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86화 (86/207)

#86화. Chapter 21. 파르투스 (3)

그러길 십 초쯤 지났을까. 천장 스피커에서 안내 음성이 들린다.

[기계 오작동으로 잠시 비상경보가 울렸습니다. 저희 쇼핑몰을 찾아주신 고객님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몇 마디 사과 방송이 있고, 본래 그러했듯 흥겨운 음악이 건물 내부로 흘러나왔다. 제어 센터에서 알리기론 오작동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겠지. 여기서 1㎞쯤 떨어진 곳에서 서연희가 일으킨 마력 파동을 감지한 것이리라. 바로 힘을 거두었으니 별일 아니었다고 판단한 걸 테고.

“……됐어.”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했다.

균열이 열린다면 그 중심은 한강 상공. 금방 예행연습을 한 대로 적절한 때 마력 파동을 강하게 발생시키면 일반인들을 권고에 따라 외부로 나가겠지.

헌터들의 전력도 S급 균열을 상정하고 준비해뒀으니 인명 피해의 가능성은 할 수 있는 한 최소로 줄여뒀다고 봐도 좋았다.

남은 건 배신자 처단,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 그리고 향후 활동에 유용할 정보가 있으면 알아내는 정도인데…….

2권 진행률은 79%에 못 미치는 정도. 홀로그램에서 주의를 떼지 않으며 화장실을 나선 나는 세아 일행 쪽으로 다가갔다. 셋 다 표정이 썩 좋진 않네.

“왜?”

“교수님은 못 느끼셨어요? 경보 울리기 전에 좀 이상했는데.”

“나도 느꼈어.”

“저는 그냥 살짝만…….”

어느 정도 내 계획을 아는 유해빈이 운을 띄웠고, 세아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 진유리는 긴가민가하다는 기색.

나는 안심시키듯 일렀다.

“한 번씩 이럴 때 있잖아? 큰일 아닐 거니까 선물부터 정하고 밥 먹자.”

“아, 네. 그리고, 오늘 도와주시는데 식사는 제가 사드려도-”

“유리멘탈 얘 선 넘네. 설마 교수님께서 어? 학생한테 얻어먹으시겠냐고. 너 지금 교수님 무시해?”

“야! 내가 언제-”

“그러는 해빈 학생은 콕 집어서 나한테 얻어먹고 싶은 거 같은데.”

“음…… 그런 감이 있기는 하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는 유해빈을 제재한 건 세아였다.

“나중에 왔으니까 예산 초과야. 네 돈으로 먹어.”

“이세아 너는 왜 요즘 나 자꾸 구박하냐……?”

유해빈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침울해하려니 진유리가 내게 일렀다.

“저기 교수님…….”

“응?”

“선물 사고, 밥 먹고 나서요. 저 영화표 아빠한테 받은 게 있어서…… 이거도 오늘 오랜만에 놀러 나왔는데 쓰고 가고 싶고, 그으, 그래서…….”

“영화? 무슨 영화 볼 건데?”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유해빈의 질문을 퉁명스럽게 되받은 진유리가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뱀파이어와 헌터가 남녀 주인공인 로맨스 스릴러 영화가 어떻겠냐고. 유해빈이 반색하며 말했다.

“어? 난 그거 좋아. 너 그래도 영화 고르는 눈은 나쁘지 않네.”

“…….”

저 자식 분명히 자기 집에서 얘기 나왔을 땐 나랑 비슷한 생각이라지 않았나? 예고편에 몰아준 거고 본편은 별로일 것 같은데.

하지만 세아는 좋아하는 듯하고, 시간이 맞으면 그걸로 보자고 내가 조건부 동의를 표하자 진유리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네, 표도 세 장 있으니까 따로 안 사셔도 돼요!”

“야, 유리멘탈. 세 장인데 왜 안 사도 되는데?”

“세 장이니까.”

“교수님…… 얘들이 저 따돌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빈이 네 건 내가 사줄게.”

“흐흥, 역시. 제가 교수님 좋아하는 거 아시죠?”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그러면 팝콘이랑 콜라는 네가 사.”

마뜩잖다는 듯 흘겨본 세아가 쌀쌀맞게 이른 말. 그러자 유해빈이 갑자기 손바닥을 뻗으며 외쳤다.

“야유 멈춰!”

“……?”

세아는 물론이고 나와 진유리까지도 이상하게 쳐다봤고, 유해빈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니, 뭐…… 계속 관중석에서 저만 못살게 굴길래…….”

자기랑 진유리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는 거라 관중인가? 세아가 여전히 새침한 말투로 일렀다.

“네가 늦게 왔잖아.”

“에이, 나 정도면 늦은 거도 아니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대화가 이어지며 천천히 걸어가던 와중에 내 눈에 띈 매장이 있었다.

