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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10화 (110/207)

#110화. Chapter 26. 취업 특강 (5)

각성하는 시기에는 차이가 있으나 한국인 각성자는 전체 인구의 1%가량.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출생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에 요즘 어린 각성자들 수는 나이마다 칠천 명쯤 된다.

만 명 가까운 인원이니만큼 고등학교까지의 각성자 특수 목적 교육기관은 많고, 종류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먼저 제1 아카데미를 대표로 하는, 헌터 양성이 주된 목적인 교육기관.

그리고 제2 아카데미를 대표로 하는, 마학 쪽에 중점을 두는 교육기관.

마지막으로 제3 아카데미를 대표로 하는, 마력과 관련한 기술자를 육성하는 교육기관까지.

중고등학교라 칭할 수 있는 교육기관은 도합 수십 곳이나 되고, 하지만 대학교부턴 상황이 다르다.

한국에 각성자를 교육하는 대학교는 딱 한 곳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세 개 대학이 캠퍼스를 같이 쓴다고 해야겠지.

헌터 양성 교육기관에 다닌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제1 아카데미 대학부.

마학 연구에 뜻을 둔 학생들이 진학하는 제2 아카데미 대학부.

기술직 쪽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제3 아카데미 대학부.

아무래도 헌터 할 애들은 고등학교 마치면 바로 현역으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라 제1 대학 인원이 특히 적지만, 여하튼 세 개 대학의 학생들이 한 개의 캠퍼스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다. 전공이야 따로 들어도 교양 수업은 함께 수강하고.

그리고 류이수는 내가 3학년 때 같은 교양 강의를 들었던, 당시 제2 대학 신입생이었던 애다.

올해 나이는 스물세 살. 졸업하려면 아직 반년은 남았을 텐데.

아니, 그런 것보다도…….

“……심이수?”

삼 년 만에 키가 20cm는 자란 듯하고, 혈색 좋던 당시와 달리 피부가 창백하고, 얼굴 생김새는 예전 느낌이 아주 조금 남아있을 뿐 ‘누구세요?’라고 묻고 싶을 만큼 달라졌지만, 내겐 성씨가 바뀐 게 제일 당황스러웠다.

얘가 심 씨고, 유성 길드에서 일하고 있다고? 그 말인즉슨…….

류이수, 아니, 심이수가 방긋방긋 웃으며 답한다.

“류 씨는 엄마 성이에요. 살짝 복잡한 집안 사정이 있어서…… 이제 아버지 성씨로 바꿔서 쓰고 있거든요.”

“아…… 그래?”

저 애와 심가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단 건 전혀 몰랐다. 표정도 말투도 태연했지만 실상 가볍게 웃어넘길 사정은 아니겠지. 출생의 비밀, 아마도 그런 거려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갈무리한 나는 적당히 반가워하듯 말했다.

“이래저래 많이 놀라긴 했는데, 아무튼 반갑네. 졸업은 했고?”

“아뇨, 괜히 시간 버리는 거 같아서 작년에 자퇴했죠. 집안 어르신들이 일단 길드 일 하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보라고 하셔서, 요새는 정신없이 살고 있네요.”

뿌듯함과 하소연을 절반씩 담은 어조로 재잘거린 심이수가 나와 서상욱 교수를 번갈아 보며 일렀다.

“선배님이랑 교수님 두 분 나오셨으니 이제 저희 들어가 봐도 될까요? 오늘 마법역학 수업 때 특강 책임자가 저라서요.”

“음…… 나를 아나?”

미심쩍어하는 서상욱 교수에게 심이수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물론이죠. 서상욱 교수님 아니신가요? 작년에 발표하신 반사 이론 논문은 무척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오, 젊은 친구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대번에 기분이 좋아진 서상욱 교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심이수가 슬슬 가봐야겠다며 꾸벅 인사했다.

“그러면 선배님이랑 선배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귀중한 수업 시간 할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곤 종종걸음으로 우리가 나선 마법역학 강의실을 향해 달려간다. 이지적이고 싸늘해 보이는 외모와 괴리가 있는 몸짓.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서상욱 교수가 내게 물었다.

“자네는 그렇다 치고 나는 왜 선배인가?”

“아, 저 친구 제2 대학이었습니다. 교수님도 제2 대학 출신이시니까 그걸 알고 호칭을 그렇게 한 것 같네요.”

“그렇구먼. 방금 들어보니 자퇴를 했다는데 아까운 일이야. 그 연구를 저만치 이해할 정도면 학문을 계속했어도 좋았을 것을.”

