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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02화 (102/207)

#102화. Chapter 25. 죄책감 (1)

애 표정을 보니 둘러댄다고 순순히 믿을 것 같지가 않은데…….

나는 결국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냥, 자그마한 의견 차이로 인한 다툼이-”

“그런 거로 때린다고? 세라 언니가?”

이렇게 물으니 또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세라를 알고, 세아도 걔를 안다. 폭력 쓰는 일이 상상이 안 가는 앤데 살짝 다퉜다고 뺨 후려칠 리가 없긴 하지.

“…….”

세아가 입을 꾹 다문 채로 다시금 내 얼굴을 살핀다. 아직도 조금 화끈거리는 왼쪽 뺨을 보다가, 반대편의 멀쩡한 오른쪽 뺨을 보다가, 거기서 또 시선이 옮겨와 이제 나와 눈을 마주한다.

뭔가를 생각하듯,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광경을 상상하는 듯이 복잡한 눈빛이다.

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요전에 뺨을 맞았을 땐 서연희와 대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세라와 나도 그와 엇비슷하게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고 짐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세아가 묻는다.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처럼, 나직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오빠는?”

“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세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맞기만 했냐고.”

“아니, 얘가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네.”

화들짝 놀란 나는 그렇게 답했다. 나야 잘못했으니까 맞은 거고 내가 걔를 어떻게 때려.

게다가 또 하나 세아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리고 걔랑 싸우면 오빠 삼 초 안에 실신할 자신 있는데.”

세라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이미 A급 헌터 수준을 훌쩍 넘어선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지난 이 년 동안 더 성장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거의 S급에 근접했지 않으려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실력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

실신이니 뭐니 오빠가 동생에게 하는 말로는 모양새가 안 나긴 해도 세아에게는 그게 진실일 거고, 수긍하는 듯하면서도 세아가 작게 중얼거린다.

“……마음에 안 들어.”

그러더니 몸을 홱 돌려 부엌으로 향한다. 곧바로 들린 불길한 소리에 위험을 직감한 나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뭐 하게?”

“저녁, 안 먹었잖아.”

“안 먹었긴 했는데 너도 안 먹었어? 그러면 내가 차릴 테니까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으면-”

툭, 스윽-

내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세아가 양손으로 내 어깨 쪽에 대고 부엌 바깥으로 민다. 무력으로 벌써 옛날옛적에 동생에게 추월당한, 안타깝고도 가련한 오빠로 인식되고 있는 나는 힘없이 밀려나며 외쳤다.

“어, 어, 왜 밀어. 그만, 와, 이세아 이게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이제 힘 좀 세졌다고 오빠한테 막 함부로 폭력 쓰고-”

“폭력은 내가 아니라 세라 언니가 썼잖아. 빨리 씻고 거실 가서 앉아 있어. ……맛있는 거 해줄게.”

저렇게까지 말하는 이상에야 더 거부하긴 어려웠고, 마침내 상황을 받아들인 나는 세아에게 답했다.

“어…… 부탁할게.”

“무슨 부탁?”

“아니, 아니야. 오빠 씻고 나온다.”

차마 잘 좀 만들어달란 말은 못 하고 대충 둘러댄 나는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오래 씻었다.

애가 조급해하지 말라고.

천천히, 신중하게 메뉴와 조리법을 고민해서 요리하라고.

……아주 큰 실수였다.

삼십 분쯤 지난 뒤.

거실 탁자에 놓인 접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접시는 총 셋이었다.

기름과 물이 섞인 듯한 액체가 그릇 가장자리까지 흘러나온, 어쨌든 쌀로 만든 요리가 각각 세아와 내 몫으로 두 그릇.

그리고 두툼하고 넓은 접시엔 새우와 각종 채소, 적당히 뜯은 식빵 몇 조각이 기름에 살짝만 적셔진 채로 담겨 있다.

이내 세아가 새초롬하게 답한다.

“볶음밥이랑 감바스.”

아니, 볶음밥치곤 좀 많이 축축해 보이는데…….

반대로 세아가 감바스라고 주장하는 저건 기름이 적어서 국물이 있다기보단 튀긴 새우에 더 가까운 것 같고.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빨리 씻고 나와서 훈수라도 두는 게 나았으려나.

대참사가 벌어졌음을 직감하며 나는 세아에게 일렀다.

