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95화 (95/207)

#95화. Chapter 23. 장기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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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랭크 SSS -> 랭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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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성공했다.

파르투스의 마기를 이용해 검은 심장을 약화하고 봉인하는 것. 비록 한시적이라곤 하나 랭크가 D까지 떨어졌고, 그 증거로 항상 심장 옆에서 느껴지던 박동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아주 희미하게, 실낱처럼 미약하게만 감지될 뿐이다.

다시 이전 수준으로 성장해 수작을 부리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 놈이 그렇게 하도록 내가 내버려 두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다음 순간.

위유우우웅-

거센 폭발의 중심에 있던 나를 부드러운 마력이 감싼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내게 익숙한 감각.

어느새 내 시야에는 어두운 공터가 비치고 있다.

혼절해 쓰러진 아르노 뒤레와 안드레이 일린도 보인다. 아까 마력 구성체를 만들었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쿠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앙!

저 멀리 여전히 하늘 위로 마기가 폭발하는 가운데, 워프 마법으로 나를 불러들인 서연희가 물었다.

“안 다쳤니?”

“……좀 다치긴 했죠.”

어차피 들킬 거라 솔직하게 답한 나는 형상화 스킬을 해제했다.

이어서 드러난 몰골은…… 문자 그대로 엉망이었다. 옷은 피투성이로 여기저기 찢겨 있고, 몸에서 아픈 곳보다 안 아픈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하아…….”

화가 난 듯도 하고 걱정도 담긴 표정으로 한숨을 쉰 서연희가 재차 묻는다.

“상황 설명, 자세한 건 나중에 듣고 간단하게만.”

“안드레이 일린이 배신자예요. 둘 다 기억 조작했어요. 통로 열 구성체 만드는 중에 악마가 저희 습격했고, 그놈이 파르투스와 싸웠다고 알릴 거예요.”

검은 심장에서 파생한 권능이지만 영혼지배를 비롯한 세 스킬의 랭크는 변동이 없었다. 어쨌든 내가 습득한 거고, 이제 내 능력이니까. 앞으로 무턱대고 사용하는 건 자제해야겠지만…… 적어도 이전에 발현했던 효과는 그대로다.

이제 서연희 쪽에서 내게 일렀다.

“아직 들어온 거 나밖에 없어. 숨기고 있다가 발견한 척하고, 나 먼저 들어간다고 하면서 몰래 닫았거든.”

“눈치챌 가능성은요?”

“얘는? 들킬 거면 다른 방법 썼지. 그건 안심해도 되는데…… 곧 의미 없어질 것 같네.”

터어어어엉!

파직, 파지직-

삼각뿔 모양의 균열 맨 위에 머물러 있던 폭발이 흩어진 직후. 검게 물든 균열 외벽이 조금씩 흐릿해지며 깨지기 시작한다.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된 균열 현상이 걷히려 하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의견을 구했다.

“파르투스, 죽은 거 맞겠죠? 마무리 제대로 하고 오긴 했는데.”

서연희는 당장 필요치 않은 질문, 가령 내가 무슨 수로 파르투스를 죽일 수 있었냐는 건 묻지 않았다. 그저 단출하게 확언해주기만 했다.

“응, 도망친 흔적 없어. 완전히 소멸한 거 맞아.”

“후우…….”

한시름 놓은 나는 이제 연기할 준비를 하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드레이 일린은 제가 조종하고 있어요. 아르노 뒤레 일어나고 밖에서 사람들 오면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저는 싸움 도중에 기절했다는 설정이라서.”

“네 옷에 쟤 피 튄 건 보호해주다가 그런 거고?”

“난 누나 눈치 빨라서 좋더라.”

“흐응…… 근데 넌 왜 그래?”

“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내가 되물었지만 서연희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 더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고.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여러 사람의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다.

다급한 발소리에 이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세아가 있는 힘껏 나를 부른다. 가만히 눈을 감은 나는 오늘 중 가장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지금 내 꼴을 보면 애가 많이 걱정할 텐데…….

하지만 이미 뭘 하기엔 늦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세아가 땅에 뻗어있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연신 울음 섞인 말을 흘렸다.

“오빠, 왜 이래……. 일어나, 빨리…… 금방 온다면서……. 흐윽, 으…….”

“교수님…….”

“어…… 으음…….”

진유리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한가득 어려 있고, 얼추 자초지종을 알고 있을 유해빈은 어설프게 연기하기보단 말을 아끼기로 한 듯싶었다.

이어서 서연희가 침착한 어조로 일렀다.

“걱정 안 해도 돼. 기절한 거고, 셋 다 생명에는 지장 없어.”

스윽.

문득 목 쪽에서 느껴지는 보들보들한 손의 감촉.

