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Chapter 18. 가정 방문 (2)
‘아니, 저기요…… 이건 좀 아니지…….’
마음으로만 전한 말은 이도진에게 닿지 않았고, 유해빈의 애타는 심정은 모른 채 그가 태연한 어조로 묻는다.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이 수업, 과목 이름이 뭐죠?”
“마법역학이요!”
“마법역학…….”
이백 명 가까운 학생들이 동시에 답했고, 그들의 어조에 실린 힘이 극단적으로, 크게 둘로 나뉘었다.
그중에 다수인 2/3 넘는 학생은 상당히 힘차게.
그리고 유해빈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은 의욕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음…….”
하지만 그걸 눈치챈 듯하면서도, 이도진이 아주 뻔뻔스럽게 일렀다.
“이번 조별실습은 외부 마력, 정확히 말하면 타인과 협력하는 작업에서 마력 구성체를 원활히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에요. 이 부분이 숙달되어야 더욱 실질적인-”
이도진이 설명을 이어나갈수록 강의실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어 나갔고, 유해빈은 재차 들리지 않게 되뇌었다.
‘아주 말은 청산유수지…….’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운 상황.
처음엔 내키지 않아 하던 학생들도 점차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고, 서상욱 교수는 매번 그랬듯 편안한 자세로 강의를 ‘직관’하는 중이다. 본인이 교수인 주제에 그런 자각은 전혀 없는 듯한 모습.
그리고 이도진의 물 흐르는 듯한 언변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건 이제 극히 일부의 학생들뿐이었다.
우선 유해빈 자신.
그 외엔 단체실습이라는 것 자체를 내키지 않아 하거나 자기가 맡을 일이 많으리라 직감한 십여 명.
물론 유해빈은 그 두 가지 모두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별실습은 무슨. 그냥 인성 테스트라고 하지.’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절대 안 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말고도 할 사람이 있다 싶으니까.
틀림없이 그렇게 흘러갈 텐데…… 이도진은 지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책임감’을 입에 담고 있다.
“단순히 지식만 배워 가는 것보단 여러분이 앞으로 졸업해서 해나가야 할 일에 도움이 되게, 팀워크 능력을 향상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고요.”
유해빈은 싸늘하게 고개를 저었다.
‘웃기시네.’
책임감을 기르느니 뭐니 번지르르한 말은 모두 거짓이다. 이십 년 가까이 살아왔는데 고작 조별실습 하나로 바뀌겠느냔 말이다. 차라리 개별 학생들의 책임감을 본다고 했으면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겠지.
‘어차피 한두 사람만 고생한다니까…….’
그러나 일개 학생으로서 거부하긴 어려운 형국.
해서 그 시점에 유해빈은 생각했다.
‘이기지 못하면 합류하라고 했지?’
조별실습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안 하는 사람’ 쪽에 서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 아니겠는가.
왜냐면…….
‘나 말고도 할 사람 있겠지.’
이건 기실 배짱 싸움에 가까웠다. 속된 말로 후달리는 사람이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단 한 명, 싫든 좋든 거의 필연적으로 참여도가 가장 높아야 하는 조장만 제외하고.
‘보자…… 내가 조장 안 하려면…….’
제일 뒷자리에 앉은 유해빈은 강의실 전체를 시야에 담았다.
곧바로 주목한 위치는 맨 앞자리였다. 언제부턴가 원래 앉던 쪽으로 복귀하고,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도진이 주로 서 있는 위치 바로 앞을 지정석으로 삼은 여학생. 그 이름은 진유리.
그녀가 이도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손에 쥔 펜으로는 바삐 필기를 해나가고 있고.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실로 기가 찬다 해야 할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유해빈은 남몰래 되뇌었다.
‘쟤랑 같은 조 되기만 하면…….’
그렇게만 되면 위대하신 진유리 님이 알아서 다 해주시지 않을까.
자료조사도, ppt도, 발표도, 실제 구성체 제작도, 제출할 보고서도, 그 외의 모든 것까지 본인이 도맡아 완벽히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훌륭한 친구니까.
그리고 유해빈은 옆자리를 흘끗 쳐다봤다.
전혀 열정적이지 않은 표정으로 볼펜만 서투르게 돌리고 있는 이세아가 보인다.
‘얘는 아니지.’
친한 친구인 건 친한 친구인 거고, 시누이(예정)인 건 시누이(예정)인 거고, 또 아닌 건 아닌 거다.
여태 제1 아카데미에 다니며 조별과제를 진행한 수업이 한둘이 아니며 이세아와 같은 조가 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유해빈이 아는 그녀는 조별과제에선 1인분 정도 해주면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수준이었다.