“저기, 이세아 씨. 볶음밥은 기름 두르고 볶는 음식인데-”

“그렇게 했어.”

“아…… 그래?”

“태울까 봐 물도 살짝 넣었고.”

“아…… 하긴 그렇지. 태울 수도 있으니까. 근데 감바스는 이거보다 올리브유 더 써도 되는데-”

“느끼할까 봐.”

“아…….”

나는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얘가 그래도 물 넣으면 잘 안 탄다는 건 알고 있었네. 기름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그래, 그 정도면 됐어. 아주 기특해. 합리화를 끝마친 나는 숟가락으로 촉촉한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솔직히 식감 부분은 언급을 못 하겠지만…… 전체적인 간은 얼추 맞는 듯했다.

“맛있어.”

“……진짜?”

“응. 새우도 넣었네.”

“감바스 만들면서 남아서. 더 먹고 싶으면 내 거에서 가져가.”

“아, 땡큐.”

나는 거절하지 않고 세아 몫의 접시에서 위쪽에 보이는 새우를 모두 가져왔다.

왜냐면…… 새우 안쪽이 차가웠거든. 내 동생에게 이런 걸 먹일 순 없었다. 비록 본인이 만든 거라곤 해도,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밥 안쪽에 있을 건 도중에 열기로 미지근해지길 바라는 수밖에.

다행히 세아는 밥을 뒤적거리지 않고 위에서부터 조금씩 떠먹어가고 있고, 나란히 앉은 남매 사이에 도란도란 대화가 이어졌다.

“시험공부는 잘 돼가?”

“응, 그럭저럭.”

“등수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

저번 중간시험에서 세아는 필기와 실기를 합산한 종합 점수로 학년 3등에 등극했다.

1등은 진유리, 2등은 유해빈, 두 사람과 근소한 차이로 세아가 3등.

그 정도만 해도 엄청 잘한 거고 밤잠 못 자가면서 고생하진 않았으면 싶었는데…… 되려 역효과가 난 듯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더 신경 쓰이는데.”

“청개구리세요?”

“……개굴개굴.”

단조로운 어조로 되받은 세아가 볶음밥을 푹 떠먹었다.

긴장한 채로 지나간 일 초.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걸 보니 덜 익은 새우 먹은 것 같진 않네. 겨우 한시름 놓은 나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숙소는 샬럿 집으로 확정됐어?”

“응. 선생님은 전부터 괜찮다고 하셨고, 유리랑 그냥 같은 방 쓰려고.”

여름방학 동안 세아와 진유리가 영국에서 묵을 숙소를 정하는 일.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둘이 단기 임대할 집을 구하거나, 호텔에서 지내거나, 아니면 샬럿 테이트의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나와 진유리의 부모님이 반대했다. 애들 둘이서 보호자도 없는 곳에서 지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아서.

그러니 세 번째가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지만 샬럿 테이트의 집은 저택을 빙자한 훈련실이나 마찬가지라 안 쓰는 방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

세아와 진유리 둘이 심사숙고하는 듯하더니 결국 방을 같이 쓰기로 한 모양이었다.

“싸우면 안 돼. 사이좋게 지내고.”

“……걔가 말도 안 되는 거로 이상한 소리만 안 하면 싸울 일 없어.”

“이상한 소리?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거부한 세아가 의욕적으로 식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애가 좀 저기압이긴 해도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내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연이어 쏟아지자 조금은 기분이 풀린 듯싶었고,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와 정리는 내가 하겠다고 하니 세아가 살짝 머뭇거리면서도 요구해왔다.

“그럼 나 씻고 올 테니까…… 오늘 ‘그거’ 해줘.”

“저기요, 내 기억으로는 어제도 해주지 않았나?”

“아침부터 시험공부 해서 피곤해. 난 요리 해줬잖아.”

“음…… 알겠어. 씻고 와.”

내 생각엔 피곤한 것도 있겠지만 오빠 부려먹으려고 저러는 것 같은데. 뭐,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알겠다고 하자 세아가 사뿐한 동작으로 일어섰고, 나는 접시와 집기류를 모아서 부엌으로 갔다.

예상은 했지만…… 좀 심각하네. 음식 재료의 잔해와 여기저기 튄 기름으로 부엌이 난장판이었다.