유해빈이 태연하게 말한다.

“아, 진짜네. 이세아 너 붙들고 있는 게 오빠 더 아프시겠다.”

정확했다.

차라리 그냥 두면 나을 텐데 세아가 자꾸 붙잡고 흔드니까 통증이 확 느껴졌고, 이제 진유리까지 합세해 몸 이곳저곳에 손을 대는 터라 아픈 게 두 배로 심해졌다.

그리고 내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언제 깨어난 척할지 가늠하던 그즈음, 정신을 차린 아르노 뒤레와 샬럿 테이트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온다.

“로……티?”

“뭐야, 살아있네? 누구한테 이렇게 당한 거야?”

장난스레 묻는 듯하나 분노에 찬 말투.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침음하던 아르노 뒤레가 이내 답한다.

“으음…… 구성체를, 만드는 중에…… 악마가 습격해서…… 진과 앤디는?”

“괜찮아. 도진은 정말 괜찮고, 안드레이는…… 다치긴 했어도 치료하면 나을 거야.”

“그……래? 다행, 이군. 난 좀 피곤해서…… 조금 더 누워있어야겠어.”

스아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희미해지던 균열의 기운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쯤 했으면 됐겠다 싶어 나는 조심스럽게 실눈을 떴고…….

“오빠-!”

순식간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내 머리를 자기 가슴 쪽으로 당겨 끌어안은 세아가 펑펑 울면서 내게 말한다.

“왜, 왜 다쳤어……. 또, 나 버리고…… 나, 흐윽,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미안해, 맨날 버릇없이 해서 미안해, 잘못했어, 오빠, 나 놔두고, 흐윽, 으…… 나 버리고 어디 가지 마, 이제, 이제 말 잘 들을게, 미안, 오빠 미안해…….”

“………….”

이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데. 세아 상태가 좀 많이 불안했다. 말하는 것도 횡설수설에 숫제 오열하다시피 눈물을 쏟아낸다. 어쩌면…… 예기치 못하게 어떤 트라우마를 자극당한 걸까.

옆에 있던 진유리가 세아의 어깨를 감싸며 쓸어 내려줬고, 그제야 세아와 조금 거리가 떨어진 나는 우선 해야 할 말을 전했다.

“오빠 어디 안 가.”

나로서도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도저히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는, 그때까지는 남아 있을 거야.

이어서 내 시선이 진유리와 마주한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 내가 거둔 성과에 못지않게, 이 애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냈음을.

“교수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래. 고마워.”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킬 더 이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진유리인지, 아니면 세아인지. 본래 세아가 주인공이었으나 2권을 기점으로 바뀐 것인지. 혹은 현시점에서 둘 다 주인공인지.

쉽사리 판가름할 수 없는 문제였고, 나는 홀로그램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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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 ‘영웅의 제자들’이 진행 중입니다.

-2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성장]

-진행률: 99.8%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2권 종료 시점, 36 영웅을 한 명 이상 살해하면서도 테러조직 팬텀이 용의선상에서 멀어질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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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 종료되기 직전이다.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이겠지.

샬럿 테이트도, 아르노 뒤레도 죽지 않았다. 안드레이 일린은 내 지배하에 있으나 명확한 의미로 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죽이는 건 간단해. 발각되지 않게 마력을 움직이기만 하면 놈의 심장을 터뜨릴 수 있다. 상세가 갑자기 나빠져서 죽었다고 해도 의심을 살 여지는 크지 않다.

죽여야 할까.

아니면 퀘스트 실패에 따른 클리어 보상의 미습득과 혹시 존재할지 모를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살려서 미끼로 써야 할까.

그때 홀로그램이 새로운 문장들을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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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 ‘새로운 세대’의 정보를 전달합니다.

-3권 태그: [여름방학] [캐릭터 중심] [어반 판타지]

-진행률: --- (6월 28일 월요일 오전 11시 시작)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3권 종료 시점,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으로서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를 일 개체 이상 제거할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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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재빨리 얻은 정보들을 살폈다.

3권의 태그 중 하나인 ‘어반 판타지’. 장르 소설적인 분류로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늑대인간, 흡혈귀 등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과 도시를 배경으로 싸우는 거다. 내 고유 퀘스트 역시 인간이 아닌 지성체를 하나 이상 팬텀의 일원으로 없애는 거고.

설마하니 서연희와 싸우라는 건 아닐 테고, 이번엔 그런 놈이 등장한다는 거겠지. 자세한 프로필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그리고 3권의 시작 시점이라는 6월 28일. 내가 알기론 제일고 방학식과 같은 날이다. 그날부터 8월 말까지 두 달이 방학 기간.

