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Chapter 17. 몽상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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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킬 더 이블> 2권 종료 전까지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을 한 가지 습득하고, 완전한 형태로 발동할 것
-클리어 보상:
1) OX 질문 1회
2) 주관식 질문 1회
3) 무제약적 소질 포인트 0.1p
4) 소지한 스킬 및 특성 중 A 랭크 이하를 택일해 1단계 랭크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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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갑자기 왜 그러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많이 감동적인 이야기라서.”
“하하, 그런가? 하긴 앤디가 과묵하긴 해도 정말 좋은 사람이지.”
의아해하면서 묻는 말에 둘러대자 아르노 뒤레가 기껍게 웃었다. 여상스러운 어조로 그와 대화를 이어나가며 나는 내심 생각했다.
굉장히 후한데…… 라고.
<킬 더 이블> 2권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서브 퀘스트.
클리어 조건은 사실 간단했다.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을 습득하는 것. 은마산에서 이미 경험해본 바 있다.
장생종과 싸우며 스킬의 형태로 구체화한 S 랭크의 마력흡수.
그리고 검은 심장의 랭크가 상승하며 습득한 SS 랭크의 존재흡수.
그 두 가지 스킬처럼 이번에도 스킬을 하나 습득하라는 거다. <킬 더 이블> 2권 종료 전까지 완전한 형태로 발동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정말 간단한 퀘스트였고…….
그러나 어떻게 클리어해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진 않았다.
은마산에서 검은 심장이 반응한 건 내 의도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일깨우고, 어떻게 스킬을 습득해야 할지가 현재로선 미지수다.
다만 클리어 보상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권 단위 에피소드에 대한 클리어 보상에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정도.
OX와 주관식 질문을 1회씩 제공하니 정보 측면에서도 상당히 큰 보상이고,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3번 항목의 무제약적 소질 포인트.
말 그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소질 항목 중 하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걸로 다른 걸 올리는 건 낭비겠지. 무조건 ‘감각’을 올려야 한다.
8.9라는 한계선에 머무르고 있기에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올릴 엄두도 내지 못할 그 소질을 상승시키는 데 써야 할 포인트다.
4번 항목, 소지한 스킬 및 특성 중 A 랭크 이하인 능력의 랭크를 1단계 올리는 건…… 물론 신중하게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엿보는 눈’에다 쓰는 게 옳은 선택일 듯하고.
어쨌거나 네 가지 모두 내게는 무척 유의미한 보상이었고, 고작해야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 하나를 습득해 얻을 수 있다기엔 너무 지나치게 좋은 보상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달성할 방법이 묘연하다 해도 이건 아니야.
툭 까놓고 말해서,
홀로그램이 왜 이렇게까지 퍼주려는 건지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나를 속여 아르노 뒤레를 먼저 제거하려던 게 사실이라면 그 속내가 발각돼 보상 정책으로 주려는 걸까.
우스갯소리처럼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그 정도로 양심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보상이 과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거고, 그걸 알아내는 게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우선 떠오른 생각들을 모두 정리한 나는 아르노 뒤레와 살갑게 대화를 나눴다.
내 부모님에 관한 얘기.
아르노 뒤레 자신과 안드레이 일린, 샬럿 테이트까지 세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내 연구에 관한 이야기.
“데이터를 얻는 데 괜찮을 법한 공간은 내 쪽에서 찾아봐 주지. 기왕이면 서울 근교의 지역들이 좋겠지?”
“그러면 저야 편하죠.”
“좋아. 일단 내 선에서 자료 요청부터 하고, 답사한 다음 제일 괜찮은 곳들로 알려줄 테니 네가 확인하면 되겠군. 그때도 거들어줄 의향이 있고.”
“저는 좋아요.”
약속을 잡을 때 예상한 반응과 썩 다르지 않았다. 은마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면 아르노 뒤레는 흔쾌히 그곳으로 향했겠지.
하지만 그 부분은 현재로선 보류해야 하고, 어느덧 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넘은 터라 나는 그에게 일렀다.
“이번 주말쯤에 다시 찾아뵐게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제일고로 가려고?”
아르노 뒤레가 물은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아 학교 마칠 시간이라서. 걔가 매번 차로 학교까지 태워다주고 집에 모셔오고 하니까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됐지 뭐예요.”
장난스럽게 흉을 보듯 한 말이었으나 사실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아르노 뒤레도 그걸 아는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그래서 좋은 거지?”
“뭐, 그렇죠.”
연구실을 정리한 우리는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르노 뒤레는 잠깐 산책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차 문을 열려는 내게 문득 대견함이 담긴 듯한 어조로 일렀다.
“진, 너는 좋은 오빠야.”
“그런가요? 그냥 밥 잘 먹이고 부족한 거 없이 키우려고는 하는데.”
내가 세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그보다도 많은 걸 해주고 싶지만 잘 하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고, 그러나 아르노 뒤레가 힘주어 말한다.
“그만하면 충분히 좋은 오빠지. 네 부모님, 리와 세브에게는 좋은 아들이었을 거고.”
“그 부분도……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아르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려나요.”
