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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87화 (87/207)

#87화. Chapter 21. 파르투스 (4)

당황스럽고 심상치 않은 일이었으나 그와 동시에 두 문장으로 짧게 정리할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

마왕 파르투스가 자신의 마기로 어떤 행사를 취했다.

이어서 두 번째.

<킬 더 이블>의 최종보스 보정인 ‘검은 심장’이 그것에 반응했다.

이걸로 거의 확실해졌다고 봐도 좋겠지.

검은 심장은…… 악마와 관련이 있는 힘이다. 심지어 평범한 악마 수준도 아닐 거고.

어쩌면 마왕을 넘어서는 존재, <세계의 수호자>의 최종보스였던 그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힘일 가능성조차 적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은마산에선 검은 심장이 왜 반응했을까. 거긴 악마와 연관된 게 아니라 토끼 가면이 장생종과 싸운 곳일 텐데.

그리고 한 가지 더.

악마의 손 사건 직후 내가 홀로그램에 물었던 객관식 질문.

이시혁과 정세빈, 이세아와 이도진. 우리 가족 네 사람이 동시에 생존할 방법.

그때 홀로그램이 제시한 보기 중 하나는 검은 심장을 완전히 각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언급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거 각성해서 딱히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은데.

하지만 내 의구심이야 어쨌든 바깥에선 파르투스가 연이어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스으으…… 슈아아아아아-!

놈이 위치한 한강 상공과 이 아파트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건만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아파트 전체가 흔들린다.

쿠과아아아아아앙!

천둥 번개를 방불케 하는 소음이 유리창을 넘어 집 내부까지 전해져 왔고, 그즈음 전화 수신음이 두 곳에서 울렸다.

우웅, 우우웅.

하나는 내 휴대전화, 다른 하나는 세아가 들고 있는 것이었다.

“응, ……응. 알겠어.”

세아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을 때 나도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히 전해온 말을 들었다. 아르노 뒤레가 평소와 달리 몹시 침중한 어조로 내게 이른다.

<진, 들리나?>

“네.”

<다행이군. 아직은 괜찮은 것 같지만 곧 통신도 중단될 거야.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 전하지.>

S급 상당의 균열에 대비한 대피소는 일정 범위마다 마련되어 있다. 이 집과 진유리 집, 유해빈의 집까지 모두 같은 구획으로 묶여 있고, 아르노 뒤레를 포함한 유럽의 영웅 셋도 일단 그쪽으로 올 거라는 말이었다.

<파르투스가 자유롭지 못한 지금이 그나마 대책을 세울 기회야. 진, 네가 꼭 있어야 해. 그럼 대피소에서 만나는->

치지직…….

귀를 찌르는 기계음과 함께 아르노 뒤레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의 말대로 균열이 강화됨에 따라 통신마저 원활하지 못했고, 나는 겨우 유해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도진: 대피소

-유해빈: ㅇ (00:05)

그 대화를 끝으로 휴대전화가 아예 먹통이 됐다.

자기 방에서 짚이는 대로 옷을 챙겨입고 내 방에 돌아온 세아가 일렀다.

“유리한테 전화 왔어. 대피소로 온다고.”

“응, 가자.”

세아와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창문 쪽으로 향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다. 양팔을 벌려서 내 명치 부근을 꼭 끌어안은 세아가 말했다.

“셋 세면 뛸 거야. 하나, 둘, ……셋.”

타아앙!

창문 난간을 박차고 뛰어오른 우리는 아래로 쏜살같이 하강했다. 세아의 몸에서 푸른 마력이 흘러나오고, 나도 보조하며 안전하게 착지.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지상은…… 이미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끼이이이익!

신호 따윈 무시하며 거리를 가로지르던 차가 운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멈췄다. 도로는 차로 막혀 마비 상태고, 여기저기서 두려움이 담긴 비명이 들려온다.

세아의 손을 꼭 잡고 대피소 쪽으로 향하며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검은빛을 뿜어낸 파르투스는 허공에 뜬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기실 움직이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 S급 균열이라도 마왕의 강림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니까.

