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Chapter 32. 시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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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두 번째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7월 31일 자정까지 현재 보유한 장생종의 시신을 마법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모두 소각하고, ‘천리안’ 심정웅이 해당 정보를 파악하게 할 것
-클리어 보상: 주관식 질문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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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퀘스트지? 굉장히 노골적이지만 진정한 의미는 쉬이 파악하기 힘든 문장.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 추측을 정리해나갔다.
우선 첫 번째로, 불온한 속셈이 느껴진다.
장생종의 시신을 마법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소각하라는 것. 게다가 그 사실을 심정웅이 알 수 있게 하라는 것까지.
역으로 추론해보면 이런 뜻이 되겠지.
심정웅은 장생종의 시신을 마법적으로 활용해 무언가를 시도하려 했다고. 하지만 그 일이 아예 불가능해졌다는 걸 깨닫게 하고, 그가 다른 수단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라고.
그건 틀림없이 세간에 득이 되는 일이 아닐 거다. 장생종의 시신을 대체할 만한 마법적인 재료, 혹은 에너지. 그런 게 길바닥에 흔히 널려있진 않을 테니까.
심가 자체도 불온한 느낌이 들고, 거기다 장생종과 흡사한 존재로 변모한 심이수까지 고려하면…… 글쎄, 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게 옳을지 강하게 의구심이 든다. 심정웅의 목적이 뭔지도 알지 못하니까.
명확한 근거 없이 추측해보자면 장생종의 시체를 활용해 젊었을 때의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것일 수 있겠지. 서연희도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직히 말해 나는 그런 소망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내가 뭐라고. 뭐가 떳떳해서 뻔뻔스럽게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늙어 쇠락해가는 걸, 죽음을 맞이할 걸 두려워해 그걸 극복하려는 심정웅.
부모님을 살리고자 범죄조직의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는 나.
그 둘이 뭐가 그리 다르다고? 별반 다르지 않고, 따지고 보면 내 쪽이 훨씬 더 황당한 꿈인데.
그러니 결코 정의 따위가 아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걸 이루려면 그를 방해해야 하니까. 그래서 하는 것뿐이야.
“휴우…….”
“도진 군?”
복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자 서상욱 교수가 당황해 나를 부른다. 시연회 참석자들도 뭔가 문제가 생겼나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아니, 아닙니다.”
나는 물밀 듯 밀려오는 상념을 한구석으로 밀어뒀다. 지금은 아니야. 일단 이것부터 마치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어 끊어진 집중력을 이어내며 단상 아래를 바라봤다. 맨 앞자리 오른편의 한태강. 마찬가지로 맨 앞자리의 왼편에 앉은 심정웅과 심이수. 그들 셋의 위치를 확인하고, 침착한 어조로 첫말을 뗐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많은 귀빈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짝짝짝-!
소리가 크진 않으나 힘 있고 진중하게 터진 박수. 기대감이 한껏 어린 눈빛에 미소로 화답한 다음 본격적인 발표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범용적 방어 구성체를 실제 각성자 장비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시연을 선보이려 합니다.”
관련 정보는 이곳에 온 이들이라면 거의 다 파악하고 있다.
복합 계통의 방어 구성체를 각성자 장비의 기능으로 구현하는 것. 무사히 클리어했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겨우 몇 개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양산 가능한 단계라는 것도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가격대, 국내와 해외의 유통 속도, 어느 길드와 기업이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 그런 것들도 대부분 정해졌다.
비단 장비뿐만이 아니다. 유럽과 북미 쪽은 올가을부터 각성자 교육 커리큘럼에도 들어간다고 하니 학습에 필요한 인프라도 순조롭게 마련되는 중이라 해야겠지.
새로운 마법이 보급되기까지 으레 걸리는 시일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 그 진전엔 사적인 이득을 도외시한 내 희생이 결정적이었다고 세간에서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실은 전혀 선한 의도로 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세상에 퍼뜨려놓은 함정. 언제 정체가 발각될지 모르는 마당에 써먹지도 못하고 폐기하기는 싫어서. 그래서 최대한 빨리 보급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참석자들에게 보이는 것처럼.
“오…….”
“과장했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저럴 수가 있는 겁니까? C급만 해도 놀래 자빠질 정도였는데 어떻게 거기서 몇 달 만에 B급까지…….”
“그러니까 천재지. 본인은 연구 발표 때부터 B급까지 가능하다지 않았나.”
슈우우우…… 스아아-!
