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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42화 (142/207)

#142화. Chapter 34. 거래 (3)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을 겨우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놓은 나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한태강을 살피며 일렀다.

“치료는 내가 맡겠어. 당신들은 주변 정리나 해주면 좋겠는데.”

“와…… 진짜 저 사람 성격 너무 까칠하네. 저기요,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피차 마찬가지고, 우리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 마도 명문 심씨 가문이 남들 몰래 비열한 행각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테러조직의 제안에 응하기까지. 이런 그림인 게 이해가 안 돼? 번역 마법이 잘 안 듣나? 언더스탠드?”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이야 이해를 하네만…… 나와 내 손녀는 이제 자네와 팬텀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네. 일전의 싸움은 어쩔 수 없었지 않나. 앙금이 있다면 오늘부로 잊고, 앞으로는 협력은 못 할지언정 서로 훼방은 놓지 말도록 하세. 자네가 모시는 그자에게도 그리 전해주게나.”

“그거야 뭐, 저 사람이 알아서 하겠죠. 그 장생종 언니는 거의 감투만 쓰고 있는 거고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저쪽 같은데. 그리고…… 둘이 되게 좀 찐한 사이 아닌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말하지 말고, 알아서 잘 좀 전해주면 고맙겠네요.”

사투가 펼쳐질지도 모르던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거래를 제안한 주제에 뻔뻔하게도 그건 또 불쾌해하며 내가 답했다.

“너희의 의견만 말씀드려도 보스께서는 많은 것을 파악하실 거다. 그리되면 정신 마법이 작동하지 않는 선에서 소문을 퍼뜨릴 방법도 없진 않아. 그래도 상관없나?”

“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구먼. 일단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자네는 그런 걸 원치 않을 거야. 자네가 섬기는 자도, 자네가 중재해준다면 더는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을 테고.”

“…….”

“자리를 뜨려면 얼마든지 뜰 수 있었을 텐데 제안해준 것에 대한 성의 표시, 화해의 증표라 여겨주면 고맙겠네만.”

저들은 모른다. 내가 왜 홀로 이 자리를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판단한다면 내 쪽에서 화해의 손길을 내민 거라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상당히 뚱한 표정의 심이수는 별다른 말 없이 전투의 흔적을 정리했고, 가지고 있던 포션과 마력을 들이붓다시피 해서 한태강의 상세를 말끔히 치료한 나는 심정웅에게 경고했다.

“이자가 거주지로 돌아갈 때까지는 지켜보고 있겠다. 그걸 확인한 다음 오늘 일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지.”

“그리 하게나.”

위유우웅-

한태강 앞에 공간 마법이 일렁인다. 이동 좌표는 나와 심정웅이 함께 설정한 장소.

그곳에 도착한 한태강은 그 시점부터 의식이 돌아올 거다. 조금 정신이 멍하긴 하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밖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라고만 여기겠지.

한데 한태강이 빛무리의 영향권에 들기 직전, 심정웅이 내게 말을 건다.

“하나만 답해줄 수 있겠나.”

“뭐지?”

이어서 노인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염의준이, 그 아이는 무슨 연유로 죽인 것인지 알고 싶구먼.”

“…….”

“조금 숫기가 없고 소심한 면이 있긴 했으나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네. 우직하게 제 할 일을 해나가는 아이였지. 저보다 뛰어난 또래가 몇 명이나 있음에도 열등감 따위는 한 번도 품은 적이 없어. 도리어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했지. 따라가려 안간힘을 쓰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 힘이 되어주려 했네. 미련하고, 대견한 아이였지. 어째서…… 그 아이를 죽였는고.”

“왜…… 죽였냐고?”

심정웅의 말을 되받으며 나는 저기 빛무리에 잠겨가는 한태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답했다.

“그냥, 내가 죽이고 싶어서.”

“그랬는가…….”

이내 심정웅이 작게, 혼잣말하듯 읊조린다.

“내 보기에는 그렇지도 않은 듯싶구먼…….”

스아아아아-

마침내 마법이 발동됐다. 한태강이 저 먼 곳으로 자취를 감추려 한다. 남은 여유는 찰나.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그자도 변했겠지. 당신이 변한 것처럼.”

이후로 심정웅이 무슨 말을 했을까. 한태강을 따라 공간이동 마법을 펼친 터라 나는 듣지 못했다. ……듣지 않은 게 다행일 거고.

한 시간 뒤.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귀가한 내게 서연희가 물었다.

“일은 잘 처리하고 왔어?”

애초에 손실된 힘을 회복하는 중이라 그녀는 나설 수 없었다. 홀로그램도 나 혼자 단독으로 움직이라고 했고.

해서 걱정하면서도 서연희는 집에 머물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그녀에게 나는 짤막하게만 답했다.

