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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15화 (115/207)

#115화. Chapter 27. 인기인 (5)

물론 삭월이라 해도 서연희가 대단한 강자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인간 신분으로 오랜 세월 쌓아온 힘뿐만 아니라 장생종의 차대 여왕으로서 가진 권능도 사용할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 막강한 능력을 전부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달이 뜨지 않는다는 건 곧 백업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본래 그녀가 내재하고 있는 힘만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소모한 힘을 즉각 보충할 수도 없다.

단위 시간에 대비한 출력과 회복력에서 달이 떠 있는 날과는 아득하리만큼 차이가 나고, 그런 결핍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이성을 명료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삭월의 서연희는 평소의 그녀보다 아주 많이 약해진다.

그녀 자신이 말하기로 삭월이라면 샬럿 테이트와 싸워도 필승을 장담할 수 없다니까. 그야 초반에는 몰아붙일 수 있겠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전세가 불리해질 거고, 심지어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어쩌면 패배할 가능성도 적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달이 밝게 뜨는 날엔 악마의 군주조차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현시점 세계관 최강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서연희인데. 그런 그녀가 고작 인간 하나를 압도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는 거다.

그러니 나도 알고, 서연희도 안다.

7월 10일. 달이 뜨지 않는 날로 시기를 정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최악에 가깝다는 것을.

“조건이…… 많이 까다롭기는 해요.”

악마의 손을 탈취한 작전 당시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그때는 삭월보단 상현에 더 가까운 날이었고, 인원도 다섯이었다.

우리가 상대한 적은 한태강과 영원 길드의 상급 헌터들, 그리고 범죄조직 시프의 각성자들까지 포함해도 기껏해야 서른 명 미만.

경매장에 떡하니 놓여 있는 악마의 손을 가져가기만 하면 됐고, 딱히 적들에게 유리한 전장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결코 쉬운 작전이라곤 말할 수 없었는데…… 이번 일은 그때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다.

달이 뜨지 않는 삭월.

참가 인원은 네 명.

심가의 비고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탈취해야 할 보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상대해야 할 적은 ‘천리안’ 심정웅과 심가 전체. 게다가 그들의 본거지로 잠입해야 한다. 초고도의 결계와 마법적인 함정이 설치돼 있을, 아주 오래된 저택이 이번의 전장이다.

해서 나도 서연희도 직감하고 있다.

쉽지 않을 거라고. 많이 위험할 거고,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작전에 참여할 네 사람 중 누구도 무사하리라 확언할 수 없다고.

달이 뜨지 않는 날 심가에 침입한다는 문장은 우리에게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그걸 알면서도 나는 구태여 7월 10일을 결행 날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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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첫 번째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으로서 심가의 비고(祕庫)에 잠입해 ‘천리안’ 심정웅의 가장 중요한 보물을 탈취하고, 추적을 따돌려 완벽하게 도주할 것

-기한: 7월 10일 오후 8시~7월 10일 자정

-인원: 이도진, 서연희, 유해빈을 포함한 팬텀의 멤버 4인

-클리어 보상:

1) OX 질문 1회

2) 보상 수령 시점, ‘서울 내’ 인외 지성체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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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그걸 위해 테러 행각을 벌이기로 했다. 나만 위험한 것도 아니고 동료들까지 끌어들이려 한다.

나쁜 일이고, 미안한 일이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알면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서연희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날짜를 그날로 정한 거랑, 이번 작전 자체까지. 전부 제가 책임질게요.”

책임이라는 건 몹시 무거운 말이다. 제대로 해내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아예 쓰지 않아야 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 무거운 말을, 책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 하니까. 기꺼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해준 서연희와 유해빈의 믿음에 부응해야 하니까.

서연희가 옅게 웃는다.

“그거, 나 지켜준다는 뜻이야?”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해요.”

내 대답에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 더 호선을 그린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뻐하는 듯한 표정.

그리곤 내게 일렀다.

“뭐, 좋아. 가끔 너한테 보호받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거든. 그럼 이번엔 믿고 맡길 테니까, 잘 해줘.”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어쩐지 분위기를 타서 말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답했고, 이제 서연희가 다른 걸 묻는다.

“네 명이라고 했잖아. 나랑 너랑 해빈이까지 셋은 확정이고, 마지막은 누구로 할 거야?”

