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Chapter 24. 한세라 (3)
‘잘 지냈어?’라고 내게 안부를 묻는 세라를 말없이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양가적인 기분을 느꼈다.
무려 이 년 동안이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고작 몇 마디 메시지, 짧은 통화, 그런 연락을 드물게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그런데 왜 막상 만나게 되니 어제 만났던 것처럼 편안한 걸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눈과 귀와 모든 감각은 이 순간을 편하게 여기는데, 그런데도 부담스럽다. 아니…… 어쩌면 너무 편해서, 그것 때문에 되려 더 부담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어렵사리 숨기며 나도 세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잘 지냈지. 오랜만이다. 근데 염색할까 한다더니 안 했네?”
“아, 그거?”
세라가 입가에 슬쩍 웃음을 띤다. 그리곤 여상스러운 어조로 답한다.
“그냥, 생각해 보니까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어서. 난 이목구비도 이렇고, 검게 머리카락 염색하고 렌즈 끼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수도 있잖아? 너도 안 어울릴 것 같다며?”
“내가 그랬나?”
“상상이 안 간다면서. 그 정도면 네 기준으로는 이런 뜻 아니야? 너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 이런 거.”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솔직한 답을 일렀다.
“뭐…… 좀, 어색할 거 같긴 해.”
“그치? 네가 금발로 염색하고 컬러렌즈 끼는 것만큼 안 어울려.”
“본 적 없잖아.”
“너도 본 적 없잖아?”
“…….”
“…….”
짧은 침묵. 이내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이제 세라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근래 자주 오진 않았지만 익숙한 거리를 나란히 걸으며 세라에게 물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차 가지고 왔으니까 이 근처 말고도 괜찮은데.”
“그래? 그러면…….”
톤이 조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반문한 세라가 내게 뭔가를 제안하려던 그때.
“어?”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자애 세 명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춘다.
“와…….”
나랑 세라를 번갈아 보면서 감탄 같은 소리를 흘리는 애가 한 명. 또 한 명은 아예 굳은 채로 멍하니 쳐다보는 중이고, 그나마 덜 당황한 듯한 여자애가 내게 인사한다.
“어……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놀러 나왔어?”
“아, 아뇨. 저희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밥 먹으려고 나왔는데…….”
그러더니 얘도 다른 두 명과 마찬가지로 나와 세라를 몹시 충격이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조금 난처해진 나는 옅게 웃으며 그 애들에게 일렀다.
“이번 시험 꽤 어려울 거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다음 주에 학교에서 보자.”
“아, 네. 가세요, 교수님…….”
나는 손을 들어 인사해주곤 그 애들을 지나쳤다. 세라는 가볍게 눈으로만 인사하며 내 옆을 나란히 걸었고, 십 초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내게 묻는다.
“제일고 애들?”
“응, 내 수업 듣는 애들.”
“그럼 나한텐 후배들이네. 근데…… 느낌이 좀 이상하다.”
“왜?”
“넌 교수님인데 난 선배잖아. 이도진 교수님, 음, 그렇게까지 안 어울리는 건 아닌데…… 난 그래도 살짝 어색하네. 애들은 너 잘 따르는 거 같긴 했어.”
“그런가?”
“응, 한 명은 충격 많이 받았던데? 넌 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선생님 돼서도-”
“그래서 어디 갈 거라고?”
곤란한 이야기가 나올 듯한 예감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이미 내 반응을 봤으니 충분하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세라가, 조금 뜻밖의 제안을 꺼냈다.
“차 가지고 왔으면…… 좀 멀리 가도 괜찮지? 두 군데 가야 하는데.”
“어디?”
“이 년 만이잖아. 서로 인사드리고 오면 어떨까 싶어서.”
“……그럴까?”
나는 먹먹한 심정으로 세라의 말을 받았다.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소꿉친구. 세라와 나 사이엔 둘 다 원치 않는 공통점이 있다.
