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Chapter 14. 은마산 (5)
그리고 이세아가 떠올린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얼굴 위쪽.’
벽화 속 여성은 신비로운 안개로 가려져 있어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얼굴 윗부분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온단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고, 팬텀의 토끼 가면도 그녀와 비슷했다.
당시 경매장 근처에서 맞닥뜨렸을 때 봤던 외견.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칼에, 가면과 안개로 가린 얼굴의 눈 부분이…… 아주 특징적으로 새빨갰다.
게다가 체구가 상당히 가냘프다는 공통점까지 있으니 드러난 모습만 놓고 보면 둘이 아주 흡사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신기하네…….’
이 부분에 대해 이세아가 떠올린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공교롭게도 둘의 외견이 비슷하단 정도.
체구가 가녀린 여성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그리고 머리칼과 눈동자 색은 마력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신체 부위에 속한다. 최상급 각성자라면 빨간 눈도 은빛 머리칼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가령 러시아의 영웅 안드레이 일린은 평소엔 눈동자 색이 검지만 마력을 강하게 발현하면 새파란 청색으로 변한다. 그 때문에 가지게 된 이명이 ‘푸른 눈’이고.
그러니까…….
그건 바꿔 말하면, 눈동자와 머리칼 색으로 자기 외견을 감추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최상위 각성자들이라면.
벽화 속의 여성이야 잘 모르겠지만 팬텀의 토끼 가면은 일부러 특징적인 외견을 만들어낸 거겠지.
해서 몇 가지 신체적 특징이 닮았다는 이유로 그 이상의 억측을 하는 게 되려 이상한 상황이었고, 기실 이세아는 그런 걸 의식해서 생각지도 않았다.
그냥 닮았네, 신기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만 판단한 세부적인 근거야 여럿이었지만 모두 무의식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진 일.
이세아는 멀어져 가는 공동에서 시선을 떼고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곳을 바라봤다.
자신을 품에 꼭 끌어안은 이도진이 굳은 표정으로 달리는 모습. 오빠가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었고, 그와 함께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무거우면 어쩌지?’
마력 관련으로 문제가 있다지만 이도진도 각성자다. 사람 한 명 업고 달리는 것쯤이야 충분히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도진은 마력이 잘 모이지 않고, 그러면 최소한 들고 있는 짐이 가벼워야 할 테고, 그런데 자신은 오히려 근래 체중이 늘어난 것 같다.
공연히 체중계에 올라가 현실과 맞닥뜨리고 싶지는 않았던 터라 눈으로 확인해본 건 아니지만 요즘 먹는 양이 늘었고, 분명히 예전 치수 그대로여야 할 옷이 점점 몸에 착 붙게 되는 마법 같은 현상을 고려해보면 틀림없으리라.
그야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로 따지면 전자인 성장이겠지만 어쨌든 살이 붙은 것만은 부정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이세아는 때늦은 후회를 되뇌었다.
‘주는 대로 다 먹지 말걸.’
군것질도, 식사도, 간식도, 이도진이 주면 거절하지 못…… 아니, 거절하지 않고 아기새가 먹이 받아먹듯이 재깍재깍 다 먹어버린 게 이런 상황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진유리나 유해빈의 부축을 받아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아예 선택지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 수밖에 없었다.
부디 오빠의 걸음이 늦춰질 만큼 무겁진 않기를.
그녀에게 어떤 힘이 전해져 온 건 그때였다.
‘어……?’
마력을 너무 급격히 소모해 일시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힘이 솟아났다. 그녀 자신의 회복력과는 다른 감각. 방금 빠져나온 공동, 유적의 붕괴와 함께 갈라지던 천장의 마석에서 흘러들어오는 힘인 듯했다.
어느새 많이 멀어진 그곳에서 빛이 반짝이며 이쪽으로 아지랑이처럼 뻗어온다.
“정신 좀 들어?”