“그것도 얼추 정해놓긴 했어요.”

이번 작전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요소다. 팬텀 단원 중에 누구를 마지막 한 사람으로 정할지.

객관적인 무력, 지닌바 성품, 마법적인 요새에 침입해야 하는 작전의 성격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토끼가 좋겠어요.”

일단 무력적으로 최고다. 남은 멤버 다섯 중에선 그녀가 가장 강하겠지.

작전 수행에서 빈틈을 보이지 않는 성품이고, 계획의 성격을 놓고 봐도 마력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전투 시의 움직임이 무척 날랜 토끼가 적임자일 터.

거기에 더해 내 개인적인 목적도 하나 있고.

“걔 대체 뭐 하는 애인지, 아니, 나이를 모르니까 애라고 하는 건 좀 그런데, 아무튼 그것도 겸사겸사 알아보려고요.”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넘게 이전에, 등급 외 보물 ‘동쪽으로 흐르는 달’의 소유자였던 존재.

어쩌면 인간이 아닌 장생종이거나, 혹은 그들과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신비한 존재일지도 모르는 멤버.

이번 작전을 구실로 불러들여 그녀의 신상명세를 더 면밀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정말로 장생종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작전상 리스크가 있겠지만, 여태 삭월 전후로 그녀가 보여준 능력만 상정해도 최고 적임자니까.

서연희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러면 너 다녀오는 동안 내가 토끼한테 연락해볼게. 마실 건 뭐 사려고?”

“편의점에서 파는 술 중에서는 제일 맛있고 제일 비싼 거요.”

서연희가 흡족해하며 다녀오라 일렀다.

한데 십여 분이 지난 뒤. 집에 돌아온 내게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토끼가 싫다는데?”

“네?”

황당해하며 반문하자 난처하단 표정으로 서연희가 다시 일렀다.

“방금 물어봤는데 바빠서 불참하겠대. 자기가 꼭 필요한 거 아니면 다른 멤버 찾아보라는데?”

“꼭 필요하다고 제가 말해볼게요.”

“나도 거절하길래 도진이 네가 부탁한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싫대. 그러고 연락 끊어서 이제 받지도 않아.”

우우웅-

서연희가 손을 휘둘러 직사각형의 마력 구성체를 띄웠다.

팬텀 단원들과 연락할 때 쓰는 통신 마법. 상단에 귀여운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분명 그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구성체가 맞을 텐데…… 저편에선 그 어떤 기척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토끼 얘가,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타버린 거다.

“토끼는 안 될 것 같은데, 걔 말고 생각해둔 사람 있어?”

“글쎄요…….”

남자 멤버 셋은 여러모로 불안 요소가 있는데.

이전 회합 때 나한테 두들겨 맞았던 거한. 그자는 잠입이랑 안 맞지. 때려 부수는 거라면 첫 번째로 떠올렸겠지만.

노인은 적당한 인선일 수 있겠으나 가야 할 곳이 심가라는 게 문제다. 들킬지도 몰라.

아이도 노인과 비슷한 이유로 안 된다. 어디 길드나 범죄조직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마도 명문에 침입하는 거니까. 자칫 통제를 못 하면 수습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결국 남는 건 한 명이다.

“여우는 어때?”

“여우 가면으로 정해야겠네요.”

서연희와 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내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단원 두 사람 중 하나, 여우 가면이면 그래도 괜찮은 선택일 듯하다.

냉정하게 보면 토끼 가면의 하위 호환쯤 되는 전력이지만 걔가 잠수를 타버린 이상 그녀에게 부탁해볼 수밖에.

“지금 연락해줄 수 있어요? 제가 직접 설명하려고요.”

“내일 물어보고 알려줄게. 당장 연락할 필요까진 없잖아? 설명하려면 또 한참 걸릴 거고, 오늘은 일 얘기만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한데.”

내가 들고 있는 편의점 봉투를 보며 서연희가 답했다.

화상이 아니라 목소리로만 연락하는 것도 되니까 정체를 들킬 걸 염려해서는 아닐 테고,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시금 미안하다는 눈길을 보낸 나는 탁자에 사 온 것들을 올렸다. 그리고 한 차례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서연희가 문득 궁금해하듯 묻는다.

“내일 해빈이랑은 뭐 할 거야?”