대균열 이후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거다.
***
올리비아 윈이라는 영웅이 있다. 이명은 ‘방벽’.
내 부모님과 나이가 같고, 금발에 푸른 눈을 지녔지만 미국계 한국인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한국에서 자랐다.
<세계의 수호자>의 도입부인 제일중 입학식 당시부터 등장한 조연 캐릭터.
방벽이라는 이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녀는 압도적인 마력을 기반으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 외에 특기 사항을 두 가지만 더 꼽으라면, 하나는 그녀의 매력 수치.
무려 8을 훌쩍 넘기는 수준이었다. 이시혁과 정세빈보다도 뛰어나고, 인간 중에서 외모만을 놓고 본다면 당대 최고.
그리고 두 번째.
제일중 입학식에서 마주친 한태강을 보고 한눈에 반한, 가장 인기가 많은 조연 커플이었다는 점이다.
“한국 오자마자 아빠랑 같이 왔는데, 여전하시더라. 그대로 뒀으면 아마 지금까지 여기 계셨을걸?”
올리비아 윈의 봉안묘 앞에 선 세라가 그리움을 담아서 말한다. 그리곤 무언가를 회상하듯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벌써 육 년 가까이 지났네……. 언제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싶어.”
세라의 말대로 올리비아 윈은 6년 전, 우리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의 겨울에 사망했다.
사인은 병사(病死).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인한 신체 기능의 저하. 그것이 전신 마비로 이어지다가, 결국엔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대균열 이전까지만 해도 건재했던 그녀는 대균열 이후로 서서히 상세가 나빠졌다. 초인적인 의지로 수년을 버텼지만, 마지막 반년은 거동이 어려워져 병상에서만 보냈다.
그리고 6년 전의 어느 추운 밤. 세라와 한태강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웅 올리비아 윈은 마침내 생을 마감했다.
“아빠가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 본인이 더 잘했으면, 어쩌면 이렇게 안 됐을지도 모른다고. 도진이 네가 보기엔 어때?”
“……더 잘하실 수 있었을까?”
“응, 내 생각도 그래.”
가슴이 저며오는 죄책감을 느끼며 변명처럼 답한 내 말에 세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악마의 열네 군주 가운데서도 특히 무투파로 이름이 높았던 마왕 카르딘.
최후의 결전에서 올리비아 윈과 한태강은 단둘이 놈과 싸웠다. 객관적인 전력상의 승산은 20% 이하.
한태강에겐 세 번의 호흡이 필요했고, 카르딘은 그만큼의 틈을 주지 않았다.
올리비아 윈이 죽음을 각오하며 시간을 끌었고, 한태강이 혼신의 힘을 다해 내지른 주먹이 카르딘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건 기적적인 승리였지만, 또한 굳건한 의지가 만들어낸 쾌거이기도 했다.
올리비아 윈은 카르딘을 쓰러뜨리고 한태강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태강은 올리비아 윈을 죽게 하지 않고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구사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적은 사람이 나다.
<세계의 수호자>의 작가인 내가 그 장면을 적어냈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이 세상에 환생해, 어린 시절 전생을 자각한 나는 정말 많이 기뻤다.
싸움은 끝났고, 한태강과 올리비아 윈 둘 다 무사하고, 예쁜 딸을 낳았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알았으니까.
대균열이 발생할 걸 전혀 몰랐으니까.
그러니 한태강이 잘못한 게 아니다.
올리비아 윈이 잘못한 건 더더욱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대균열을 만들어낸 배신자들에게 있겠지.
하지만…….
정말로 그것뿐일까. 대균열에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원죄는 작가인 내게 있지 않을까.
지난 십 년 동안 나를 짓눌러온,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책감.
세라와 점차 거리를 두려고 했던 내 행동에, 그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세라는 조용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올리비아 윈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세라가 내게 묻는다.
“그거 기억나?”
