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35화 (35/207)

#35화. Chapter 9. 악마의 손 (1)

***

4월 13일 화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강의실로 들어온 제일고 2학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저마다 친한 친구들과 대화하는 건 일상적인 풍경이겠지.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보였다.

화젯거리가 크게 둘로 나뉘어, 학생들이 그 사안들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둘 중에서도 조금 더 지분이 높은 화제는 며칠 전, 서울의 한 공원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손. 그것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거 진짜로 악마 손 맞나? 김지원 넌 알지 않냐? 너희 아버지 경찰이시잖아.”

“아, 나도 모른다니까 왜 자꾸 물어봐. 아빠가 안 가르쳐주시는데 어떻게 아냐?”

균열 너머의 차원을 지배하는 악마.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 이 세상을 위협하는 대적이었던 그들이지만 36 영웅이 균열의 발생 빈도를 줄인 후로는 지구에서 종적을 감춰버렸다.

십 년 전의 대균열 때야 넘어온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는 극비리에 붙여지고 있는 실정.

36 영웅의 전성기 시절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제일고 학생들이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 만무했고, 해서 그들에게 악마란 실질적인 위협보다는 전설 속의 존재에 더 가까워졌다. 마치 흡혈귀나 늑대인간처럼.

한데 그 악마로 추정되는 놈의 잘린 손이 이번에 발견된 것이다. 그걸 버려둔 사람이 누군지는 전혀 모르는 채로.

그즈음 주위에 있던 학생 한 명이 알은체하며 말했다.

“야, 나 어제 엄마 통화하는 거 엿들었거든? 악마 손이라고 곧 뉴스 뜰 건가 보더라.”

“……너 그런 거 우리한테 말해도 되냐? 말하면 안 되지 않아?”

“몰라, 오늘내일 중에 발표할 거라는데 큰 상관 있나?”

여느 때처럼 강의실 왼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유해빈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곤 이세아에게 종알거렸다.

“쟤 내일 학교 빠지면 국가 비밀요원들이 잡아간 거라고 본다.”

“내일 안에 공개될 거라잖아.”

“그래도 그런 거 있지 않나? 왜, 엠바고 같은 거. 근데 이세아 너 아닌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었네.”

“……들리는데 어떡하라고.”

퉁명스럽게 되받은 이세아가 교복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냈다. 최근 들어 부쩍 군것질이 늘면서 얻은 능력, 혹은 부작용으로 아주 능숙하게 포장을 벗겨내더니 앞니로 오물오물 깨무는 모습. 유해빈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일렀다.

“너 요즘 볼이 좀 빵빵해진 것 같다? 주머니에 몇 개 더 든 거 보니까 내가 식단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함?”

“절대로, 하나도 안 줄 거니까 네가 사서 먹어.”

“그래, 뭐…… 사실 기대도 안 했다. 한 번이라도 준 적이 있어야지. 아, 맞다. 유리멘탈 너는 뭐 들은 거 없냐?”

혀를 차던 유해빈이 왼편을 보며 물었고, 이세아의 왼쪽 옆자리에 앉아서 교과서를 읽던 진유리가 쌀쌀맞게 받아쳤다.

“예습 중이니까 말 걸지 마.”

“어?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넌 들은 거 있나 보네. 하긴 너네 집 정도면 뭐가 들려도 들리긴 했겠다. 그거 악마 손이면 어떻게 처리한대? 그냥 없애긴 아깝잖아. 경매라도 하나?”

“후우……. 들은 거 없고, 그런 데 신경 쓸 시간 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어때? 중간고사 다 돼가는데 자신 있나 봐?”

“자신이야 뭐, 너보단 항상 있지. 그리고 마법역학 이거는 예습할 필요 있나? 우리 도진 씨가 친절하게 설명 다 해주는데.”

“아…….”

유해빈이 거론한 이름에 일순간 흠칫하던 진유리가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이세아에게 화살을 돌렸다.

“교수님 성함 막 부르는데…… 너 가만히 있네?”

“……아.”

