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96화 (96/207)

#96화. Chapter 23. 장기말 (4)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유해빈은 다시금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으며 되뇌었다.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보스의 정체. 그녀가 실은 영웅 서연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일요일 자정 발생했던 균열 사건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이렇다 할 근거가 있던 건 아니다. 유해빈이 그걸 파악하는 데에 유일하고도 확고하게 공헌한 정보는 바로 믿음.

‘도진쿤이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데, 거기 외부인이 먼저 와 있다고?’

유해빈 자신을 비롯해 네 사람이 균열 외곽의 공터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서연희가 밖에서 들어와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파르투스와 싸운 검은빛이 이도진이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던 유해빈으로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안 봐도 뻔하지. 도진쿤이 숨겨진 힘 같은 거로 아르노 뒤레랑 안드레이 일린 처리하고, 파르투스까지 꼴까닥시킨 다음에 원위치 복귀해서 서연희랑 말을 맞춘 거야.’

그렇게 가정하면 자연스럽게 서연희의 정체도 추론할 수 있다.

공간 마법과 계약 술식의 권위자.

대마법사 정세빈의 후배로서 이도진을 어린 시절부터 오래 알아온 사람.

‘보스랑 엄청 비슷하잖아.’

팬텀의 보스 역시 공간 마법과 소원 계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초고위 마법사고, 이도진과 사적으로 대단히 친밀한 관계다.

세간에 알려진 서연희의 실력보다는 보스의 힘이 월등하나 그거야 진정한 능력을 감춰왔다는 것으로 설명이 되겠지.

하나 의문이 있다면…….

‘성격이 좀, 심각하게 다른데…….’

안개의 마녀 서연희.

이십여 년 전의 싸움이 끝난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그녀의 인지도는 한국의 다른 영웅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런저런 행사에 일절 참석하지 않고,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도 없으니까. 해서 분명 살아있는 사람인데도 유해빈의 감각으론 역사책에 언급되는 위인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인물.

다만 그래도 36 영웅의 일원이니 무용담이라든가 성품에 관한 평판쯤은 검색해보면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자기 혼자 다른 사람들 다 따돌리는 스타일이랬는데.’

성격이 조용해서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그저 타인과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그녀와 대등한 눈높이로 대화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면 저절로 주눅이 들 만큼 혼자 저만치 앞서나가는 사람.

어릴 적 제1 아카데미에 다닐 때도 그랬고, 이십 대 초반에 세계를 구한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은 그 무렵까지 쭉 그랬다고 한다. 상냥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무척 사근사근한 성격인 팬텀의 보스와는 전혀 딴판이다.

다른 건 다 정황이 착착 맞아떨어졌으나 그건 의문이었고, 그래서 유해빈은 이틀 동안 결론을 보류하고 있었지만…….

“해빈이 안녕? 이 신분으로 대화하는 건 처음이지?”

“아…… 네, 보스…….”

이렇게 서연희의 모습으로 직접 마주한 이상 의문을 가지는 건 무의미해졌다. 딱히 특별한 동작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손길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 기울인 서연희가 이내 유해빈에게 일렀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이쪽 와서 앉아. 술은 못 줘도, 여기 무알콜 칵테일도 꽤 맛있거든.”

그러면서 예쁜 색의 액체로 층이 나뉜 유리잔을 건네준다. 이 또한 별것 아니고 그저 마실 걸 준 것뿐이건만 어쩐지 위축되는 느낌을 받은 유해빈이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목을 축였고,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혀끝을 감도는 가운데 몰래 서연희의 외견을 눈에 담았다.

‘좀…… 예쁜데.’

겉보기엔 많아 봐야 삼십 대 초반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서늘한 분위기의 잘 조형된 이목구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유해빈이 보기에도 본인에게 꼭 어울리게 걸친 옷과 장신구.

170cm를 훌쩍 넘기는 큰 키에 볼륨감과 굴곡까지 확실히 갖춘 신체.

