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Chapter 22. 이름 모를 악마 (3)
위유웅-
나와 안드레이 일린 사이에 자그마한 마력 구성체가 발생했다.
놈과 내가 충돌하기까지의 찰나, 순간적으로 내 마력을 보강하면서 동시에 놈의 마력을 흩어낸다.
효율이 크진 않았다. 각각 10%에 못 미치는 수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으으으…….
힘겹게 운동하던 구성체가 빠른 속도로 흐려지는 걸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됐어, 이만하면 충분해.
방금 나타난 이 마법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정확히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기능했으니까.
더 강하게 발동하려 했다면 발각됐겠지. 내게 마법으로 슬쩍 귀띔한 대로, 들키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낸 것이다.
지나치게 착한 건 흠이지만……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한 자는 아니지. ‘몽상가’ 아르노 뒤레라는 사내는.
“아르노오오-!”
울부짖다시피 포효하는 안드레이 일린을 응시하며 나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봐야 이미 늦었어. 이제 내 마력이 놈의 공격보다 강하다.
퍼엉!
아르노 뒤레가 구현한 복합 계통 구성체가 제 역할을 마치고 사라진다. 나는 안드레이 일린이 뻗어낸 주먹을 손으로 받아내며 단단히 움켜쥐었다.
“크윽!”
놈이 악을 쓰며 방어를 뚫어내려 하나 그리 순조롭진 못했다. 내 쪽이 아주 조금이나마 힘에서 우위였고,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
-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스킬 ‘존재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S)
-마력 보유량이 상승합니다.
-[……6,219 ……6,227 ……6,235]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의 능력을 강탈……
+
“으아악! 그아아아악-!”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 안드레이 일린이 격렬히 저항한다. 놈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마력이 미친 듯이 넘실거렸고, 나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스킬이 잘 발동되지 않는다. 마력 흡수량도 무척 적고, 존재흡수는 아예 발동이 중단된 상태. 이대로 죽여야 할까. 가능하면 무력화시켜서 알아내고 싶은 정보들이 있는데…….
한데 그때.
“악마!”
문득 놈이 거세게 외친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 두려움과 분노가 엉망으로 뒤섞여 있다. 그리곤 핏덩어리를 토해내며 선언했다.
“쿨럭, 커헉! 내가 배신자라면 너는 악마다! 혼자 죽을 것 같으냐!”
쿠오오오오오-!
놈을 중심으로 푸른 마력이 폭발하듯 팽창했다.
자신의 최고 공격, 모든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그 기술을 외부가 아닌 자기 몸 안으로 발동한 거다.
당연히 놈은 죽겠지만…… 나도 그리될 가능성이 컸다. 한마디로 같이 죽자는 거다.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세상에서 암약하고 있는 악마까지 함께 소멸시키려는 의도.
배신자이자 영웅.
영웅이자 배신자.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이 죽음을 각오하고 폭주시킨 마력.
그것이 내 방어를 깨부수고 터져 나간다. 여전히 마력흡수의 효과는 미미했고, 존재흡수는 발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두근.
나는 심장 옆에 자리한 무언가가, 킬킬거리며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
-□□의 심장…… $&%#!$?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소유자의 위기에 반응합니다. (랭크 SS)
-□□의 권능…… #@$#&! -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의 권능…… %$^@# -스킬 ‘존재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S)
-마력 보유량이 상승합니다.
-[……6,591 ……6,904 ……7,162]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의 능력을 강탈합니다.
-강탈한 능력은 스킬로 분류됩니다.
-스킬 ‘제어폭발’을 습득합니다. (랭크 S)
-생명력 보유량이 상승합니다.
-[……4,928 ……5,317 ……5,523]
+
아까와는 다르다.
마력 보유량이 천 가까이 상승했다.
존재흡수 스킬로 안드레이 일린의 최고 기술을 습득했고, 전투력의 근간이 되는 생명력까지 큰 폭으로 상승해간다.
장생종과 싸웠을 때는 생명력 수치가 오르진 않았는데.
