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Chapter 23. 장기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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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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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우우우-
파르투스가 쏘아낸 마기가 순식간에 기세를 잃어간다. 눈에 띄게 크기가 작아지고 색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퍼어어어엉!
흡수 허용량을 넘어선 힘이 폭발하며 이도진이 멀리 튕겨 나갔다.
‘……만만치 않은데.’
단 한 번의 공방으로도 타격이 작지 않아 그가 침음한 그때, 파르투스도 힘의 고하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내게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돌연히 나타난 저 검은빛은 결코 마왕과 대등하게 맞설 수 없다. 과거 싸웠던 인간의 영웅 서른여섯 중 열 손가락에 들지도 의문. 파르투스 자신은커녕 샬럿 테이트와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로 뒤떨어지겠지.
하지만 그는 방심하는 일 없이 시선을 집중했다.
‘저자인가…….’
심지어 그가 다스리는 영지까지 존재감이 감지됐던, 소멸한 마신의 파편. 그것을 얻고자 균열의 위치와 효과를 조정해 이 세상에 강림할 수 있었다. 뜻밖에 범상치 않은 아이 셋을 만나 시간이 지체됐으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당연히 마신의 파편을 흡수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가 찾아가기도 전에 저쪽에서 먼저 들이닥친 듯싶었다.
마신의 파편으로 추측되는 자가 검은 안개를 휘감은 채 다가왔고, 마왕은 극진한 예의를 갖추어 말을 건넸다.
[당신의 불민한 종복이 인사 올리나이다. 함께 가시지요.]
“…….”
속이 빤히 보이는 수작에 이도진은 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힘을 모으며 안개를 한층 짙게 두르는 모습에 파르투스가 다시금 일렀다.
[허하지 않겠다 하시면…….]
타앙!
콰아앙!
파르투스와 이도진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쇄도해갔다.
퍼어어어엉-!
두 개의 검은빛이 부딪혀 발생한 충격파. 수려한 이목구비를 섬뜩하게 일그러뜨리며 마왕이 선언했다.
[이제 당신이 나설 자리는 없소이다.]
소멸한 그 시점부터 마신은 이미 섬길 주인이 아니게 됐다. 고작 편린 따위에 더 예를 차릴 생각은 없었고, 검은빛을 잡아챈 파르투스는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길게 끌 필요는 없으니.’
당장 균열 너머의 세상으로 돌아갈 순 없다. 다른 마왕들이 눈치채 변수가 생긴다면 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고, 균열 바깥의 영웅들이 개입하지 못하는 이곳에서 가능한 한 빨리 흡수하는 게 최선이겠지.
파편을 붙잡은 양손에 힘을 주며 파르투스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스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가 마신의 파편을 감싼다. 지금 파르투스가 발현한 힘은 과거에 마신이 지니고 있던 권능의 열화판 같은 능력이고, 일렁이는 마기를 살핀 이도진은 그 정체를 파악해냈다.
‘다 섞였네.’
마력흡수와 존재흡수, 그리고 영혼지배까지. 검은 심장에서 파생된 스킬 세 가지가 크게 열화되어 합쳐진 것 같고, 파르투스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나를 흡수하겠다 이거지?’
정확히 말하면 이도진 본인이 아니라 검은 심장. 악마의 수장이었던 마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을 그 힘을 노리는 거겠지.
한데 그때.
쿠웅.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고, 이도진의 시야에 홀로그램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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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소유자의 위기에 반응합니다. (랭크 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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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아아아앙!
맞닿아 있던 이도진과 파르투스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백 미터 이상 벌어졌다. 틀림없이 검은 심장이 개입한 일.
파르투스는 오히려 흥이 난다는 듯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이도진은 잠시의 여유를 틈타 아래를 내려다봤다.
‘……다치진 않았네.’
놀란 얼굴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네 사람.
샬럿 테이트는 부상이 심해 보이고 유해빈도 꽤 고생한 듯하나 진유리와 이세아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해 보인다.
쿠웅.
검은 심장이 또 한 번 박동했다. 마치 그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몸 안에 부드러운 파동을 일으킨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느냐고. 힘을 빌려줄 테니 함께 싸우자고.
이도진은 내심으로만 일렀다.
‘생각 좀 해보고.’
이전보다 확연히 강해졌다 한들 아직 마왕과 단신으로 맞서긴 역부족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다.