어딜 어떻게 봐도 성숙한 성인 여성의 매력을 지닌 빼어난 미인이었고, 그걸 인정하면서도 유해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 정도면 내가 낫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리라.

균열 너머의 세상에서 살던 때 저항군을 이끄는 용족의 혈손이었던 유해빈은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말하자면 공주 대접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들이 공통되게 한 말 중 하나는 그녀의 외모에 대한 칭찬.

어쩜 이리도 귀엽고 영특하냐고, 크면 대단한 미인이 될 거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거다.

유해빈은 그게 단지 자신의 신분이 높아서 없는 말로 한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외모만큼이나 그녀의 미적인 기준도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저쪽에서 살 때도, 이쪽에 와서도, 그녀는 자신과 견줄 만한 외모를 지닌 이를 본 적이 없다. 유해빈의 평가로 진유리는 조금 예쁘장한 정도에 불과했고, 이세아 정도는 되어야 예쁘다는 표현을 쓸 만했다.

그리고…….

지금 마주한 서연희는 몸매와 분위기에서 빼어난 부분이 있긴 하나 결코 유해빈 자신에게 미치진 못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도 이만하면 키 크고, 라인도 괜찮고, 특정 부위는 훨씬 웅장하니까.’

열여덟 살에 벌써 이 정도인데 다 성장해서 잠재력이 만개하고 분위기까지 갖추면 어떻겠는가. 그때쯤엔 서연희는 상대도 안 될 터였다.

‘맨날 얼굴 안 보여줘서 얼마나 예쁠까 싶었는데, 원래 모습은 나보다 못하네.’

저도 모르게 승리감에 웃은 그녀는 칵테일을 꼴깍꼴깍 들이켰고, 맞은편에 앉은 이도진이 미심쩍어하며 묻는다.

“왜 웃냐?”

“아, 아뇨. 보스 진짜로는 어떤 분이셨는지도 알았고,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 좋아서요.”

“그래?”

역시 똑똑한 빡대가리답게 이도진은 그녀의 말을 별 의심 없이 믿었다. 한데 그때, 그의 잔에 술병을 기울이며 서연희가 말했다.

“거봐, 해빈이는 알면 좋아할 거랬지?”

“그러네요?”

이도진과 서연희.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은 무척 친밀해 보였다. 서연희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특히 더 그래 보이는 것도 같았고.

유해빈은 은근슬쩍 둘이서만 마시고 있는 술병에 눈길을 주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저게 진짜 성격이려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서연희의 성격.

유해빈이 알아온 보스의 성격.

어느 쪽이 진정한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본래 쌀쌀맞은 성격이었던 게 이도진과 가까워지고 바뀐 걸까.

‘음…… 그건 좀, 위험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네.’

서사적으로 상당한 가산점을 얻을 수 있는 변화니까. 유해빈이 장기적으로 노리던 포지션이기도 했고.

그즈음 이도진이 일렀다.

“그래서, 오늘 해빈이 너를 왜 불렀냐면…… 우리 저번에 했던 일 결산하려고.”

“네, 저도 얼추 눈치껏 안 거도 있거든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이도진이 대견해하는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는 설명을 이었다.

“아르노 뒤레는 자기 의지로 대균열에 관여한 게 아니었어. 현시점에 정확히 파악한 배신자는 안드레이 일린이야.”

“그 사람, 아니, 그 새끼 지금도 의식 없잖아요.”

이번 S급 균열에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몬스터 무리와 싸운 헌터들도 경상자 몇 명이 전부고, 민간인들의 피해는 아예 없었다.

가장 심한 부상자라면 유럽의 영웅 셋과 이도진.

다른 이들은 치료를 받아서 컨디션을 회복했고, 정체 모를 악마와 싸웠다고 알려진 안드레이 일린만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놨어. 자세한 원리는 좀 복잡한데, 아무튼 그 자식은 이제 안드레이 일린 아니고 내 명령 듣는 꼭두각시라고 보면 된다.”