“글쎄요……. 본인 선택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그렇지. 가세나.”

그렇게 심이수와 관련한 대화를 마무리하고 연구실로 걸어가며 나는 생각했다.

서상욱 교수가 작년에 발표한, 마학계에 제법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반사 이론.

심이수가 그걸 막힘없이 이해했다고? 쟤가 그렇게 똑똑했었나? 조별과제 때마다 제일 쉬운 역할만 맡겨도 시간이 없었니, 갑자기 아팠니, 어제 하려고 했는데 깜빡 잠들었니, 오만가지 핑계를 대가며 미루던 앤데.

삼 년이나 지났으면 사람이 바뀔 만하다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서.

류이수에서 심이수로 바뀐 이름.

딴사람처럼 달라진 외모.

올해부터 변화할 거라는 유성 길드의 행보.

여러 가지 사실이 뒤엉키며 내게 불길한 예감을 전해주는 중이고, 문득 드는 회의감에 나는 서상욱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제가 좀 의심이 많습니까?”

“응? 자네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반문.

서상욱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자네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탈이지. 말이 나왔으니 충고해주는 건데, 자네 선생님 관두고 나면 조심하게나. 학문한답시고 설치는 놈들 태반이 도둑놈이야. 아, 그렇다고 당장 학교를 관두라는 말은 아니고 몇 년 뒤에 내가 더 봐줄 수 없게 될 때 말일세. 그때도 가까이서 연구하고 있으면 나야 좋고.”

“어…… 네……. 새겨듣겠습니다…….”

이 사람 나한테 잘 해주는 건 참 고맙고 좋은데, 자꾸 그렇게 아련한 표정 지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그날 저녁.

연구실까지 정리하고 1학기 출근을 마친 나는 조수석에 탄 세아에게 물었다.

“오늘 특강 어땠어? 유성이랑 선진 길드였지?”

“선진은 별로였고, 유성은…… 약간 괜찮았어.”

“극찬인데?”

오늘까지 방문한 여덟 개 단체. 모두 일류로 꼽히는 곳들이지만 세아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가 좋았는데?”

“그냥, 전체적으로. 나만 그런 거 아니고 애들 다 좋댔어. 평소에 애들 길드 얘기할 때 하는 말은 거의 다 나온 거 같아.”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설명만 보면 학생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길드의 모습을 갖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타 조건을 떠나서 진행자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하러 온 사람 중에 별로 나이 안 많아 보였는데, 되게 카리스마 있게 말 잘하는 사람 있었어.”

“남자, 아니면 여자?”

“……그건 왜 물어봐?”

세아가 넌지시 쳐다보며 묻길래 나는 차를 왼편으로 몰아나가며 답했다.

“아, 유성에 오빠 아는 사람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인가 해서.”

“남자, 아니면 여자?”

“성별은 여자.”

“……이름 심이수랬어. 안다는 그 사람이야?”

“어, 그렇긴 한데…….”

걔가 카리스마 있게 말을 잘한다?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데.

그런 의문을 마음 한구석에 두고 나는 세아에게 일렀다.

“아직 일 년도 넘게 남았으니까 바로 고를 필요는 없고, 저 길드는 저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면 돼.”

“내일 세라 언니 오는 거도?”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할 단체가 세라의 영원 길드였다. 물론 일 년 뒤에 최종적으로는 영원 쪽을 고르는 게 제일 반길 일이지만…….

“응, 네가 들어가고 싶은 길드 고르면 돼. 아니면 아예 헌터 말고 다른 일 해도 되고.”

내 본심은 그랬다. 헌터를 하겠다고 해도 응원하겠지만, 그래도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세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답한다.

“지금까지 한 거 아까워서 안 돼.”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그리고 나 지금보다 훨씬 세지고 싶어.”

“그건 왜?”

“……그냥.”

세아가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빠라고 있는 게 자꾸만 위험한 일에 휘말려서 다치니까, 그러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고.

진짜 그거면 확실히 직접 말하기 부끄러운 이유긴 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세아에게 일렀다.

“다음 주에 영국 가니까, 이번 주말에 오빠랑 놀이공원이나 다녀올까?”

세아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후로 얘랑 놀이공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기대했건만…… 뜻밖에 세아가 몹시 난처해하는 목소리로 답한다.

“……나 일요일에 유리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음…… 그으, 언제 약속했어? 그런 말은 못 들은 거 같은데.”

“오늘, 아까 종례 때.”

“……그래?”

“……토요일 가고, 일요일에 유리랑 또 가도 돼.”

