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41화 (141/207)

#141화. Chapter 34. 거래 (2)

실로 어처구니없이 오만한 말이었다.

심이수와 심정웅. 비록 둘이서 협공했다 하나 무신마저 쓰러뜨린 그들을 저 혼자 죽여버리겠다니.

이미 소모한 힘을 고려하더라도 저 사내가 한태강만큼 강하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일개 테러조직의 이인자 따위가 마도 명문 심가를 멸망시키겠다는 건…… 아예 현실성 자체가 없는 발언이고.

해서 심이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사내에게 물었다.

“이봐요, 뭘 믿고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 사실은 마왕인데 정체를 감추고 있고 그런 건가? 그게 아니면…… 짜증 나니까 허세는 집어치우시지?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무서워하는 척이라도 하지. 안 그래요?”

“글쎄, 정작 허세는 네가 부리는 것 같은데.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해볼 텐가?”

“으음…….”

그녀로선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본인은 틀림없이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원하면 둘 다 이 자리에서 죽일 수 있고, 나아가 심가까지도 멸망시킬 수 있다고.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 속에서 심이수는 잠시 궁리했다.

‘싸우면 이길 수는 있을 거야.’

저자의 저력이 얼마나 되건 홀로 왔다면 승리할 수 없다. 정말로 악마의 군주쯤 되는 강자만 아니라면. 문제가 있다면…….

‘혹시라도 도망치면 일이 좀 귀찮아지는데…….’

그녀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팬텀의 이인자가 이 자리를 빠져나가,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퍼뜨린다면?

본인도 그 우위를 아는지 한태강 쪽을 살피며 얘기를 꺼내는 중이고.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자는 이곳의 영웅인데……. 같은 영웅이, 제 손녀까지 동원해 과거의 동료를 습격했다? 소문이 퍼지면 이 나라가 제법 떠들썩해지겠어.”

“하, 웃기시네. 테러범이 하는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소문이 난다면 이렇게 나지 않을까? 테러조직 팬텀의 근거지를 알아낸 할아버지와 나, 한 대표님까지 셋이서 당신네와 싸웠고, 용감히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한 대표님은 혼수상태에 빠지셨다고. 물론 그건 진실이기도 해. 그렇죠, 할아버지?”

“……그렇구나.”

지혈을 마치고 잘린 오른팔까지 억지로 붙인 심정웅이 자조하듯 답한다. 심이수는 그의 우울한 표정이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 깨끗한 척하지 마.’

처음 시작한 게 누구인데.

그녀의 몸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꿔놓고, 날이 갈수록 정신마저 피폐해지게 만든 게 누구인데.

그래놓곤 인제 와서 죄책감을 느끼는 척, 정의로운 척, 심지어 그녀를 보는 시선에서 안타까워하는 기색마저 비치는 게…… 정말이지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면 교육을 철저히 해야겠어.’

내심 다짐한 심이수는 애써 조소를 띠며 다시금 적에게 일렀다.

“전부, 당신이 한 거야. 오늘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말이지.”

저자가 기를 쓰고 진실을 알리려 해봐야 무의미하다. 반대되는 증거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그야 세간에 알려지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소문이 퍼진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다. 모조리 뒤집어씌울 수 있으니.

그즈음 문득 드는 의문에 심이수는 흰 가면의 사내에게 물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하지. 당신 말이야…… 왜 이렇게 우리 일에 관심이 많아? 여긴 또 어떻게 찾아온 거고? 한 대표님도, 할아버지도, 나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그리고 일전에 비고에서 시체 가져간 건……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당신 보스가 장생종이라서 추적이 가능했다거나 뭐 그런? 그 외에는 가능성이 희박하거든.”

“내가 답해줄 이유는 없지 않나?”

“하긴 그것도 그래.”

차가운 반문을 흘려넘기며 심이수는 조용히 힘을 모았다.

다 뒤집어씌우고자 결심했다면 저자를 이 자리에서 살려 보내지 않는 게 좋다.

산에 둘러놓은 결계까지 돌파한 듯하니 곧 누군가 이곳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고, 속전속결로 해치워 시체를 증거물로 내놓는 게 최선이겠지.

한데 바로 그때.

“후우…….”

무언가 자괴감이 서린 듯한, 어쩐지 자조적으로 들리는 한숨에 이어 사내가 입을 뗐다.