“저기서 넥타이라도 볼까?”

“네! 좋아요!”

힘차게 답한 진유리가 세아와 함께 매장으로 향했고,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유해빈에게 물었다.

“뭐 봐?”

“쟤 아버지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있었어요. 어떤 스타일 넥타이 좋아하시나 해서. 음, 진짜 곧 생신이시긴 하네요?”

“그럼 아니겠냐. 들어가자.”

“네. 근데 교수님……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그거 영화 있잖아요, 보스랑 같이 보러 가기로 하지 않으셨나? 제 기억으론 그러셨던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서연희랑 약속 비슷하게 했지. 나는 재빨리 입단속을 시켰다.

“너 내가 이거 본 거 비밀이다.”

“음…… 글쎄요? 제가 보스를 너어~무 존경해서 거짓말은 잘 못 할 것 같은데, 으음…….”

“원하는 게 뭐야.”

유해빈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영화 보러 갔을 때 사람이 넷이니 팝콘은 두 개를 사야 할 텐데, 세아가 팝콘을 독식할 것 같으니 나랑 자기랑 나눠 먹자고.

“그냥 너 먹을 거 하나 사줄게.”

“에이, 그건 너무 많죠. 교수님이랑 저랑 둘이 먹으면 돼요.”

그다지 어려운 부탁도 아니라 수긍한 나는 내심 생각했다.

팝콘 먹을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기 전에 사건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

오후 여섯 시 무렵.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사고, 이른 저녁까지 먹은 다음 쇼핑센터 최상층의 영화관에 다다른 진유리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전황을 가늠했다.

‘유해빈 쟤는 제일 안쪽 자리 보내고, 이세아 앉고, 그 옆에 교수님 앉으시고…….’

맨 끝자리는 자신이 차지하면 완벽하다.

좌석은 예매했지만 누가 어디 앉을지 정하지 않았고, 들어갈 때 순서만 유의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앉을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심호흡한 그녀는 상영관에 입장했지만…… 어째 잘 풀리지 않았다.

“제가 여기서 볼게요.”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간 유해빈이 예매한 좌석 넷 중 제일 바깥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 앉으라고 배려한 거겠지만 하나도 달갑지 않았고, 이세아가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오빠가 자신의 옆으로 오리라 생각한 것처럼.

그러나 벌어진 이변.

왼쪽에서 두 번째, 다시 말해 유해빈의 옆자리에 앉은 이도진이 말했다.

“해빈이랑 나랑 팝콘 먹고 싶은 거로 골랐거든.”

표를 예매하는 동안 둘이 팝콘을 사 오겠다더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진유리는 이세아의 동공이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를 바꾸려 하기 직전에 냉큼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

“…….”

가만히 보내오는 눈빛이 따가웠으나 양보할 수는 없어 진유리는 이세아를 쳐다보지 않고 일렀다.

“난 팝콘 별로 안 먹으니까…… 세아 너가 가지고 있으면서 먹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세아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영화는 솔직히 지루했다.

물론 명작이었다 한들 집중할 순 없었겠지. 아무리 충격적인 전개라도 그녀의 가슴을 이토록 뛰게 하지 못했을 터였다.

쿵, 쿠웅.

세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몸 중심부에서 손끝까지 퍼져나가는 것만 같다.

이세아는 이런 영화가 취향인지 집중하고 있고, 진유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왼쪽을 봤다.

‘교수님은 재밌으신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를 신중히 생각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한데 그때.

“아…….”

진유리는 작게 소리를 냈다. 시선을 알아챈 이도진이 그녀 쪽을 본 것이다.

일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눈이 마주친 것이건만 몹시도 길게 느껴졌고, 이도진이 싱긋 웃으며 팝콘 봉투를 내민다.

앞서 먹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있어 진유리 자신과 이세아 몫의 팝콘은 이세아가 독식 중이다. 그걸 알고서 먹으라고 준 거겠지.

진유리의 머릿속에 새로운 계획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잘하면…….’

조심스레 손을 뻗은 그녀는 팝콘을 조금 가져가 먹었다. 이건 사전작업용이고, 두 번째가 진짜였다.

스윽.

이도진이 팝콘을 쥐려는 타이밍에 맞춰 뻗은 손.

미미한 감촉이었지만 분명히 닿았다.

“흐으…….”

진유리는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숨결을 흘렸다.

그저 손등끼리 스칠 듯 닿은 것뿐인데 무슨 전기 속성 마법이라도 맞은 듯이 찌릿찌릿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쉽다고 해야 할까. 이도진은 딱히 의식하지 않는 듯하고, 왼편에서 손이 팝콘 봉투로 향하는 것만 흘끗 본 진유리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맞닿은 감촉이…… 아까와는 딴판이었다.

