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39화 (39/207)

#39화. Chapter 9. 악마의 손 (5)

‘팬텀……?’

범죄조직 팬텀이 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단 소식.

심지어 서울인 데다 이세아가 들어와 있는 이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진유리의 집안인 대명 그룹에서 주최하는 경매.

거기 난입한 그들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단다.

휴대전화를 뚫어지라 보던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같이 있던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워낙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드문 이세아지만 가끔 내뱉는 말마다 묘하게 웃긴 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가 없는데, 본인은 진지하게 하는 소리가 남들 듣기엔 빵빵 터진다’라는 느낌. 게다가 친해지기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친해지고 나면 은근히 잔정이 많은 성격이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며 이세아의 그러한 면모를 잘 아는 그녀들이기에 지금 반응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세아가 저만큼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건…… ‘누군가’와 관련한 일 이외엔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고, 친구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오빠한테 연락 왔어?”

이세아는 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구절절 설명할 여유가 없었고, 서둘러 짐을 챙긴 그녀는 친구들에게 짧게만 일렀다.

“너희 여기 나가자마자 역 쪽으로 뛰어가.”

“응?”

친구들이 놀라서 반문했으나 이세아가 부연할 필요도 없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카페에 있던 이들 전원이 어떤 정보를 입수했기에.

테러조직 팬텀의 서울 침입. 여기서 불과 1㎞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이미 열 명 이상의 인명을 살상했다고.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지르며 카페를 빠져나갔고, 친구들과 함께 경매장 반대쪽으로 달린 이세아가 다시금 일렀다.

“저기 대피 안내하는 거 보이지? 가라는 데로만 가면 별일 없을 거야.”

“너는?”

“나도, 조금 있다가 갈 거야. 나중에 연락할게.”

그리 둘러댄 이세아는 대피 인파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각성자인 친구들은 걱정하면서도 지시자의 인도에 따라 점차 멀어졌고, 조금이나마 안심한 이세아는 곧장 이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왜?’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휴대전화가 꺼져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여자친구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걸까. 동생을 포함해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아야만 하는, 그런 순간인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이세아는 진심으로 바랐다.

오늘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까.

테러 상황을 전혀 모르고, 알아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장소에 있기를. 서울이 아니라 다른 도시, 여자친구와 짧게 여행이라도 가 있기를.

이도진의 목격담이 나올 때마다 절반 가까운 빈도를 차지했던 이 번화가에 오늘만은 그가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받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세아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무기질의 음성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고, 대피하는 이들 중에 혹시 오빠가 있는지 눈으로 살피며 그녀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쿠오오오오오-

붉은 마력의 구름이 경매장 천장을 없던 것처럼 지워내며 솟구쳐 올랐다. 마력으로 강화된 이세아의 시야에, 그곳에서 사람 둘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비쳤다.

하나는 동물 가면을 쓴 체구가 무척 가녀린 사람. 다른 한 명은…….

‘……진유리?’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서로 팔로우는 돼 있지 않으나 공통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보인 진유리의 SNS 게시물. 긴장한 게 역력한 기색으로 한태강과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찍은 곳은…… 경매가 열리는 저 건물이었고.

한데 그때였다.

완벽히 무력화시킨 듯한 진유리를 오른팔로 부둥켜안고, 왼팔로도 뭔가 들고 있는 토끼 가면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슈아아아아악-

토끼 가면이 쏜살같이 날았다. 무척 공교롭게도, 이세아가 자리한 방향으로.

***

퍼어어어억!

마력으로 칼리드의 몸뚱어리를 터뜨린 직후.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

<킬 더 이블> 1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4월 18일 자정까지 서울 내에서, A급에 상당하는 각성자 열 명을 참살할 것 (시작 시점으로부터 제한시간 한 시간 이내)

-클리어 보상: OX 질문 1회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답변이 거부되거나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안의 공개성에 따라 추가 보상을 산정합니다. (랭크 A)

-추가 보상: 주관식 질문 1회를 객관식 질문 1회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한 주관식 질문은 0회입니다.)

-현재 보유한 OX 질문은 3회입니다.

: <킬 더 이블> 1권의 두 번째 서브 퀘스트 추가 보상으로, OX 질문 3회를 주관식 질문 1회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

내가 이룰 수 있는 최선에 가까운 결과였다.

떠들썩하게 일을 벌인 효과가 없진 않았다. 객관식 질문. 활용하기에 따라선 이게 주관식 질문보다도 유용하니까.

[빨리 왔네?]