준비해둔 B급 상당의 공격 마법을 방어 구성체가 흡수하고 내 의지에 따라 튕겨내는 광경에 참석자들이 수군거린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방금 보셨듯 B급 이하의 충격은 완전히 흡수하며 반탄까지 아무 문제 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론 내구력 시연, 그리고 다른 마력 구성체의 허용 범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다 해도 몇 번 쓰고 부서진다면 방어구로서 제 역할을 한다 볼 수 없다. 특정 구성체 외에 구현할 수 있는 다른 마법의 허용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장비의 주요 평가 요소 중 하나고.
그리고, 내 구성체는 그런 기준으로도 만점에 가깝다.
“최대 출력 시 손상률은 0.3% 이하이며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타 구성체와의 병존 계수 또한 국제 기준으로 1급을 상회합니다. 특히 자가수복 기능에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A급 이상의 타격이 아니면 전투에서 파손될 일은 극히 드물 거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미쳤구먼, 미쳤어……. 도저히, 말이 안 돼…….”
누군가 저도 모르게 흘린 말.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으나 책망하는 이는 없다. 다들 같은 심정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이거나 감탄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혁신이군그래.”
“저는 ‘반칙’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지 싶군요. 저건…… 현시대의 일반 마학으론 나올 수 없는 기술입니다.”
B급 이하의 마법을 흡수한다. 그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다 쓸 수 있으며 활용 범위도 아주 넓다.
상대의 마탄을 흡수하고, 속성을 부여해 불꽃이나 번개로 바꾸어낼 수 있다. 상대가 내리친 검격을 방어하고, 충격량을 집중해 막아낸 검을 역으로 폭발시켜버릴 수 있다.
심지어 그런 장비가 튼튼하긴 또 더럽게 튼튼해 어지간해선 부서지지도 않는다.
최소한 혁신, 혹은 반칙. 모두 틀린 말이 아니고, 그때 노인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흠, 갑작스레 나서는 게 결례인 줄은 아나 내 한마디 해도 되겠는고.”
누구도 감히 제지하지 않았다. 한태강과 함께 이 자리의 참석자 중 가장 명망 높은 자. ‘천리안’ 심정웅이 나를 또렷이 바라보며 말한다.
“이도진 군…… 고맙구려.”
일전에 본 것보다 훨씬 활력이 넘치는 듯한 모습.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네의 연구가 마학의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자네의 결단으로 이 마법을 좀 더 일찍 사용하게 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이 늙은이가 가슴이 뛰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네. 고맙네, 정말로 장한 일일세.”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내가 아는 얼굴들과 모르는 얼굴들, 모두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잘했다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네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라고, 내게 그런 말을 전하는 것만 같다.
……그런 게 아니야. 마음속으로만 되뇐 나는 단상 한쪽을 바라봤다. 유일하게 박수 없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 한태강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 담긴 복잡한 감정. 나로선 차라리 그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
왜……?
한태강의 마음속을 맴도는 의문을 단 한 음절로 요약하면 그런 말이 되겠지. 도무지 ‘왜’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
조용히 침묵하며 그는 저 먼 곳을 바라봤다. 시연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도진이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멋졌어요. 대단히 멋졌습니다, 이도진 선생님.”
“과찬이십니다. 서 교수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허허, 이 사람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여러분 다들 속으시면 안 됩니다. 도진 군이 다 한 일이고 나야 혹시 방해가 될까 봐 그게 걱정이었지요. 앞으로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괜히 폐나 끼치지 않을지…….”
“어, 교수님. 저 이렇게 떠나 보내시려는 거면 섭섭한-”
“아니, 자네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떠나 보내긴 누가 떠내 보내. 못 해도 다음 학기까지는 나랑 같이 있어야지. 이대로는 못 보내네.”
“그것도 저는 분명히 내년까지 학교에 있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 학기까지라고 하시면 섭섭-”
“아니야, 취소, 취소함세. 그래, 내년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걸세.”
“오호라, 이도진 선생님은 그럼 내년까지는 제일고에 계신다는 겁니까? 이건 또 귀중한 정보네요.”
“네, 제 동생이 지금 2학년이라 애가 졸업할 때까진 학교에 있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세아 양이라면 내가 또 안면이 있지요. 제일중 시절부터 졸업만 하면 길드로 꼭 데려오려고 만반의 준비 중입니다.”
“동생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워낙 잘 대해주셔서 인상에 많이 남았다고 하던걸요.”
“오…… 그래요?”
