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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66화 (66/207)

#66화. Chapter 16. 어버이날 (2)

추모 광장에 다녀오자는 말에 세아가 응한 바로 그때 나타난 퀘스트였다.

오늘 오후 6시까지 나와 세아, 유럽의 36 영웅이 그곳에 자리하는 것.

달성하기 어려운 퀘스트는 아니었고, 보상은 아르노 뒤레가 배신한 동기와 당시 정황에 대한 정보 일부분.

클리어 조건으로 추측건대 그렇게까지 상세한 정보는 아닐 터였다. 그 이상은 내가 직접 알아내도록 대략적인 키워드만 몇 개 제시하는 수준이 아닐까. 그 정도만 해도 퀘스트 난도를 고려하면 썩 괜찮고.

해서 영웅 셋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며 제안한 건데…… 어째 반응이 시원찮았다.

“…….”

“왜?”

의아해하는 뜻을 담아 세아에게 물었다. 표정 자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불만스러워한다는 게 느껴져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세아가 나직이 답했다.

“어버이날이고 오랜만에 같이 가는 거니까, 둘이 가면 되잖아. ……오빠랑 나랑.”

“아…….”

퀘스트 클리어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걸 반성하게 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추모 광장인데. 몇 년 만에 세아와 함께 가는 건데.

상황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놓곤 중요한 걸 망각하고 있었다.

설령 홀로그램이 어떤 목적을 위해 내 사고와 행동을 이끌려 해도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하는데.

만약 세아가 싫어하지 않았다면 뒤늦게야 깨달았을지도 모르고, 그건 나로선 무척 뼈아픈 실책이다.

마음으로 한 다짐을 지키는 건 그만큼 힘이 든다.

하지만 다짐을 어기는 건 그와 반대로 너무 쉽다.

지키는 건 매번 지켜야 하지만, 어기는 건 단 한 번만 생각을 바꾸면 쭉 편해진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보다 더 편한 방법을 계속 찾게 될 터.

“……오빠가 생각이 짧았네.”

세아는 내가 자기한테 고마워한단 걸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심정이었고, 그래서 기껍게 웃으며 지금 막 고친 계획을 일렀다.

“응. 그럼 오빠랑 둘이 갔다가, 나중에 그분들 모시고 저녁 대접해드리는 건 괜찮으려나? 샬럿은 너 가르쳐주고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일에 도움을 많이 주셔서.”

그러자 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은근히 궁금해하는 눈치로 물었다.

“저녁 뭐 먹게?”

“뭐 먹고 싶은데?”

“……내가 물어봤잖아.”

“코스 요리?”

난 그런 것도 괜찮고, 서양인도 세 명이나 있고. 하지만 세아가 담담한 어조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샬럿 선생님이랑 밥 먹을 때 맨날 양식만 먹어. 그만 먹고 싶어.”

“그러면 중국 요리나 초밥?”

“여기 한국인데.”

“그래, 한식 먹자…….”

먹고 싶다는데 먹여줘야지. 근데…… 처음부터 ‘한식 먹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되나?

그 점을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세아가 자기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고, 나는 잠깐 쉬고 싶어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쟤는 면만 몇 가닥 먹었으니 잘 모르겠지. 국물이 한강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상당히 짰다. 가뭄에 메마른 강 수준으로.

면도 좀 과하게 퍼져서 라면보단 국수 쪽에 가까워졌고, 콩나물은 이거 물 받아서 제대로 씻은 건지 의문이 드는데…… 그때 그릇을 두고 돌아온 세아가 추궁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안 먹어?”

“아냐, 먹고 있어.”

“…….”

소파로 향한 세아가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누웠다. 뒤편에서 전해져오는 시선이 따가웠다.

이거 혹시 다 먹는지 남기는지 감시하는 건가?

“방에 안 들어가?”

“좀 있다가 소화되고, 양치하고 잘 거야.”

“……밥도 좀 말아서 먹어야겠다.”

사실 그러기엔 배가 부른데. 근데 그냥 먹으려니 너무 짜다. 내가 냄비를 깨끗이 비우고 나니 그제야 세아가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그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거 분명 안 남기고 먹는지 본 거라고.