이조딘이니 도진쿤이니 제타 내에서 이도진을 부르는 갖가지 별명보단 낫다 여기고 있던 이세아는 자신이 어느샌가 타성에 젖게 되었단 걸 깨닫고 유해빈을 쏘아봤다.

하지만 그 눈길을 여유롭게 받아낸 유해빈이 다시금 진유리를 공격해나갔다.

“그리고 너 왜 여기까지 이사 왔냐? 원래 네 자리로 돌아가 주면 고맙단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이제부터 여기 앉을 건데?”

“엥?”

유해빈이 당황해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진유리는 이유를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가 제일 사각지대야.’

강의실 왼편의 최후방부. 이도진이 강의 중에 그나마 시선을 잘 두지 않는 곳이었고, 진유리는 그가 왜 그러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세아와 눈이 마주치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와서 일부러 쳐다보지 않는 거겠지.

그녀로선 이도진의 눈에 띄는 것보다야 유해빈과 이세아의 근처에 앉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었다.

이윽고 맞이한 오후 한 시.

시끌벅적하던 강의실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발걸음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고…….

미리 상의한 대로 학생들 전원이 크나큰 박수 세례를 터뜨렸다.

짝짝짝-!

“교수님들, 축하드립니다!”

그들 대다수가 지난주 화요일 수업 이후로 일주일 만에 보는 이들. 마법역학의 역사에 당당히 남을 발견을 해내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악마의 손에 버금갈 만한 화제를 교내에 몰고 다니는 사람들.

서상욱 교수와 이도진이 멋쩍은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고마워요. 어험, 그러면 다 온 것 같으니까 출석은 생략하고 바로 수업 들어가도록 할게요. 에, 저번 시간에 우리가-”

그 감동적인 분위기를 단 몇 초 만에 가라앉힌 서상욱 교수가 졸린 목소리로 책을 읽어나갔고, 학생들은 내심 되뇌었다.

‘그러면 그렇지…….’

강의실 내의 공기가 다시 들뜨기 시작한 건 이도진이 나선 다음. 학생들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준 그가 싱긋 웃으며 일렀다.

“이제 수업 진행해봐도 되겠죠?”

“네-!”

그리고…….

강의실 안을 둘러보던 그가 입가의 미소를 더욱 짙게 하며 누군가를 지목했다.

“진유리 학생?”

“케헥!”

무척 당황한 듯한, 언어의 범주조차도 벗어난 외침이 강의실을 울렸다.

만에 하나 질문을 받으면 똑똑히 대답하리라 다짐하며 예습과 복습을 거듭했는데. 하지만 지금 진유리는 그런 걸 분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예기치 못한 지목. 놀라서 사레가 들린 탓에 애처로운 기침 소리만 연신 낼뿐이었다.

“에흑, 헥, 흐극, 그흐윽-!”

보다 못한 이세아가 손을 살짝 휘저었다. 거기서 흘러나온 마력이 진유리의 가슴께를 감쌌고, 겨우 진정한 그녀가 발개진 얼굴로 이도진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너 침 좀 닦아라.”

딱하다는 눈치로 유해빈이 이른 말. 진유리는 그제야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손등에 느껴지더니 실처럼 늘어졌고, 그렇지 않아도 새빨갛던 그녀의 안색이 숫제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빤히 지켜보고 있던 이도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바꿨다.

“아, 괜찮아요. 진유리 학생 말고…… 이세아 학생에게 물어볼게요.”

“네, 교수님.”

깜빡 잊고 책상 위에 놔뒀던 초코바 봉지를 손으로 덮은 이세아가 태연한 어조로 답한다.

진유리는 방금 자신이 보인 한심한 꼴에 치를 떨었지만, 본인도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

오후 일곱 시 삼십 분경.

퇴근하고도 곧장 귀가하지 않은 나는 인적 드문 강변에 차를 대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내 눈앞에는 도합 일곱 개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중앙에 자리한 홀로그램.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려 붉은 입술만 얼핏 드러난 여성이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야. 다들 인사 나누고 앞으로 잘 대해줘.]