‘하면 잘하는데, 애가 의욕이 없어서.’
아예 참여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실습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 언젠가 이유를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간이랑 기말 실기 말고는 귀찮아서 신경 쓰기 싫다’라고.
그런 친구이니 유해빈은 이번엔 냉정하게 판단할 계획이었다.
‘진유리한테 이세아 한번 제대로 이겨보자고 설득해서 같은 조 되고, 다른 애들도 드림팀으로 만들어서…….’
자신은 편안한 승차감을 만끽하리라. 안타깝지만 이세아까지 태워줄 순 없다. 캐리 받는 건 한 명으로 족하니까.
그리고…… 이도진이 또다시 쓸데없는 참견을 주절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평가는 다각적으로 볼 거예요. 단지 얼마나 뛰어난 구성체를 만드는지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조원 전체의 참여, 논리적인 정합성, 발상, 효율,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고려할 겁니다. 마지막 항목은 보면 알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열심히 한 학생에게 가산점이 크게 주어질 겁니다.”
“앗…….”
참여도 그 자체가 주요 평가 항목이라니. 이렇게 되면 놀고 싶어도 놀 수가 없다. 조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유해빈은 조금 침울해졌고, 하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진유리와 같은 조에 속할 수만 있다면 그래도 좋은 조건이니까.
하지만…….
망할 이도진이 기어코 완전하게 훼방을 놓았다.
“총원 175명이니까 일곱 명으로 조를 스물다섯 개 만들 거예요. 조원 선정 방법은……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는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순서를 정하고, 다른 학생들을 한 명씩 뽑는 방식으로 진행할게요. 두 번째 뽑을 때는 역순, 세 번째는 다시 반대로입니다.”
“앗, 아아…….”
이도진이 막힘없이 스물다섯 명의 이름을 불렀다. 거기에는 진유리가 속해 있었고, 유해빈 자신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이내 강의실 앞으로 나온 스물다섯 명의 학생들이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했다. 그리고 당당히 일등을 차지한 진유리가 가장 먼저 데려갈 이름을 불렀다.
“저는 이세아로 할게요.”
거리낌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이세아가 선선히 수긍했고, 이제 유해빈은 깨달았다.
‘버림받은 건…… 나였던 건가…….’
일곱 명씩 조가 모두 정해지고 이도진이 일렀다.
“다음 주 목요일, 5월 20일까지 일주일 시간을 줄게요. 결과물 제출은 모든 조가 그때까지 끝내야 하고, 그날부터 하루에 다섯 개 조가 십 분씩 발표를 진행할 거예요. 오늘 남은 수업 시간은 조별로 상의도 하고, 수업 끝날 때까지 조장을 정해서 알려주면 돼요.”
드르륵, 드륵.
일제히 일어난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조가 있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조원을 정하기 위해 강의실 앞으로 나섰던 유해빈도 자신이 속한 5조의 조원들이 모인 곳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섯 명의 조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상태.
이윽고 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 조장은 해빈이가 하는 게 제일 낫겠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정치에서 밀린 유해빈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강의실 앞쪽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의 이름을 하염없이 되뇌기만 했다.
‘이도진…… 이도진……!’
***
-유해빈: 이봐요 이조딘 씨
-유해빈: 내가 당신을 아주 잘못 보고 있었어...
-이도진: ? (18:50)
세아와 함께 귀가한 다음, 잠시 산책을 다녀온다고 나와 있는데 갑자기 날아온 메시지였다.
이름도 이상하게 부르는 데다 원망이 가득해 보이길래 물음표만 띄우니 유해빈이 재차 메시지를 보내왔다.
-유해빈: 당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유해빈: 아니었어......
-유해빈: 당신도 다른 교수들처럼 학생들 고생하는 건 생각도 안 하고 조별과제나 내주는 그런 못된 사람이었던 거야...
-이도진: ?? (18:51)
-유해빈: 스물다섯 살인 주제에...
-유해빈: 대학 졸업하고 일 년 반도 안 지났는데 어째서 학생들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거지?
-유해빈: 이제 가르치는 쪽이라고 예전 일은 잊어버린 건가? (18:52)
-유해빈: 벌써 그렇게 타락해버린 건가?
-이도진: 워 워
-이도진: 릴렉스
-유해빈: 대답해!! (18:53)
물론 나는 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유해빈 얘가 조장 됐다고 완전 정신이 나갔네…….
하지만 아쉽게도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애초에 조별로 진행하자고 한 건 내가 아니니까. 그냥 학교에서 시키니까 한 거지.