“그래도 불필요한 싸움은 원치 않으니…… 나와 거래를 하는 게 어때.”

방금까지 날 선 말을 주고받은 자가 건넨 뜻밖의 제안. 심이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 갑자기 겁이라도 나서-”

“이수야, 잠깐 기다려보려무나.”

“뭐예요?”

묵묵히 관망만 하던 심정웅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그녀가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사내에게 이른다.

“일단 들어보도록 하지.”

***

+

<킬 더 이블> 3권의 세 번째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으로서 7월 20일 오후 11시 30분까지 지정된 장소에 단독으로 위치할 것

-클리어 보상: ‘무신’ 한태강의 필사(必死) 조건 해제

+

시야 한쪽에 일렁이는 홀로그램을 재차 확인하고 있으려니 심정웅이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서로 못 본 것으로 하자는 거구먼.”

“그래. 오늘 이곳에서 뭘 했는지 자세히 묻진 않겠어. 다만 여기 누워있는 이자…… 아마 당신의 손짓 한 번에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겠지.”

“바로 맞췄네. 나도 자네를 보며 알아낸 것을 읊어보자면…….”

고개를 주억인 심정웅이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 손녀는 자네를 조금 얕보고 있는 듯하나 내게는 아주 잘 보이는구먼.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자네는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네. 그러나 증인이 될 한 대표까지 챙기긴 어려울 게야. 그렇지?”

“부정하진 않겠어.”

+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소량 회복됩니다. (랭크 E -> 랭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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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결계를 비밀리에 돌파하느라 마력흡수와 존재흡수 스킬을 또 한 번 꺼내야 했다. 검은 심장의 랭크가 상승했고, 그 리스크만 감수하면 추적을 피해 여길 나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 혼자라면.

한태강까지 데리고 가는 건…… 현실적으로 판단해 성공 확률이 삼 할을 넘지 못한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그리고, 이 또한 내 손녀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나…… 자네가 정말 작정한다면 진실을 알리는 것도 가능은 할 걸세. 손해는…… 제법 크겠군. 하지만 할 수 있지. 어떤가, 내 말에 틀린 바가 있는가?”

“……대단한데.”

적으로 맞서고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인상 깊은 통찰력이었다.

심정웅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무슨 패를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개의 마녀’로서의 서연희가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발휘하면 오늘 일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릴 수 있으나, 또한 리스크가 대단히 크다는 것도 모른다.

그런 것들을 단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그런데도 간파해낸 것이다.

내가 원한다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도 그걸 온전히 내켜 하지는 않는다고.

천리안.

만물을 심유한 눈으로 굽어보는 자.

장생종의 시체를 기워내 심이수가 얻어낸 힘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늙어서 몰락했으나, 욕심에 타락했으나, 가장 오래 산 영웅의 시야는 아직 건재하다.

“해서…… 거래를 하자는 거다.”

내가 제시한, 양쪽이 지켜야 할 조건은 두 가지.

우선 오늘 보고 들은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건 공통이다.

그리고 각자 지켜야 하는 조건은…….

“이자의 의식을 깨워. 이대로 두는 건 파장이 클 테고, 오늘 일을 없었던 것으로 덮는 거다.”

“기억 조작을 말하는 것인고.”

“그래. 너희로서는 온전히 보낼 수 없겠지. 기억을 바꾸고, 상처까지 치료해서. 나도 증인이 살아있어야 하니까.”

“하면 자네가 건네줄 것은 무엇인가. 말해보시게나.”

“일전에 우리 조직이 가져간 것들.”

장생종의 시신 세 구. 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물. 나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슈아아아-

마법적으로 열린 공간, 그곳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그걸 이 자리에서 모두 소각하겠다.”

“응?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까 좀 많이 황당한데.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소각? 제대로 말한 거 맞으세요?”

눈을 가늘게 뜬 심이수의 추궁. 나를 대신해 심정웅이 태연한 어조로 답한다.

“돌려달라 한들 저자는 들어주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나?”

“나 참, 할아버지는 또 왜 저쪽 편을 들어요? 나 똑바로 보고 대답해요. 괜히 훼방을 놓으려는 건지 아니면 기특한 뜻이 있는 건지 알아봐야겠으니까.”

척 보기에도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는 듯했다. 하지만 노인이 늙고 초라한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답한다.