가장 왼쪽의 홀로그램. 용을 연상케 하는 가면이 경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허, 씩씩하구먼. 마음에 들어.]

[잘 지내봐요, 형! 아, 형 맞죠?]

[목소리가 너무 곱상한데…… 이봐, 잘할 수 있겠어?]

노인을 닮은 가면. 어린아이의 가면. 험상궂은 괴한처럼 보이는 가면. 세 사람이 차례로 이르자 용 가면이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실제로 뵈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적어도 짐이 되진 않을 거예요. 다른 두 분도 잘 부탁드립니다!]

[…….]

토끼 가면이 대답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나도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하는 여성 단원, 여우 가면을 쓴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가워요.]

잠시 침묵이 일었고, 헛기침한 노인 가면이 의문을 표했다.

[보아하니 자네는 신입과 면식이 있는 듯한데.]

[네, 제가 제의해서 영입한 겁니다.]

[흐음, 그랬군. 자네 안목이라면 믿어도 되겠지.]

[귀찮게 인사까지 할 필요 있나? 실전에서 보면 되고, 다른 용건이 없다면 바빠서 가볼까 하는데.]

거한이 내뱉은 불만에 중앙 홀로그램의 여성이 여상스럽게 답했다.

[물론 인사만 나누라고 모이게 한 건 아냐. 다음 계획, 얼추 가닥이 잡혀서 지원자도 받으려고. 요즘 이 나라를 자주 찾게 되는데…… 한국에서 악마의 손이 발견됐다는 소식, 들은 사람도 있지?]

다른 여섯 개의 홀로그램. 일반 단원 모두가 들어봤다는 투로 답했고, 중앙의 홀로그램이 선언했다.

[그거, 우리가 가질 거야.]

최소한의 필요 인원은 다섯 명. 결행 날짜까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필시 닷새 이내.

[악마의 손이란 게 확실히 밝혀지고 보관 위치가 파악되면 움직일 거야. 경매로 나올 수도 있고 한국의 협회가 보관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상관없어. 경매장에 난입해 뺏어오든 협회의 방어를 뚫고 가져오든, 그건 무조건 우리 팬텀의 소유가 될 거야. 나는 참가 확정이고 내 귀염둥이도 참가한다니까, 나머지에서 셋만 정하면 되는데…… 원하는 사람?]

[신입이 빠질 수야 없죠. 저는 참가하겠습니다.]

용 가면의 힘찬 대답.

그러나 노인과 소년, 괴한은 뜨뜻미지근한 태도였다.

[죽은 아내 기일과 겹칠지도 모르겠구려. 죄송하오나 나는 불참하고 싶구려, 보스.]

[어, 저도 좀……. 들어보니까 이번 건은 잘못하다가는 뒷맛이 찝찝할 수도 있겠는데…… 빠지면 안 될까요?]

[나도 썩 내키지 않는데. 뒤가 구린 놈들 죽이는 거야 환영이지만 이번 일은 별 재미도 없을 것 같군. 싫소이다.]

남은 건 두 사람. 여우 가면과 토끼 가면이 각각 답했다.

[추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세요.]

[……갈게요.]

그러자 중앙의 홀로그램이 기꺼워하며 손뼉을 쳤다.

[마침 다섯 명이네. 불참한 인원들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참가자들은 따로 연락해줄 테니까, 오늘은 이만 해산해도 돼.]

피싯-

시야에 비치던 홀로그램이 전부 연기처럼 흩어졌다.

이내 투욱- 하고 내 어깨에 와닿는 감촉.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뺨을 쿡 찔렀다. 여태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검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말갛게 웃는다. 민무늬의 흰색 가면을 벗어내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애도 아니고 왜 그렇게 장난치는 걸 좋아해요?”

“음…… 재밌으니까?”

모자를 벗고 생글거리며 답한 여성. 서연희가 내 쪽으로 몸을 가까이 기댔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맞닿았다. 숨결마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그녀가 나를 흥미로워하는 눈빛으로 응시한다.

“이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거니?”

“네, 이 정도면 충분해요.”

