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Chapter 29. 불청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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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건 이미 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다.
조건과 인원과 방해물. 작전 수행에 특히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우선 첫 번째로 조건.
심가의 비고를 찾아내고, 심정웅이 가장 아끼는 보물을 탈취해서, 추적을 완벽히 따돌려 도주할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마지막 부분이다. ‘추적을 따돌린다’라는 조건.
추적을 따돌리려면, 그전에 먼저 추적을 당해야 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들키지 않고 보물만 쏙 빼돌려 달아나는 건 클리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작전을 시작하자마자 발각돼서 쫓기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저 조건의 맹점을 잘 파고들어야 하고.
한마디로 말해 저택을 빠져나가기 직전에야 살짝 단서를 흘리고, 그런 다음에 무사히 도주하면 된다.
꼼수에 가깝긴 하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이어서 두 번째로 인원.
도합 네 사람이다.
나와 서연희, 유해빈과 여우 가면.
팬텀의 보스는 서연희지만 이번 작전에서만큼은 심가의 결계와 함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내가 총괄 책임자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 나를 도와서 방어선을 돌파해나갈 유해빈.
세 번째가 보조 작업과 경계 및 엄호 역할을 담당하는 여우 가면.
그리고 서연희는…… ‘어떤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시점’이라는 말에 딱히 복잡한 의미를 담진 않았다. 그냥, 내가 상정한 시점보다 빨리 발각됐을 때.
작전이 원활하게 흘러간다면 기본적으로 우리 네 사람은 전원이 함께 행동할 거다. 가뜩이나 네 명뿐인데 인원을 나눠서 전력이 분산되면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러나 내 생각보다 일찍 발각된다면…… 그때는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둘씩 나눠서 행동할 작정이었다.
나와 여우 가면.
서연희와 유해빈.
한쪽은 이번 작전의 본래 목적에 주력해야 하고, 다른 쪽은 심가의 주의를 끌어줘야 한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그때는 서연희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달이 뜨지 않는 밤이라 해도 그녀는 여우 가면보다, 유해빈보다, 그리고 나보다 더 강하니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조건인 방해물.
A급과 S급, 심지어 그 이상까지도 대비해야 하는 결계와 함정.
마도 명문 심가의 고위 각성자들.
그리고 한 사람, ‘천리안’ 심정웅.
그중에서도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소는 심정웅이다.
비단 36 영웅의 일인이라서, 육신은 노쇠했다 하나 현시점에서도 결코 얕볼 수 없는 초고위 마법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추측하는 심가 비고의 위치가 그의 거처 주변이라서.
어떻게 그를 거처 바깥으로 끌어낼지. 혹은 그게 여의치 않다면 무력으로 제압해야 할지.
심정웅의 거처 근처까지만 무사히 갈 수 있다면, 그다음부턴 그거야말로 작전의 성패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진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는 듯싶었다.
“커헉!”
심가의 각성자 한 명이 비명조차 되지 못한 말을 내뱉으며 눈을 부릅뜬다. 그 뒤의 대응은 제법 빨랐다.
두어 걸음 뒷걸음질한 그가 내 쪽으로 손을 펼친다. 손바닥 앞에 푸른색 마탄이 생성되며 소용돌이친다. 하지만 내게 쏘아내진 못하고, 이내 연기처럼 흩어지고 만다.
“무슨……!”
각성자가 경악해 흘린 말. 그것 외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 기습으로 마력 회로를 원활히 운용할 수 없도록 흩트려놓았고, 어떤 마법적인 힘도 발현할 수 없을 테니까.
공격도, 방어도, 심가의 다른 이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조심해-! 이곳, 에…… 끄으윽…….”
내가 가볍게 발동한 마법에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기절하기 직전에 외치려던 경고는 유해빈이 구현한 마력 벽에 막혀 바깥으로 도달하지 못했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과는 달리 표정에서 웃음기가 비치지 않는 유해빈이 경계를 풀지 않으며 일렀다.
“지금까지는…… 꽤 순조롭네요.”