마력과 생명력 수치 합산이 만삼천 이하. 스킬과 지닌 능력은 그보다 훨씬 위지만 그걸 고려해도 36 영웅의 상위권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비교 대상을 들자면 전성기의 안드레이 일린 정도일까. 파르투스와 싸우면 눈 깜짝할 새에 제압당하겠지.
하지만…….
‘널…… 어떻게 믿고?’
이도진이 고심하듯 되뇌었다. 사태가 불리하다고 검은 심장을 무작정 풀어놓을 순 없는 일. 초조함이 그의 마음에 엄습해왔고, 한편 파르투스는 전략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우선은 힘을 빼두는 게 좋겠구나.’
마신의 파편이 현재 지닌 힘은 물론 그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워낙 초월적인 권능이라 저항이 거셌다. 어느 정도 지치게 만들어두고 흡수해야 뒤탈이 없겠지.
[후우…….]
가슴에 치미는 격동을 달래고자 파르투스는 길게 심호흡했다.
이번 한 번만 어기면 된다.
경지에 오른 후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원칙.
순간의 욕심은 화를 부를 뿐이며, 생존 그 자체를 미덕으로 두고 살아간다면 시간이 자연스럽게 그를 높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믿음.
이번 한 번만 예외로 두면 된다. 저 힘만 무사히 얻는다면…….
위유웅, 위이이잉-
파르투스의 주위로 십여 개의 마탄이 생겨났다.
하나하나가 고위 악마의 진신 절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마기.
그것들이 일제히 이도진에게로 날았다.
슈아아아악!
공간마저 왜곡시키며 접근해오는 마기를 눈앞에 둔 이도진이 위쪽으로 달아났다.
피유우웅-!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쇄도하던 마기 세례가 절묘하게 휘어지며 그를 쫓는다.
이도진이 힘껏 손을 휘둘렀다.
콰아앙!
전력을 다한 마력의 발출. 절반에 가까운 마기가 요격됐고, 하지만 남은 절반은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다.
더 버티기 힘든 상황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스킬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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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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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우우우우-
남은 마탄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 듯이 흡수됐다.
마력 보유량까지 오르진 않았으나 소모한 마력이 제법 보충됐고, 이제 그를 쫓아온 파르투스가 연속해서 손발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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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인식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A+)
-자동발동형 특성 ‘순간예지’가 발동됩니다. (랭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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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진이 육박전에서 운용할 수 있는 최고 조합.
인식지배로 상대의 판단을 흩뜨리고, 순간예지로 대응하며 싸우는 것.
그조차도 파르투스의 공격 앞에서는 크게 효용이 없었다.
퍽! 퍼억!
쿠아앙!
찰나의 순간 세 번의 주먹질에 복부를 직격당한 이도진이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승기를 잡은 파르투스가 기세를 몰아 추격했고, 검은 심장이 또다시 박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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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반응합니다. (랭크 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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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엉!
허공에서 발을 강하게 구른 파르투스가 후방으로 물러났다. 그의 눈빛에 짙은 경계심이 어렸고, 검은 심장이 이도진을 향해 끈질기게 속삭인다.
이것 보라고. 저 하찮은 악마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아주 잠깐만 내 힘을 받아들이면…… 네가 승리할 수 있다고.
이도진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지만 그의 마음엔 조금씩 망설임이 스며 들어가는 듯했다.
혼자선 이길 수 없으니까. 균열 바깥과 연결되는 구성체로 영웅들을 불러온다면 파르투스를 이길 수 있겠지만…… 그리 해버리면 모든 계획이 송두리째 어그러질 테니까.
두근, 두근.
검은 심장이 유혹하듯 고동친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자신은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만 하라고.
그런 와중에 파르투스는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차라리 서두르는 편이 낫겠도다.’
몰락한 파편이라곤 하나 마신의 힘. 조금씩 힘을 빼서 흡수하려 했으나 썩 여의치 않은 듯했다. 자칫 이 싸움에서 성장한다면…… 그때는 흡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콰앙!
파르투스의 마기가 극한의 순도를 머금고 팽창해나간다. 방어를 무용하게 만드는 순수한 힘. 저항을 무시하고 접근하려는 것이다.
[끝을 봐야겠소이다.]
단출하게 이른 마왕이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든다.
퍼엉! 퍼어엉!
