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Chapter 33. 비겁자 (3)
“거짓말하지 마…….”
내 입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온 건 한심하게도 맞닥뜨린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 웃기지 말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전무(全無)하다.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올리비아 윈을 낫게 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병이 낫지 않으면, 회복할 방도 자체가 없으면……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올리비아 윈과 한태강이 내게 알려주진 않았으나 서연희를 통해 들었다.
갈수록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고. 표면에 드러난 시기가 근래일 뿐 이미 예전부터 병세가 진행되고 있었을 거라고.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육신에 차곡차곡 가해졌던 부담이, 이제야 그녀의 모든 생명력과 마력을 꺾어내고 활동을 시작한 거라고.
어느 시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암처럼, 그런 후에야 환자가 체감할 만큼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는 것처럼, 올리비아 윈도 그럴 거라고.
지금은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라고.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굳건한 의지로 버텨도, 결국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스스로 호흡할 수 없고, 생명 기능을 유지할 수도 없어서…… 마침내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나을 방법이 없다면…… 그러면…… 정말 그렇게 되는 거야?
그걸 알아야 했다.
+
OX 질문 (1/3)
-질문 내용: ‘방벽’ 올리비아 윈이 자신의 병으로 사망하게 되는지 여부
-정답: O
+
“아…… 아아…….”
울부짖음을 닮은 조용한 소리를 흘리며 나는 다시금 부정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써버린 주관식 질문.
그건 이상하잖아. 이시혁과 정세빈, 죽은 내 부모님을 소생시킬 수 있다면서. 그런데 살아있는 올리비아 윈이 왜 낫지 못한다는 거야? 방법이 없다는 게……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나는 결코 홀로그램을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지는 정보에 거짓이 없다는 것만은 신뢰하고 있다.
모호한 답이라도, 뜻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라도, 완전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데 정작 살아있는 사람을 낫게 할 수 없다는 게…… 내가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나는 낫게 할 방법을 물었어.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 하잖아.
“……말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얼간이 주제에 나는 홀로그램을 노려보며 지껄였다.
방법이 없다느니 뭐니 그따위 쓸모없는 답을 원하는 게 아니야.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말해.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당장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도 지나고 보면 의미가 있는 답을 말해줬잖아.
이번에도 그런 걸 알려줘. 제발 부탁이니까…….
그리고…… 홀로그램이 건조한 문장을 자아냈다.
+
-추가정보: ‘방벽’ 올리비아 윈의 사망 시각을 추후 특정 가능한 시기에 <마신의 탄생>의 주인공 이도진에게 고지
+
“하…… 아, 하하, 아…… 아아…….”
헛웃음과 흐느낌이 동시에 나온다. 나을 방법이 없다는 답변, 그게 실은 무의미하지 않단 걸 깨달았으니까.
올리비아 윈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러니 헛고생하지 말고,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많이 웃을 수 있게, 행복할 수 있게, 조금이나마 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그렇게 하라고.
어떻게 그래……?
이어서 나는 깨달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이시혁과 정세빈을 살리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본래 죽을 운명인 올리비아 윈을 낫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추론할 수 있는 가정은 하나뿐이다.
어쩌면 이시혁과 정세빈은, 내 부모님은…… 그날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거라고. 그리고 이 가정이 옳다면,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 또한 하나밖에 없다.
역시나…… 나 때문일 가능성이 커. <세계의 수호자>의 작가인 내가 이 세상에 환생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진 거라고. 그렇다면…… 올리비아 윈은 어떻지?
+
OX 질문 (2/3)
-질문 내용: ‘방벽’ 올리비아 윈의 병세에 대균열과 그에 수반한 균열 발생이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정답: O
+
가슴에 천 근 무게의 바위가 내려앉는 느낌이다. 대균열 이후로 활발해진 균열과 사라지지 않으리라 예측되는 마력. 그게 올리비아 윈의 병을 수면 위로 더 빨리 드러나게 했다.
그야 다른 이유도 없진 않았겠지. 하지만 대균열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녀의 병은 죽음까지 안겨주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이제 마지막 남은 한 가지를 확인해야 했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질문일지도 몰라. 향후 활동하는 데 있어 아무런 활용 가치가 없는 질문일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OX 질문 (3/3)
-질문 내용: ‘방벽’ 올리비아 윈의 예정된 죽음에 질문자 이도진의 환생이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
“닥쳐…….”
말해. 난 이걸 알아야겠어. 나 때문인지, 내 존재가 한태강의 아내를, 세라의 어머니를, 내가 오래전부터 응원해오고 내게 힘이 되어준 사람을 죽게 하는 건지.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죽는 건지. 나는 그걸 꼭 알아야겠어.
+
OX 질문 (3/3)
-질문 내용: ‘방벽’ 올리비아 윈의 예정된 죽음에 질문자 이도진의 환생이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
+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
·
·
-반복된 질문에 경고합니다. 이후 같은 질문이 반복될 시 OX 질문 권한이 차감됩니다. 그 이외의 조건으로 재질문해주세요.
+
나는 물었다.
“……나 때문이야?”
+
OX 질문 (3/3)
-질문 내용: ‘방벽’ 올리비아 윈의 예정된 죽음에 질문자 이도진의 환생이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답변할 수 없습니다.
-OX 질문 권한 1회를 차감합니다.
+
허무하게 날아간 한 번의 기회. 하지만 나는 그걸 아깝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 아, 아아…… 아아아아아악-!!”
