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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08화 (108/207)

#108화. Chapter 26. 취업 특강 (3)

본래 누군가와 대면했을 때 느끼는 긴장감과 위압감이란 상대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 상대를 어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대가 아무리 으르릉거려도 자신이 그걸 위협으로 느끼지 않으면 대수롭잖게 넘길 수 있고, 반대로 상대가 아무리 호의를 보이며 잘 대해주려 한들 정작 받아들이는 자신은 불편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가령 제일고에 균열이 발생한 당시의 기억 중 일부를 잊어버린 진유리가 이후 얼마간 이도진의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며 무서워했던 것처럼.

또 우아하고 기품 있는 팬텀의 보스 서연희. 이도진과는 아주 사이가 좋고 항상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지만 유해빈 자신은 그녀를 대할 때마다 은근히 긴장하는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데, 2학년 수업 마쳤나요?”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 금발과 푸른색 눈이 인상적인 여성.

저쪽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엿한 성인이고 이쪽은 입은 옷부터 벌써 고등학교 교복이다. 나이 차이는 아마도 일곱 살가량.

그런데도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말투로 물어오는 상대는 첫인상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성품을 갖췄다고 판단해도 되겠지.

게다가 외적으로도 유해빈이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상상으로 떠올릴 수 있거나 그녀가 가진 어휘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미모를 지녔다.

그러니 감탄하거나 긍정적인 의미로 긴장하는 거라면 몰라도 거북해할 이유는 상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분명히 그게 사실이지만…….

‘불편해…….’

유해빈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고, 그와 동시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쪽은 얼굴을 보기 전부터 위험인물로 여기며 마음의 준비를 해오던 차였건만 저쪽은 그저 순수하게 상냥하고 친절할 뿐이어서.

한마디로 말해서…… 혼자만 긴장하고 있다는 게 심통이 난 것이다.

해서 그녀는 다분히 심드렁한 기색으로, 대충 되는대로 주워섬긴다는 게 명백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 그럴걸요?”

“고마워요. 학생도 2학년 맞죠?”

“……그럴걸요?”

“아, 그럴 줄 알았어요. 이름표도 파란색이고, 요즘도 안 바뀌었나 보네요.”

“그럴……걸요?”

이 시점, 유해빈은 이미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기실 첫 번째 ‘그럴걸요?’부터 귀찮아한다는 걸 느꼈을 텐데. 두 번째 ‘그럴걸요?’에서는 살짝 화가 나야 정상일 텐데. 어떻게 아랑곳도 하지 않고 저렇게나 사근사근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순간까지 최대의 강적이라 생각했던 서연희와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보스는 알면서도 귀여우니까 봐준다는 느낌인데 이 사람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냥…… 아예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안 통하는 느낌이다. 무지개 반사처럼 튕겨 내는 것과 비슷한 감각.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벽과 맞닿은 듯한 무력감을 느끼며 유해빈이 물었다.

“누구 찾으시는 분…… 있으세요?”

“음, 2학년 수업 가르치는 분이라 학생도 알겠네요. 이도진 선생님이랑, 그리고 이세아 학생…… 혹시 먼저 나갔나요?”

그 질문으로 유해빈은 두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이 사람은 방금 막 교문에 도착한 거다. 2학년 중에서 유해빈 자신이 거의 제일 빨리 교정을 나섰고, 이전부터 보고 있었다면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

‘도진쿤한테 말 안 하고 온 거야.’

미리 연락했다면 유해빈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나오길 기다렸을 테니까.

다시 말해 이도진과 이세아는 아직 제일고 건물 내에 있고, 그걸 잘 알면서도 유해빈은 저도 모르게 답하고 말았다.

“어…… 모르겠네요? 이세아 걔 되게 빨리 가니까…… 아마 저보다 일찍 갔을걸요? 교수님도요.”

“아…… 그래요?”

나직이 답하는 여성의 표정에서 두 개의 감정이 읽혔다.

하나는 아쉬움.

또 하나는 안도감.

그 두 감정이 아름다운 용모에 스며 쓸쓸한 빛을 자아냈고, 유해빈은 세차게 들이닥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아, 씨…….’

생각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긴 했으나 저 표정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쿡쿡 찔리는 듯하다. 스스로 떳떳하지도 않고.

이대로 쌩하니 집으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아는 대로, 사실대로 정정해줄 것인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한 고민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어, 음……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교실 나올 때 이세아 본 거 같은데…… 그러면, 안 갔을 수도 있으니까…… 좀 기다려 보시면, 음, 나올 수도 있어요.”