죽은 놈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존재흡수라는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걸까. 확실치 않으나 나는 후자에 가까웠으리라 짐작했다.
그야 이런 상황이니까.
다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환호합니다! (랭크 S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두 번째 봉인이 해제됩니다.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랭크 SSS)
-스킬 ‘영혼지배’를 습득합니다. (랭크 SSS)
+
영혼지배.
악마들이 균열 너머 세상에서 살아가던 존재들을 노예로 종속시키게 해줬던 권능.
현재도 유지하고 있는 힘이라고 하나 이것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
<세계의 수호자>의 최종보스. 이시혁과 정세빈에 의해 소멸한 악마의 수장.
영혼지배는 놈이 가진 능력 중 하나였다.
“…….”
한순간의 망설임.
그리고 결단.
나는 마력을 끌어냈다.
+
-스킬 ‘영혼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SS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소유자의 의지를 실현합니다. (랭크 SSS)
+
“어흑, 끄으어어아아악! 으아아아악!”
웅혼하던 푸른 마력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안드레이 일린이 비명을 지른다.
놈의 정수리에 손을 얹은 나는 부정할 여지 없이 깨달았다.
마력, 생명력, 마지막으로 영혼까지.
36 영웅의 일인.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은…… 지금부터 내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다.
그리고 홀로그램이 내게 알렸다.
+
<킬 더 이블> 2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킬 더 이블> 2권 종료 전까지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파생 스킬을 한 가지 습득하고, 완전한 형태로 발동할 것
-클리어 보상:
1) OX 질문 1회
2) 주관식 질문 1회
3) 무제약적 소질 포인트 0.1p
4) 소지한 스킬 및 특성 중 A 랭크 이하를 택일해 1단계 랭크 상승
+
쿠오오오오오-
먼 곳에서 충격파가 울렸다.
샬럿 테이트와 맞서고 있던 마왕 파르투스의 기세가 종전보다 확연히 강해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안드레이 일린을 발로 걷어찬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보고 있는 아르노 뒤레에게 다가갔다.
시간적인 여유는 극히 적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을 가늠하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
OX 질문 (1/1)
-질문 내용: 아르노 뒤레를 확정된 배신자로 지칭한 것에 이도진이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존재하는지 여부.
-정답: O
+
아르노 뒤레는 자기 자신을 결백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홀로그램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했고, 거기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존재한다. 하기야 퀘스트 보상으로 알아낸 배신한 동기와 정황은 일부분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단지 대균열이 그의 이론에서 파생된 것만으로 배신자라고 지칭한 건 아니라는 걸까.
그런 거라면…… 나머지 이유라는 건 대체 뭘까.
나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홀로그램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
주관식 질문 (1/1)
-질문 내용: 아르노 뒤레를 가능한 한 일찍 제거하도록 유도한 이유
-답변: 죄의식의 분담
1) 키워드: 확정성
2) 권고 사항: 아직 늦지 않았어. ……그를 죽여.
+
“웃기고 있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듯이 전한 메시지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확정된 배신자라며. 내가 아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며.
근데 죄의식을 분담하라고? 누구에게? 세아나 진유리한테?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고, 여기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죄를 지은 사람만 죄를 지으면 돼. 나름대로 나를 생각해주는 건 알겠는데…… 난 그런 건 사양이야.
이제 아르노 뒤레가 내게 묻는다.
“진…… 너는, ……뭐지?”
“아르노, 당신이 알 필요는 없어요.”
나는 차갑게 답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티잉!
손끝에서 뻗어 나간 마력이 단숨에 아르노 뒤레가 준비하던 마법을 무산시켰다.
재차 손가락을 몇 번 튕겼다.
티잉, 티잉!
무척 손쉽게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내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겨우 입만 열 수 있는 아르노 뒤레가 물었다.
“너는…… 악마인가?”
“나도 몰라요.”
+
-스킬 ‘인식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A+)
-스킬 ‘영혼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SSS)
+
나는 아르노 뒤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가 울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 모든 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대균열, 너는…… 아마도 팬텀의…… 그건, 리와 세브의 복수를 위해서?”
