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24화 (124/207)

#124화. Chapter 30. 선택 (2)

***

쿠아아아아앙-!

베인 어깨로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팬텀의 보스에게 쇄도하며 심이수는 격동에 찬 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왜 하필 오늘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고.’

그저 비웃으려고 한 말이 아니다. 정말로 몹시도 궁금한 일이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찾아온 건 알겠지만…… 왜 오늘이어야 했을까. 달이 뜨지 않는 음력 초하룻날, 장생종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삭월 밤에.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의문.

‘이것까지 알았다면…… 그래도 오늘 침입했으려나?’

퍼어엉!

그녀와 팬텀의 보스가 격돌했다. 서로가 받은 충격은 거의 비슷했으나 굳이 따진다면 심이수가 조금 더 밀렸다.

하지만 대단한 차이는 아니고, 그건 지금의 그녀에겐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는 뜻과도 같았다.

‘상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객관적인 무력의 열세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요소. 그러한 면에서 오늘의 심이수는 팬텀의 보스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저쪽은 일 년에 고작 십여 번밖에 되지 않는, 압도적으로 약해지는 날.

이쪽은 정반대로, 일 년에 고작 십여 번밖에 없는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날.

‘결국에는 내가 이겨.’

물론 당장은 저쪽이 더 강하다. 현재 전황만 보더라도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콰앙! 타아앙!

팬텀의 보스가 떨쳐낸 마력. 거기에 얻어맞은 심이수는 형편없이 뒤로 날았다.

쿠아아아아-!

팬텀의 보스가 쫓는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종전처럼 여유롭지 않다. 심이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이제 침착하지 않고,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광기마저 서려가는 듯했다.

터엉!

강하게 내려치는 공격을 심이수는 양손을 교차해 막았다.

파아앗!

팬텀 보스의 어깨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응급처치로나마 지혈해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거다. 뭉클 흘러나온 피가, 아래편에 있는 심이수에게 떨어진다.

이어진 반격.

퍼어억!

심이수는 오른 주먹에 있는 힘껏 마력을 모아 상대를 후려쳤다.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오감이 전에 없던 수준으로 발달해가고, 온몸에서 활력이 솟구친다. 팬텀 보스가 흘린 피가 심이수의 얼굴에 닿고, 그게 그녀의 체내로 흡수되며 생겨난 변화였다.

심이수는 희열에 몸을 떨며 되뇌었다.

‘이길 수 있어.’

현시점의 전력은 저쪽이 우위. 하지만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 길지는 않겠지.

삭월의 장생종은 그들 본연의 권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힘 자체도, 판단력 같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반면 심이수는 오늘 밤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힘의 총량은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고, 더욱이 외부에서 보충할 수도 있다.

팬텀의 보스가 전투 중 흘리는 피가 그녀에겐 아주 유용한 양분이 되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말이다.

싸울수록 저쪽은 약해진다.

싸울수록 이쪽은 강해진다.

그러니 적에게 승산은 없다.

‘할 수 있어.’

심이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신에게 일렀다.

팬텀의 보스. 살아있는 장생종. 그녀를 통해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간절히 원했던 바를 이룰 수 있다.

‘제발, 제발…….’

그걸 위해서라면 심이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뭐든지 하고 싶다.

부지불식간에 엄습해오는 통증도, 하루에만도 수십 가지씩 삼켜야 하는 약도, 금제에 자유를 빼앗긴 것도, 모두 다 괜찮다.

얼마든지 기쁘게, 이보다 열 배는 더한 고통조차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열망 어린 눈길로 적을 바라보며 심이수는 통신 마법을 활성화했다.

<할아버지, 보고 계시죠?>

<바쁠 터인데 무슨 일이냐.>

심정웅의 싸늘한 대답. 심이수는 개의치 않고 노인에게 일렀다.

<가보셔야 할 거예요. 여기 있는 세 명 말고, 하나 더 숨어들어온 것 같거든요.>

심이수 자신의 피를 어딘가로 보낸 공간이동 마법. 완전히 추적하진 못했으나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이 사람들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 창고 털러 온 건데…… 할아버지나 저나 그렇게 되면 좀 많이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직접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심정웅의 기척이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이다.

심가의 비고, 양동 작전으로 그곳에 침입한 자를 쫓고자.

‘말라 비틀어진 송장이라도 테러리스트 한 놈 죽이는 건 쉬울 테고.’

특히나 비고 내부라면 설령 36 영웅이 침입했다 해도 심정웅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겠지.

씨익 웃은 심이수는 팬텀의 보스를 향해 살갑게 일렀다.

“자, 그러면 우리는 계속해보자고.”

이 정도면 대비는 철저히 해둔 셈이다. 남은 일이라곤 저 여자를 살려서 제압하는 것뿐.

그리고…… 바로 그때.

쿠오오오오오오-!

불과 한 시간 전까진 온통 깜깜했고, 지금은 붉은 마력으로 물든 하늘.

그 하늘이 갈라졌다. 팬텀의 보스가 발현한 핏빛 눈동자가 더욱 높이 솟구쳐 오르며 지상을 밝힌다.

심이수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건 뭐지?”

저걸 장생종이라 칭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달의 기운을 받아 강해지고, 인간보다 강하고 오래 사는 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런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지금 팬텀의 보스에게서 감지되는 기운은 그따위 우열을 아득히 넘어섰다. 각성자와 몬스터보다, 최상위 악마보다도 강한 기운.

그러한 분류로는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 심이수를 압박했고, 팬텀의 보스가 나직이 선언한다.

