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58화 (58/207)

#58화. Chapter 14. 은마산 (4)

장생종.

그들은 강하다.

종족으로서 지닌 본연의 무력 평균은 인간 각성자들과 비교조차 안 되고, 균열 너머 세상에서 가장 으뜸인 용족마저 넘어선다. 그들과 비길 만한 존재들이라면 기껏해야 악마 정도일까.

만약 장생종이 지구로 처음 왔을 때 그들 모두가 이 별을 지배하고자 했다면…… 악마가 균열을 열기도 전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장생종의 지배하에 놓이게 됐으리라.

신체 포인트를 기준으로 성년이 된 개체는 평균값이 70 이상. 소질 포인트도 전방위적으로 7 이상.

S급 각성자 정도의 재능과 강함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겨우 기본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이들은 신체 포인트 칠십 후반대를 상회하는 힘을 지녔고, 80을 넘겨서 36 영웅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선 존재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이자들은 어떨까.

유해빈이 조금 질린 듯한 목소리로 내게 일렀다.

“교수님…… 저거 세 명요, 어째 중앙에 한 놈만 특출나게 세 보이는데…… 제가 착각한 건가요?”

“……착각 아닐걸.”

나는 단출하게 답했다.

깨어난 장생종은 총 세 개체.

왼쪽과 오른쪽도 상당히 강해 보이긴 한다. 느껴지는 기세로 파악해보자면 S급 헌터 이상. 생전의 힘을 전부 다 발휘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A급 헌터 수준은 훌쩍 넘어선 강적이다.

하지만 그들조차, 중앙의 한 개체와 나란히 놓고 보면 적잖이 손색이 있었다.

끄흐흐…… 으흐, 으하하하하-!

다른 두 놈의 호위를 받듯이 조금 뒤편에 서서 여전히 미친 듯이 웃어대는 장생종. 저건…… 정말 많이 강하다.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을 습격하며 타락하기 전에는 장생종 내에서도 한자리했을 거라고 짐작될 만큼.

물론 저자 또한 시체를 일깨운 거니 생전 능력을 온전히 지니고 있진 못하겠지만 그건 어느 정도 상쇄가 되는 듯하다.

스으으으…….

이 공동의 벽 너머에서 전해지는 힘. 유적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동력원이 검은 심장의 마력 강탈에 대항하면서 놈들에게 계속 마력을 전해주고 있다.

거기까지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유해빈에게 지시했다.

“왼쪽이랑 오른쪽 둘 맡아줘라. 할 수 있겠지?”

“네? 아, 버티는 건 충분히 될 것 같은데…… 그러면 교수님이 저놈 맡으시게요?”

“그래야지 어쩌겠냐.”

하소연이라기보단 각오. 이어서 한 발 앞으로 걸으며 나는 힘을 끌어모았다. 장생종의 힘과 근본적으로 계통이 다르지만, 겉보기만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검은 마력이 내 전신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았다.

+

[미수령 보상]

1) 신체 포인트 5p

2) 소질 포인트 0.6p

-모든 보상을 수령했습니다!

[신체]

근력 82 / 민첩 86 / 체력 76 / 내구 76

[소질]

지능 8.7 / 매력 8.3 / 의지 8.3 / 감각 8.9

+

근력과 내구에 각각 3포인트와 2포인트.

매력과 의지는 각각 0.3포인트씩.

남겨두었던 포인트 보상을 모두 수령했다.

근력과 내구, 의지는 지금 이 싸움을 위해서.

단지 외모를 수치화한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 그 자체인 매력은…… 수학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을 더 원활히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만반의 준비를 끝낸 그때.

으갸아하하하-!

괴성을 내지르며 장생종들이 접근해왔다.

“조심해.”

유해빈을 향해 마지막으로 짧게 전한 나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장생종에게 다가섰다.

스륵, 스걱!

놈이 휘두른 오른손에서 별안간 손톱이 기다랗게 자라났다. 강철도 종잇장처럼 갈라낼 수 있을,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이 검은 마력을 한가득 머금고 내 몸을 송두리째 찢어내려 한다.

콰앙!

폭음이 터지고, 맞부딪쳤던 공간에 공백이 생겨났다.

크르륵…….

장생종이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내 공격에 정통으로 맞은 놈의 가슴팍이 어느새 움푹 들어가 있다.

반면에 나도 멀쩡하진 않았다. 놈의 손톱에 찢긴 오른팔 살갗에서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도 포인트 올린 게 효과가 없진 않은 듯싶네.

본래는 이것보다 더 큰 부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구를 올린 결과로 비교적 적은 상처만 입을 수 있었다.