이도진이 그의 진로를 막아서고자 마탄을 쏘아냈으나 파르투스는 개의치 않았다. 전력으로 마기를 발현한 그에게 저런 공격 따윈 무의미했고, 마침내 먹잇감 앞에 다다른 그가 오른손을 뻗었다.
터억.
검은 안개에 가려진 목이 그 손에 잡혔다. 파르투스는 온 힘을 다해 마기를 운용했다.
슈우우우…… 슈아아아악-!
존재의 본질을 강탈해가려는 권능. 이도진의 의식이 희미해졌고, 마지막으로 검은 심장이 그에게 속삭였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고집을 부릴 것이냐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고.
진심 어린 그 경고에…… 이도진은 결국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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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이 환호합니다! (랭크 S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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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직후.
앞으로 일 초만 더 지나면 파편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파르투스는, 극도로 불길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이, 힘은……!’
마왕이 황급히 마기를 덧대었다. 흡수를 위함이 아니었다.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
겨우 시간을 번 파르투스는 재빨리 자신의 심상으로 침잠했다. 검은 공간 안에서, 그는 경악과 두려움을 담아 되뇌었다.
이건, 단지 파편이 아니라고.
그리고 다음 순간.
슈아아아아-
본래 검었던 그의 심상에, 그보다 훨씬 더 어두운 무언가가 침입해왔다.
짙게 일렁이는 안개.
파르투스는 그것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봤다.
‘마신…….’
파편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이천 년을 섬겨왔던 초월자.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것이, 거대한 구름 같은 형상으로 종복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내 뻗어온 손길.
[그아아아아악-!]
육성으로 울부짖은 파르투스가 격렬히 저항했다.
문득 깨달음이 그의 머릿속을 스친다.
왜 이제야 눈치챘을까.
파편이라고 생각했던 힘이, 균열 너머 자신의 영지까지 감지되었던 이유.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흘러들어온 게 아니다. 마신이 일부러 존재감을 내보인 거다. 먹잇감으로 삼을 마왕을 끌어들이고자.
[으윽, 으아아아악!]
그는 오래도록 이렇게 소리를 높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마신의 힘이, 균열을 열고, 영혼을 지배하고, 마왕을 창조시킨 그 초월적인 권능이 자신의 존재를 앗아가려 하고 있다.
‘지지 않겠노라……!’
파르투스는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마신은 완벽히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티며 균열을 타고 넘어간다면…….
하지만 그때.
구름을 닮은 마기가 그에게 이른다.
[돌아, 오너라.]
더듬거리듯 발해진 명령.
애초에 마왕을 창조한 것이 자신이기에, 이제는 돌아와서 자신의 부활에 쓰일 거름이 되라는 선언.
[끄으윽…… 닥쳐라-!]
파르투스는 미친 듯이 힘을 발산하며 주인의 권능에 저항했고, 그와 함께 내면으로 더욱 침잠하며 자신을 보호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야.’
지금의 마신은 자신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버텨내고 이겨낸다면, 파편이 아니라 마신의 근원까지도 얻어낼 수 있을 터.
파르투스는 그것만을 바라며 끈질기게 버텨냈다.
[허억, 허억…….]
마신이 그의 주위를 빙그르르 돈다. 아무리 용을 써본들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 조롱하는 것만 같다.
이어진 흡인(吸引).
[끄허억, 그아아아아악!]
파르투스는 점차 자신이 지쳐감을 느꼈다. 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누천년을 지켜온 원칙.
욕망을 죄악으로 여기고, 안온을 미덕으로 여긴 삶의 방식.
왜 이번 한 번이라면 어겨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 마음먹은 순간에…… 이미 원칙은 원칙이 아니게 된 것을…….’
버틸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마신의 흡인은 그의 마기와 백중세를 넘어 조금이지만 우위에 서 있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일 분? 삼십 초? 그도 아니면 십 초 이하?
[크흐, 흐으…….]
마신이 짐승처럼 웃는다.
파르투스가 기억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 격이 몹시 비천해졌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마왕을 능히 삼켜낼 수 있는 권능이었고, 모든 방어를 깨부순 마신의 흡인이 파르투스의 육신에 닿은 그때.
[패배자 둘이서 재밌게 노네.]
어디선가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걱-!
마왕의 심상 공간이 갈라졌다. 그 틈으로 웬 인영이 걸어들어온다.
처음 보는 인간 남성.
하지만…….
‘저자는…….’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 파르투스는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