잠입한 이후로 십오 분. 그동안 돌파한 마법적인 방비의 수는 마흔아홉. 무력화한 각성자의 수는 열다섯.
위험한 작전이고,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일까. 내 생각에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그때 문득 들려온 목소리.
“긴장 풀 때가 아니에요.”
심가의 각성자 둘을 상대해 제압한 여우 가면이 차갑게 이른 말이었다.
“저기요, 여우 선배님. 이런 말씀 드리기 살짝 죄송한데…… 저도 긴장 푼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요.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힘내자는 거죠.”
“……그런 거면 다행이네요.”
평범한 대화라고 하기도 뭐하고, 언쟁이라고 하기에는 평온한 대화.
두 사람을 시선에 담으며 내가 주위를 환기했다.
“얘기는 작전이 끝나고 나서 해. 바로 다음으로 간다.”
우리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각성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기척조차 발견하지 못할 만큼 고요히 움직였다.
낮보다는 훨씬 경비가 삼엄했으나 각성자들의 동선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숨어야 할 순간에 숨고, 빠르게 돌파해야 할 때는 달리고, 불가항력으로 전투를 해야 할 상황에선 가능한 한 조용히 제압하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나가다 어느 지점에 이른 나는 멤버들에게 일렀다.
“잠깐 여기서 정지. 내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마력을 사용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마라. 이삼 분 정도 호흡을 멈추는 건 어렵지 않겠지?”
“흐으읍-!”
일부러 크게 공기를 들이마신 유해빈이 숨을 멈췄고, 여우 가면과 서연희는 아무 말 않고 제자리에서 있다.
홀로 정면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간 나는 눈앞의 광경을 유심히 살폈다.
저택의 대문에서부터 심정웅의 거처에 당도하기까지 펼쳐져 있는 마법적인 방비를 큰 갈래로 나누면 다섯 개.
그중 다섯 번째, 마지막 결계가 내 앞에 도사리고 있다.
“…….”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그저 수목원 같은 데서 으레 보이곤 하는, 푸른 나무와 흐르는 물과 크지 않은 돌다리가 자리해 있는 목가적인 정경.
하지만 그 모두가 A급을 능히 상회하는 결계이자 함정이다.
전면의 느티나무. 침입자를 판단해 마력을 빼앗아가는 흡수 계통 구성체가 숨겨져 있다.
그 주위로 예쁘게 핀 꽃들. 꽃잎 하나하나가 강철마저 찢어낼 칼날이 되어 들이닥칠 준비를 하고 있다.
흐르는 물이 폭포처럼 침입자의 움직임을 봉쇄할 거고, 돌다리는 모르는 사람이 걷게 된다면 갈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공간 결계였다.
그런 것들이 열 개 이상.
나는 고개를 올려 나무들로 가려진 검은 하늘을 바라봤다.
이 다섯 번째 함정을 모두 다스리는 S급 이상의 마력 구성체. 바깥의 하늘과 완전히 같게 보이지만 저건 사실 하늘이 아니다.
외부의 기온과 기상 환경, 시간대와 연동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이 아닌 마법적인 결계의 천장.
저걸 무력화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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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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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용할 수 있는 수단은 세 가지.
힘으로 파괴해버리거나, 근원부터 헤아려 해체하거나, 아니면 중화하며 뚫고 나가거나.
힘으로 파괴하면 들킨다.
근원을 헤아려 해체하는 방법은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니 실제로 쓸 수 있는 수단은 하나밖에 없다.
“이리 와봐.”
“……?”
유해빈이 오른손 검지로 자신을 가리킨다. 내가 지시한 걸 지키려는지 여전히 숨은 쉬지 않고 눈만 깜빡이면서.
“분석 끝났으니까 숨 쉬어도 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옆으로, 정확히는 내가 지금 있는 위치 바로 앞으로 와. 마력은 아직 쓰지 말고.”
“후우우…… 네.”
유해빈이 조심스럽게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자기 등과 내 몸이 거의 밀착할 정도까지 붙어 선다. 나는 양손을 유해빈의 어깨에 얹으며 일렀다.