“우리 선진도 일찍부터 세아 양의 재능을 알아봤지요. 이도진 선생, 세아 양이 선진에 대해선 별말이 없던가요?”
“물론 선진 이야기도 했습니다. 어느 길드로 갈지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천천히 상의해서 결정하려 하고요.”
“오늘은 이래저래 놀랐어요. 장비 성능도 성능이지만 A급까지 개량하는 데도 늦으면 내년 초라는 게…… 김 대표님, 아까 저 입 벌어진 거 보셨습니까.”
“내 턱 다물기도 바빠서 못 봤네. A급, A급이라……. 하면 이도진 선생 본인은 이미 A급까진 구현할 수 있다고 해석해도 되겠소이까.”
“네, 가능은 합니다. 저야 마력이 충분치 못해 원활한 사용은 힘들지만, 연구를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
“그래도 이렇게 훌륭한 연구자가 되었으니 자랑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시혁 영웅과 정세빈 영웅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맞아, 그걸 여쭌다는 걸 깜빡했구먼. 이도진 선생, 들리기로 다음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던데…… 이번에는 프랑스의 아르노 뒤레 소장과도 협력했다고요.”
“네, 맞습니다. 빠르면 올해 가을에 발표하려고 합니다.”
“이번 연구보다 거시적으로 더 큰 파장이 올 거라는 소문도 파다합디다. 마침 기회가 됐으니 묻는 건데…… 사실입니까?”
“그 부분은 말을 아끼겠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겠네요.”
“우리 도진 군이 워낙 겸손이 과해요. 대강 기대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자네?”
“음, 그으…….”
“하하, 부정을 안 하는 걸 보니 정곡인가 보네요. 이번에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대화.
모든 이들이 이도진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
그를 신뢰하고, 응원하고, 훌륭한 인재로 여기고 있다.
그건 객관적인 사실이겠지.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는 저 웃음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도, 자기 이익을 챙기지 않고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마음가짐도, 무엇 하나 거짓이 아닐 거다. 한태강 자신이 알던 어린 시절의 이도진이라면 틀림없이 그러하겠지. 하지만…….
‘왜……?’
그는 다시 그런 의문을 되뇌었다. 저 아이는 바뀌지 않았는데. 착하고, 똘똘하고, 기특하고, 세상에 널리 자랑하고 싶은 조카 그대로의 모습인데.
그런데 왜…… 어째서 딸아이에게만은 그토록 잔인한 걸까.
손에 쥔 잔을 내려놓은 한태강은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 더 있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으니까.
파혼 서약 준비를 마쳤으니 이번 주말에 시간을 비워두라고 저놈에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전화나 메시지로 연락해도 되는 일이다.
지금은 저 괘씸한 놈과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얼굴을 보는 것도 싫고, 거기다 또 한 가지 이유.
‘방해꾼밖에는 안 되겠지.’
여러 날을 준비한 자리인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인데. 괜히 나서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배려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이 그랬다.
그리고 그가 출입구 쪽으로 가까이 다가선 그때.
“벌써 가려는가?”
늙은 음성이 한태강을 불러세웠다. 어쩐지 전보다 활기가 넘치는 듯한 노인, 심정웅이 그를 보며 웃는다.
“조금 더 있다 가지 않고.”
“봐야 할 것은 다 봤습니다. 어르신은 계실 모양이시군요.”
“저 아이와 이야기나 좀 나누다 가려 한다네. 아, 인사하거라.”
“처음 뵙습니다, 한 대표님. 심이수라고 합니다.”
“내 손녀일세. 좋은 경험이 될 듯해 데려왔다네.”
“……그렇군요.”
묵묵한 목소리로 심이수에게 몇 마디를 한 한태강은 그녀를 눈여겨봤다.
안색은 창백하지만 아주 예쁜 아이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답다 해서 심정웅이 데리고 다닐 리는 없고, 필시 앞으로 심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겠지.
‘어쩌면…….’
심정웅이 이도진과 짝지어주려고 염두에 둔 아이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씁쓸했다.
“이만 가보려 합니다, 어르신. 다음에 날을 정해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잘 가시게나.”
담담한 말.
한데 다음 순간, 물리적으로는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노인이 그에게 일렀다.
<오늘 밤에 나 좀 봄세.>
“…….”
한태강은 겉으로 드러내 반응하지 않으며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심정웅이 말했다.
<팬텀, 장생종. 드디어…… 꼬리를 잡은 것 같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