그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한마디 말만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끝까지…… 아니라고는 안 하네.
그리고 실제로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방벽’이라고, 적의 공격에서 아군을 지켜내는 역할을 올리비아 윈에게 맡긴 게 나니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냥…… 나는 그냥 떠오른 대로 적은 건데. 일부러 생각한 게 아니라, 실존 인물처럼 올리비아 윈이라는 사람이 떠오른 건데. 그래서 내가 본 대로, 떠오른 대로 적은 건데. 그러면서 응원한 건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누였다.
끔찍하고 또다시 끔찍한 악몽. 꿈속의 광경이 바뀌어나간다.
그해의 여름방학. 한태강과 올리비아 윈, 세라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거짓으로 웃으며 그걸 도와줬다. 마음속으론 죄송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면서, 올리비아 윈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노력했다.
그해의 7월 말. 나와 세아, 그리고 세라의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세아를 데리고 일주일 정도를 세라네 집에서 묵었다.
원래는 열여섯 살 생일에 세라에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나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그 순간에.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간신히 웃는 얼굴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전보다 훨씬 맛이 없어진 올리비아 윈의 음식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꿈의 광경이 계속해서 바뀐다. 내가 특별히 고통스러워했던 나날의,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면들을 보여준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 열아홉 살, 날이 갈수록 올리비아 윈은 점점 더 힘겨워했다. 가끔은 건강이 회복될 때도 있었지만 그보단 나빠지는 날이 훨씬 많았다.
낫게 할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세라가 열아홉 살 때 맞이한 겨울.
침대에 누운 내 눈앞에, 문득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
-주관식 질문의 추가정보 ‘방벽’ 올리비아 윈의 사망 시각을 전달합니다.
: 12월 23일 오전 1시 6분 07초
+
항상 마음 한구석으로 두려워했던 순간. 그게 언제인지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는 절망하며 숨을 삼켰다.
이걸…… 지금에야 알려준다고. 12월 23일 새벽. 오늘이 12월 22일인데. 바로 그 전날이고, 곧 날이 바뀌는데. 고작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이제 알려준다고…….
그때 내가 뭘 해야 했을까. 무엇이 가장 옳은 일이었는지, 그건 육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하나 있다. 내가 현실로 택한 방법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 중에서도 가장 비겁했다는 거.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세라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 갑자기 전화를 거는 게 드문 일이긴 하니까. 게다가…… 세라와 나는 이 시점에서는 예전만큼 친하지는 않게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피했으니까.
단번에 끊어낼 용기도 없으면서, 그런데도 죄책감에 짓눌려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라와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뜬금없는 내 연락에 세라는 언뜻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듯했고, 나는 억지로 태연한 말투를 꾸미며 말했다.
“그냥, 뭐 하나 싶어서. 아, 잠들려는데 깨웠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딱히 할 건 없어서 그냥 누워 있었어.>
거짓말이다.
세라의 목소리에 졸린 기운이 스며 있었다. 아마 내가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곧 잠들었겠지. 나는 알아야 할 것을 물었다.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응, 뭐하고 계셔? 주무시나?”
올리비아 윈을 언급할 때 목소리가 떨린 걸 들켰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세라는 그걸 이상하다 여기진 않았을 거다. 내가 너무나 비겁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그저 올리비아 윈을 걱정하는 줄 알았겠지.
오히려 나를 배려하면서, 안심하라는 듯 차분한 어조로 답한다.
<글쎄, 엄마는 좀 기운이 없다고 하셔서 그 방에 계셔. 아빠는 방에 계실 텐데 주무시는지는 모르겠네.>
세라네 집에서 가장 좋은 방. 그곳은 자그마한 종합병원을 구현해놓은 것 같은 공간이다. 최첨단 의료설비가 갖춰져 있고, 요즘 올리비아 윈은 하루 중 스무 시간 이상을 그 안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라는 거고.
“어제 뵀을 땐 그래도 괜찮으신 것 같았는데.”
어제가 3학년 2학기 방학식이었다. 학교를 나선 나는 세라와 함께 올리비아 윈을 만났다. 힘들어하면서도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던 그녀. 요즘 들어서 가장 몸 상태가 좋아 보였는데…… 그건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은 거였던 걸까.
세라가 담담히 내 말에 답한다.
<응, 그렇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잖아.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내게 전하는 배려심.
지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
세라가 볼 수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 자정이 넘었으니까 오늘…… 오늘 네 어머니가 돌아가셔. 조금이라도, 단 일 초라도 더 얘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웃어줘야 해. 너를 위해서도, 네 어머니를 위해서도.
세라에게 절대로 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집을 나서 그곳으로 달려가지도 못하고, 나는 비겁하게 바라기만 했다. 그리고…… 내 비겁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어……? 도진아, 잠깐만. 잠깐만->
내게까지 미약하게 들려온다.
삐- 삐- 삐- 하는 기계음.
실낱처럼 희미하게 전해지는, 올리비아 윈이 신음하는 소리.
세라의 발걸음 소리가 다급하다. 벌컥, 방문을 열고서 비명처럼 한태강을 깨운다.
<아빠, 아빠, 일어나봐요!>
나는…… 그걸 다 듣고 있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다만 비겁하게 죄책감을 덜어내려 했다.
세라와 한태강이 잠들지 않기를. 어머니의, 아내의 임종만은 지킬 수 있기를.
차마, 그래도 안도감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멀게 들리는 수화기 너머의 소리를 마음에 새기며, 끊임없이 잘못을 빌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