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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03화 (103/207)

#103화. Chapter 25. 죄책감 (2)

그녀가 죄책감을 가지는 대상은 명확했다.

이도진과 한세라.

갓난아기 때부터 친구였고, 십 년을 넘게 서로를 약혼자로 대해온 두 사람.

이세아 자신에겐 피가 섞이지 않은 오빠와 아주 좋아하고 따르는 언니.

그들에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시험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나…… 좋아했잖아.’

다른 사람은 속여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한세라와 만나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이도진이 뺨이 발갛게 부어서 돌아온 걸 목격한 바로 그 순간.

이세아는 화가 났지만…… 그와 동시에 기뻤다.

오빠가 밖에서 누군가에게 맞고 온 건 화가 났고, 그러나 마음의 가장 은밀한 부분은 그 이상으로 기뻐하며 속삭였다.

오빠가 이번 여름에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게 거의 확실해졌다고.

이 집을 떠날 일이 없게 되었다고.

혼자 남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기쁘고 행복했다. 아주 많이.

‘세라 언니한테는…… 짜증도 났어.’

한세라에게 짜증이 났다. 기억하기로 철이 조금 든 다음부터는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릴 적 오빠랑 그녀가 너무 친한 게 질투가 나서 ‘내가 좋아, 세라 언니가 좋아?’라고 칭얼대며 물어봤던 이후로는 아마 처음 품은 감정이고, 이것도 조금은 이상했다.

오빠가 잠깐, 아주 잠깐 만난 여자친구에게 뺨을 얻어맞은 것을 봤을 때는 단순히 화만 났다. 자기가 뭔데 이도진을 때리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데 이번에는 그저 화가 난다기보다는 짜증스럽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뺨을 맞는 장면을 직접 본 게 아니라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한세라를 이도진의 결혼 상대로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짜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기뻤던 걸까.

그리고…….

그 당시보다 더 많이 드러났기 때문일까.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세아는 확신처럼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거 제정신 아니야.’

이세아가 생각하기에 이건 결코 순수하게 오빠를 위하는 게 아니다. 이기적으로, 그가 자신을 떠나지 않게 된 걸 기뻐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느끼는 자괴감이고, 죄책감이었다.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양자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오빠와 심리적으로 멀어진 것을 이제부터라도 몰아서 보상받으려는 심리일까.

이게 정상적인 마음가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영국에 가기로 한 건 나름대로 그걸 자제해보려는 일환이기도 했고.

물론 오빠에 대한 애정을 식히겠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최소한 겉으론 평범하게 보이고 싶어서.

‘병원은 가기 싫어.’

심리상담 따위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오빠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떨어지고 싶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나랑 평생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걸 어떻게 상담받겠는가.

그걸 이도진에게 어떻게 털어놓겠는가.

말하면 그는 몹시 곤란해하고 걱정하며 마음 아파하겠지만, 그래도 기꺼이 그렇게 해줄지도 모르는데.

‘만약에, 정말로 오빠가 그러겠다고 하면…….’

이세아는 마음속에 스며오는 충동을 어렵사리 떨쳐냈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

이도진이 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봤는데, 바로 이 문을 열고 나가서, 복도를 지나서 그의 방문만 열면 있는데도, 옆에 없으니까 보고 싶었다.

불안감은 아니다.

이세아는 이제 오빠가 집에 없으면 불을 다 켜야만 잠들 수 있을 정도로 불안해하진 않는다.

그냥, 그냥 보고 싶은 거다.

‘진짜로, 정상 아니야…….’

자조 어린 말을 자신에게 전하며 이세아는 기지개를 쭉 켰다.

덜 익은 새우가 들어간 볶음밥과 감바스라고 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먹으라고 강요해놓곤 뻔뻔하게 얻어낸 안마.

그걸로 피로는 말끔히 풀렸건만 정신적으로 고민이 많아서인지 몸까지 다시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마사지를 또 받고 싶었다.

‘그거 기분 좋은데…….’

오빠의 마력이 자신의 몸에 흘러들어와 퍼져나가며 전신의 근육과 신경을 풀어주고, 감싸주고, 어루만져주는 그 감각이 무척 좋았다. 뭔가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 중독되는 것처럼 달콤했다.

단순히 좋다기보다는…… 이도진의 마력이니까.

오빠가 자신을 위해서 해주니까.

그래서 좋았다.

“…….”

이세아의 오른손이 몸 반대편, 왼쪽 어깨 쪽으로 향했다. 마사지로 받았던 그 감각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마력으로 몸을 자극해주는 원리. 그야 오빠가 해주는 것과 완전히 같진 않지만 그런대로 흉내는 낼 수 있었다.