“몸에 힘 다 빼고, 마력 흘려보내면 그거 그대로 받아서 밖으로 내보내기만 해.”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유해빈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나는 마력을 운용했다.
위유우우웅-
세아를 안마해주며 공들여 단련해온 간섭 계통의 마력 구성체.
그것이 용족의 공주 유해빈의 지극히 순수한 육신을 통해서 결계를 중화할 마법을 구현해나간다.
“흐으, 으…… 이거, 아니, 이거 느낌이 좀 많이 이상한데요…….”
“잠깐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다.”
흐물흐물한 목소리를 내던 유해빈이 등을 내 쪽으로 살며시 기댔다.
내가 만들어낸 마법. 유해빈의 육신을 통해 더욱 순수하게 정제한 마력 구성체가 S급을 넘어선 결계를 조금씩 중화해나간다.
십 초, 이십 초.
그즈음 여우 가면이 일렀다.
“세 명, 이 근처로 오고 있어요. 일 분 안에 도착이에요.”
“이십 초만 더 있으면 돼.”
“으으…… 이 거짓말쟁이, 잠깐만 참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면서요. 계속 기분 더 이상해지잖아…….”
유해빈이 불평했으나 나는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결계가 더 정교하다. 그 때문에 유해빈의 몸에 가해지는 자극도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았고, 그래도 겨우 때가 되었다 싶은 시점에 이르러서…….
“보스랑 여우, 먼저 달려요.”
타앙!
땅을 박찬 서연희와 여우 가면이 나와 유해빈을 지나쳐 석교를 가로지른다. 본래 두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어야 했을 마법들은 중화 마법에 막혀 발현되지 못했고, 둘이 완전히 석교를 건넌 다음에 나는 재차 일렀다.
“끌어 당겨줘.”
중화 마법은 지금도 해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 여우 가면이 손을 휘두른다.
슈아아아-
그녀가 발현한 마력이 나와 유해빈을 끌어당기며 자기 쪽으로 데리고 왔고, 유해빈이 기진맥진한 것처럼 신음을 흘린다.
“하아…… 둘이 하고 있는데, 옆에 끼어들면…… 더 어지럽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위유우우우…….
중화 마법이 걷히고, 펼쳐져 있던 결계도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석교도, 나무도, 꽃도, 물도, 하늘도, 모두 달라진 게 없다.
침입자 넷이 방금 결계를 돌파했다는 것조차 감지되지 않은 것이다.
“후우, 후우우……. 진짜, 기운 빠져서 다리가 후들거리네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유해빈이 하소연처럼 말했고, 나는 세 사람에게 일렀다.
“이제 거의 다 온 거나 마찬가지야. 다들 잘 해주고 있으니 조금만 더 집중해주면 좋겠다.”
“네…….”
“알겠어요.”
“아, 저기 보이네.”
유해빈과 여우 가면의 대답에 이어 서연희가 저 멀리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다섯 번째 함정이 마지막. 당연히 남은 건 한 곳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목적지인 심정웅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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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상태추적’을 발동합니다. (랭크 B)
1) 대상자: 심정웅
2) 조건: 마법 발현
3) 현재 상황: 조건 미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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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해선 저곳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고 들었으니 필시 심정웅은 저 목조 건물에 머무르고 있겠지.
넷이 합공해 제압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위험부담이 있다. 우리 넷이면 그자를 제압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곳에 펼쳐져 있는 마법도 고려해야 하니까.
단숨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심가 전체에 알려지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계획이 송두리째 어그러진다.
목조 건물을 방비하고 침입자를 공격하는 마법.
저 근처에 감춰져 있는, 아마 심가의 비고이리라 생각되는 장소를 숨기고 있는 초고도의 은닉 마법.
그런 것들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무턱대고 가서 싸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 방법이 좋겠지.
“잠시 대기.”
멤버들에게 이른 나는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모았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꺼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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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제어폭발’을 발동합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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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빼앗은,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의 최고 기술. 그걸 새까만 하늘 저편으로 뻗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폭발하며 자아낸 빛무리.
이걸로 판은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