이세아의 눈빛이 조금 또렷해지자 이도진이 곧장 알아채고 물었다. 그녀는 오빠의 품에 안긴 채 몸을 뒤척이며 일렀다.
“……내려줘. 나 이제 괜찮아.”
“교수님! 저기 안 막혔어요!”
유해빈이 크게 외치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현재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벽화가 그려져 있던 공동보다 붕괴 정도가 훨씬 덜했고, 저 멀리 보이는 통로는 비교적 온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도진이 달리는 와중에도 부드러운 어조로 이세아에게 답했다.
“나가서 내려줄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리곤 이세아를 안은 팔에 한층 더 힘을 줬다. 마치 자기 팔로 그녀를 가리고, 본인이 다치더라도 동생만은 보호하겠다는 듯이.
이세아는 그제야 이도진의 오른팔에 꽤 깊은 상처가 나 있고, 심지어 핏줄기까지 흐르다 굳어 있음을 발견했다.
몹시 아파 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한데 그건 또 어떻게 눈치챘는지 그가 태연하게 설명한다.
“살짝 긁힌 거야. 피도 멎었고, 안 아파. 걱정 안 해도 돼.”
“응…….”
네 사람은 좁은 통로로 들어섰다. 그들이 지나온 공동 쪽에서부터 붕괴가 진행 중이고 앞으로 펼쳐진 길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황. 유해빈이 재빨리 일렀다.
“제가 뒤에 설게요! 야, 너 앞에 가고 교수님이랑 이세아가 중간!”
“말 안 해도 알아!”
그즈음엔 이세아도 어느 정도 몸 상태가 회복됐다. 그녀는 유해빈이 뒤에서 짓쳐들어오는 마력의 폭풍을 막아내는 것과 진유리가 세차게 손을 휘두르며 심심찮게 날아오는 기관장치의 습격을 모조리 깨부수는 광경을 지켜봤다.
‘…….’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해빈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 평소엔 설렁설렁하는 듯하면서도 대단히 뛰어난 성취를 거두니 정말로 집중했을 땐 이만한 활약을 보여준다 해도 미심쩍을 게 없다.
하지만 진유리는…… 이세아가 알던 그녀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되게, 잘 싸우네.’
이세아가 알기로 진유리는 저만큼 방대한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 이젠 그게 면역체 보유자이기 때문이란 걸 알지만 어쨌든 단순히 마력의 총량뿐만 아니라 속성과 계통을 구사하는 측면에서도 진유리는 이세아와 유해빈보다 못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어째 지금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퍼엉! 콰아앙!
진유리의 오른손과 왼손에 붉고 푸른 마력이 한가득 넘실거렸다.
복합 속성에 복합 계통. 쏟아내는 마력의 출력도 이세아가 아는 진유리의 최대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면역체를 활성화한 것도 아닌 듯한데.
그러고도 진유리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길을 돌파하며 나아갔고, 여전히 정체 모를 힘이 자신에게 전해지는 걸 감지하며 이세아는 내심 짐작했다.
‘쟤한테도 영향이 있나?’
벽화의 기록을 본 두 사람에게 유적이 주는 선물일까. 만약 그런 거라면 꼭 소설에 나오는 기연 같다고 이세아는 생각했고…….
콰아아아앙!
통로를 막고 있는 잔해들을 헤치고 빠져나온 네 사람은 다시 제법 넓은 공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충분히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이세아는 이도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제자리에 섰다. 유해빈이 적잖이 난처한 기색으로 중얼거린다.
“우리 여기서 통로 한 번 더 지나쳐 왔거든……. 근데, 어…… 원래는 있었는데…… 이제 없어졌네.”
없어졌단 건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이미 이곳은 폐허에 가까웠고, 본래는 통로가 있었을 법한 방향엔 큰 바위들이 떨어져 내려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젠 출구라 표현하는 것도 어폐가 있어 보였다.