하긴 요리를 잘하건 못하건 자기가 차려준 거 잘 먹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다 같은 마음이겠지.

연거푸 물을 두 잔 들이켜며 나는 앞으로 내 동생의 요리 실력이 발전하기를 응원했다. 맛있든 없든 안 남기고 다 먹기는 할 건데…… 그래도 좀 심했어.

그리고 둘 다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오후 한 시를 넘겨 있었다. 샬럿 테이트를 비롯한 36 영웅들에겐 오후 다섯 시쯤 추모 광장 앞에서 만나자고 말했고, 수학여행 가던 날보다 더 차림새에 공을 들인 듯한 세아와 함께 나는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때는 오후 네 시에 가까워진 무렵. 차에서 내려 광장 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세아에게 물었다.

“여기 자주 와?”

“그냥…… 가끔. 자주 안 왔어.”

머뭇거리면서도 정직하게 털어놓은 말. 거기에는 미안해하고 면목이 없다는 듯한 기색이 선명했고,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빠도 자주 오는 건 아닌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오려고 하거든. 다음부턴 같이 오자. 여기 들렸다가 저녁 먹고 들어가고, 그러면 좋잖아. 어때?”

“……알겠어.”

이윽고 부모님의 동상이 잘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마침 오후 네 시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뎅, 데엥.

동상 앞에 선 나와 세아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으로 건넨 말은 둘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빠랑 같이 왔다고. 세아랑 같이 왔다고. 기뻐하시면 좋겠다고.

묵념이 끝나고 문득 세아가 혼잣말처럼 일렀다.

“카네이션 같은 거…… 가져 왔으면 좋았을걸.”

“여긴 둘 데도 없잖아?”

“그래도…….”

“이러면 되지 않으려나?”

답하며 나는 손을 휘둘렀다. 세밀하게 자아낸 두 개의 마력이 두둥실 떠올랐고, 부모님 동상 쪽으로 향하며 흰색의 예쁜 꽃 모양을 만들었다.

흰색 카네이션.

죽은 이에게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전해줄 수 있는 꽃. 어머니와 아버지의 주위로 일렁이던 마력이…… 이내 옅어지며 흩어져 사라졌다.

“…….”

세아가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올려다본다. 어쩐지 몹시 곤란해하는 듯하다. 얄밉단 표정 같기도 하고.

그러더니 망설이듯 일렀다.

“……난 그렇게 예쁘게 못 만들어.”

“음, 그러면 안 되는데? 못하면 좀 힘들 건데.”

“안 배웠으니까 못할 수도 있잖아.”

“아, 이거 기말시험 범위에 들어가거든. 이 정도로 못 하면 점수 높게 받기 어려우니까 이제부터-”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거 얘기하지 마.”

결국엔 세아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고, 애초에 장난을 칠 요량이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공부는 차차 가르쳐주고, 오늘은 오빠가 조금 도와주면 되겠다. 오른손만 이리 줘봐.”

“……?”

미심쩍어하면서도 세아가 손을 내밀었다. 전보단 살이 붙었으나 아직도 가냘픈 손목을 살며시 감싸며 일렀다.

“속성이랑 계통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세밀하게 마력 자체만 모은다는 감각으로 해봐.”

“……이렇게?”

세아의 손에 빛무리가 스몄다. 특정한 형태 없이 도화지처럼 순수한 마력. 나는 그 중심부로 내 마력을 들여보냈다.

“아…….”

나름대로 되도록 부드럽게 한다고 했으나 아직은 컨트롤이 미흡했는지 세아가 작게 소리를 낸다.

스킬 같은 걸 발동한 건 아니다. 여태껏 내가 편하게 사용하던 스킬과 특성, 개인적으로 떠올린 발상, 그런 것들 가운데 구현 가능한 요소를 모아 근래 창안한 것이다.

랭크를 수치화한다면 능히 A급을 넘어설, 타인의 마력에 직접 간섭해 속성과 계통을 조절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

슈우우우…….

세아의 손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내 마력과 합쳐진 마력은 어느새 예쁜 흰빛을 띠고 있었고, 꽃을 닮은 모양으로 떠올라가다가…….