우웅- 우우웅-
읽고 답을 하지 않자 연이어 휴대전화가 울렸다.
또 무슨 소리를 해놨나 싶어서 확인해 보니…….
-유해빈: 사진 파일을 첨부하셨습니다. (18:54)
휴대전화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보내온 거였다.
제1 아카데미 익명 커뮤니티, ‘제타’에 올라온 글.
-
글쓴이: 익명 (글쓴이) (수정 / 삭제)
날짜: 5/13 18:25
제목: 마법역학 조별 뭐냐
내용: 이도진 교수님까지 이럴 줄은 몰랐음......
조 편성이랑 평가 기준이랑... 이건 쵸큼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그런가??
이거 지금이라도 우리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얘들아?
-
“…….”
잠시 침묵하며 그 사진을 응시하던 나는 휴대전화로 몇 가지 동작을 실행했다.
그리고 유해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도진: 사진 파일을 첨부하셨습니다. (18:56)
몇 초 지나지 않아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나타났고, 유해빈이 답을 했다.
-유해빈: 앗........
-유해빈: 이걸 어떻게.......
-이도진: 나도 아이디 있어서
유해빈 이 자식이 글 본문만 잘라서 보낸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보니 댓글 여론은 정반대였다.
-
댓글:
-익명 1: 난 좋은데?
└익명 2: 22222
└익명 4: 333333
-익명 3: 조 편성 괜찮지 않았어..? 평가 기준도 무작정 결과 잘 나온 거보다 열심히 하면 그거 평가해주신다고 해서 난 좋았는데 ㅎ 나만 그런가??
└익명 5: ㄴㄴ 나도 좋음 글쓴 애만 빡친 듯 ㅋㅋ
-익명 6: 우리 조딘이 욕하는 건 좀 아니지 ㅋㅋㅋㅋ 꼬우면 전학 가라고 ㅋㅋㅋㅋㅋㅋㅋ
-
-이도진: 애들 다 좋다는데
-유해빈: 어... 그래도 글쓴 애는 저랑 생각이 비슷하니까...
-유해빈: 이런 의견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도진: 그거 확실하냐?
-유해빈: 네...? (18:57)
이거 진짜 안 되겠네.
다시 휴대전화로 몇 가지 동작을 수행한 나는 유해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도진: 사진 파일을 첨부하셨습니다.
-이도진: 해빈아 조금만 더 정직하게 살자...
-이도진: 많이도 아니고
-이도진: 조금만
-유해빈: 아........ (18:58)
지금 보낸 사진은 유해빈에게서 받은 캡처에 어떤 표시를 하나 해둔 거였다.
제일 윗부분.
[글쓴이: 익명 (글쓴이) (수정 / 삭제)]
(수정 / 삭제).
이건 글 쓴 본인한테만 보이는 거였지, 아마.
우웅, 우우웅-
득달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유해빈이었고,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저기이, 교수님…… 아니, 선배님, 오빠…… 제가 사실은, 그게 아니라요…….>
“…….”
나는 이 안타까운 애한테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단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를 듣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한 부드럽고 상냥한 어조로 유해빈에게 일렀다.
“해빈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따라서 해봐라. 알겠지?”
<앗, 네…….>
“‘나 유해빈은.’”
<나 유해빈은…….>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착하고 바른 고등학생으로 살 것을.’”
<차, 착하고, 바…….>
“어? 말 끊긴다?”
<착하고…… 바른 고등학생으로, 살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좋아, 잘했어.”
옅게 손뼉을 치며 흡족하게 이르자 수화기 너머의 유해빈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원망과 창피함이 절반씩 담긴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교수님 솔직히 말해요.>
“뭘 솔직히 말해?”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거죠?>
“응?”
<후우…….>
의아해서 되묻자 뜻 모를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유해빈이 짧게 일렀다.
<아니, 아니에요. 내일 출근하시면 뵐게요.>
“맞다, 주말에 너 부를 수도 있어.”
<왜요?>
“확실한 게 아니라서 내일 학교에서 말해줄게.”
<음…… 알겠어요. 밖이신 거 같은데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들어가라.”
전화가 끊기기 직전에 뭔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지만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저 멀리서 서연희가 내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어서. 나와 마찬가지로 잠시 산책을 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자연스럽게 합류해 몇 분쯤 걷다가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근데 왜 지금 보자고 한 거야? 무슨 일 있어?”
“정확한 시일까진 모르는데…… 조만간 큰 사건이 터질지도 몰라요.”
“어떤 식으로?”
나직한 질문.
나는 예상하는 바를 일렀다.
“균열 기준으로 S급 이상. 그 정도로 상정해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