더 나아갈 곳이 없었고,
쿠웅, 쿠구궁……!
드디어 유적 전체의 붕괴가 임박했다.
‘……끊겼어.’
이세아는 입술을 깨물며 되뇌었다. 유적에서 흘러들어오던 마력이 단절된 것이다. 더는 자신에게 보낼 마력이 없다는 뜻일 터.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유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도 더 안 와?”
“……너도?”
짧은 대화로 두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서로 또한 유적에서 마력을 전달받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미 공급이 끊기고 유적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이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지만.
쿠오오오오-
여태 들려온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불길한 소음이 공간 전체를 울렸다. 여기저기서 무너진 파편들이 휘날린다. 마력의 폭풍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세아는 다시 이도진에게 달려갔다. 그를 보호하듯 앞을 막아서며 오른손만 뒤로 뻗었다.
이도진의 오른손과 그녀의 손이 닿았다. 실로 몇 년 만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오랜 시간. 아직 어리고 오빠를 무척이나 따랐던 때 이후 처음으로 그의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배리어, 오빠한테만 치고 있어. 내가 막아줄게.”
이 순간 이세아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오빠가 다치지 않게, 여기서 무사히 내보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진유리와 유해빈도 남매와 합류했다. 각자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내며 튼튼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슈아아아아-
환한 빛이 일며 시야를 비롯한 모든 감각이 희미해졌고…….
바로 다음 순간.
“아…….”
이세아는, 진유리가 놀라서 흘린 말을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이었다. 발아래엔 흙바닥이 놓여 있다.
새 소리도 들리고, 공기도 맑고, 자연적인 빛이 시야로 내리쬔다.
어디를 봐도 바깥이었다.
이세아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어렵사리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옆엔 진유리 한 명뿐이다.
유해빈은 없고…….
“오빠……?”
이도진도 없었다.
***
세아와 진유리가 자취를 감춘 직후.
슈우우우우…….
눈부시게 일렁이던 빛이 멈췄다. 유해빈이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응?”
그 순간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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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의 두 번째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5월 6일 자정까지 제1 아카데미 고등 과정 2학년 중 [은마산에서 추락한 학생 전원]을 위기에서 구해낼 것
-대상 목록: 유해빈, 이세아, 진유리 총 3인
-클리어 보상: 유럽의 36 영웅 중 확인된 배신자 1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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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메시지까지 똑똑히 시야에 담아낸 나는 유해빈에게 일렀다.
“너 잠깐 여기 있어봐라.”
“네? 교수님은요? 아니, 근데 얘네 어디 갔지?”
“내가 내보냈어. 금방 올 거니까 여기 있고, 그럴 일 없겠지만 혹시라도 누가 오면 나는 어떻게 나갈지 조사하러 갔다고 해.”
“아니, 교수님이 걔네 내보냈다고요? 어떻게요? 저한테도 자세히 설명 좀-”
“시간 없어.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기다려 봐.”
“또 무슨 나쁜 짓 하시려고…….”
볼멘소리처럼 중얼거리는 말을 흘려듣고 나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갔다.
쿠웅! 콰아앙!
어지럽게 쌓여 있는 돌무더기와 잔해를 모두 뚫어내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세아 때문에.
자기랑 진유리 두 사람만 나온 걸 알면 틀림없이 걱정하겠지. 이 유적에 들어올 때도 서로 다른 곳에 입장했으니 나올 때도 그럴 거라고, 잠깐은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나오지 못했다고 확신하면…… 그 시점부터는 많이 걱정할 거다.
그러기 전에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다 얻어야 했다. 일단 나가면 조사단에서 정보를 얻어내려 할 거고, 이 유적지가 발각된다면 그때부턴 움직이기도 힘들어진다.
세아를 먼저 내보내 걱정시킨다는, 나로선 전혀 내키지 않는 행동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러나 세아가 많이 걱정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그 정도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콰아아앙!