마법으로 전달된 서연희의 목소리. 내가 답하기 전에 한태강이 나섰다.

“잡아서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묵묵히 선언한 그가 오른손을 떨쳐냈다.

콰앙-!

세찬 폭발음에 이어 경매장을 둘러싼 벽 한쪽이 터져 나갔다. 나와 팬텀 단원들에겐 여파가 미치지 않았고, 본래 우리를 공격하려는 의도도 아니었겠지.

“으아아악!”

쉬이이이익-!

도망치지 못하고 있던 일반인들이 풍압에 떠밀려 날아간다. 벽이 부서진 덕에 상처 하나 없이, 건물 바깥으로 날다가 안전하게 착지했다.

“……어?”

멀리서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서연희가 알 만하다는 듯이 싱긋 웃는다.

이십여 년 전엔, 적어도 그럴 만한 능력이 되는 이들이라면 저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술이었다.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민간인들을 전투 범위 밖까지 강제로 내보내는 기술.

한태강은 그걸 가장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이들 중 하나였다. 비록 그 때문에 틈을 보여 자신이 다친다 할지라도.

한데 나와 단원들 그 누구도 기습하지 않자 되려 그게 불쾌했는지 그가 눈썹을 추켜 올린다.

“쓰레기들이, 건방진 짓을 하는군.”

“--- --.”

그와 대치하고 있던 서연희의 대꾸.

아마 유럽 쪽의 언어로 추정되는, 나로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고, 한태강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번엔 영어로 답한다.

“자신이 있으니까 한 일이겠지?”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 하려는 게 있으면 다 해봐라.”

한태강이 경멸을 한껏 담아 말했다.

그가 우리를 얕잡아보고 방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승리하리라 확신하는 거다. 그만한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까.

이윽고 전장이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나와 서연희가 한태강을 맡는다.

유해빈과 여우 가면이 다른 헌터들을 상대한다.

마지막 남은 한 명. 토끼 가면이 악마의 손을 탈취하면 먼저 회장을 나서면 다른 멤버들도 적당한 시기에 물러난다.

그게 우리가 세운 계획이었고, 나는 악마의 손이 놓인 곳으로 향하려는 토끼 가면에게 넌지시 일렀다.

“죽이진 마.”

오두막에서 회의할 때부터 가능한 한 살상을 자제하기로 정했지만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현재 악마의 손 근처엔, 높은 수준의 마력을 보유했기에 한태강의 기술에서 제외된 진유리가 자리해 있다. 지금 저 애를 죽여버리면 <킬 더 이블>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할 수 없겠지.

그러자 토끼 가면이 나직이 물었다.

“데리고 나갈까요?”

무력화만 시켜두고 가면 다른 전투에 휩쓸려 죽어버릴 수 있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터. 얘한테 어린 애 하나 달고 떠나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해주면 고맙고.”

“……조심해요.”

으레 그랬듯 내 안전을 염려한 그녀가 바닥을 세차게 박찼다. 여우 가면과 유해빈은 벌써 헌터들과 바삐 싸우는 중이었고, 슬슬 한태강과 서연희의 싸움도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아래편으로 달려가는 토끼 가면을 흘끗 바라본 한태강이 주먹을 꽉 쥐었다.

쿠아아아앙-

공기를 비롯해 닿는 모든 것을 일그러뜨리는 마력이 토끼 가면에게 날았고…….

피시잇-

갑자기 사라졌다.

가볍게 손을 휘둘러 공격을 차단한 서연희가 생긋이 웃었고, 진유리가 위험해질 걸 알면서도 한태강은 나와 서연희에게서 결코 주의를 뗄 수 없었다.

“으음…….”

그가 무겁게 침음했다.

테러조직 팬텀의 보스와 이인자. 그들이 쉽게 볼 상대가 아니란 걸 그제야 직감한 것이다.

[내가 할 테니까 엄호만 해줘.]

단출하게 전달한 서연희가 몇 걸음 걸어 나갔다.

쉬익, 스아아악!

그녀의 걸음마다 붉고 푸른 마력이 회장 전체를 밝혔다.

한태강이 움직였다.

콰앙!

하찮은 변수 따윈 무시하는 압도적인 돌진. 서연희가 내보낸 마력은 한태강에게 채 닿기도 전에 연기처럼 스러졌고, 위맹한 마력을 실은 주먹이 서연희를 타격하기 직전.

터어엉!

그의 공격을 대신 받아낸 나는 양손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통증을 느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할 만해?]