“묻지 말라고요.”
나는 짜증스럽게 답했다. 그가 내게 저런 질문을 한다는 게 몹시 불쾌해서.
하지만 아르노 뒤레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나를 죽일 건가?”
“그러진 않을 거고, 앞으로 날 조금 더 잘 대해줄 거예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아르노 뒤레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
물론 애초에 불가능하고 내키지 않는 발상이다.
이자는 너무 선해. 전력상으로 도움이 된다 해도 위험부담이 더 클 터였다.
“아으, 으윽…….”
아르노 뒤레가 침음한다. 표정이 흐릿해지고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한데도 그가 실낱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일렀다.
“미안하다, 미안해. 진…… 네게 정말로-”
“입 닥쳐.”
더는 참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의 정신에 국소적인 영혼지배와 대규모의 인식지배 스킬이 작용하고 있다.
아르노 뒤레는 다 잊어버릴 거다.
자신의 이론에서 대균열이 파생된 것도, 안드레이 일린이 배신자라는 것도, 나에 대한 추측까지도.
그런 걸 전부 다 망각하고, 조작된 기억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기회는 지금뿐이다.
“아르노, 그거 알아요?”
“뭐, 뭘…… 말이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총을 쏜 사람만 범인이지, 총을 만든 사람은 죄가 없다고. 본인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죄인 취급하면서 죽이는 건…… 올바른 행동은 아닌 것 같아요.”
“아, 으으윽…… 끄흑…….”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드네요.”
아르노 뒤레의 의식은 이제 꺼질 듯이 희미했다.
나는 도저히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그를 노려보며 일렀다.
“죽이진 않을 거지만…… 그래, 안 죽여. 안 죽이는데-! 근데 아르노, 난 당신이…… 정말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
배신자로 지칭된 모든 정황을 명확히 알아내면.
그리고 죽여 없앨 배신자가 더 남지 않게 되면.
다음은 아르노, 당신 차례야.
털썩.
마침내 혼절한 아르노 뒤레가 바닥에 쓰러졌다.
통로를 여는 데 필요했던 오 분은 벌써 지났고, 파르투스와 샬럿 테이트의 싸움도 승부가 정해졌다. 영웅의 패배로.
+
-스킬 ‘상태추적’을 발동합니다. (랭크 B)
1) 대상자: 이세아
2) 조건: 회복하기 어려운 물리적 부상
3) 현재 상황: 조건 미충족
+
아직 세아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빨리 가야 했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해야 하고.
+
[미수령 보상]
1) 무제약적 소질 포인트 0.1p
2) 소지한 스킬 및 특성 중 A 랭크 이하를 택일해 1단계 랭크 상승
-모든 보상을 수령했습니다!
[소질]
지능 8.7 / 매력 8.3 / 의지 8.3 / 감각 9.0
-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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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선 일반적인 수단으로 올릴 수 없던, 8.9라는 한계치에 이르렀던 감각이 상승했다.
소질 포인트 9는 인간이 도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경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좀, 다르긴 하네.
세상 전체를 내 손 안에 두고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
콰앙!
발을 구른 나는 하늘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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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랭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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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이 칠흑처럼 검게 물든다. 아무도 나라는 걸 알 수 없게, 흡사 인간이 아닌 악마를 연상케 하는 외견으로.
키에에엑!
균열을 빠져나온 몬스터 무리가 덤벼든다. 나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퍼억! 퍼어억!
수십 마리의 몬스터 무리가 단숨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확인한 아래편의 광경.
마왕 파르투스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에게 검은 마기를 내쏜다.
타아앙!
허공을 박차며 나는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균열 너머의 세상에서 등장한,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름 모를 악마처럼.
시야 한쪽에 홀로그램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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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 ‘영웅의 제자들’이 진행 중입니다.
-2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성장]
-진행률: 94.1%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2권 종료 시점, 36 영웅을 한 명 이상 살해하면서도 테러조직 팬텀이 용의선상에서 멀어질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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