“어디 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보려무나. 네가 원하는 일에, 내가 해를 끼치려 하는 것인지.”

“그건…… 아닌 것 같네요.”

“네겐 이미 그것이 필요치 않아. 너와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게다.”

“그건 맞죠. 그래도 할아버지한테는 필요하지 않나요? 무슨 꿍꿍인지 의심스럽긴 한데.”

“저 사내가 섬기는 자가 그것들로 힘을 회복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음…… 으음…….”

얼추 저쪽의 이야기도 정리된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보스께 그딴 건 무의미하고 원하시지도 않지만, 조건을 수락한다면 너희가 보는 앞에서 즉시 소각하지.”

“그리 해주면 고맙겠구먼.”

장생종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전권은 내게 있다. 오늘 귀가해 이미 서연희와 논의를 마쳤으니까.

요구 조건에 응하기로 했으니 남은 건 시행하는 일뿐. 전이(轉移) 계통의 구성체가 한태강과 나, 심정웅과 심이수를 그 범위에 두며 일렁인다.

“허튼수작 부렸다간 단번에 목을 비틀어주겠어.”

“걱정하지 마시게. 자네도 마법에 조예가 깊은 듯하니 알지 않나. 그리하면 되려 우리 쪽의 목숨이 달아날걸세.”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구성체지만 말로 효과를 풀어낸다면 간단하다.

한태강의 의식에 개입한 심정웅의 마법. 그것에 조건을 붙이고, 위력을 경감시켜 다른 셋에게 전이시킨다.

발동 조건은 오늘 일을 누군가에게 발설하는 것.

그렇게 하면 그 시점부터 정신에 마법이 작용한다. 의식불명까지 빠지진 않겠지만 멀쩡히 넘길 수도 없겠지.

“알고 있겠지만 자네가 섬기는 자에게도 말할 수 없네. 자네야 이 마법의 영향을 받을 테지만 그자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니까.”

“좋아, 그 정도는 괜찮다.”

위유우우웅-

한태강의 정신을 잠재운 마법이 세 갈래로 나뉘어 나와 심정웅, 심이수에게 흘러들어온다.

+

-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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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명확하다. 발설하지 않는다면, 저 마법은 절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음은 내가 요구할 차례였다.

“아무리 입을 다문다 해도 이걸 잘 처리하지 못하면 헛수고야. 깔끔하게 지우도록 신경 쓰는 게 좋을 거다.”

“그리하고 있네. 자네도 밝은 곳에서 살아갔다면 천재 소리를 들었을 듯한데, 그런 자네가 감시하며 절반을 맡고 있지 않나.”

한태강의 기억을 바꿔놓는 일.

지금까지의 기억을 백지화하는 작업은 심정웅과 심이수가 담당했다. 그걸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 내가 개입한 건 그다음.

그의 정신에 손상을 주지 않고, 시연회 당시부터 귀가할 때까지의 행적을 거짓으로 입력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는 와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으로 크나큰 죄책감이 서린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지만 거래를 제안하지 않고 싸웠다면,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한태강에게 닥칠 일이 두려웠다.

그래서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철저하게 기억을 바꾸고, 그를 상처입힌 마법을 나누어 짊어졌다.

이윽고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다.

“무사히 끝났구먼.”

“…….”

나로서는 기뻐할 상황이 아니라 침묵하자 노인이 혀를 차며 읊조린다.

“아까워, 참으로 아깝구먼…….”

“뭘 말하는 거지?”

“자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세상에 펼쳐냈다면 필시 큰일을 하였을 터인데. 아니,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는가?”

“헛소리는 집어치워.”

싸늘하게 되받은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생종의 시신을 꺼냈다.

스아아아아아…….

피와 뼈, 살점과 장기. 새파란 불길이 그 모두를 남김없이 태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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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두 번째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7월 31일 자정까지 현재 보유한 장생종의 시신을 마법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모두 소각하고, ‘천리안’ 심정웅이 해당 정보를 파악하게 할 것

-클리어 보상: 주관식 질문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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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히게 답답한 마음이 든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나는 이 감정의 정체를 안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킬 더 이블>은…… 잘 진행되고 있어.

차곡차곡, 하루하루씩 나는 악행을 저질러가고 있다.

이제는 한태강과 세라에게 고생했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말을 듣는다 해도…… 결코 기뻐하지 못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따위로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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