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69화 (69/207)

#69화. Chapter 17. 몽상가 (2)

각성자가 마력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나뉜다.

하나는 마력 활용.

마력을 얼마나 섬세하게 운용하는지 가늠하는 요소이며, 이걸 높은 수준으로 해낼수록 개별 마법의 갈래를 의미하는 계통을 원활히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마력을 섬세하게 운용하는 각성자일수록 다양한 마법을 고난도로 구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력 감응.

각성자가 발현하는 마력 속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요소이며, 계통이 옷의 디자인이라면 속성은 색상에 가깝다.

각성자는 자연 상태의 마력을 자기 걸로 체화해 지(地), 화(火), 수(水) 등의 속성을 지닌 상태로 발현하며 감응력이 뛰어난 각성자일수록 마력 속성을 폭넓게, 높은 밀도로 구현해낸다.

마력 활용력(계통)과 마력 감응력(속성).

이 두 능력이 마법 운용의 핵심이며 거기에 더해 보유량, 순도, 회복력, 출력 등 다양한 요소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마법사와 마법의 급수 · 위력 · 효과를 평가한다.

그리고 마력 활용과 마력 감응 중 어느 쪽이 더 선천적인 재능과 직결되는 요소냐고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건 단연 감응력 측면이다.

활용력은 훈련과 이론의 습득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이쪽도 그리 쉽다곤 말 못 하지만, 그래도 노력이 수반된다면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 드물게나마 타고난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들도 있고.

하지만 감응력은 다르다. 충분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거머쥘 거라 섣불리 장담할 수가 없다.

가령 수 속성 감응력이 아예 없는 각성자는 아무리 뛰어난 교수자가 가르쳐줘도 수 속성 마력을 발현하지 못한다. 무정형의 마력이 어떻게 수 속성을 띠는지, 그 감각을 애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속성도 마찬가지고.

모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모른다.

아는 사람도 선천적으로 이만큼 할 수 있다고 허락된 범위 내에서만 특정한 속성을 다룰 수 있다. 그조차 있는 힘껏 노력하고 훈련한단 전제하에.

천 년 마학 역사에 새겨진 법칙이 그랬고…….

그 굴레를 처음 깨부순 천재가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이전에 나타났다.

내 어머니. 대마법사 정세빈.

그녀는 마력의 모든 속성을 동시에 다뤘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

운도 아주 좋았다.

<세계의 수호자>의 후반부.

악마의 14 군주 중 하나이자 양쪽 세계를 통틀어 속성 마법의 일인자였던 세이리스. 그녀와 사투를 벌이며 위기에 처한 정세빈은 무의식중에 되뇌었다.

세이리스의 모든 마법.

모든 단일 속성과 모든 복합 속성.

그 모든 것들이…… 어쩐지 비슷한 것 같다고.

중요한 건 마력 그 자체이며, 모든 속성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남는 건 자연적인 마력뿐이라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나 여태 그 누구도 구체화하지 못한 경지다. 속성의 근원인 자연 마력으로 모든 속성을 발현하는 것.

문득 자신이 그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 정세빈은 세이리스가 쏘아낸 압도적인 공격을 맞이해 힘겹게 마력을 움직였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어느샌가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띠고 있었고, 그날 악마들은 군주를 하나 잃었다.

그리고 정세빈은 자기 혼자 깨우친 데서 그치지 않았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어떤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당신이 마력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모든 속성을 다루고 있는 거라고.

논문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세계를 지키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자는 수호자 이시혁이겠지. 그러나 평화를 되찾은 세계를 더욱 번영시킬 건 그의 반려인 대마법사 정세빈이라고.

그녀는 단 한 편의 논문으로 그런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이십 년 넘게 지난 현재.

이제 각성자들은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고 각자 타고난 감응력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래도 불가능은 아니게 되었다.

대마법사 정세빈의 연구가 그걸 가능케 했다.

내 어머니는, 틀림없이 세상을 한 번 변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서상욱 교수의 연구소에서 내가 진행 중인 연구를 자세히 들은 아르노 뒤레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먼저 축하부터 해야겠군. 진, 너는 네 어머니를, 세브를 뛰어넘었다.”

‘진’이라는 건 그가 최근에 내게 붙인 애칭이다.

‘이도진’에서 제일 마지막 글자만을 부르는 방식.

어감이 낯간지럽긴 했으나 그렇게 부르지 말라 한들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고, 그건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나는 확고한 어조로 그의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칭찬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듣는 저부터도 그건 도저히 인정을 못 하겠는걸요.”

“그런가? 그럼 정정해두지. 너는 향후 십 년 안에 세브를 뛰어넘을 거다. 그만큼의 변혁을 이 세상에 가져올 거야. 내 전 재산을 걸고 내기해도 좋고, 이건 네가 겸손한 것과 전혀 무관한 문제야. 나는 분명히 그렇게 판단하고 있으니까.”

“…….”

예상보다도 반응이 훨씬 격한데.

그의 전공 분야와 상통하는 바가 있어 더욱 고평가하는 게 아닐까 싶고.

특정한 공간-자연적인 마력.

마력 감응력-마력 속성.

각자 둘끼리는 연결이 된다.

모든 공간에 자연 마력이 존재하고, 각성자가 자신의 걸로 체화한 마력은 감응력을 통해 속성으로 구체화하니까.

그렇다면…….

그 네 요소를 모두 한 번에 연결하면 어떨까.