유해빈은 결국 정직하게 답하고 말았다. 물론 상대를 도와주려는 의도는 결단코 아니다. 그저…….

‘……가끔은 정정당당한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그리고.

대답을 들은 여성이 희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뭐…… 별말씀을. 수고하세요.”

적당히 답한 이제 유해빈은 정말 집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여성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운다.

“아, 학생 잠깐만요.”

“……왜 그러세요?”

돌아본 유해빈은 뭔가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교적일뿐더러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도 담겨 있는 듯한 표정이어서. 이내 여성이 조금쯤 장난기 어린 말투로 묻는다.

“학생, 세아 남자친구 맞죠?”

“…………네?”

이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일까. 당황한 유해빈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여성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해요. 사실은 이름표 봤을 때부터 학생 누군지 알았어요. 제가 세아랑 어릴 때부터 친한데, 걔가 그나마 남자인 친구 언급하는 건 학생 한 명뿐이라서. 세아는 아니라던데, 혹시 모른다 싶어서요. 남자친구…… 아닌가?”

“……절대 아닌데요.”

유해빈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퉁명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왜 자신에게 이토록 친절했는지 그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시누이 남자친구라 이거지……?’

어느 측면으로 봐도 유해빈에게는 도발 외에 무엇도 아닌 추측이었다.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는지 여성이 아쉽단 표정을 지었고, 유해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저만치 멀리에서, 여성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래 지켜봤다.

‘전화……?’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듯한 모습이었다. 차분한 기색으로 몇 마디 짧게 대화를 나누곤 다시 운동장 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우웅-

유해빈에게 익숙한 차량이 교문을 지나서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도 차 안에 탄 사람이 두 명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도진과 이세아. 차로 다가간 여성이 잠시 운전석의 이도진과 인사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탑승하자 차량이 도로 저편으로 멀어져 간다.

“음, 으음…….”

유해빈은 고개를 멀리 빼고, 침중한 눈길로 작게 보이는 차를 내다봤다. 파혼하니 마니 살벌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건만 지금 보기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는 생각.

‘왜 저 사람이랑 안 만나고…… 보스랑 알콩달콩하지?’

팬텀의 보스 서연희.

그야 인정한다. 능력도 있고, 예쁘고, 매력 있다.

하지만 유해빈이 보기엔 저 여자, 약혼녀 한세라만큼은 아니었다.

‘훨씬 예쁘잖아. 어릴 때부터 친했고, 성격도…… 나랑은 좀 안 맞지만 괜찮은 거 같고, 능력도 좋다고 들었는데.’

이도진과 한세라를 나란히 세워놓는다고 가정하면, 인정하기는 싫어도 무척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약혼한 채로 십 년을 질질 끌어온 거로 보아서는 이도진도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고, 어쩌면 겉으로 말만 안 했지 사귀는 사이나 다름없지 않았을까?

한데 왜 그녀와는 멀어지고, 전체 점수로는 되려 열세인 서연희와 관계가 진전된 건지 의문이었다.

‘혹시 복수 때문이면…….’

쓰리게 드는 짐작. 유해빈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시혁과 정세빈, 부모님의 복수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세라는 영웅 두 사람, ‘무신’ 한태강과 ‘방벽’ 올리비아 윈의 딸이니까.

올리비아 윈과 한태강이 배신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 없었고, 설령 그들이 배신자가 아니라 해도 영웅들을 살해하며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해야 하는 자신과 한세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럼 차라리 저 사람한테도 알려줬으면…… 그러면 되지 않았으려나?’

올리비아 윈의 사인에는 대균열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 전까지는 특별한 이상 없이 건강했다고 하니까.

그러니 대균열을 일으킨 배신자들은 한세라의 원수이기도 할 테고, 오히려 그녀에게도 알려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도진쿤도 엄청 고민하면서 말 안 한 거긴 할 텐데…… 좀, 되게 안타깝네.’

과거에 어떤 생각과 사건이 있어 현재로 이어졌는지 유해빈은 잘 알지 못하지만, 무척 기분이 씁쓸했다.

만약 대균열만 없었다면 한세라와 이도진은 기꺼이 평생을 함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균열이 일어났고, 그녀가 보기에 이도진은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옛날에 얼마나 좋아했든, 혹은 지금도 여전히 애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세라는 아니라고.