서연희의 물음엔 눈짓으로 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그즈음 두 갈래로 나뉜 팬텀 멤버들이 자연스레 합류했다.

퍼엉! 콰아앙!

전세가 불리해진 헌터들이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악마의 손 지척까지 다다른 것이다. 유해빈도, 여우 가면도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는 형국.

그리고…….

곳곳에서 공격해오는 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 토끼 가면이, 마침내 악마의 손 가까이 접근했다.

“이야앗-!”

활동하기 힘든 옷을 입은 진유리가 휴대용 검을 꺼내 휘두르자 토끼 가면이 검지를 살짝 까딱였다.

스걱- 촤아악!

진유리의 검이 흡사 종이처럼 잘려나갔고, 토끼 가면이 재차 손을 뻗었다.

퍼억!

진유리가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이어진 토끼 가면의 손길.

티잉, 투웅!

“으읍, 흐으…….”

목을 강타당한 진유리가 경악한 눈길을 보내다가 힘이 빠져서 제자리에 쓰러졌다. 헌터들은 팬텀 단원들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었고, 악마의 손을 쥔 토끼 가면이 진유리를 둘러업었다.

기실 쓸모없는 손이지만…… 우리에겐 저걸 도로 가져가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이번 테러의 목적이 저 악마의 손이었다고 명확하게 주지시켜야 하기에. 만에 하나라도, 그 누구든지 저 손에서 서연희의 흔적을 발견할 일이 없도록.

그때 한태강이 크게 외쳤다.

“못 간다!”

그가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쿠오오오오오오-

마력의 불기둥이 치솟아 공중에 방어벽을 만들어냈다.

힘의 집적도로 봐서는 S급 각성자라 해도 단시간 내에는 깨기 어려운 수준. 위로 날아 회장을 벗어나려 하던 토끼 가면이, 일순간 속도를 높였다.

퍼걱-

방어벽에 미세한 금이 가다가…… 결국 일부분이 깨졌다. 그 틈새로 토끼 가면이 탈출했고, 일렁이던 마력까지도 빠져나가며 건물 천장을 완전하게 불태워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

회장 내에 남은 이들.

나를 비롯한 팬텀의 조직원 넷.

한태강과 A급 헌터들.

불길에 휩싸인 공간 안에서, 서연희가 내게만 들리도록 일렀다.

[너도 토끼 따라서 가.]

“……?”

[어차피 너희 둘은 예비 전력이었고, 둘이 가 있으면 우리도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토끼 가면이 그러했듯 발을 굴려 회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태강이 강하다고 해도 서연희가 마음만 먹는다면 물러나는 건 어렵지 않겠지. 여우 가면과 유해빈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안도했다.

+

<킬 더 이블> 1권, ‘아카데미의 천재 마검사’가 진행 중입니다.

-1권 태그: [아카데미] [로맨스 X] [캐릭터 중심]

-진행률: 99.4%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1권 종료 시점,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 ---의 제1 아카데미 내부 주목도를 상회할 것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

<킬 더 이블> 1권의 종료가 그야말로 목전에 다다라 있다. 아까 회장에 있을 때 진행률이 계속해서 올랐다.

그러니까, 분명 진유리가 속편의 주인공일 거야.

그 외의 가능성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

저만치 날아가는 토끼 가면이 보였다. 오른팔엔 진유리를 붙들고 있고, 왼팔로는 악마의 손을 쥐고 있다.

그녀가 아래편으로 하강했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곳.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늘이 더 눈에 띄고, 저러는 게 추격을 따돌리긴 더 적합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고 저 먼 곳을 바라봤다.

저절로 의문이 흘러나온다.

……왜? 어째서?

토끼 가면이 향하는 곳에,

내 동생 세아가 있다.

콰아아아앙!

나는 온 힘을 다해서 허공을 박찼다. 토끼 가면을 따라잡아야만 했다.

안 돼. 거기로 가지 마.

1권이…… 이제 곧 끝날 텐데.

장르소설의 철칙.

마무리 장면에서는 기대감을 심어주라.

그리고.

그 기대감을 심어줄 주체는…… 대개 그 소설의 주인공이다.

있는 힘껏 달렸음에도 한발 늦었다. 토끼 가면이 착지했다.

거기서 불과 십여 미터 앞에, 내 동생이, 세아가 멍하니 서 있다.

“…….”

세아가 토끼 가면을 응시한다. 진유리를 보고, 악마의 손을 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토끼 가면을 따라서 달려온 나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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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1권, ‘아카데미의 천재 마검사’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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