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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14화 (114/207)

#114화. Chapter 27. 인기인 (4)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었다.

계획 입안자라 할 수 있는 이도진 자신과 유해빈, 서연희, 그리고 아직 확정하지 않은 팬텀 단원까지 총 네 사람. 그들이 한국 최고의 마도 명문인 심가에 침입해 ‘천리안’ 심정웅이 아끼는 보물을 탈취하려 한다는 것.

결행 날짜는 7월 10일 밤. 그리고 이도진이 유해빈과 서연희에게 사과한 이유는 명확했다.

“이번 건 내 개인적인 부탁에 가까워. 해빈이 네가 전에 참가했던 작전, 악마의 손 가져오는 거. 그거보다 훨씬 개인적인 일이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한테 피해가 미칠지도 몰라.”

유해빈은 기실 악마의 손 사건 당시의 정황도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눈치만 채고 있었다.

애초에 악마의 손이 갑자기 나타난 것부터가 서연희와 이도진이 꾸민 일 아닐까 하고.

목적은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성이 있었으며 겸사겸사 중동의 범죄조직을 불러들여 처리한 거라고.

그야 실제로는 선후가 뒤바뀌어 A급 각성자 열 명을 살해하기 위해 악마의 손을 미끼로 쓴 것이었지만 일부러 사건을 획책했으리라는 짐작만은 정확했고, 이도진이 여전히 미안해하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테러리스트들이 벌일 만한 사건이야. 웬 저택에 쳐들어가서 물건 훔치고, 추적 따돌리는 과정에서 싸움이 있을지도 모르고. 가능한 한 사상자가 없도록 신경을 쓰겠지만 장담할 순 없어. 배신자를 처리하는 것과 직접 연관된 일도 아니야. 보스는 감사하게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해빈이 너한테는 많이 미안하네. 그래도…… 꼭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

“으음…… 잠시만요?”

잠깐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유해빈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꽤 놀랐다.

‘도진쿤이 저렇게 미안해할 정도면 진짜 나쁜 일인가 본데…….’

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세간의 인식뿐 아니라 상황을 아는 자신과 서연희가 보기에도 떳떳지 못한 일이라 판단했기에, 그래서 저토록 조심스러워하는 거겠지. 그런 일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는 거니까.

그래서 유해빈은 고민했다.

‘……어떻게 말하지?’

어떤 말로 답해야 조금 더 멋져 보일지에 대해서만.

거절 따윈 애초부터 그녀의 선택지에 존재치 않았다.

‘내가 받은 게 얼만데.’

이 세상에 홀로 온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같은 아픔을 겪었고, 같은 목표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걸 그가 알려줬다. 똑똑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해서 그녀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도진에게 힘주어 일렀다.

“당연히, 진짜 당연히 도와드릴게요. 그으, 제가 시간 달라고 한 건 거절할까 말까 고민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요…….”

유해빈은 마음에 있는 말을, 정제하지 않은 진심을 그대로 전했다.

“아니, 뭘 그렇게 미안해해요. 교수님 엄청 똑똑하고 능력도 좋으니까 자책할 일 없게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저도 도와드릴 거고요.”

그러면서 유해빈은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금요일의 특강에서 한세라가 했던 말.

각성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개개인의 신념에 우선하며 어느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유해빈은 코웃음을 치며 되뇌었다.

‘한 명이 반대 못 하면, 그러면 두 명은 어떤데?’

당시 느꼈던 분노와 경멸감을 되새긴 그녀는 이도진에게 다시금 일렀다.

“난 그런 거 못 한다고, 세상 착하게만 사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죠.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런 사람은 자기만 잘난 줄 알고 혼자 살라고 해요. 전 교수님 도와줄 거고, 배신자들 다 잡아낼 거고, 악마들 다 죽여버릴 거고,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노예처럼 사는 불쌍한 사람들 다 해방해줄 거고, 그리고…… 우리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저한텐 그게 훨씬 더, 아예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해요.”

길었던 말을 마친 유해빈은 일순간 아차 싶었다.

말을 하다 보니 감정이 너무 격앙돼 오히려 철이 없어 보인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게 기우였다는 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서연희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만약 타인에 대한 평가를 수치화할 수 있다면 이 순간 자신의 점수가 족히 십 점은 상승했으리라 싶을 만큼 대견스러워하는 눈빛이고, 이내 그녀가 나직이 말한다.

“그래,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거니까…….”

어쩐지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듯한 목소리. 그걸 자신에 대한 걱정이라고 판단한 유해빈은 내심으로만 답했다.

‘내가 알아서 잘할 거니까 그럴 필요는 없고요.’