좁은 복도를 가리던 잔해를 죄다 걷어내니 내 눈앞에 장생종들과 싸웠던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의 끝자락으로 달려간 나는 손에 마력을 모아 벽을 세게 후려쳤다.
퍼엉!
간신히 버티고 있던 벽이 쓰러지고, 붕괴가 잇따르며 단절됐던 공간이 드러났다. 세아와 진유리가 있었던 장소. 거기까지 도착한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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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반응합니다. (랭크 SS)
-등급 외 보물 ‘동쪽으로 흐르는 달’의 흔적이 희미하게 감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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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심장의 첫 번째 봉인이 풀렸다고 알린 메시지.
그때 나는 새로운 스킬 세 개와 마력을 얻었다.
본래 가지고 있었지만 명시화되지 않았던 ‘마력흡수’를 구체화했다.
검은 심장의 랭크가 상승하며 ‘존재흡수’ 스킬을 습득했다.
게다가 나와 싸우던 장생종의 능력을 빼앗아 ‘형상화’라는 스킬까지 습득했다.
이 유적을 유지하던 힘.
장생종과 기관장치, 군대와 각성자 조각상들을 운용하던 마력.
‘동쪽으로 흐르는 달’의 흔적에 남은 잔여 마력이라는 그 힘을 일정 부분 내 걸로 만들었다.
사실상 살아있는 생명체나 다름없던, 이 고대 유적이라는 존재 자체도.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록 기능이 사실상 정지하다시피 했으나, 이 유적은 현재 내 통제하에 놓여 있다.
억제할 수 있었던 붕괴를 방조해 의심을 사지 않는 순간에 진유리와 세아를 먼저 내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유해빈이야 들어올 때도 나랑 같이 들어왔고, 내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증인인 셈이라 무턱대고 내보낼 수가 없었고.
세아와 진유리가 머물던 공동 중앙에 선 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추측건대 이곳은 세아와 진유리를 위해 준비된 기연이었으리라.
유적을 유지해주던 마력과 <킬 더 이블>의 주요한 복선이 될 정보를 얻게 해주는 장소였겠지.
그러나 마력의 상당 부분은 내가 홀라당 가로채 갔고, 그 애들은 원래 얻을 수 있었을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마력만을 얻게 된 듯했다.
그리고.
그 애들이 여기서 목격했을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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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A)
-스킬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랭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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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나도 볼 수 있겠지.
고대인들의 기술 수준이 높지 않기에 ‘엿보는 눈’으로 구조가 읽힌다.
스킬 ‘형상화’. 이건 마력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를 구현해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시체가 되어 기술 활용을 온전히 하지 못한 장생종은 이걸로 신체 변이나 했던 것 같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선 정말 유용한 스킬이 되어주겠지. 예컨대 지금처럼 뭔가를 복구하고 싶을 때는 특히.
위유우우웅…….
어지럽게 무너져 있던 잔해들로 마력의 빛이 스며들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돌이, 무너지기 전에 갖추고 있던 형태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복구가 끝나고 내 눈에 비친 광경은…….
“벽화?”
거대한 공동의 벽에 정교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다른 부분도 눈여겨볼 만했으나 내 시선은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됐다.
아마도 은마산 전설의 주인공.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얼굴 윗부분에선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여성.
완벽하게 복구하긴 어려워 흐릿한 벽화 속에서 그녀만은 무척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다.
“……닮았네.”
나는 그녀와 닮은 사람을 한 명 안다.
팬텀에서 나와 일하는 멤버. 사교성 없는 토끼.
그냥 닮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걸 본 세아나 진유리는 아예 닮았단 생각도 못 하거나 혹여 생각하더라도 ‘닮았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나까지 그러면 안 되지.
그리고.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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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조직 팬텀의 정규 단원 ‘토끼 가면’이 ‘동쪽으로 흐르는 달’의 당시 소유자였음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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