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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06화 (106/207)

#106화. Chapter 26. 취업 특강 (1)

“데려다 키워보겠다는 말씀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듣고 싶군요.”

한태강은 반사적으로 그렇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

기실 자신이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심정웅이 이도진에게 무엇을 원해서 저런 말을 꺼내는지, 그놈에게 어떤 제안을 하려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구구절절 알 필요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 정도를 넘어선 참견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터였다.

아무리 늦어도 올해 9월이 되기 전에, 구체적으로는 8월 28일 정오까지, 그의 딸인 한세라와 이도진은 파혼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도진은 더는 딸아이의 약혼자가 아니다.

그저 아끼던 후배들이 남긴 자식, 그리고 어릴 적에는 무척 귀여워했으나 지금은 생각할 때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한심한 놈, 거기다 한 가지만 더하자면 영원 길드와 사업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연구자. 겨우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놈이 심씨 가문에 소속되어 명성을 떨치든, 심정웅의 제자가 되든, 아니면 아예 저 집안의 사위가 되든, 한태강 자신이 구태여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또 한 번, 이번엔 숫제 추궁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날이 제법 창창한 놈입니다. 이 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마학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일개 가문의 일원으로 데려다 쓰겠다는 말씀은…… 사리에 맞지 않는 듯싶군요. 제가 허락하니 마니 할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 대한민국 각성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르신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심정웅이 웃는다.

“자네가 이리 말을 길게 하는 것은 또 처음 보는 것 같구먼.”

“…….”

그가 잠시 입을 다문 한순간, 노인이 주름진 입가로 옅은 호선을 그린다. 그리곤 아이에게 설명하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데려다 쓴다고 그 아이에게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거라 보장하지.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면 그걸 최우선으로 두고, 아낌없이 지원해줄 터이니. 제자로 들인다는 말도…… 조금 어폐가 있구먼그래. 그 아이가 발표한 논문은 나도 읽어보았다네. 지닌 바 재능의 크기가 상당하더군. 더 솔직히 말하면 내 평생을 살면서 본 적조차 없는, 비견할 자를 찾기 힘든 재능이야. 마학자로서의 자질만 놓고 본다면 제 어미인 정세빈이보다 오히려 나을걸세. 거기다 대고 내가 스승이랍시고 참견한들 연구에 방해만 되겠지. 명목상으론 제자가 되겠지만 그건 단지 구실이라고만 생각하게나. 가끔 조언 정도만 해주려 하네.”

“그렇다면 연구 지원을 해주시지요.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부족한 면이 있는 듯하니, 제 뜻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제안이라면 그놈이 마냥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사람 참, 내가 고작 그런 것을 원해 자네에게 허락까지 구하는 것 같은가?”

웃음기가 서렸으나 한편으로는 몹시 날카롭게 들리는 말.

심정웅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겠다는 듯이 재차 일렀다.

“정세빈이의 가문, 정가는 오래전에 멸문하고 이 나라 마학을 이끌던 두 기둥 중에 우리 심가만 남게 되었지. 사실은 둘도 적어. 셋이나 넷이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럴 만한 인재가 보이진 않고…… 어쨌든 하나보다는 둘이 월등히 낫다네. 고여서 썩어갈 바엔 서로 어깨를 견주고 나란히 성장해나갈 상대가 있는 것이 우리 심가를 위해서도, 이 나라 마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겠지.”

“그 말씀은…….”

한태강은 마침내 심정웅이 진정으로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단순히 이도진의 연구를 지원해서 마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를 심가의 부흥에 이용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원대한 목적.

“이 나라에…… 명가(名家)를 하나 더 만들어내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런 뜻이 되겠구먼.”

심가와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마학의 명문.

멸문한 정가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을 지닌 가문을 만들어내겠다는 뜻이다. 그 가문을 이끌어나갈 수장이자 시조는 바로 이도진이 될 테고.

“십 년이면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네. 우리 심가에서 연구 성과를 증명하고, 본인을 지지해줄 기반을 얻고, 그런 다음에는 독립을 시켜줄 생각이야. 다행히 내 남은 기력을 보니 십 년 정도는 어떻게든 여력이 있을 듯싶구먼. 3할쯤 떼어주면 내가 죽기 전에는 능히 자리를 잡겠지. 이 나라는 다시금 두 개의 마도 명가를 보유한 국가가 되는 거라네.”

심정웅이 기꺼워하듯 웃는다. 한태강은 그의 얼굴에서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꿈을 어렴풋이 읽어냈다.

사리사욕이라 하기엔 너무 크다. 다만 순수한 뜻이라 보기에도…… 지나치게 탁해 보인다.

해서 한태강은 노인에게 물었다.

“하면 어르신과 심가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아이가 심가를 나서기 전까지 이룩할 성취는 심가도 모두 가질 수 있지 않겠나. 거기에 더해 심씨 성으로 살아갈 똘똘한 아이 하나둘 정도 남겨준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이제 내가 어찌하여 한 대표 자네에게 이런 것들을 세세히 일러주고, 그리해도 되겠냐고 허락까지 구하는지를 알 수 있을 테지?”

“……네.”

한태강은 나직이 수긍했다.

그가 인정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세상에서 이도진의 후견인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만 꼽으라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될 터였다. 거기다가 그의 약혼녀인 한세라의 아버지라는 점까지.

심정웅은 그런 자격들을 모두 가져가고 싶은 거다. 스승이자 후견인, 거기에 더해 혼인이라는 계약으로 결속될 관계까지도.