“흐으…… 모르겠다.”

유해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지고, 남 걱정할 만큼 그녀 자신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뜻하지 않게 고민을 한 만큼 오늘 저녁은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그녀가 발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그때.

“…….”

“응?”

유해빈은 근처로 다가오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감지했다. 흡사 이삿짐을 방불케 하는, 자기 몸의 족히 두 배쯤 되는 부피의 책가방을 멘 진유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서로 내일 보자니 어쩌니 살가운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고, 유해빈은 그저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왜 보고 있냐?”

“넌 거기서 혼자 뭐 하고 있는데.”

“나?”

유해빈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진유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줄지 말지에 대해. 하지만 곧 결론을 내리고 짧게만 답했다.

“어…… 넌 몰라도 된다.”

“뭐?”

“모르는 게 약이야.”

그렇게만 답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진유리도 한세라와 대면하게 되겠지. 시험 기간에 굳이 고민거리를 더하지 않게 해주려는, 그녀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혼자 남은 진유리는 왠지 모르게 스미는 찝찝한 기분을 흘려보내듯 되뇌었다.

‘쟨 미용실도 안 가나?’

그렇지 않아도 남학생치곤 무척 긴 편이던 유해빈의 머리칼이 어느새 예전보다 월등히 길어져 있었다.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숏컷에서 머리칼을 길러 나가는 여자애.

진유리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올해 3월에 2학년이 시작하고부터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

달리는 차 안의 공기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세아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창밖만 바라보는 중이고, 뒷좌석에 탄 세라가 미안해하며 우리에게 일렀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어제부터 좀 바빠서…… 이것도 겨우 시간 냈거든. 학교는 밖에서 보기엔 그대로더라?”

“안에 들어가도 똑같아. 돈도 많으면서 시설에는 이제 별로 투자를 안 하는 것 같더라.”

“……지금도 좋아. 차고 넘쳐.”

어설프게나마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던 세라와 내 말이 뾰로통한 어조로 끼어든 세아에 의해 멈췄다.

일순간 찾아온 침묵. 세라가 다시금 화제를 꺼냈다.

“다른 일로 찾아온 건 아니고…… 도진이 너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저녁 먹는 동안만 시간 내줄 수 있을까?”

“음…… 난 괜찮은데. 어차피 세아랑 저녁 먹어야 해서.”

“나도…… 괜, 찮아…….”

음절마다 띄엄띄엄 끊어져 나오는 세아의 대답.

세라가 반기듯이 말한다.

“그럼 내가 살 테니까, 어디 괜찮은 데 가서 저녁 먹을래? 도진이 넌 아무거나 괜찮다고 할 거고…… 세아는?”

“집에서.”

“응?”

“집에서 먹을래.”

“아…… 그럴래?”

숫제 싸늘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세라가 난처해하면서도 답했고, 나는 잠자코 차를 우리 집으로 몰아나갔다.

내가 보기에 세라는 나랑 둘이서 얘기하고 싶은 듯하다. 주말쯤에 따로 시간을 내달라고 했으면 그렇게 해줬을 텐데. 세아가 저런 반응을 보일 걸 얼추 알았을 텐데도 지금 찾아온 걸 보면 정말로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우리 집에 몇 년 만에 오는 거더라. 일단 스무 살 이후로는…… 온 적 없지 않나?

부탁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고, 일요일에 대판 싸웠는데도 막상 얼굴 보니까 별로 어색하지 않은 게 신기하면서도 좋고, 세아가 몹시 저기압인 걸 어떻게 달래줄지 고민이고,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운전을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이었다.

저녁 메뉴는 네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우리의 말에 따라 세아가 주문했다. 배달 초밥을 종류별로 60점 정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어쨌든 세아는 간단히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들어갔고, 둘만 남은 자리에서 세라가 일차적으로 말을 꺼냈다.

“도진이 네가 제일고 2학년 가르치고 있잖아. 어떻게 보면 인맥으로 부탁하는 건데…… 네가 잘 알 것 같아서.”

“뭔데?”

그러자 세라가 답한다.

“2학년부터 학기 마지막 주에 하는 거 있잖아. 길드랑 기업에서 학교로 홍보 오는 거. 아빠가 대외 활동부터 맡아보라고 해서 이번에 영원 쪽은 내가 담당하게 됐는데…… 요즘 학생들이 길드 고를 때 뭘 주로 볼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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