“그냥, 학기 끝났고 친목 도모 좀 하자길래 저녁 사주려고요.”

밥을 먹이면서 따로 힘든 건 없는지 상담처럼 대화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서연희가 살짝 웃으며 당부했다.

“해빈이가 너한테 의지 많이 하니까, 어른으로서 잘 대해줘.”

“그건 저도 느끼는데…… 친한 건 보스랑 더 친하지 않아요?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면서 되게 사이좋아 보이는데.”

“그래 보이니? 나도 해빈이 좋긴 해. 보고 있으면 귀엽잖아.”

장난스럽게 웃은 서연희가 술을 한 모금 마신다. 나도 잔을 입으로 가져갔고, 바로 그때. 먼저 잔을 비운 서연희가 은근한 어조로, 찌르듯이 내게 물었다.

“내일은 해빈이랑 보고 목요일엔 유성 쪽이랑 만나면…… 금요일이랑 토요일은, 뭐 하는 거 있어?”

“으흡-”

순간적으로 입에 머금은 술을 뱉을 뻔했다.

언제부터 눈치챈 걸까. 딱히 물어보지 않길래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털어놓는 게 한발 늦었다.

이미 변명처럼 돼버렸지만 나는 이제라도 이실직고하듯 답했다.

“금요일은 아저씨한테 연락이 와서, 저녁 먹기로 했어요. 토요일에는…….”

“세라랑 만나?”

“네.”

거기까지만 듣고 서연희는 다른 걸 묻지 않았다.

왜 만나는지.

누가 만나자고 했는지.

만나서 뭘 할 건지.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만 짧게 말했다.

“응, 이해해.”

자세한 정황을 몰라도 이해한다고.

세라와 내 관계를 알고, 우리가 아직 완전히 멀어지지 못하는 걸 이해한다고.

그리곤 한마디만 더했다.

“도진이 인기 많네…….”

나는 그 말에 여실히 실감했다.

이해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게 서운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고.

이번엔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만을 말했다.

“너무 안 늦게 들어가고, 집 가면서 연락할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너무 구속하는 거 같잖아?”

서연희가 빈말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 말투로, 기쁘게 웃으며 답했다.

***

다음 날인 6월 30일 수요일. 오전부터 제법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우선 여우 가면이 작전 참가에 응했다고, 서연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네가 조사하고 오면, 그거 토대로 넷이 상의하면 될 것 같아.>

“네, 고마워요. 근데 여우는 싫다고 안 했어요?”

<응, 참가하고 싶다던데?>

“그 사람 되게 바빠 보이던데…… 아무튼 잘됐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부터 할 일 많고 바쁜 사람이라는 티가 팍팍 나고 실제로 작전 참가 요청에 거절할 때도 드물지 않아 걱정했는데, 의외로 일이 잘 풀렸다.

오후에는 유해빈과 만나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내가 너 보호자도 아니고 이런 거 물어보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한데…… 너 요즘 고민 같은 건 없나?”

“……고민이요?”

“학교생활이나, 집에 있으면 불안할 때 있다며. 그건 괜찮고?”

“뭐…… 괜찮아요. 참을 만해요.”

“힘들긴 힘든가 보네…….”

“집에 혼자 있으면 막 무섭고, 악몽도 꾸고, 누가 옆에 있으면 좋겠고, 근데 제가 믿을 만한 아는 어른도 없어서 보스랑 교수님한테 연락하고 싶을 때 솔직히 있는데…… 참고 있어요.”

“아니, 안 참아도 되는데. 나도 악몽 자주 꿔봐서 아는데 그거 다시 자면 또 악몽 꿀 것 같아서 무섭잖아.”

“아…… 진짜요……?”

“응, 그럴 때는 연락해도 돼. 내가 크게 도와주진 못해도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줄게.”

“네, 고맙습니다!”

이게 효과가 있으려나 말하면서도 의문이었지만, 그 이후로 애가 집에 갈 때까지 내내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었던 걸 보면 그래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유성 쪽과 만날 약속이 구체적으로 정해졌다.

월요일에 연락해왔던 유성전자 임원도 나와 원하는 게 같았는지 조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죠. 전혀 문제없습니다. 저도 어르신 뵌 지 오래라 인사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내일, 7월 1일 목요일 정오.

장소는 심가의 저택.

그곳에서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은 ‘천리안’ 심정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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