본래는 놈에게 저 정도까지 타격을 입히긴 어려웠을 터였다. 그러나 근력을 올린 결과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또 하나 중요하게 작용한 능력.

소질 포인트로 올린 의지.

흔히 의지라 하면 정신에 작용하는 힘으로 이해되기 쉽겠지. 하지만 이건 그런 정도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설정상 구상한 ‘의지’는…… 한마디로 말해 ‘효율’과 직결된다.

원하는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는 데 사용해야 할 능력이 있을 때.

의지라는 소질은, 해당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내 정신과 육체 전반에 그런 방식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의 내가 온 정신을 기울여야만 끌어낼 수 있던 힘을 전보다는 더 쉽게 끌어낼 수 있었고, 이전에는 대단히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통증을 전보다는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었다.

방금의 공방에서 내가 놈보다 조금 더 이득을 본 건 그 때문이다.

크으…….

움푹 팬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통스러워하던 놈이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벽 너머에서 놈에게 전해지는 마력도 한층 강해졌다.

유해빈은 제법 잘 버티고 있는 데다 얼핏 보기엔 오히려 유리해 보인다.

내가 이놈을 빨리 처리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출구가 없는 곳이라 더 나아갈 방법은 따로 찾아야겠지만 어쨌든 작금의 전황은 그리 불리한 건 아니었다.

캬아아악-!

장생종 우두머리가 사납게 괴성을 질렀다. 놈의 뒤편에 떠오른 검붉은 달의 문양이 한층 뚜렷해졌고, 그러나 내가 놈보다 우위에 서 있음을 알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재차 짓쳐들어갔다. 이어진 격돌.

퍼걱!

놈의 공격을 한쪽 팔로 막아내며 다른 팔로 목을 부여잡았다. 힘을 줘서 꺾어내려 하니 놈이 거세게 저항하며 입을 쩍 벌렸다. 그 바로 앞에 놈이 자아낸 검은 마력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고, 벽 너머에서 전해지는 마력이 그걸 조금 더 보강해나갔다. 마력이 내게 쏘아지기까지는 고작해야 1초 미만일 터.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자동발동형 특성 ‘순간예지’가 발동됩니다. (랭크 A+)

+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일렁인, 몹시 생생한 영상.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힘을 더하면 된다. 그러면 공격이 늦춰질 거고, 마력이 완성되는 것보다 내가 이놈 목을 꺾어버리는 게 더 빨라.

나는 순간적으로 힘을 극대화했다. 놈이 일으키던 마력의 소용돌이가 흐려진다. 나는 조금 더 힘을 강하게 줬고, 벽 너머에서 놈에게 전해지는 마력이 그에 대항하듯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의 심장이……

·

·

·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환호합니다! (랭크 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첫 번째 봉인이 해제됩니다.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랭크 SS)

-스킬 ‘마력흡수’를 구체화합니다. (랭크 S)

-스킬 ‘존재흡수’를 습득합니다. (랭크 SS)

-장생종 ‘אדם חמדן’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마력 보유량이 상승합니다.

-[……5,405 ……5,528 ……5,612]

-장생종 ‘אדם חמדן’의 능력을 강탈합니다.

-강탈한 능력은 스킬로 분류됩니다.

-스킬 ‘형상화’를 습득합니다. (랭크 A)

-등급 외 보물 ‘동쪽으로 흐르는 달’의 흔적에 남은 잔여 마력 일부를 흡수합니다.

-마력 보유량이 상승합니다.

-[……5,732 ……5,942 ……6,185]

+

나는 연이어 나타나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메시지 너머로 보이는 장생종을 응시했다. 놈의 마력과 존재감이 너무도 확연히, 급속도로 흐려져 간다.

끄흐윽…… 으으…….

방금까지 그토록 사악하게 웃어대던 놈이 지금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죽은 놈이니까 죽어간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겠지.

놈은 지금, 자신의 모든 마력과 모든 존재를 내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심지어 놈을 보조해주던 이 유적의 동력원마저, 검은 심장이 탐욕스레 내뻗는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쿠구궁-

육중한 소리.

유적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

쿠구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진유리와 이세아는 숨을 죽이며 소리가 들려오는 벽에다 귀를 대봤다.

“뭐 감지되는 거 있어?”

“소리밖에 안 들려.”

진유리의 질문에 차분히 답한 이세아는 애써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이 벽이랑 연결된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해.’

아까 공동을 떠나려 할 때 처음 들려왔던 소음.

처음에는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는데 갈수록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거의 일직선으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본들 이 벽 너머에 가닿을 수는 없을 테고, 이세아와 진유리가 시도한 방법은 간단하고 확실했다. 벽을 부수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고.