그녀는 이어서 이도진을 살폈다.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보는 표정. 점수가 몇 점이 올랐니 뭐니 할 것도 아닌 듯했다.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진짜, 엄청 감동한 것 같은데…….’

그리고, 가만히 눈길을 보내던 그가 문득 묻는다.

“너 밥은 먹고 왔냐?”

“어…… 아뇨, 오늘 아직 한 끼도 안 먹었는데요.”

“그러면 보스랑 얘기 좀 하고 있어라.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너 내 요리 제대로 먹어본 적 없지?”

“되게 맛있어.”

서연희가 자랑처럼 일렀고, 이도진이 결의에 찬 듯이 부엌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적당히 차려줄 느낌은 아니라 유해빈이 돕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했고, 서연희가 이도진에게 묻는다.

“해빈이랑 같이 앨범 봐도 돼? 너랑 세아 옛날 사진.”

“앨범이요? 그건 좀…….”

“해빈이가 너 도와준다는데?”

유해빈은 따져 묻고 싶었다. 재주는 용용이가 넘었는데 왜 당신이 생색을 내느냐고. 상급자가 성과를 가로챌 때 드는 심정이 이런 걸까. 하지만 억울해하면서도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사진 보는 건…… 나쁘지 않아.’

얼추 할 일이 정해지고 나니 집 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호자 이시혁과 대마법사 정세빈이 살았던 집.

지금은 그들의 아들과 딸이 사는 집.

유해빈은 거실 반대편 복도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기가 도진쿤 방인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아하니 지금도 쓰는 공간인 듯하고, 이세아의 방인 것 같진 않으니 이도진의 방이겠지.

그즈음 그가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답했다.

“……제 방에서 알아서 가져가요. 못 찾는다고 찾아주진 않을 거예요.”

“고마워.”

사뿐하게 답한 서연희가 유해빈의 손을 잡아끌었다. 목적지는 방금 쳐다본 방.

스윽- 문이 열렸고, 유해빈은 두근거리는 눈길로 내부를 살폈다.

‘깔끔하네.’

딱히 꾸미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살풍경한 건 아닌,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다.

한쪽의 침대에 이불과 베개가 곱게 개켜져 있다. 반대편 책상엔 연구와 강의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들이 올려져 있다.

경치 좋은 유리창 쪽엔 옷장과 책장이 놓여 있고, 서연희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유해빈의 눈에 띈 무언가.

‘아, 저거…….’

걸려 있는 옷가지 중에 특히나 익숙한 옷이 하나 있었다. 유해빈 자신이 구매해 그에게 전해준 선물.

그리고 다음 순간.

“여기 있네?”

웃음기가 스민 어조로 말한 서연희가, 그 옷에다 손을 뻗는다.

살짝 쓸어내린 손길.

유해빈은 곧장 깨달았다. 자신이 며칠을 공들여 그 옷에 남긴 흔적이, 만약 그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제는 정말 말끔하게 지워졌으리라고.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해? 그래야만 하냐고…….’

-라고 당당하게 외칠 입장은 아닌 유해빈은 그저 침묵하며 서 있기만 했고, 곧 앨범을 찾아낸 서연희가 그녀에게 일렀다.

“자, 나가자. 아, 근데 해빈아.”

“……네?”

상냥한 목소리지만 유해빈에겐 추궁처럼 들리는 질문.

“그러고 보니 머리가 꽤 길었네. 기르는 거야?”

“그냥, 자르기 귀찮아서요. ……안 들키게 조심은 하고 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일부러 기르는 게 맞았다. 여자라고 의심을 받지 않게 신경은 쓰고 있지만, 그래도 기르고 싶어서.

서연희는 더 묻지 않고 칭찬만 건넸다.

“응, 이쁘네. 거실에서 앨범 보고 있자. 언제인지 내가 설명해줄게.”

거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앨범을 한 장씩 넘겼다.

이도진이 부엌에 가고 나서 서연희와 둘만 남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방면에서 타격이 컸던 유해빈은 앨범을 보면서 겨우 충격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게 도진이 다섯 살 때일 건데, 지금이랑 다르게 귀엽지?”

“……네, 귀엽네요.”

그야 이십 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유해빈이 보기에도 지금과 분위기가 다르다.

사진 속의 이도진은 아주 귀엽고, 똘망똘망해 보이고, 웃는 표정도 티끌 하나 없이 밝아 보인다. 지금과는 다르게.

그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유해빈은 한편으론 들키지 않게 눈을 흘겼다.

‘진짜 뻔뻔하네…….’