+

<킬 더 이블> 1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4월 18일 자정까지 서울 내에서, A급에 상당하는 각성자 열 명을 참살할 것 (시작 시점으로부터 제한시간 한 시간 이내)

-클리어 보상: OX 질문 1회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답변이 거부되거나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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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1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

4월 18일 자정까지 서울 내에서 A급 각성자 열 명을 살해할 것. 첫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다 죽이는 데 허락된 여유는 한 시간.

평범한 방법으로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퀘스트였고, 상황이 완벽히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악마의 손이 발견되었다는 이슈는 내가 상정할 수 있는 조건 중에선 가장 괜찮은 축에 속했고.

서연희가 내 쪽으로 조금 더 몸을 붙여왔다. 상쾌한 체향이 코끝에 감돌았고, 나를 지긋이 올려다보며 그녀가 일렀다.

“내일 가봐야 세부적인 윤곽이 나올 것 같아. 욕심내는 애들이 많거든. 넌 어느 쪽이 좋아?”

비밀스레 진행할지.

경매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편이 좋을지.

그것에 대한 내 의향을 묻는 것이다.

그때 홀로그램이 새로운 정보를 알렸다.

+

특정 조건에 따라 퀘스트 추가 보상이 지급됨을 알립니다.

-조건: 공개성

+

“휴우…….”

“왜 갑자기 한숨을 쉬어?”

“아니에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떠들썩하게 해주세요.”

“그럴래?”

선선히 답한 서연희에게 감사를 전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홀로그램을 욕했다. 그래,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네.

심각한 이야기는 그쯤 마무리됐고 서연희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제안했다.

“이왕 늦었는데 드라이브하다 저녁 먹고 들어가면 어때? 드라이브 한 시간에 1인당 저녁 예산 십만 원. 아르바이트치곤 되게 괜찮지 않아?”

“십오 분 운전해 가서, 둘이 합쳐 오만 원 나오는 고깃집 가죠.”

“…….”

말만 그렇게 한 거고 그 후로 서연희와 삼십 분가량 한적하게 도로를 달렸다. 갈수록 표정이 밝아지던 서연희가 으리으리한 한정식집에 가자고 제안했으나 식사 자체는 말한 대로 둘이 양껏 먹어도 오만 원이 안 나오는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드라이브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서연희도 딱히 불만을 내비치진 않았고.

***

4월 14일, 수요일.

서연희는 아주 오랜만에 공적인 사무를 처리하러 거처를 나섰다.

36 영웅의 싸움이 끝난 후로 남들이 보기엔 칩거에 가깝게 살아온 그녀였기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단지 그것 때문만도 아니고, 원체 알아보기가 어려웠으리라.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용모. 175cm의 신장에 실로 완벽하다 할 수 있는 체형. 걸음걸이마다 도저히 숨기기 어려운 신체적인 매력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과 무관하게 그녀가 은둔한 영웅 서연희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어느 빌딩에 들어선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띠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회장. 먼저 도착해 있던 이들 중 몇 명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왔나?”

36 영웅 가운데 한 명. 영원 길드의 대표 한태강.

“이러다 얼굴 까먹겠군. 자주는 못 봐도 연락은 되어야지, 원.”

36 영웅의 하나이자 한국 각성자 협회의 수장인 윤의성.

“허허, 자네는 통 나이를 먹지 않는구먼. 신기해,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야.”

백발이 성성하고 몸에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비쩍 마른 노인. 36 영웅의 최연장자이자 정가가 멸문한 지금,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마도 명문가라 해야 할 심가의 전대 가주인 심정웅.

서연희 자신을 포함해 생존해 있는 한국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다른 참석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진철민, 강유정, 주성원, 박인영, 이형식…… 그러고도 계속 이어지는 이름들. 36 영웅에는 미치지 못하나 능히 최상위인 각성자들과 한국을 이끌어가는 정재계 인사들이 자리한 것이다.

서연희는 그들이 모여앉은 원형 탁자의 정중앙을 흘끗 쳐다봤다.

우우웅…….

옅게 진동하는 소리. 거기엔 검게 빛나며 박동하는, 새까만 손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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