그 증거로 놈 외에 다른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파르투스 하나를 이 세상으로 오게 한 것만으로도 허용량을 한계치에 가깝게 채웠으리라.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이겠지만…… 이건 잠깐의 유예일 뿐이다.

<세계의 수호자> 작중 시점에서도 열네 마왕 가운데 능히 한 손에 들었던 강자. 현재는 놈이 악마 진영에서 가장 강한 축이겠지.

파르투스가 제힘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현존하는 인간 중에선 단신으로 대적할 자가 없을 거다. 만월의 서연희와 싸워도 공방을 주고받는 건 가능할 놈이니까.

나를 잡아끌다시피 챙긴 세아와 열심히 달려 도착한 대피소. 헌터들과 정부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피신한 이들이 바쁜 걸음으로 입장하는 중이었고, 입구 부근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교수님! 세아야!”

“여기요, 여기!”

진유리와 유해빈이 크게 외치며 손을 흔들었고, 유럽의 영웅 세 사람도 우리 쪽으로 급히 다가왔다.

“너희 부모님은?”

“안에 들어가셨어. 샬럿 선생님이-”

“유리는 내가 남으라고 한 거야. 이런 기회를 놓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세아와 진유리가 나누던 대화에 부연한 샬럿이 이어서 일렀다.

“마침 위치도 좋으니까 세아와 유리 둘 다 잘 봐둬야 해. 일 년 훈련하는 것보다 이 짧은 순간이 너희에게 훨씬 도움이 될 거야. 옆에 친구도 좋은 구경이라고 생각하렴.”

말을 마친 샬럿 테이트가 팔다리를 몇 차례 움직이며 준비 운동 같은 자세를 취한다.

대피소 외곽도 마력 결계가 펼쳐져 있으니 안전하다면 안전한 곳이고, 나는 그녀의 계획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다음 말은 나로서도 뜻밖이었지만.

“그럼 아르노, 안드레이, 그리고 도진. 잘 좀 부탁할게.”

“혹시 선생님-”

“혼자 상대하려는 거예요?”

세아와 내가 꺼낸 말에 그녀가 피식 웃는다. 미리 의논한 건지 다른 이들은 놀라지 않았고, 이내 당당한 선언이 이어진다.

“걱정하지 마. 인간이든, 몬스터든, 악마든…… 이 세상에 나보다 강한 자는 없어.”

“그건 알겠으니까 적당히 하라고. 금방 지원군을 데려와 줄 테니까.”

“좋아. 믿고 있을게, 아르노.”

“다녀와, 로티.”

서로에 대한 신뢰가 담긴 대화 직후.

콰아앙!

가볍게 발을 굴러 순식간에 백여 미터 이상 솟구친 샬럿 테이트가 허공에서 다시 한번 발을 뻗었다. 어느새 한강 위에 도착한 그녀를 본 파르투스가 흥미로워하듯 다가간다.

곧 전투가 시작되겠지. 나는 아르노 뒤레에게 물었다.

“저희는 뭘 하죠?”

“나와 앤디, 진 너까지 셋은 로티가 저놈을 막는 틈에 균열의 외곽으로 갈 거야. 위험한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지.”

그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단출하게 전했다.

“진, 나는 이 균열을 알 것 같아.”

“그건…….”

자의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대균열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그의 연구. 그것과 이번 균열이 닮았다는 뜻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감지한 것만 해도 유사점이 충분하니 구멍을 낼 순 있겠지. 내가 주도하고, 진 네가 세부 조정을 담당하고, 앤디가 동력원을 제공해주는 거야. 저 겁쟁이 파르투스가 일곱 명한테 둘러싸여 벌벌 떠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기대하라고.”

짐짓 의기양양해하며 아르노 뒤레가 이른 말.

한데 바로 그때.

내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

-자동발동형 특성 ‘순간예지’가 발동됩니다. (랭크 A+)

+

지금보다 조금 미래의 일인 듯 희미하게만 아른거렸다가 자취를 감춘 장면.