“그 누구도…… 절대로 그 애를 방해할 수 없어.”

그녀가 손을 휘둘렀다. 뻗어 나온 마력이 지상에서 심가의 각성자들과 싸우며 점차 밀리고 있는 팬텀의 단원들, 용 가면과 여우 가면을 쓴 자에게 닿는다. 그리고…….

위유우우우-

두 사람이 자취를 감췄다.

‘공간이동?’

심이수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눈치챘다. 적이 시전한 공간 마법.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꺼내고, 실낱처럼 남은 이성을 그러모아 단원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아마 비고에 침입한 또 한 명의 팬텀 단원 곁으로.

심정웅조차 석문을 지나지 않으면 통과하지 못하는 곳에, 외부자인 그녀가 고작 전투 중 얻어낸 피만을 매개로 타인을 이동시킨 건 몹시 놀라운 일이나 심이수는 그런 것에 동요하지 않았다.

타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팬텀의 보스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모자람이 있으나 그런데도 강력한 마력이 심이수를 감쌌고, 적이 사라진 심가의 각성자들도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엔 이 별에 대적할 만한 적수를 몇 명 찾아볼 수 없는 초고위 마법사 심이수. 그리고 심가의 정예 각성자가 물경 수십여 명. 승리를 확신하며 심이수가 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팬텀의 보스가 낮게 이른 말.

아무도 그 애를 방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라고.

‘그 애’라는 건 비고에 침입한 팬텀 단원일 테고, 팬텀의 보스가 무척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 듯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건, 그 어떤 타협도 없이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건,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건 그녀만이 아니다. 심이수 자신도 그러했다.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갈망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죽이지만 않으면 돼. 어차피 쉽게 죽지도 않을 테니까…… 최소한 팔다리는 다 잘라버린다는 생각으로 상대해.”

심이수의 냉혹한 명령에 나선 심가의 각성자들이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비틀거리는 여성을 포위했다.

***

드르륵-

문이 열린 직후, 노구를 이끌고 뛰쳐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심정웅. 그 순간 나는 이미 아공간 주머니를 지하실 가장 안쪽의 벽면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슈아아아아-

공기가 세차게 새어 나가는 소리가 나며 내 손길의 영역권에 있던 것들이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 걸려 있던 시신, 주변에 있던 피와 장기를 비롯한 신체 조직들까지. 그때 심정웅이 외쳤다.

“네 이노옴-!”

콰아아아앙-!

지하실 내부의 마력이 거세게 요동쳤다. 나는 급속도로 내게 돌진해오는 마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최상급의 디스펠. 형상화 스킬이 해제되며 가면을 쓴 팬텀 멤버로서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진 공격.

퍼엉! 퍼어엉! 쿠아아아앙!

심정웅이 손에 쥔 지팡이에서 강력한 마탄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온다. 족히 수십 개를 넘길 듯한 마탄의 세례를 나는 바닥을 박차며 피해냈고, 심정웅이 재차 공격했다.

콰아아아아-!

이번엔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 지름이 십 미터는 훌쩍 넘을 마탄이 빛살 같은 속도로 내게 다가온다.

쳐낼 수는 없고, 마력흡수 스킬을 발동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피하려 했고…….

“……!”

순간적으로 내 움직임이 멈췄다. 현재 지하실 내부는 심정웅이 다스리는 영역. 이곳에 설치된 속박 마법에 발길이 붙잡힌 것이다.

쏴아아아아아-!

마탄이 내 눈앞에 이르렀다. 피하기엔 이미 늦어 어쩔 수 없이 마력흡수를 발동하려 했는데…….

타아아앙!

갑자기 나타난 유해빈과 여우 가면이 마탄을 튕겨 냈다.

슈아아아아!

지하실 위편으로 올라가던 마탄이 천장에 흡수된다. 이내 위력과 크기가 줄어든 무수히 많은 마탄으로 바뀌어 나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쏟아져 내린다.

그걸 튕겨 내고, 맞받아쳐 심정웅에게 쏘아 보내고, 또 어떤 것들은 피해내며 나는 유해빈에게 물었다.

“여기 어떻게 온 거지? 보스는?”

“보스가 보내줬어요!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나가야 해요! 보스 지금…….”

두근.

심장이 불길하게 뛴다. 서연희는 왜 유해빈과 여우 가면을 이쪽으로 보낸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지?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은 금세 나왔다.

우선 이곳 내부로 공간이동을 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

장생종으로서의 힘을 발현한 거다. 그게 아니면 아무리 서연희라 해도 심정웅조차 곧바로 워프하진 못했던 공간으로 두 사람을 들여보낼 순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왜 여기로 보낸 걸까. 나를 도와주라는 뜻에서?

물론 그것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이 지하실을 자신의 권역으로 삼은 심정웅을 상대하는 것보다 바깥에 머무르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장생종으로서의 힘을 꺼내고, 자신이 이성을 명확히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서연희는 그 정도로 몰려 있는 거다. 지금 밖에서 홀로 상대하고 있을 적들에게.

주름진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심정웅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괘씸한 좀도둑 놈들이…… 그건, 그것들은 네놈들이 함부로 가져갈 물건이 아니다-!”

그 말에 나는 직감했다. 심정웅이 귀중히 여기는 보물. 그건 틀림없이 내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둔 시체와 신체 조직들일 거라고.

평범한 각성자의 것이 아니다.

악마나 몬스터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의 시체지?

인간과 닮았고,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그리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짐작이 있다.

만약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킬 더 이블> 3권의 고유 퀘스트,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를 일 개체 이상 제거하라는 임무에서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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