설거지하고 정리하고 기름 닦고 한바탕 대청소가 끝나갈 즈음에야 세아가 욕실에서 나왔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에 간소한 차림새. 그 상태로 흘끗 나를 보곤 거실 소파로 직행하더니 엎드려 누워서 내게 말했다.

“나 준비 끝났어.”

“이거만 마무리하고 갈게.”

대체 어떻게 요리를 했길래 기름이 이렇게 많이, 사방팔방으로 튄 건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리를 끝낸 나는 세아 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하면 돼?”

“응.”

조그만 목소리로 답한 세아의 몸이 엎드려 누운 상태에서 은은한 마력을 머금었다. 등의 양 날개뼈 부근으로 손을 뻗은 나는 어깨와 등을 안마하듯 주무르며 마력을 흘려보냈다.

“으음, 흐으…… 하아…….”

세아가 고양이가 갸르릉거리듯 무척 기분 좋다는 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낸다. 그리곤 고난도의 세부적인 조정까지 요구해왔다.

“조금만 더 세게.”

“어디.”

“어깨보다 살짝 아래, 팔 위쪽.”

“내가 너 공부한다고 고생하니까 해주긴 해주는데…… 이렇게 자주 해주면 안마해주는 값 따로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저녁 만들어줬잖아.”

“네, 네.”

건성으로 답한 나는 계속해서 세아의 몸 안으로 내 마력을 흘려보냈다.

어버이날 추모 광장에 가서 세아에게 처음 선보였고, 검은 심장과 파르투스를 처리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던 간섭 계통의 마력 구성체.

지난 한 달 동안 나 혼자서 연습도 했고 세아한테 시연 겸 실험도 하면서 완성도가 상당히 진척됐다.

더불어서 밝혀낸 뜻밖의 효과. 강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마 효과도 있다는 걸 알아낸 거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신경과 마력 회로 자체에 개입하는 거라서 그런 거겠지. 검은 심장과 파르투스에게 썼을 때야 둘 다 죽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최대 출력으로 발동했으니 안마고 뭐고 고통스럽기만 했겠지만.

하다 보니 컨트롤도 능숙해졌고, 맨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이상하다고 질색을 하던 세아도 요즘엔 허리가 뭉쳤니 팔다리가 결리니 이런저런 구실을 대가면서 못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해달라고 요구해오는 상황이다.

“하으…… 어깨는 됐고, 이제 허리 쪽. 그다음은 팔이랑 다리까지 순서대로 내려가면서.”

“이세아 씨, 무료로 시키면서 왜 이렇게 당당하세요?”

“감바스랑 볶음밥.”

“…….”

팔 안쪽과 허벅지까지 손을 대긴 좀 그래서 나는 마력만 흘려보냈다. 살갗이 접촉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 정도만 해도 꽤 효과가 있다는 게 세아의 설명이었고, 십 분가량 지나자 드디어 그만해도 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됐어. 나 다시 공부하러 갈게.”

살짝 뺨이 발개진 세아가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애가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방석을 소파에 바로 깔며 나는 세아에게 일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세라한테 연락해서 뭐라고 하지는 말고.”

“…….”

“왜 대답 안 하냐? 뭐야, 진짜 따지려고 했어?”

“……그러면 안 돼?”

“안 되지.”

내가 잘못한 거니까.

이어질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세아가 나직한 어조로 답한다.

“나도 그거로 세라 언니한테 연락 안 할 테니까, 오빠도 괜히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쩔쩔매지 마. 더 싫어할 거야.”

“……알겠어.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내일 학교 가야 하니까 일찍 자.”

“응.”

방에 들어간 세아가 문을 닫은 다음,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먼저 연락은…… 못 하지. 세라가 연락하면 언제라도 받아줘야겠지만.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침착한 목소리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던 세라가 내게 물은 말.

자기를 좋아했냐고.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첫사랑인지 두 번째인지를 논하자면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분명 세라를 좋아했다. 소중한 친구이자, 이성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고백도 하려고 했다.

열여섯 살의 내 생일. 내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날에.

하지만 대균열이 발생했고, 계획은 송두리째 어그러졌고, 나는 오늘 세라에게 널 좋아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내가 옳은 행동을 한 걸까.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러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만이 내 마음에 변명처럼 맴돈다.

***

오후 아홉 시 반에 가까워진 시각.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아 펜을 내려놓은 이세아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세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보다도 더 마음에 크게 자리한 감정을 어렵사리 정의해냈다.

그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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