팔과 어깨, 쇄골과 가슴, 허리께와 복부, 그 아래 하의에 가려진 부분까지.

하지만…….

‘오빠가 어떻게 해줬더라?’

전신을 아무리 손으로 눌러봐도 썩 여의치 않다.

물리적으로는 이도진이 해준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건만 아까와 달리 무언가 채워지는 듯한 충족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또 해달라고는 못 하는데…….’

그렇다고 오빠에게 또 해달라고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조금 과하게 어리광을 부린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니 자력으로 해봐야겠지.

“음…….”

이세아는 눈을 꼭 감았다.

아까의 기억을 떠올려 최대한 흡사한 감각을 만들어내고자.

한데 바로 그때.

우웅- 우우웅-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덜덜 떨렸다.

혼자 있는 방 안에서 화들짝 놀란 이세아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리 달갑지 않은 메시지가 화면에 떠올라 있다.

진유리가 보낸 것이었다.

-진유리: 아 세아야 답장 안 해서 미안해 ㅠㅠㅠ

-진유리: 나 깜빡 잠들어서 ㅠㅠㅠㅠㅠ (21:30)

그 뒤로도 계속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메시지가 도착했고, 괜히 애꿎은 진유리에게 화가 치민 그녀는 답장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세아야! 진짜 미안, 나 진짜로 잠들어서->

“……너 때문에 집중 깨졌어.”

<앗…… 미안해, 방해 안 할게. 공부 열심히 해!>

“응, 너도.”

짧은 통화를 마친 이세아는 격렬한 자괴감에 빠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음습한 속마음도, 하는 행동도,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나 해대는 인성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하아…….”

이세아는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한세라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

하지만 애써 참기로 했다.

이도진이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화해할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연락하면 한세라가 더 싫어할 거라고 이도진에게 충고한 건 거짓말이다. 실은 한세라가 싫어하지 않고 받아줄 걸 알고 있다. 어제 그녀와 만난 자리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으니까.

이 년 전 그녀가 유학 가기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착한 쓰레기’에서 후자의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고 허탈해하던 목소리.

이세아는 그때 한세라가 오빠에 대한 기대를 버린 거라고 짐작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기대를 버린 게 아니라…….’

서운해하는 것에 가까웠으리라.

믿고 있는데 어째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언제까지? 왜 한마디 상의도 해주지 않고?

단지 그뿐이다.

이도진과 파혼하고 관계를 끊으려는 생각을 한세라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이세아는 어제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잘 되겠다 싶었는데…….’

심술이 나고 초조하고 마음이 따끔거리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잘된 일이라고 조언도 해주면서 보내줬는데.

그런데 뺨이나 얻어맞고 불쌍하게 돌아왔다.

‘두 달밖에 안 남았잖아.’

8월 28일, 약혼 서약이 만료되는 날까지 고작해야 두 달 반가량. 그 안에 둘의 관계가 회복되어 결혼까지 진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이세아는 그게 어쩔 수 없이 기뻤고, 그래서 죄책감을 느꼈다.

“흐으으…….”

숨을 길게 내쉰 이세아는 펼쳐뒀던 책을 덮었다.

아무래도 더 집중하기는 글렀다 싶었으니까.

최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과 별개로 그걸 좋아하는 건 전혀 아닌 이세아로서는 마침 좋은 구실이고, 깔끔하게 오늘 일과를 마치기로 한 그녀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아이콘 하나를 눌렀다.

제1 아카데미의 익명 커뮤니티 앱.

시험기간이라 반쯤 미쳐버린 학생들의 절규와 더불어 가장 큰 화젯거리는 다름 아닌 오늘 목격된 이도진과 그의 여자친구(추정)이었다.

-

글쓴이: 익명 (글쓴이)

날짜: 06/06 21:29

제목: 도진쿤 여자친구 누군지 알아냈다

내용: 외국인 같았댔는데 약혼자분 혼혈이시잖아

딱 봐도 그 사람이네 우리 선배 ㅋㅋㅋ

본인 추리력 어떰? 필기 70점 가능할 거 같음?

댓글:

-익명 1: 이미 정설인데 왜 뒷북임? 능지도 떨어지고 정보도 느리고 ㅋㅋ 틀린 거로 70점은 가능할 듯

└글쓴이: 아닌데? 나 제타 3시간 만에 들어와서 몰랐는데? 음... 현실도피는 너가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익명 2: 너희가 그게 왜 궁금해? 무슨 상관인데?

└익명 3: 시누이 강림 ㄷㄷ

└익명 4: 이세아 자택에서 검거

이세아는 휴대전화를 침대로 내던졌다.