“음…… 그러면 그놈을 배신자들 끌어들일 미끼로 쓰시려는 거죠?”

“그렇지. 그놈이 관련 자료를 빼돌려서 대균열이 발생한 건데, 누구한테 자료를 넘겼는지 알아내고, 잘 활용해서 꼬리 잡을 계획이야.”

“오…… 역시 우리 교수님, 이런 음모 꾸미는 건 확실하시죠.”

“……칭찬이냐?”

“당연히 칭찬이죠.”

살갑게 웃은 유해빈은 손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근데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뭐? 말해줄 수 있는 건 다 말해줄 테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음, 그러니까요…….”

유해빈은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안드레이 일린을 어떻게 조종하는지는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뭔가 신비한 능력이 있겠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이도진에게 묻고 싶은 건…….

“파르투스 있잖아요. 어, 교수님 엄청 세신 건 잘 아는데요, 그으,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밸런스 붕괴? 사알짝,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아, 그렇다고 교수님 이상하게 의심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궁금하긴 해요.”

파르투스와 싸우던 이도진의 모습을 유해빈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그는, 정말로 극히 악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외견과 느껴지는 힘 모두.

“후우…….”

숨을 길게 내쉰 이도진이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서연희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 가운데, 그의 시선이 테이블 한쪽에 있는 담뱃갑으로 향한다.

하지만 피우진 않고, 유해빈을 보며 또렷하게 일렀다.

“그러네. 너한테도 말은 해줘야겠다.”

유해빈의 심장이 강하게 두근거렸다. ‘이런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침착하던 이도진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조금 떨리는 것 같아서.

이윽고 이도진이 말했다. 왼손으로 자기 심장 쪽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뭐가 있거든.”

“심장에요?”

“어. 이 근처에 있어. 지금은 가둬놨는데, 나중에 또 깨어날지도 모르고.”

“……뭐가 있는데요?”

“…….”

잠시의 침묵.

이어서 마침내 이도진이 비밀을 털어놓았다.

“해빈이 너, 마신이라고 하면 알려나?”

“네……? 어…… 아니, 마, 뭐요?”

대충 악마가 어쩌니 하는 것까진 예상했지만 그것조차도 훨씬 능가하는 답변에 유해빈이 경악하며 되물었다.

***

<세계의 수호자>니 <킬 더 이블>이니 그런 것까지는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한 얘기를 서연희와 유해빈에게 알리는 건 고민하지 않았다.

마신의 파편, 심지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힘. 내 몸에 그것이 잠들어 있다는 걸 이 두 사람에게는 말해줘야 했다.

서연희에게는 봉인 술식을 받을 계획이고, 유해빈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대균열로 고향을 떠나와야 했던 아이.

균열 너머 세상의 저항군을 이끌어갈 차대 수장.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

이제는 서연희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내 동료.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되면, 나를 막아주고 내가 못다 한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후계자.

그러니 말해야 했다.

“파르투스는 애초에 이걸 노린 거였던 것 같아. 정확하게는 이 힘이 그놈을 끌어들인 거로 봐야 하고.”

“그러면…… 교수님이 그거 눈치채고, 파르투스랑 그 마신의 파편인가 뭔가 하는 거랑 공멸시킨 거네요?”

“그렇지. 파르투스까지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도 했는데, 그랬으면 이거 약하게는 못 만들었을 거야. 살려서 보내는 거도, 그놈이 알아낸 게 제법 많아서 힘들었고. ‘저쪽’에 변동이 크게 생길 수도 있는데, 해빈이 너한테는……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미안하네.”

파르투스의 갑작스러운 소멸이 균열 너머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였다.

저항군이 지금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파르투스의 소멸이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었다.

한데 유해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으로 따져 묻는다.

“교수님 지금 제 가족들 무시하시는 거예요?

“응?”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면서도 유해빈이 단호하게 말한다.

