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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89화 (89/207)

#89화. Chapter 22. 이름 모를 악마 (1)

“역산은 꽤 시간이 걸릴 거야. 구성체를 완성한 다음에도 중화 작업이 필요하고. 그러니 통로가 열릴 때까지는……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줘. 진도, 앤디도.”

기뻐하던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뭔가를 경계하는 듯한 어조로 아르노 뒤레가 내게 일렀다.

부탁을 넘어 애원에 가깝게 들리는 말. 나는 내심으로만 그에게 전했다.

아르노, 당신은 너무 착해.

긍정적인 의미로 한 생각이 아니다. 그보단 딱하다는 감정에 더 가까웠다.

분명 의심하고 있을 텐데도 그가 당장 행동하지 않는 이유.

뭐가 어떻든 균열과 바깥을 잇는 통로를 만들어내야만 하니까.

샬럿 테이트를 지키기 위해서.

선량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니면 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전자라면 그나마 선인 축에는 들겠지만 후자라면 그저 얼간이다. 둘 다 이런 여건에서는 그리 훌륭한 판단이 아니고.

나는 그런 속내를 감추며 아르노 뒤레의 질의에 충실히 답했다.

“이 부분에서 구성이 좀 헐겁군. 진, 어떻게 보강해야 한다고 보나.”

“베르체의 분리 합성 이론이 좋겠어요. 계통적으로는 틀린 게 없고, 다중 복합으로 최소 30개 이상 속성 분화가 필요해요. 마력 순도는 S급 기준치로. 그 이상은 현재로선 구성체가 버티지 못할 거예요. 중화 작업 도중에 마력을 덧대는 방법으로 가도 통로를 여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좋아. 앤디, 부탁해요.”

“마력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지시만 내려주면 된다.”

그런 과정을 다섯 번 거치고 나서.

우우웅-

내 피드백과 안드레이 일린이 전해준 마력으로 더욱 정교화되고 강력해진 구성체가 형태를 바꿔나간다.

삼각뿔 모양에서 모서리 네 부분이 점차 둥글어지며 구체에 가깝게 변하더니, 이윽고 부피가 줄어들며 평평한 원이 되었다.

균열을 이루는 구성체에서 외부와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기능 하나만 남기고, 그걸 역산해 정반대의 효과를 구현한 2차원 구성체.

이걸로 작업은 9할 이상 완료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남은 건 구성체를 균열 외벽과 충돌시켜 중화 작업을 진행하는 것뿐이고,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십수 분가량.

쿠아아아아아앙-!

먼 곳에서 이어지던 파르투스와 샬럿 테이트의 싸움은 갈수록 흉험해지고 있다. 넓은 한강이 황폐하게 변해 있다. 그 근처의 땅과 하늘엔 새카만 연기와 마력의 잔해가 어우러져 위험천만한 폭발을 자아낸다.

대피소 쪽으로 가는 놈들부터 막아!

우워어어어!

균열을 통해 빠져나온 몬스터 백여 마리와 헌터들의 싸움은 이쪽이 우세한 듯하나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아르노 뒤레가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일렀다.

“중화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야.”

“어느 정도로 예상하지?”

안드레이 일린이 차분하게 물은 말.

숨을 크게 내쉰 아르노 뒤레가 답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십 분 정도-”

바로 그 순간.

슈아아악!

어떠한 예고도 없이.

경고 한마디조차 없이.

안드레이 일린이 주먹을 휘둘렀다.

쿠과아아아앙-!

공기를 찢어내며 닥쳐오는 공격은 나를 향하고 있다.

타앙!

내 앞으로 발현된 실드 마법이 아주 잠깐 공격을 막아냈고…….

퍼어엉!

곧바로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 놈의 주먹이 내 눈앞에 있었다.

“커헉!”

마력이 가득 실린 주먹에 정통으로 복부를 가격당한 나는 피를 흩뿌리며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았다. 이어서 또렷한 시선으로 확인한 광경.