“……아니다, 그냥 월요일에 방학식하고 나서 드라이브나 다녀오자.”

진유리.

걔랑 세아랑 친하게 지내는 건 그야 환영할 일이지만…… 유치하게도 조금은 약이 오르는 느낌이다.

***

6월 25일 금요일, 오후 1시 5분경.

제일고에 마련된 실내 강당의 맨 앞자리에 앉은 진유리는 긴장한 눈길로 정면의 단상을 바라봤다.

아직은 저기에 아무도 서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제 곧 오겠지.

그래도 미리 말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세아가 며칠 전 일러준 정보. 저쪽에선 진유리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지만 그녀로선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크나큰 적이라 표현해야 할 상대가 이곳에 당도할 터였다.

“…….”

초조한 마음에 진유리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바로 옆에 앉은 이세아는 주위 반응을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이고, 의외로 그 옆의 유해빈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쟤는 왜 저래?’

언뜻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진유리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유해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즈음부터 강당의 소란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2학년 학생 대부분이 흥미진진해하는 눈치. 이래저래 들은 게 있던 학생들 몇이 벌써 소문을 내기도 했고, 다른 학교의 목격담도 있어 오늘 누가 올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오후 1시 10분. 2학년 학생주임이 일렀다.

“자, 모두 조용히 하고, 오늘은 영원 길드 관계자분이 여러분 진로 결정에 유익한 말씀 해주시러 오셨으니까 다들 박수로 맞이해줘요.”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이어 이십 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면이 완벽해 보이는 체형. 푸른 눈에 금발. 당당하고 편안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선다.

‘…….’

진유리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걸 느꼈다. 이세아가 보여준 사진으로 두 번 본 외견.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건만, 사진이 실물을 못 담는다는 이세아의 발언마저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딱히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이 일제히 감탄하며 대화한다.

“저 언니 진짜 미쳤다……. 도진 쌤 약혼자 되신다고 했지?”

“아, 난 인정. 저 정도면 도진쿤 신붓감으로 합격이지.”

“아니, 근데 좀, 그냥 뭔가 좀 비주얼이 비현실적인데. 저게 가능한가?”

“몰라, 가능하니까 있겠지. 근데 방금 내 말 약간 철학적이지 않았음?”

“아가리요.”

“와, 말이 좀 심하네.”

“I got it이라고. 알겠다고.”

“너네 시끄러워. 안 들리잖아. 근데 저 언니 목소리도 진짜 좋다…….”

진유리도 동감이었다. 단상에 선 여성이 ‘안녕하세요’라고 학생들에게 전한 말. 목소리까진 들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녀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약간 저음인 듯하면서 맑고 청아하게 들리는 목소리. 적어도 여태까지는 아주 자그마한 단점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제 여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영원 길드 기획관리부에 있는 한세라라고 해요. 몇 년 전까지 저도 여기 다녔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오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으레 하는 가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기쁘다는 것처럼 말한 여성, 한세라가 시원스러운 어조로 강연을 탈을 쓴 영원 길드의 홍보를 해나갔다.

처음엔 이도진이 어쩌고, 약혼자가 어쩌고, 둘이 잘 어울리니 어쩌고 하며 떠들던 학생들도 어느새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여태까지 방문한 단체 중에 학생들이 가장 높이 평가한 곳은 어제 찾아온 유성 길드. 한데 진유리가 보기엔 지금 제일고 2학년 학생들은 어제보다도 더 집중하고 있다.

외모가 예뻐서, 명실상부한 최고 인기 교수인 이도진의 약혼자여서, 영웅 한태강과 올리비아 윈의 딸이어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냥,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녀가 설명하는 것들 모두가 굉장히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다.

“난 솔직히 연봉 적어서 영원은 거르려고 했는데 저 말 들으니까 또 아닌 거 같은데. 우리 헌터들에겐 돈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근데 영원이 돈을 적게 주는 건 아니잖아. 다른 데가 진짜 미친 듯이 퍼주는 거지.”

“그거 경쟁 너무 과열된다고 법안 만들어서 막는다는 말도 있잖아. 길드 몇 개가 상위 헌터 독점하면 균열 대응 늦어질 수도 있다고. 저 언니 지금 각성자 윤리 말하는 거도 그런 맥락 같고.”

“자본주의 세상에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네가 돈보다 중요한 거 있다며.”

“몰라, 좀 더 들어보고. 근데 저분 진짜 프레젠테이션 상당하신데. 도진쿤 강의 듣는 거랑 느낌 되게 비슷하지 않나? 진짜 딱 궁금한 거, 필요한 거 정확하게 말해주는 거. 약혼자라서 그런가?”