내 어머니 정세빈은 속성에서 자연 마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 연구는 그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자연 마력에 내포된 특정 속성만을 구별해내고, 그걸 각성자 개개인의 마력 감응력을 올리는 매개체로 삼는다……. 어떤 곳에 있는 자연 마력이냐에 따라서 효율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다……. 진, 내가 보기에 이건 세브가 발표한 그 논문에 절대 뒤지지 않는 연구야. 이런 걸 대체 어떻게 해낸 거지?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발상 자체는 가능하겠지. 나도 생각만으론 마법의 신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실제로 결과물을 만드는 건…… 너는 내가 평생 봐온 사람 중 가장 천재적인 마학자다. 반론의 여지가 없어. 세브보다 위야. 네게 무슨 지원이 있었지? 아무것도 없었어. 이 연구소의 실험 설비 말고 네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게 뭐가 있지? 내가 알기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네가 가진 재능을 너 스스로 낮게 평가하지 마라. 이건 선배 마학자로서 해주는 조언이야. 너는 앞으로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고, 네 발상에 스스로 선을 그어두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아르노, 그러다 숨넘어가겠어요.”

평소의 쾌활한 말투에서 연상시키기 어려운, 너무도 심각한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이어나가던 그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아, 실례했군. 그러게 좀 적당히 대단한 걸 가져왔어야지. 여하튼 내 생각은 그래. 이 연구는 성공할 거고, 나는 네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그야 무조건 답을 알려줄 수 있다는 보장은 못 해주겠지만 여럿이 궁리하면 그래도 돌파구가 나오지 않겠어? 인력도, 예산도, 장비도 내 힘이 닿는 한은 지원해줄 테니까.”

“……고마워요.”

그렇게 답하며 나는 본론을 언제 꺼낼지를 가늠했다.

물론 이 연구는 거짓이 아니다. 나 혼자 진행해도 그리 머지않은 시일 내에 명확한 결과물까지 발표할 수 있을 거다.

무작정 퍼주면 오히려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 방어 구성체 때처럼 미리 대비해둬야겠지만, 그것까지 고려해도 반년이다. 길어도 반년 내에 세간에 공개할 수 있겠지.

그래서 아르노 뒤레를 찾아온 진짜 목적은 사실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놈을 은마산으로 끌어들이려고.

그곳의 유적 안에 머무를 때 무언가 상당한 단서를 얻은 게 있다고 말하려고.

아마 놈은 들떠서 은마산으로 향하겠지. 특정 지역과 토지를 자기 마법의 핵심 기반으로 다루는 자이니 제 연구를 위해서라도 흔쾌히 가보려 하리라.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은 걸 보니 본인의 연구 때문이 아니라 날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갈 듯하고.

그리고…….

내가 은마산을 언급하려던 바로 그때.

아르노 뒤레가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일렀다.

“네 연구를 도와주면서 어쩌면 나도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어.”

“네?”

“아, 이런…….”

뜬금없는 말에 내가 되묻자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무심코 실언을 했다는 듯한 표정. 그러더니 망설이는 기색으로 침묵했다.

나는 차분히 기다렸고,

이내 아르노 뒤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질적으론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 거나 마찬가진데…… 나한테는 오랜 꿈이 하나 있거든.”

“꿈이요?”

‘꿈’이라는 단어가 몹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불현듯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 빠르게 스며온다.

당장 화제를 돌리라고. 놈이 하는 말을 더 들으면 안 된다고.

그러나 마음 반대편에서는 다른 말을 속삭인다.

들어야 한다고.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게 옳다고.

나는 후자를 택했고, 그가 이어서 말했다.

“진, 나는 이 세상에서 균열을 없애버리고 싶어.”

“균열을요?”

다른 세상과 연결된 통로.

악마의 수장이 열었고, 36 영웅과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서서히 사라질 예정이었고, 그러나 대균열 이후로 다시금 활발해진 현상.

대균열을 여는 데 관여한 장본인이.

배신자 아르노 뒤레가.

그걸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당신이 무슨 염치로 나한테 그따위 말을 꺼내는 거지?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말이었고, 놈이 다짐을 털어놓듯이 일렀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없애는 건 아니야. 어느 한 곳에 몰아넣을 뿐이지. 특정 지점에, 특정한 시간대에만 균열이 발생한다면…… 그건 균열이 소멸하는 것과 썩 다르지 않겠지? 예기치 못한 균열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몬스터와 싸울 수 있겠지. 비각성자들이 죽을 일은 없고, 각성자들도…… 그랬으면 좋겠군. 나는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누구의 목숨도 해칠 수 없기를 바란다. 내 소원이 그거야.”

여기까지 들은 이상, 놈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차라리 균열 현상 자체가 완전하게 없어지는 게, 그 편이 더 낫지 않나요? 어째서 균열 현상을 남겨두고 싶어 하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하하, 역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군. 이래서 말을 할까 고민했던 건데.”

놈이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곤 두 눈에 의지를 가득 담은 채로, 그러면서도 안타까워하며 내게 말했다.

“마력이 사라지면…… 그걸로도 피해를 볼 사람이 생기지 않겠어?”

“예를 들면요?”

“많지, 아주 많지.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 마력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힘이 들 사람들. 그리고 마력 없인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한 명 알지.”

“그게…… 누구죠?”

그가 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는 것처럼, 상냥하게 걱정하는 목소리로.

“벌써 십 년도 넘게 예전 일이지만…… 로티가 더는 살고 싶지 않아 했거든.”

아르노 뒤레가 거론한 로티.

그건 샬럿 테이트에게 놈이 붙여준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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