내게로 향하는 공격을 막아내고자 자신을 위해 마련해둔 마법을 소모한 아르노 뒤레가 순간적으로 주춤했고, 푸른 마력을 전신에 두른 안드레이 일린이 그에게로 쇄도해 재차 주먹을 날렸다.

콰아앙!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선 36 영웅에 걸맞은 전투력을 지니지 못하는 아르노 뒤레가 쉽게 막아내긴 어려운 공격.

“으윽…….”

순식간에 대여섯 번의 타격을 입은 그가 털썩 무너져 내리자 안드레이 일린이 오른손을 뻗는다.

그대로 아르노 뒤레의 멱살을 쥐며 공중으로 들어 올렸고, 놈의 왼손엔 방금까지 우리가 만든 구성체가 놓여 있다.

“흐음…….”

문득 안드레이 일린이 흘끗 시선을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확실히 처리했는지 확인하는 듯한 눈길.

그리고 시체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내 시야에는……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다.

+

-스킬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랭크 A)

+

***

“아르노, 왜 거짓말을 하나.”

안드레이 일린이 무미건조하게 전한 말을 아르노 뒤레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사고가 원활하게 이어지질 않았다.

당황, 경악, 슬픔, 배신감, 분노.

그 모든 감정을 그러모아 아르노 뒤레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앤, 디…… 정말로, 당신이…….”

“네게는 미안하게 됐군. 모른 채로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안드레이 일린이 답한 말.

아르노 뒤레는 전신에 닥치는 격통을 간신히 이겨내며 물었다.

“대균열이…… 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직하던 말이 종국에 가서는 절규가 되었고, 원통스러워하는 그 질문에 모든 정황이 담겨 있었다.

이 장소에 와서 삼각뿔 모양의 마력 구성체를 구현했을 때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에 발생한 S급 균열과 아르노 뒤레 자신의 균열 이론. 그 둘은 유사점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완전하게 같은 구성이었으니까.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바가 그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대균열이…… 내 이론에서 나온 거였다고?’

그의 균열 이론과 대균열.

둘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으리라곤 대균열이 발생하고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대균열에 관한 정보가 지나치게 적었기에.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누군가의 개입에 의한 것이었겠으나 여하튼 알기 어려운 사실이었고, 하지만 현시점에 이르러선 그렇지 않다.

대균열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

자신의 균열 이론.

이번에 발생한 S급 균열.

둘이라면 몰라도 셋은 얘기가 다르다. 파편으로 나뉜 정보들을 모아 전체적인 상을 그려내는 건 초일류 마법사인 아르노 뒤레의 지식과 통찰력이 수반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고, 나온 결론은 단출하고도 충격적이었다.

대균열은 그의 이론에서 파생되었다.

이번 균열은 대균열에서 모티브를 얻어 악마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아르노 뒤레가 자신의 균열 이론에 대해 말한 사람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다.

겉으론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며 그의 연구를 활용했거나 특정 세력에 제공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자들.

‘진은 아니야.’

이도진에게 알린 건 극히 최근이니 그일 리는 없고, 용의자는 한 명으로 좁혀지겠지.

안드레이 일린.

그가 나직한 어조로 충고하듯 일렀다.

“아르노, 너는 지나치게 선하다. 의심했다면 곧장 대응했어야지. 통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나 너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심지어 거짓말도 서툴렀다. 중화에 십 분이 넘게 걸린다니. 특히나 이 이론에 있어선 내가 그 정도로 문외한은 아니야. 나를 속여서 시간을 벌고 불시에 통로를 열려 한 거겠지만…… 내겐 제발 기습해달라는 신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답해……. 앤디, 대답해-!”

“마지막까지 너는 선하고 멍청했다. 나를 믿고 싶어 한 것도 그렇고, 실드 마법은 너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어야 해. 너라면 어땠을지 몰라도 그깟 실드가 저 애를 온전히 보호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하기야 네가 나설 줄 알고 저쪽을 먼저 공격한 것이지만.”