서연희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도진이 다섯 살 때를, 그 이전까지도 명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나이 차이가 스무 살도 넘게 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척, 기껏해야 몇 살 연상 누나인 것처럼 뻔뻔하게 구는 걸까.

유해빈은 음습하게 되뇌었다.

‘시간은 내 편이야…….’

몇 년이 지나 폴리모프를 풀게 되면.

지금처럼 중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본연의 외견을 되찾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까지 더해지면.

요컨대 포텐셜을 전부 발휘하면.

그때는 서연희는 상대도 안 되는 매력을 갖출 수 있겠지.

그러니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전에 승부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 됐어.”

앨범을 보는 동안 식사 준비를 마친 이도진이 음식을 들고 거실로 왔다. 서연희와 자신은 점심을 먹었으니 조금만 먹겠다면서 준비한 양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차려준 성의도 있고 들은 대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요리여서 유해빈은 즐겁게 식사를 이어나갔고, 서연희와 이도진은 맥주를 한 캔씩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마침 유성 쪽에서 만나자고 연락 온 게 있거든요. 날짜는 안 정했고 이번 주 목요일에 시간이 비니까 그날 만나려고요.”

“장소는 심정웅 걔 집으로?”

“가능하면 그러려고요. 일단 사전답사를 해야 하니까.”

그 대화에 유해빈은 언뜻 고개를 갸우뚱했다.

‘심정웅 걔?’

서연희도 이도진과 어울리지 않게 나이가 많지만 심정웅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

‘그냥 없는 자리라서 편하게 부르는 건가?’

우선 그렇게 짐작한 유해빈은 잘 익힌 스테이크를 한 점 썰어 먹었고, 서연희와 이도진이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래도 조심해. 심정웅 그 애가 만만치는 않을 거야. 무슨 말 하는지 잘 듣고, 신중하게 행동하고.”

“네, 조심할게요.”

유해빈은 다시금 의문을 가졌다.

‘심정웅 그 애……?’

‘걔’와 ‘그 애’는 거의 같은 말이지만 어감상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자신의 나이가 적어도 편하게 부른다고 치면 ‘걔’ 정도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애’라는 건 정말로 지칭하는 상대보다 나이가 많지 않다면 쓰지 않는 표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때 드는 불길한 생각.

‘보스가…… 서연희가 맞나?’

팬텀의 보스.

그녀의 진실한 신분은 36 영웅의 한 명, ‘안개의 마녀’ 서연희라고 지금껏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서연희조차 가짜 신분이고, 진짜 이름과 신분이 따로 존재한다면?

만약 서연희라는 사람이 있기 전부터 보스가 살아왔다면?

그래서 실제로는 나이가 더 많고, 심지어 심정웅조차도 어린애 대하듯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해빈은 충격을 가누며 되뇌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보스에게 나이가 많고 적고는 의미가 없다. 노화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올바른 추측이겠지.

‘스무 살이랑 마흔 살은 좀 차이가 많이 나는 느낌인데…….’

아예 자릿수가 다르면 또 느낌이 달라진다. 이백 살이나 삼백 살, 그렇게 오래 살았다면 그건 또 딱히 뻔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러면 저것도 보스의 진짜 모습이 아닌가?’

상당한 미인이긴 하나 유해빈 자신의 포텐셜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온 서연희의 외견.

저게 본래 모습이 아니라면.

사실은 훨씬 더 예쁘다면.

‘……게임 진짜 치사하게 하네.’

내심 극찬한 유해빈은 원망을 담아 서연희를 바라봤다. 시선을 알아차린 서연희도 그녀에게 상냥하게 웃어준다.

결국 의문을 풀 수는 없었고, 저녁쯤이 되어 유해빈은 서연희의 공간 마법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 보내고 보스도 가려는 분위기였지?’

설마 이런 거로 비겁하게 속이진 않으리라 믿으며 유해빈은 소파에 누웠다. 내일 이도진과 둘이 만나서 무얼 할지에 대해 생각하며.

***

“난 조금만 더 있다 가도 돼?”

유해빈이 돌아가고 나서 서연희가 대뜸 꺼낸 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마실 거 사 올 테니까 좀 더 있다가 가요.”

오늘은 둘이 보기로 한 날인데 예기치 않게 작전 회의로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리고 집을 나서려는데…… 불현듯 서연희가 묻는다.

“그건 알고 있지?”

“어떤 거요?”

“결행 날짜. 7월 10일이 어떤 날인지.”

일부러 그날로 정한 건지, 그렇다면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묻는 듯한 질문.

나는 염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답했다.

“알고 있어요.”

7월 10일.

음력으로는 6월 1일 초하루.

그날은 삭월(朔月). 달이 뜨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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