“……?”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진유리는 옆을 바라봤다.

유해빈이 그녀를 미심쩍게 쳐다보고 있다. 방금 손이 부딪친 게 상당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그즈음 이세아가 팝콘 봉투를 내밀었다.

“너도 먹어.”

“아…… 고마워.”

거의 바닥이 보이는 봉투였으나 저렇게 나온 이상 더 시도할 순 없겠지.

덜 튀겨져 딱딱한, 팝콘에 이르지 못한 무언가를 입에 넣은 진유리는 단 한 번 느낀 감촉을 마음에 고이 간직했다.

영화가 끝난 건 오후 여덟 시를 훌쩍 넘긴 시각.

“오늘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그래, 잘 들어가고.”

차에서 내린 그녀가 인사하자 이도진이 살갑게 답했다. 유해빈은 도중에 내려줬고, 이제 자신까지 바래다준 상황.

“세아야, 내일 학교에서 봐.”

“……그래. 잘 가.”

단출하게 인사한 이세아에게 손을 흔든 진유리는 뿌듯한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뜻밖의 사건이 있긴 했으나 선물도 잘 샀고, 영화관에서도 좋았다.

‘내일부터 또 열심히 공부해야지.’

오후 열한 시쯤.

씻고 침대에 누운 진유리는 그런 다짐을 되뇌며 눈을 감았다.

요즘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하지만 한 시간 뒤.

쿠아아아아아아-!

잠결에 취했던 그녀는 문득 들려온 굉음에 눈을 떴다.

곧장 시야에 들어온 것은 창문 밖에 펼쳐진 광경.

한밤중이라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하늘이…… 더욱더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면밀히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단 걸 인정해야 했다.

균열이 열리면 세아를 피신시키려 했지만…… 녹록지 않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권의 메인 사건이 균열 내에서 펼쳐질 거고, 세아는 주인공일 확률이 높은 애니까.

+

<킬 더 이블> 2권, ‘영웅의 제자들’이 진행 중입니다.

-2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성장]

-진행률: 81.3%

+

팔십 극초반대에서 오르지 않던 진행률이 상승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의 갈라진 틈, 균열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해 간다.

우웅- 우우웅-

휴대전화의 각성자 전용 앱으로 온 경고 메시지. 요점은 현재 발생한 균열이 평범하지 않다는 거다.

보통의 균열은 완성되기 전까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완전히 열리고 나선 밖에서 들어올 수 있으나 안에선 나갈 수 없고.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무슨 원리인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이미 안에서도 나갈 수 없단다. 균열 내부와 외부가 단절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과 진유리의 집은 내가 답사한 지역들, 검은 심장이 반응한 삼각형 범위 안에 있다.

위유우웅-

눈앞에 마법적인 홀로그램이 일렁였다.

집에 올 때까지 별다른 일이 없어 사과를 전했던 서연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나한테 연락이 왔어.]

한태강, 윤의성, 심정웅, 서연희 자신까지 급히 소집되었다고.

[그쪽으로 갈 건데 뚫을 수 있을진 모르겠어. 조심해.]

그녀에게 몇 마디 부탁을 전한 나는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을 가늠했다.

방어 시설과 균열 내에 있을 헌터들. 유럽의 세 영웅도 이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

“오빠!”

방문이 벌컥 열리고 잠옷 차림의 세아가 내게 달려온 직후.

쿠웅, 슈아아아아아아-!

밖에서 폭음이 일었다. 이윽고 갈라진 하늘의 중심, 한강 상공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더니…….

피슈웅-!

세 갈래로 나뉘어 지상으로 하강한다. 틀림없이 검은 심장이 반응한 세 지역이었다.

슈우우우…….

하늘 위와 땅으로 흩어진 세 개의 빛이 연결됐다.

일반적인 형태와 다르게 원이 아닌 삼각뿔에 가까운 공간. 그 외벽이 칠흑처럼 까매져 바깥과 통하는 시야를 가렸고, 이제 균열 너머에서 검은 안개에 휘감긴 인영이 등장했다.

원거리 탐지 마법으로 확인한 놈의 외견. 이목구비가 수려하다. 체격은 인간 기준으로 대단히 크면서도 둔중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나는 놈의 정체를 알아냈다.

실제론 처음 보는 거지만 외견에 관한 자료가 남아있고, 내 상상과 아주 흡사하니까.

살아남은 여섯 마왕 중 내가 가장 공을 들여 떠올린 캐릭터.

파르투스였다.

쿠오오오오오오!

놈이 손을 휘젓자 하늘이 거세게 요동치며 검은 마기가 흘러나온다. 드넓은 공간으로 확장돼 가던 검은빛이 나와 세아가 사는 이 아파트까지 엄습해왔고…….

홀로그램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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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반응합니다. (랭크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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