“앤디…… 제발 대답해. 리와 세브가, 그들이 대균열 때문에 죽었어. 왜 그랬지? 뭘 원해서? 그게 뭐든…… 그 친구들을 죽여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나?”

절망 어린 물음.

안드레이 일린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너처럼 선한 자에게는 하잘것없는 이유로밖에 들리지 않을 거다. 말해줘 봐야 화만 날 테니 모른 채로 죽는 게 좋아.”

이내 그가 손을 휘저었다. 왼손 위에 가두고 있던 마력 구성체가 부드럽게, 뜻대로 움직인다.

아르노 뒤레를 굳이 살려두며 대화를 이어나간 이유.

‘슬슬 제어권이 넘어오겠군.’

셋이 함께 만든 것이라곤 하나 구성체의 제어권은 저쪽에 있기에 권한을 빼앗기 전까진 그가 살아있어야 했다.

일부러 조롱하듯 시시콜콜 실토한 것도 감정을 격앙시키기 위함이었고.

무척 손쉬운 작업이었다.

어차피 아르노 뒤레는 이 구성체를 망가뜨릴 수 없으니까.

그만한 마력을 행사하게 두지도 않았고, 기실 멀쩡한 상태였다 해도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이 구성체를 그는 차마 훼손하지 못했을 터였다.

위로를 전하듯 안드레이 일린이 일렀다.

“통로는 무사히 뚫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구성체를 만드는 사이에 고위 악마가 기습했다. 겨우 구성체를 완성했으나 너와 저 애는 죽었고, 악마는 내가 형체조차 남지 못하게 쓰러뜨렸다. 그렇게 설명하면 되겠지.”

“너, 이 개자식-!”

아르노 뒤레가 격분하며 외친 직후.

슈아아아…….

구성체의 제어권이 마침내 안드레이 일린에게로 넘어왔다.

“미안하다, 아르노. 널 죽이고 싶진 않았어.”

실낱같은 진심.

그는 마력을 흘려내 옛 전우를 완벽히 무력화시켰다.

이어서 공중으로 던지고, 비어 있는 오른손 주먹을 굳게 쥐며 힘을 모았다.

거기에 맞은 아르노 뒤레는 즉사할 거고, 예기치 않았던 소요도 잦아들겠지.

필시 그리될 것이라 여겼고…….

퍼억!

강렬한 통증이 몸에 전해져 온 다음.

너무도 차가운 말이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병신 같은 자식.”

“크윽!”

안드레이 일린은 외마디 침음을 내며 뒷걸음질 쳤다. 소리 없이 날아든 공격. 심장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부상 정도가 가볍지 않았다.

안색을 굳히며 그가 바라본 곳.

피투성이가 된 이도진이 거기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슈우우우-

그의 상세가 급격히 회복되어 간다.

처음부터 상처를 입지 않았던 것처럼. 애초에 환상이었던 것처럼.

믿기 힘든 광경에 안드레이 일린이 눈을 치떴고, 이도진이 말한다.

“하잘것없는 이유라고 했지?”

콰아아아-!

이도진의 몸에서 검은빛의 마력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힘의 총량과 순도 모두 36 영웅들의 최전성기와도 비견할 수 있는 수준.

기세는 물론이고 표정 또한 안드레이 일린이 알던 것과 딴판이었다.

비웃음과 증오가 오묘하게 섞여 전해지는 살기.

그가 냉혹하게 선언한다.

“캐물을 게 줄어든 건 편해서 좋네. 그냥 죽여줄게. 최대한 고통스럽게.”

싸늘한 어조로 전한 이도진이 한 발을 내디뎠고,

스아아아아…….

칠흑처럼 새까만 안개를 닮은 마력이 그의 주위로 소용돌이쳤다.

***

파르투스가 기꺼워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드디어 찾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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