“어떤 거?”
“우리 어릴 때, 싸운 적은 없지만 딱 한 번 의견 차이가 안 좁혀진 적이 있었잖아?”
언제를 말하는지 알 듯했다. 내가 전생을 자각하기 전에, 세라와 내가 서로 자기 엄마가 더 예쁘다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툰 적이 있다. 워낙 싸운 일이 없어서 더 선명한 기억.
“그때 도진이 너희 어머니랑 우리 엄마가 그러셨잖아. 이다음에 크면 내가 두 분보다 더 예뻐질 거니까 그런 거로 싸우지 말라고.”
“난 그거 지금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싸우지 말라고 하시길래 휴전의 형태로 일단락이 되기는 했지만, 세라가 예뻐지는 거랑 그만 싸우라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그래도 지금 와서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해서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두 분이 선견지명이 있으시긴 했어.”
“응?”
세라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고, 이내 차분한 물음이 이어졌다.
“그거 칭찬하는 건가?”
“……사실 그대로.”
“글쎄, 네 주관적인 평가면 몰라도 사실은 아닌 것 같은데.”
피식 웃으며 자기 의견을 표한 세라가 내게 일렀다.
“가기 전에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마음속으로 해. 난 목요일에 이미 했거든.”
“……그래.”
나는 묵념하듯 고개를 숙이고, 올리비아 윈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끝났어.”
“무슨 얘기 했어?”
“그냥,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고.”
그렇게 둘러댄 나는 세라와 함께 봉안묘를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내 부모님의 추모 광장.
오후 다섯 시를 넘겨서 도착한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누고, 또 가끔은 말없이 걷기만 하다가, 내 부모님의 동상이 세워진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갈 때쯤 나는 세라에게 일렀다.
“이번에는 네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응.”
세라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꽤 오래 이어진 침묵.
이제 눈을 뜬 세라에게 내가 물었다.
“무슨 얘기 했어?”
별다른 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세라의 눈빛에,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으니까.
이제 세라가 답한다.
“많이 죄송하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어.”
“……어째서?”
세라가 잠시 입을 다문다.
뎅- 데엥- 오후 여섯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여름이라 아직도 날은 어둡지 않았고, 덥지 않게 바람이 살며시 불어온다.
그리고…… 세라가 답한다.
오늘 나와 만났을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내게 하고 싶었을 말을.
“그때, 십 년 전에 장례식장에서, 너희 부모님 영정에 절하면서 난 이렇게 생각했어.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옆에 있을 거니까, 도진이도 세아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
“근데…… 내가 생각한 만큼 잘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르게 돼버려서,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 아마 파혼할 거잖아.”
세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
이 년 전의 여름, 유학을 가기 직전에 만났던 날.
그때 나를 비난하며 보인 것과 정확히 같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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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익명 (글쓴이)
날짜: 06/06 18:24
제목: 조디니... 안녕......
내용: 여자친구분 진짜 너무너무 예쁘시더라...... 둘이 엄청 잘 어울리구...... 나 진심이었어서 마음은 아픈데...... 그런 사람이면 인정할 수 있을 거 같아......
안녕......
댓글:
-익명 1: 아 조디니는 또 뭔데 ㅋㅋㅋㅋㅋ 이도진에서 이조딘에서 어디까지 가냐고 ㅋㅋㅋㅋ
-익명 2: 난 여장 유해빈 아니면 도진쿤 상대로 인정 못 하는데;
-익명 3: 본문 진짜임? 도진쿤 여자친구? ㄹㅇ?
└글쓴이: 응... 울트라 슈퍼 존예임...... 외국인 같던데...... 아무튼 그냥 말로 표현 안 돼... 유해빈 여장해도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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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시험공부 중에 잠깐 짬을 내서 들어간 제1 아카데미 익명 커뮤니티. 그곳에서 몹시 불온한 글을 발견한 진유리가 침울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