콰앙! 퍼억!

무의미한 걸 알면서도 다시 몇 번 벽을 때려보던 진유리가 결국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리 힘으로는 흠집도 안 날 것 같아. 근데…… 저건 아직도 저러네.”

진유리가 손가락을 뻗어 벽면을 가리켰다. 이세아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벽을 두드리며 물었다.

“지금도 지워지고 있어?”

“응, 조금씩. 내가 보기엔…… 아까보다 지워지는 속도 더 빨라진 것 같은데.”

“…….”

처음 소음이 들린 그 시점에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음이 계속 이어지고, 소리가 점차 커지면서부터는 그녀들도 변화를 눈치챘다. 벽면에 정교하게 그려져 있던 벽화. 그것들이…… 흐릿해지다가, 아예 지워지고 있다. 천장을 구성하는 마석은 계속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나고 있고, 정말로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퍽! 퍼억!

이세아는 묵묵히 벽을 주먹으로 쳤다. 피가 터져 나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불길한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에 아른거렸고, 그걸 생각하면 절대 멈출 수 없었다.

‘만약에…… 오빠가 이 벽 너머에 있으면…….’

그 말인즉슨 저만한 소음이 여기까지 들려올 만한 사건을 이도진이 겪고 있다는 뜻이겠지. 벽화가 지워지고, 천장의 마석이 빛을 내며 벽 너머로 마력을 보내는 것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너무나도 수상쩍은 사건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오빠가 그런 사건을 겪는 중이고, 위기에 처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손을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었다.

퍽! 퍼억! 콰아앙!

“야, 잠깐만, 너 피…….”

진유리가 걱정하듯 건넨 말. 이세아는 짤막하게 되받았다.

“상관없어.”

하지만 말리는 듯한 진유리도 이를 악물고 벽을 때리긴 마찬가지였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도 그걸 넘어설 만큼 강하게 강한 충격을 받으면 상처를 입는 건 각성자도 마찬가지.

진유리와 이세아의 손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녀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세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는 힘껏 마력을 실어내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한 공격을 벽에다 쏟아냈다.

콰아아앙!

그러나 벽엔 여전히 흠집도 가지 않았고…….

“아…….”

이세아는 급격히 밀려오는 현기증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잠시 쉬고 있어. 내가 해볼게.”

진유리가 굳게 이른 말. 그리고 그녀가 남은 힘을 다 끌어모아 벽을 파괴하려 시도하던 그때.

쿠우우우웅-

또 한 번 소음이 울렸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뭔가 질적으로 다른 소음인 것 같았다.

“어? 어……?”

진유리는 놀라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단단했던 바닥이 지진의 영향권에 들어선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벽화가 지워지는 속도도 그처럼 빨라졌다. 벽에 그려진 모든 것들이 지워진다.

산과 들. 강과 하늘. 용맹한 각성자와, 사악한 습격자들과,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모두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

쩌저적-

마침내 천장의 마석마저 금이 가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닥도 굉음을 내며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야, 뭐해!”

진유리는 탈력감에 멍하니 있던 이세아에게 달려갔다. 그녀를 품에 안고, 천장과 벽면, 바닥을 연신 둘러봤다.

‘나가야 하나?’

하지만 그녀들이 지나쳐 왔던 통로는 이 공동보다도 먼저 무너져내린 상황.

나갈 곳은 없고, 여기 머무른다 해도 좋은 상황을 맞이할 수 없겠지.

한데 바로 그때.

콰아앙!

그렇게나 열심히 두드려도 뚫리지 않던 벽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너네 빨리 이리로 와!”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도진의 겉옷을 입은 유해빈이 벽 너머에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이도진은 진유리와 이세아에게 달려왔다.

“저쪽으로 가자!”

“아…… 네!”

다른 판단을 할 틈도 없이 진유리는 뚫린 벽 너머로 달렸다. 그녀에게서 이세아를 받아든 이도진이 동생을 끌어안고 나란히 달렸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이세아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닮은 것 같아…….’

거의 다 지워진 벽화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신비로운 은발의 여성.

힘이 빠진 이제야 비로소 눈치챘지만, 이세아는 그녀와 비슷한 외견의 누군가를 일전에 만난 적이 있다.

지난달에 열렸던 대명 그룹의 경매장에서 악마의 손을 탈취해간 테러조직 팬텀.

그때 우연히 마주친 그들의 멤버, 토끼 가면을 쓴 범죄자의 머리칼도 아름다운 은빛이었다. 꼭 벽화 속의 여성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