“그래, 내가 보증하지. 그런데…….”
“네?”
운전석에 타려던 나는 하던 말을 멈춘 그를 쳐다봤다. 아까까지와는 달리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은 그가 이어서 말했다.
“좋은 아들이고, 좋은 오빠인 건 확실한데…… 남자로서 착할지는 잘 모르겠는걸.”
“네?”
뜬금없는 말에 되묻자 장난기와 진심을 반씩 담아낸 듯한 목소리로 그가 일렀다.
“그야 연인으로서 아주 매력적인 남자인 건 틀림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넌 연인에게 마음고생을 많이 시킬 느낌이야.”
“어…… 근거는요?”
“그건 모르지. 그냥 내 느낌이 그런 거니까. 여태 사귄 연인들에게 그런 이야기 자주 듣지 않았던가? 분명 용기 있는 사람이 한 번 정도는 말했을 거고, 듣고도 반성하지 않았다면 그건 좀 심각한데?”
“여자친구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오, 이런. 내 생각보다 더 심각했군. 지금껏 만난 여성 중 단 한 명도 연인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이거 조언이나 좀 해주려 했더니 그 정도로는 안 될-”
“……또 연락할게요.”
해명보단 회피를 택한 나는 차를 몰아 제일고 방면으로 향했다. 세아가 하교할 시각까진 꽤 여유가 있고, 조금 느린 속도로 운전해나가며 복잡하게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가정.
아르노 뒤레가 자신은 결백하다고 생각할 경우.
이때는 그의 연구자료를 빼돌린 또 한 명의 배신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안드레이 일린이지만 다른 범인이 존재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고, 이 가정에서 여러 의문이 파생된다.
자료를 빼돌린 자가 누구인지.
어떤 방법으로 빼돌렸는지.
진정한 배신자가 있다면 그가 배신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르노 뒤레와 홀로그램.
“…….”
아르노 뒤레는 분명 내 부모님의 사망에 일조했으며, 홀로그램은 그를 배신자라고 지목했다.
이건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단지 그런 걸까.
자신의 연구가 대량살상무기에 활용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과학자들처럼, 그저 그렇게 영향을 미친 것뿐일까.
광의적 관점에서의 타살이라는 건 적어도 아르노 뒤레에게 있어선 그런 의미일 뿐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는 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배신자로 분류된 걸까.
홀로그램이 악의적으로 거짓 정보를 알려줬다면 그 목적이 뭘까.
아니면 홀로그램의 기준으론 연구를 진행한 것만 해도 배신자라 지칭할 수 있었던 걸까.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을 습득해 발동하라는 서브 퀘스트는 정확히 어떤 결과를 노리고 있는 걸까.
<킬 더 이블> 2권 후반부의 메인 사건은 어떤 걸까. 내가 떠올린 상념의 일부분, 혹은 그 모두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난삽하게 얽힌 정보들을 지금 당장은 도저히 한 줄기로 이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차가 붉은 신호에 멈춰서 맞이한 여유, 나는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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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 ‘영웅의 제자들’이 진행 중입니다.
-2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성장]
-진행률: 64.1%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2권 종료 시점, 36 영웅을 한 명 이상 살해하면서도 테러조직 팬텀이 용의선상에서 멀어질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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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의 진행률도 이젠 2/3 가까이 상승해 있고, 남은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규모가 큰 사건 하나 정도만 전개되고 나면 가뿐히 마무리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마도 6월 전에 끝이 나지 않을까.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리 짐작하고 있고, 솔직히 확신은 서지 않았다.
진행률로는 35% 남짓.
실제 시간으로는 3주에 못 미치는 기간.
그 안에 모든 의문을 풀어내고 원하는 결과를 거머쥘 수 있을지.
해내고 싶은 건 분명하나 거기까지 이르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그런 답답한 심경을 가누며 차를 몰아가다 보니 어느새 제일고 교문이 저 멀리 시야에 나타났다.
오후 여섯 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세아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혼자 집에 가야 할 줄 알고 있을 텐데 갑자기 내 차가 보이면 놀라겠지.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티를 내려고는 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나 자신도 유치하다 싶긴 하지만…… 그 정도는 세아도 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일 분쯤 시간이 흘렀다.
아직 교정을 나서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고, 그즈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아는 내가 담배 피우는 걸 되게 싫어하지만 빨리 피우면 딱히 알지 못하겠지.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나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내가 차를 대놓은 곳에서 이삼십 미터만 가면 흡연구역처럼 마련된 장소가 있어서.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디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던 그때.
우웅, 우우웅…….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세아가 연락한 줄 안 나는 담뱃갑을 집어넣으며 뭐라 답할지를 생각했다.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연기해야 애가 속아 넘어가려나.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휴대전화를 들었고…….
그러나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곤 나도 모르게 다시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발신인…… ‘한세라’.
십여 초쯤 전화벨 소리가 울린 다음.
나는 전화를 받고 말했다.
“여보세요?”
<뭐야? 목소리가 안 좋네.>
세라가 내게 일렀다.
내가 오래도록 알아온, 무척 듣기 편안하고 기분 좋게 서늘한 느낌을 주는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