“도진 쌤이 도와주신 거 아닐까?”

“오, 일리 있는데.”

인정하기 싫었으나 이 또한 진유리로서도 동감이었다.

어려운 것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능력과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시청각 자료. 이도진의 강의 방식과 상당히 닮아있다. 어제 유성 길드도 빼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보다 한 수 이상 위고, 디테일 측면에서도 앞서 있다. 길드 선택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아니라면 헤아리기 어려울 부분들까지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까.

옛날에 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로 교수님이 도와주셔서?’

진유리는 이세아를 흘끗 쳐다봤다. 이젠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이도진이 어쩌고 하는 이슈가 생각보다 무사히 사그라들어서일까. 그저 조금 멍해 보이는 시선으로 한세라를 올려다보고 있다.

반대로 유해빈은 뭐가 불만인지 아까보다 표정이 더 좋지 않다. 심지어 입이 뾰로통하게 나와선 무어라 구시렁거리기까지.

‘쟨 진짜 왜 저래?’

원래도 이상한 애였지만 요즘은 한층 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일이 잦았다. 단발 반묶음에 가까운 머리칼에 살짝 가려진 얼굴선이 좀 심하게 예뻐 보인다는 건 별론으로 두고서라도.

하지만 의문과 무관하게 한세라의 강연은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져 나갔고, 유해빈의 표정도 그에 따라 조금 더 못마땅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다른 오후 2시 30분. 한세라가 학생들에게 일렀다.

“그럼 이제 질문을 받으려고 하는데 질문 있으신 학생분들은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호응이 적지 않았다. 대략 삼십 명 넘게 손을 든 것이다. 진유리를 비롯한 학생들은 몰랐으나 그중 절반 이상이 한세라가 이도진에게 조언을 구한, 영원 길드에서 영입하고자 하는 학생들이었고.

기뻐하듯 작게 웃은 한세라가 강당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을 지목했다.

“첫 번째 줄, 네, 그쪽 남학생이요.”

덜커덕.

단순히 의자 끄는 소음인데도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소리를 낸 유해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세라와 눈을 마주쳤다.

“지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일고 2학년 유해빈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도전적인 어투의 자기소개. 그리곤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영원 길드의 원칙, 그건 각성자 개개인의 신념에 우선하나요?”

조금은 뜬금없게 들리는 질문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영원 길드의 원칙.

그건 별다를 것 없는, 각성자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다.

사적인 목적을 위해 마력을 사용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 것.

눈앞에 사사로운 이득과 몬스터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몬스터를 먼저 쓰러뜨릴 것.

실제로 모든 각성자가 칼같이 적용하는 철칙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만 대외적으론 모든 길드가 해당 원칙을 표방한다. 너무 당연한 거라 굳이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고, 한세라가 주저 없이 답했다.

“말 그대로 원칙이니까요. 어느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빈 학생은 의견이 다른가요?”

“아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짤막하게 답한 유해빈이 자리에 앉은 다음.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해나갔지만 진유리는 유해빈의 표정을 살폈다.

한세라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빛.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처구니가 없다고 여기는 것도 같고,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

‘……뭐야?’

마치 한세라를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같은 시각.

심이수는 경쾌한 걸음으로 잘 꾸며진 정원을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발 디디고 선 이곳은 마도 명문 심가의 저택 내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지역.

올바른 길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라면 단 한 치의 걸음을 잘못 내디디는 것만으로 초고도의 마력 결계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될 터였고, 하지만 그녀는 그런 길을 흡사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듯 걸어 나가는 중이었다.

다 아는 결계. 다 아는 함정.

그리고…… 설령 난생처음 온 것이라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그녀의 눈에는 헐겁고 낡아빠진 거미줄에 불과할 뿐이다.

오 분쯤 걸었을까. 심이수의 발길이 오래된 목조 건물 앞에서 멈췄다. 심호흡 한 번. 이내 그녀는 나무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들어오거라.”

끼이익-

나무문이 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목조 건물 안에 있던 늙고 초라한 노인이 그녀와 마주한다.

36 영웅의 일인. ‘천리안’ 심정웅. 혈연적으로는 심이수의 조부.

그가 손녀에게 물었다.

“내 일러둔 것은 생각을 해보았는고.”

손녀에 대한 애정은 한 톨도 담기지 않은 듯한 질문. 심이수는 멋쩍어하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게, 저야 상관은 없는데…… 제가 그 선배한테 이미지가 별로 안 좋을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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