피시잇-

조금은 거친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현시점에선 불완전한 기술이라 개량할 여지가 있긴 하네.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세아가 경계하듯 나를 흘겨보며 물었다.

“그거 뭐야?”

“음…… 간섭 계통 마법?”

“마력 속성 연구한다면서. 완전 다른 거 같은데.”

“이거는 발표하려는 거 아니야. 사람들한테 알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오빠 말고는 아무도 못 쓸걸. 누구한테 말한 적도 없으니까 당장은 너도 어디 말하진 말고.”

8.9에 달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한계치에 이른 감각 수치. 내가 겪은 일들과 홀로그램을 통해 얻은 스킬과 특성. 그런 것들을 모두 갖춰야만 겨우 시도해볼 수 있는 마법이다.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다. 보급화는 더더욱 불가능하고. 단 한 명 예외가 있다면 서연희겠지.

눈을 깜빡이며 얼마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세아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일렀다.

“그거 이상해. 하지 마.”

“어? 몸에 이상은 없을 건데.”

조금이라도 그럴 것 같았으면 세아한테 절대 안 했지. 하지만 조금 더 퉁명스러워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마력 들어올 때도 이상하고, 내 마력이랑 같이 나갈 때도 이상하고, 다 이상해. 막, 막…….”

“……?”

재잘재잘 불만을 토로하던 세아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적절한 표현을 고르려는 것처럼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희미하게 발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감기 걸렸는데 감기약 먹은 기분 든단 말이야.”

“어…… 그건 무슨 기분이야?”

되게 구체적인데도 듣는 나한텐 추상적으로만 들리는 말이었다. 애가 그 이상은 말하려 들질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더 다듬을 필요성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겠네.

그렇게 답하자 세아가 숫제 쏘아보듯이 나를 쳐다보며 일렀다.

“오빠 혼자 연습하고, 다 되면 제일 먼저 나한테 다시 해봐.”

“그래도 되나?”

나야 도와주면 좋긴 하지만 지금 반응만 보면 세아한텐 더 안 하는 게 나을 듯한데. 세간에다 떠들썩하게 공개할 마법은 아니고, 서연희에게 봐 달라는 게 낫지 않으려나.

하지만 세아가 몹시 드물게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그렇게 한다고 약속해.”

“어…… 그래, 알겠다.”

그 뒤로 오후 다섯 시까진 편안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추모 광장에 방문한 이들 중 나와 세아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그보다 더 드물게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마웠고, 세아는 말수가 적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모양인지 안색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맞이한 오후 다섯 시.

데엥, 뎅.

커다란 종이 다섯 번 울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내 휴대전화에도 연락이 왔다.

우웅, 웅.

샬럿 테이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지금 도착했고, 우리 부모님에게 인사도 할 겸 그쪽으로 갈 테니 거기서 합류해 식사하러 가자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자기들 쪽으로 오라고 했으면 차선책을 써야 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고, 몇 분쯤 기다리자 저 멀리서 세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키가 훤칠한 여성.

그녀의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성.

그들보다 두어 걸음 뒤에서 오는 체구가 큰 남성.

샬럿 테이트.

아르노 뒤레.

안드레이 일린이었다.

아르노 뒤레가 손을 번쩍 들어서 나와 세아 쪽으로 흔든다. 그리곤 우리보다 뒤에 있는 동상을 바라본다.

언뜻 슬픔이 비치는 얼굴. 나는 그걸 역겹다 느끼면서도 그가 슬퍼할 이유가 있는지, 그건 진심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했고…….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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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의 세 번째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5월 8일 오후 6시까지 제1 아카데미 고등 과정 2학년 이세아, ‘소드 퀸’ 샬럿 테이트, ‘몽상가’ 아르노 뒤레,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까지 4인과 함께 ‘수호자’ 이시혁과 ‘대마법사’ 정세빈의 추모 광장에 자리할 것

-클리어 보상: ‘몽상가’ 아르노 뒤레가 배신한 동기와 정황의 일부분

-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 마력, 구생(救生), 선의(善意),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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