나는 안드레이 일린을 흘끗 쳐다봤다.

놈의 검은 눈동자가…… 청색의 마력을 머금고서 검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우우우웅!

사방이 떨리며 하늘 저편의 검은빛이 폭발했다.

마침내 균열이 완성된 것이다.

키이이익!

우워어어어어!

그리 많지는 않게, 십여 마리쯤 되는 몬스터들이 균열을 타고 넘어왔다.

이제 운신이 가능해진 듯한 파르투스가 텅 빈 허공에서 한 걸음을 내디딘다.

샬럿 테이트도 마주 한 걸음 다가선다.

그리고…….

쿠오오오오오오-!

주위의 모든 것을 불태울 듯이 몰아치는 검은 마기와 새하얀 마력이 서로를 노리며 짓쳐 들어갔다.

***

“이봐, 우리 전에 본 적이 있지?”

파르투스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간 여성을 응시했다. 마른 체구인데도 건강하게 근육이 붙은 체형. 키는 인간 여성 기준으로 꽤 컸고, 얼굴엔 쾌활한 기색이 깃들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쾌활하다기보다는…… 기대감에 가까운 표정.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가 파르투스에게 재차 일렀다.

“다른 놈들은 최소한 두어 번씩은 봤는데 너는 어째 볼 기회가 잘 없더라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엔 오지도 않았지? 우리 쪽에도 소문이 났거든. 파르투스인가 뭔가 하는 놈이 너희 중에서 제일 겁쟁이라고.”

[그랬던가.]

그가 무미건조하게 답하자 여성이 옛 기억을 떠올리듯 이맛살을 찌푸리다 전한다.

“이름이 가이어였나? 너희 열네 마리 중에서 제일 날뛰던 놈. 그놈도 그러던걸. 파르투스는 쓰레기라고.”

[가이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도다. 우리 중에 가히 으뜸가는 용맹이었으니.]

“딱히 부끄럽진 않나 보네.”

찌르듯이 말을 이어나가던 여성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큰 기대 없이 걸어본 도발이 전혀 통하지 않는단 걸 깨달았음이 첫 번째 이유겠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파르투스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검은 마기가 끝을 모르고 강대해지고 있기에.

일 초가 지날수록 자신을 속박하던 굴레가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마왕이 말했다.

[용맹한 가이어는 사지가 찢겨 죽었노라. 지모로 세상을 조롱하던 데유브는 머리가 터져 죽었노라. 그들은 살아생전 나를 조롱할 자격이 있었고, 이젠 내가 그들을 비웃을 차례이지. 이 우주를 지배하는 이치가 그런 것이니라, 인간의 아이야.]

“살아남은 놈이 승리한다, 그런 거? 그딴 사고방식은 별로인데.”

경멸하듯 답한 여성을 바라보며 파르투스는 빙긋 웃었다.

[내 너를 기억하고 있노라. 다른 이들보다 미미한 자질이었으나 노력이 가상했었지. 인간에게는 수십 년 세월이 짧지는 않아 이리 성장한 것을 보니 기특하도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대화하듯 편안한 분위기.

그러나 두 존재의 투기는 최고조에 치달아가고 있고, 파르투스는 가소로워하는 마음으로 일렀다.

[하지만 셋도 아니고 혼자라……. 이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네겐 이 깨달음을 되새길 기회가 없겠으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반성하거라.]

그가 말을 마칠 때쯤 균열이 완성됐다. 몬스터 무리가 그곳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파르투스는 세상 전체를 뒤엎을 수 있을 만큼 넘치는 힘의 극히 일부분만을 외부로 꺼냈다.

콰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오는 마기를 앞에 두고도 여성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티잉, 하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기만 했고, 이어서 드러난 광경.

피슈웅, 슈우, 슈아악!

일 초를 백 번으로 쪼갠 찰나.

새까만 하늘에 백여 개의 새하얀 검이 생겨났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 검들이 일제히 날아가 파르투스의 마기를 요격한다.

퍼어어어엉!

검은 하늘을 밝히는 빛무리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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