C급 이하의 마법에만 효과를 발휘한다.

격동에 찬 학회 참석자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이도진이 말을 이었다.

“논문의 제목을 상기해주시길 바랍니다. <범용적 방어 구성체에 관한 연구>. 이건 복합 계통의 방어 구성체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나 상용화 가능성과 각성자들의 훈련, 그 두 가지 측면에서 근시일 안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연구를 진행한 저는 현재도 그 이상, 구체적으로는 B급 상당의 마법까지 방어할 수 있습니다.”

“내 조금 덧붙이자면 현재는 이도진 선생님 고유의 마력 파장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발상도, 실험 데이터 분석도 이도진 선생님이 주도했다고. 보편성을 지닌 구성체로 가다듬는 것엔 내가 어느 정도 관여를 했으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B급 이상의 방어 구성체는 이도진 선생님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해명은 필요치 않았다. 마법역학에 대변혁을 가져올 방어 구성체가 실은 이도진이 고안해낸 마법을 열화한 것에 불과하단 말이었으니까.

서상욱이 승리자처럼 웃으며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의심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도진 선생님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이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나이와 명성을 떠나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박수가 터졌다.

단상 중앙에 선 이도진을 바라본 한태강은 그의 모습에서 다시금 두 사람을 떠올렸다.

이시혁과 정세빈.

일견 차가운 인상이지만 이시혁은 알고 보면 마음이 따뜻했다. 자신과 갈등이 있던 사람이라도 사태가 마무리된 후엔 너그러운 포용력을 보여줬다.

반면에 정세빈은 겉보기엔 쾌활하고 시원스러운 느낌이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땐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너무 냉정하다 싶을 만큼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한태강은 그런 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지금 이도진에게서 그들의 그러한 면모가 동시에 보인단 걸 그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이도진이 무언가를 추억하듯 아련한 어조로 말했다.

“십 년 하고도 조금 더 된 일입니다. 정세빈 제일대 명예 교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배리어가 모든 방어 마법의 근간이라고. 이 연구는 거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제 어머니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부족하나마 얼마간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정해져 있습니다. A급, 그 너머까지. 범용적 방어 구성체의 보편화에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적을 논문의 첫머리에, 저는 이렇게 적어내고 싶습니다.”

왠지 더 듣고 있기가 힘들어 한태강은 마력으로 청각을 차단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 걸 보아 괜찮은 말을 한 것 같지만…… 자신에게 그걸 들을 자격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곤 감동해 있는 힘껏 손뼉을 치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일렀다.

“자네들은 저녁 식사엔 오지 않아도 되니 퇴근들 하게나.”

“대표님만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생각이야. 다른 연구들은 지시한 대로 제안하게.”

어차피 오늘 학회의 핵심은 이도진의 연구였다. 그것 하나만 따내면 다른 건 다 놓쳐도 상관없었다.

건물 일 층에서 열린 식사 자리. 한태강은 와인이 찰랑거리는 유리잔을 든 채로 먼 곳을 지켜봤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길드, 외국에서 온 초일류 길드. 한태강 자신도 얼굴을 아는 중진들이 죄다 이도진을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하면서도 긴장감이 스민 인사치레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제안이 오가겠지. 잔을 말끔히 비워낸 한태강은 이도진에게 다가갔고, 그가 공손히 인사한다.

“아, 대표님.”

아저씨가 아니라 대표님. 그 호칭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한태강이 그에게 말했다.

“네 연구, 우리 영원에서 지원해줄 기회를 다오.”

누군가는 뻔뻔하다고, 강압적이라고 흉을 볼지도 모르겠지만 한태강으로선 그리 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끼던 후배들의 자식. 딸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 자체만으로 그러고 있는 천하의 못된 놈.

그러나 회사의 수장된 입장으론 반드시 포섭해야 할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영원 길드의 향후 발전을 위해서.

머지않아 논문과 연구 결과가 세간에 공개될 터였다. 각성자들이 그걸 토대로 방어 마법을 익히는 건 자유롭게 허락된다.

하지만 그 외에, 가령 방어구를 만드는 등의 분야. 말하자면 특허권이라 해야 할 것은 이도진과 서상욱의 소유였다.

영원을 비롯해 초일류 길드는 전투 집단임과 동시에 그러한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었고, 한태강은 이도진에게 백지수표를 위임하리라 결심을 마쳤다.

가능한 한,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대가도 마다치 않으리라고.

그리고.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담겨 대단히 퉁명스럽게 들리는 제안에…… 이도진은 단출하게 답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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