안드레이 일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때까진 유보해도 된다는 걸 알려주려는 걸까. 글쎄…… 홀로그램이 그렇게 기특한 짓을 해줄 것 같진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또 한 차례 긴 문장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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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2권, ‘영웅의 제자들’이 실질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2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성장]

-진행률: 99.9%

-2권의 남은 문장

: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1학기를 지나,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조건부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2권 종료 시점, 36 영웅을 한 명 이상 살해하면서도 테러조직 팬텀이 용의선상에서 멀어질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달성률에 따라 클리어 보상을 산정합니다.

: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의 생살여탈권 확보 (C 랭크)

1) 신체 포인트 2p

2) 소질 포인트 0.1p

3) OX 질문 2회 (질문의 중요도에 따라 답변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상기 세 가지 보상을 제한시간 내에 수령해 주세요. (제한시간: 29일 23시간 59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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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판단하기가 모호했다.

온전히 달성한 것도 아닌데 조건부로라도 보상을 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2권이 끝난 것도 아닌데 벌써 C 랭크로 평가해서 내가 잔머리를 굴리지 못하게 만든 걸 불평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이미 보상이 책정됐으니 더 요구할 수는 없고, 안드레이 일린을 미끼로 쓰는 선택지만 남았다.

양쪽 다 얻어내긴 했으니 그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겠지.

“흐윽, 흐으…….”

세아는 조금씩 울음을 그치고 있고, 나는 유해빈 쪽을 살폈다.

“으음, 음…….”

아까부터 뚫어져라 한 곳만 계속 쳐다보고 있다.

나도 아니고 세아도 아니다. 다름 아닌 서연희가 서 있는 방향.

쟤도 눈치가 빠르니까…… 아무래도 들켰다고 봐야겠지. 서연희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는 게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듯했다.

이어서 허공에서 빠르게 접근해 오는 한 사람.

터억.

발소리를 내며 착지한 한태강이 말없이 나를 응시한다.

한심해하는 건지 그래도 후배들 아들이라고 무사해서 다행이라 여기는 건지 판가름하기 어려운 눈빛.

나는 힘겹게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고, 그것으로 오늘의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됐다.

***

5월 25일 화요일 저녁 무렵.

학교를 마치고 귀가해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유해빈은 굳은 결심을 새기며 집을 나섰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생각이 여러 개라 복잡한 심경.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으로 두는 목적이 있었다.

‘겁먹을 거 없어.’

상대의 실체를 알지 못할 때는 아주 신중하게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좀 달라졌다.

알아낸 정보가 상당했고, 그걸 기반으로 판단해 볼 때 유해빈 자신이 그리 꿀릴 것도 없어 보였다.

‘그게 말이 되냐고. 도진쿤 응애응애 하는 아기 때부터 봐놓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그랬다.

여유로운 게 아니었다.

그저 뻔뻔한 것에 불과했다.

상대는 더는 정체를 알지 못하는, 비밀에 감춰진 최종보스가 아니게 됐고, 유해빈은 힘주어 자신에게 일렀다.

“용용이는 웃고 있다…….”

실제로는 웃음기 하나 없이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어렵사리 기운을 낸 유해빈은 목적지까지 지체하지 않고 이동했다.

이삼십 분쯤 지났을까.

인적 없는 길을 걸을 때쯤 눈앞에 환한 빛무리가 펼쳐졌고, 그곳으로 발을 내디딘 유해빈의 외견이 바뀌어 갔다.

“오, 오오…….”

신기한 감각.

머리칼이 길어지고, 이목구비의 느낌도 변화하는 듯했고, 키를 비롯한 신체와 입은 옷차림에까지 바꿔낸 마법이다.

긴장되는 마음을 달랜 유해빈은 분위기 있게 꾸며놓은 어느 서양식 술집으로 들어섰다.

‘으으, 기분 좀 이상하네…….’

상대와 만나기도 전인데 기선이 제압되는 것 같다. 한 번도 올 일이 없고, 올 수도 없는 어른들의 공간이었으니까.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조용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홈그라운드가 아닌 적지에 들어온 듯한 느낌.

“으흠, 으흠…….”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걸 애써 여유로운 척 무시한 유해빈은 미리 들은 방의 위치가 어딘지 찾았다.

‘제일 안쪽이라고 했는데…… 아, 여기네.’

그녀는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세 번.

그러자 문 안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후우…….”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진 유해빈은 떨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어서 마주한 광경.

“아,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하다. 이번에 보는 건 조심해야 해서.”

이도진이 퍽 미안해하는 얼굴로 그녀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던, 소파 중앙에 앉아서 여유롭게 술잔을 들고 있는 여성.

“해빈이 안녕? 이 신분으로 대화하는 건 처음이지?”

36 영웅의 한 사람.

‘안개의 마녀’ 서연희가 생긋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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