***

6월 7일 월요일.

수업이 없는 날이라 휴가를 겸해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나는 차를 몰고 어느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일린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는 균열 사건이 마무리되고 놈이 입원한 직후. 그다음 두 번째는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였고, 그리고 오늘까지.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 도장을 찍는 아르노 뒤레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적지 않은 횟수였다고 생각한다. 그 모두가 필요에 의한 방문이었고.

요전부터 병원 측에 언질을 둔 터라 병실 출입은 자유로웠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선 일인실. 그곳엔 안드레이 일린밖에 없었다. 훈련 중이었는지 병원복을 입고서도 구슬땀을 흘리던 놈이 내게 말한다.

“연락도 없이 왔군그래.”

“아, 그냥 잠깐요.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러자 놈이 나지막한 어조로 답한다.

“그저 그렇지. 힘을 회복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어.”

균열 사건 때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악마.

안드레이 일린은 놈과 용감하게 싸웠으나 상당한 부상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와 아르노 뒤레가 목숨을 건졌고, 정체 모를 악마는 파르투스와 싸우다 자취를 감춘 상황.

두 놈이 싸우다 공멸한 건지, 아니면 둘 다 균열 너머로 이동한 건지.

정체 모를 악마가 누구였는지.

마왕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마왕들이 파르투스를 처리하기 위해 보낸 자객이었는지.

그런 것들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고……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나는 안드레이 일린에게 다가갔다.

내 표정을 본 그가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말한다.

“왜 그러지?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 닥쳐.”

나는 그렇게 되받으며 마력을 움직였다.

+

-스킬 ‘영혼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SSS)

+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순식간에 놈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진다.

이자는 이제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채 내게 영혼이 종속당해 있는 노예에 불과하다.

스으으…….

그즈음 심장 부근에서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어떤 예감과 함께 옷깃을 젖힌 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

서연희에게 시술받은 술식. 붉은 보름달을 닮은 문신의 가장자리가…… 정말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다.

다시 메시지가 떠오른다.

+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극소량 회복됩니다. (랭크 --- -> 랭크 F)

+

이거 진짜 함부로 쓸 수는 없겠네. 억제하는 데 그나마 도움이 될 방법이라면…….

나는 여태 남겨두었던 보상을 사용했다.

+

[미수령 보상]

1) 신체 포인트 2p

2) 소질 포인트 0.1p

-모든 보상을 수령했습니다!

[신체]

근력 84 / 민첩 87 / 체력 80 / 내구 82

[소질]

지능 8.7 / 매력 8.3 / 의지 8.4 / 감각 9.0

+

신체 포인트로는 내구를, 소질 포인트로는 의지를 상승시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검은 심장을 억누르는 것에 도움이 될 부분들이라서.

그간 포인트 외적으로 성장한 것도 있어 이제 여덟 개 항목 모두 앞자리가 8 이상이었다.

당장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이 정도가 전부고, 나는 안드레이 일린에게 명령했다.

“네가 자료를 넘겨준 배신자, 그게 누구지?”

내 부모님을 제외한 서른네 명의 영웅 중 확인된 배신자는 여덟 명이다.

한국의 둘.

유럽의 둘.

북미와 중남미의 둘.

중국과 일본에서 하나.

그 외의 나라에서 하나.

그중 염의준은 내가 죽였다. 한국의 다른 한 놈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서 보류.

유럽의 둘은 아르노 뒤레와 안드레이 일린이다.

샬럿 테이트는…… 트리거 문제와 별개로 배신자는 아닌 듯하고, 최근엔 어째 사람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남은 건 넷이다.

북미와 중남미의 둘.

중국과 일본의 하나.

그 외의 나라에서 하나.

넷 중에 내가 이름을 아는 건 미국의 한 명이다.

안드레이 일린이 자료를 넘겨준 자는 누구일까.

내가 이름을 아는 자일까, 아니면 모르는 자일까.

그리고.

놈의 입이 열렸다.

“에블린 그레이스.”

역시 그랬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나는 담담히 수긍했다.

현존하는 미국의 영웅은 세 명이다.

우선 지난 3월의 팬텀 회합 당시에 맞섰던 JR 길드의 수장, 릭 가델과 조셉 레너드.

현재까지도 현역인 건 그 둘이고, 나머지 한 명은 헌터에서 은퇴한 영웅이다.

그자는 헌터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은둔하는 것도 아니고, 학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자는…… 정치를 하고 있다.

‘천재’ 에블린 그레이스.

그건 작년 말 재선에 성공한, 현직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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