“짝으로 이어줄 만한 여아가 있나 내 미리 가문의 아이들을 봐두었다네. 우리 심가, 그리고 정가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의 혼인이니 상징적인 결합이 되겠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이 시원스럽게 이른 말. 한태강은 그게 대단히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차피…… 딸아이와 그놈은 파혼할 테니까.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이런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본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지요. 다만 그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진 않을 듯싶습니다. 어르신의 속도 많이 썩일 테고요.”

“허허, 그거야 내가 알아서 신경을 쓸 일이지. 이도진이가 성품도 서글서글하니 괜찮다 하고, 재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물도 아주 훤칠해졌더구먼. 그만한 손주 사윗감을 또 어디서 구하겠는가. 내 자네에게는 먼저 언질을 둬놓는 게 예의일 듯해 말을 한 것이나…… 그 이상은 자네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야.”

“그렇다면 저는 여기까지만 듣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르신.”

짧게 인사하고 몸을 돌린 한태강은 이번에야말로 목조 건물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바깥으로 발을 내딛기 직전, 심정웅이 은근한 어조로 그를 불러세웠다.

“이보게, 한 대표.”

“말씀하시지요.”

“자네도 다 생각이 있겠지만 내 노파심에서 말을 해둠세.”

어조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화제, 이도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심정웅이 무척 신중하고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일렀다.

“윤의성이에게는, 오늘 자네와 내가 나눈 대화는 당분간 알리지 않는 게 좋겠네. 무슨 뜻인지는 자네도 알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곡예사’ 윤의성.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의 수장이자 36 영웅의 일원. 이시혁과 정세빈을 필두로 한 제1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황금세대 중에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

팬텀, 악마, 배후 세력, 장생종.

이런 문제들을 지금 그에게 알리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왜냐면…… 그가 너무나도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그야말로 과할 정도로, 정말 지나칠 만큼, 자신이 믿는 정의를 완벽히 실천하려 드는 자니까.

평소의 느슨한 태도는 그가 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하다. 만약 이 나라의 안위를 위협하는 인간 외의 존재가 암약하고 있음을 윤의성이 알게 된다면…… 그는 결코 앞뒤를 가리지 않을 거다.

영웅으로서 자신이 지닌 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협회의 전력과 정보망. 그 모든 걸 다 동원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불안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려 들겠지. 설령 그 일에 많은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거의 결벽증에 가까운, 섬뜩한 마음가짐으로.

한태강으로서는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윤의성과 비교한다면 차라리 자신과 심정웅이 더 닮아있으리라고.

그러하기에 한태강도, 심정웅도, 여태 윤의성에게는 정황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팬텀을 추적한다는 건 알겠지만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하도록 조처한 거다.

심정웅이 짧게 물었다.

“균열이 열리고 파르투스가 나타났을 때를 기억할걸세. 그때 윤의성이가 어떻게 했는지도.”

“…….”

한태강은 침묵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확실히 윤의성만이 다른 세 영웅과 판이한 태도를 보였다.

“나와 자네, 서연희까지 안간힘을 써가며 통로를 내려고 할 때 윤의성이는 아주 조금의 힘도 소진하지 않으려 했지. 균열 안에서 몇 명이 죽든 상관하지 않았어. 파르투스를 반드시 죽이고자, 그것에만 온 신경을 기울인 게야. 그때 실감했다네. 윤의성이는…… 내가 보기에 제정신이 아닐세. 자기 신념에 먹혀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거야. 바로잡아줄 수 있는 건 나와 자네 둘뿐이라는 걸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게나.”

“명심하겠습니다.”

힘주어 답한 한태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홀로 남은 심정웅. 그는 꽤 오랜 시간을 적막한 자리에 머물렀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한태강이 완전히 떠났음을 감지한 노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퇴해가는 앙상한 손을 들어 올렸고, 허공으로 느릿하게 휘둘렀다.

슈우우우-

탁한 빛무리가 실내에 어린 직후, 어느새 심정웅은 지상에서 수백 미터나 아래로 내려가야만 닿을 수 있는 지하실 앞에 서 있었다.

그를 막아서는 것은 물리적인 침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도록 설계된 석벽. 그곳에 한 손을 얹었다.

쿠우웅.

그의 몸에 흐르는 심가의 피를 감지한 석벽이 열렸다. 그리고 맞이한 광경.

드넓은 지하실 내부에는 무수한 책과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마학 재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심가의 정수. 노인은 희미하게 호흡하며 지하실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마석으로 구성된 벽면이 그를 맞이한다.

그곳에 걸려 있다.

인간의, 아니…… 인간과 거의 흡사한 시체 한 구가.

온전한 것은 이것뿐이다. 뼈와 가죽, 피와 신체 조직 따위를 그러모으면 두어 구가 더 나오겠지만 죽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된 건 이것 하나밖에 없다.

악마 이전에 인간의 가장 큰 적이었던 존재, 장생종(長生種)의 시체는.

“…….”

심정웅은 열망 어린 눈길로 장생종의 시체를 올려다봤다.

이것을 활용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더 지속해낼 수 있을까.

그는 이도진을 생각했다.

‘네게 그걸 이루어낼 재능이 있으면 좋겠구나.’

심정웅은 이십여 년 전 세상을 지켰던 영웅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오래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욕망하는 노인이기도 했다.

그중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큰지, 그건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되뇌었다.

‘한 대표, 우리는…… 영웅이었나?’

한태강은 그랬던 것 같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그랬노라고.

하지만 그조차도 잘 알지 못하겠다고, 노인은 이제 그리 생각한다.

***

“오늘 수업 시간에…… 그냥 수업만 해. 애들이랑 잡담 같은 거는 하지 말고.”

6월 8일 화요일 아침.

함께 차를 타고 제일고로 향하던 도중에 세아가 뜬금없이 꺼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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