“이름부터가 저항군이잖아요. 마왕 한 놈이라도 죽으면 당연히 좋죠. 그거 못 해서 저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세력에 변화가 있으면 그걸 잘 활용하려고 생각해야지 파르투스 죽였다고 교수님 탓하겠어요? 제 아빠랑 엄마랑, 할머니랑, 그런 분들 아니에요. 이런 거로 원망을 왜 해.”

“그건…… 내가 실수했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2권의 고유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얻은 OX 질문. 그걸 사용해서 균열 너머의 정세를 파악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그쪽과도 향후에는 교류할 듯하고, 순전히 유해빈을 위해서만 OX 질문을 소모하려는 건 아니었다.

결심을 마친 나는 짧게 일렀다.

“그럼 알아볼까?”

“네?”

되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고 홀로그램을 열었다.

+

OX 질문 (1/2)

-질문 내용: 균열 너머의 저항군 세력이 마왕 파르투스의 소멸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

-정답: O

+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안도감. 그리고 이어서 유추해낸 단서.

“야…… 해빈아.”

“네, 교수님. 근데 뭘 알아보신다고-”

“이거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사실이니까 믿어도 된다.”

“뭘요?”

“그, 너희 쪽 있잖아. 저항군.”

“네. 저항군이 왜요?”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는지까지는 모르겠는데, 지금도 활동하는 거 같은데?”

“어…… 어, 진짜…… 정말로요?”

유해빈이 멍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분명하게 답했다.

“어. 내가 가끔 이런 거 알 수 있는데, 진짜로 활동하고 있어.”

“아…… 진짜, 진짜로요……?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유해빈의 안색이 새빨개졌다. 너무 놀라고, 또 너무도 기뻐하는 듯한 얼굴. 그리고 뭔가를 참는 듯이 망설이는 듯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교수님, 그러면요…… 저 진짜 너무너무, 죽을 것처럼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요…… 그거도,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뭔데?”

나는 이미 유해빈이 무엇을 물어볼지 예감하고 있었다.

새빨개진 눈시울로 나를 바라보며, 가족과 헤어져야만 했던 아이가 내게 묻는다.

“그러니까요, 이거 만약에 교수님한테 부담되는 거면 안 알아봐 주셔도 되는데요…… 근데, 진짜로 너무 궁금해서, 제 아빠랑 엄마랑, 할머니랑, 살아 계신지, 그거 혹시라도 알 수 있으면요…… 그거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앞선 OX 질문은 명확한 목적성이 있었다. 비단 유해빈에게 가지는 호의 때문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질문은 달랐다. 저항군의 수뇌부이자 유해빈의 가족.

그들이 생존해 있는지는 향후 계획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걸 명확하게 인지했고, 주저 없이 OX 질문을 사용했다.

+

OX 질문 (2/2)

-질문 내용: 제일고 2학년 유해빈의 직계 혈족인 용족 셋이 현재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지 여부

-정답: O

+

나는 유해빈을 이용할 장기말로만 생각하지 않으니까.

세아를 보호해달라는 내 부탁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파르투스와 맞선 이 애를, 손익을 계산하면서 이용해야 할 장기말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유해빈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냈고, 이 애가 너무나도 원했을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다.

“어, 세 분 다 살아계셔. 지금도 저항군 이끌고 계시고.”

“아…… 아…….”

유해빈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오열하는 소리도 감춰지지 않는다.

십 년을 넘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그 슬픔을 웃음으로 가렸던 아이.

“아, 으흑, 아…… 교수님,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엄마, 아빠, 할머니…… 고맙습니다, 교수님, 흐윽, 고맙습니다…….”

쉴 새 없이 내게 고맙다고 말하며 흐느끼는 유해빈을 나는 먹먹하게 바라봤다.

나는…… 이 애와 나를 겹쳐보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줄 알았던 유해빈과 가족을 살리려는 나를 겹쳐봤다.

저렇게나 기뻐해서 다행이라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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