“……협잡질 좀 하고 왔어요.”

“그랬어?”

그리고 그녀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을 면밀히 판단해서 일러줬다.

“장생종 시체는 소각했어요. 도중에 심정웅 쪽이랑 만났는데 이런저런 일이 좀 있어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앞으로는 싸우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쿠웅.

엄청나게 큰 못을, 머리를 갈라 뇌에 대고 망치로 때려 박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한태강의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음에도 이런 수준이면…… 진짜로 조심하는 게 좋겠네.

“괜찮아?”

서연희가 눈가를 살짝 좁히며 묻는다. 내가 방금 상당한 통증을 겪은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답했다.

“그쪽도 저도 족쇄 걸어서, 그 부분만 입 다물고 있으면 할 일 하는 데는 문제 없어요.”

장생종의 시체를 소각한 일.

저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자원이 소실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향후 어떤 식으로 행동에 나설지 미지수다. 그게 아니더라도…… 예감 같은 게 있고.

심정웅과 심이수. 저들과의 악연은 이번 일로 정리된 게 아닐 거다. 싸워야 할 때가 오면 싸워야지.

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나 힘 찾고 나면 그거도 지울 수 있는지 알아보자. 말만 안 하면 된다고는 해도, 두고 있으면 찝찝하잖아?”

“그때 가서 보고요. 누나 무리 안 하는 정도만.”

그런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난, 알려야 할 일이 있었다.

“맞다, 이건 좀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뭔데?”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검은 심장. 산의 결계를 뚫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랭크가 상승한 그 특성.

“아직 위험한 단계는 아닌데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봐봐.”

서연희가 내 쪽으로 성큼 다가오며 말한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방어 태세를 취하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녀에게 반문했다.

“……본다고요?”

“그럼 봐야지. 내가 봉인한 건데. 빨리 보여줘.”

“저 왔다 갔다 하면서 땀도 흘리고 그래서…… 먼저 씻고 나와서요.”

“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런’ 문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듯한 서연희가 작게 소리를 흘렸다.

이거 아무래도 역효과가 난 것 같은데…….

차라리 별말 없이 응했으면 서연희도 신경을 안 썼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된 바에는 그것도 무리였다.

그녀가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준다.

“넌 이렇게 중요한 얘기 하는데 옷 벗고 그런 거 생각하고 있었어?”

“……제가 잘못한 거예요?”

“당연히 네가 잘못한 거지.”

“…….”

“…….”

잠시 이어진 침묵. 나는 핑계를 겸한 데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아무튼 좀 씻고 올게요. 그런 다음에 봐주세요.”

“음…… 그렇게 해.”

그리고 내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향한 그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서연희가 일렀다.

“아, 정정할게.”

“뭘요?”

“중요한 얘기 하는데 옷 벗는 얘기나 한다고 한 거.”

“……그걸 왜 정정하는데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답한다.

“이것도 엄청 중요한 얘기니까?”

“…….”

“왜?”

“……씻고 올게요.”

“천천히, 원하는 만큼 씻어도 돼.”

그리고 욕실에 들어간 내가 거실로 나오기까지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 건…… 특별히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우연이겠지. ……아마 그럴 거다.

씻고 나온 다음, 내 살갗을 쓸어내리며 봉인 술식을 점검한 서연희는 당장 보수 공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힘이 전부 회복되지 않은 점도 있고.

피부 접촉 과정에서 어색하고 민망해하는 공기가 감돌았던 건…… 그건 순전히 내 탓일 거고.

***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문득 들려온 말에 한태강은 고개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업무를 보고 있었는지 서류를 든 한세라가 거실로 나와서 그를 보고 있다.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려무나.”

“너무 늦게 주무시진 마세요. 아까도 늦게 들어오셨잖아요.”

“……그랬지.”

한태강은 왠지 의아하다고 여기며 뇌까렸다.

시연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외출한 것은 기억한다. 어디 한 곳에 머무르지는 않고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었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미묘하게, 아주 미세하게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석연치가 않다.

‘그놈 때문이겠지.’

시연회에서 만난 이도진. 그놈 문제가 아니라면 요즘 고민이라 할 것은 딱히-

‘……아닌가?’

또다시 희미하게 드는 석연찮은 감각. 이도진을 떠올리자…… 뭔가 대단히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는 시선을 돌려 딸아이를 응시했다. 이도진을 떠올렸을 때와 같은 감각. 한세라가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망설이며 묻는다.

“도진이한테…… 말은 하셨어요?”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날이 날인 데다 문자를 보내도 되는 일이고. 그래, 세라야.”

한태강은 딸아이에게 말하려 했다. 이번 주말로 파혼 날짜를 잡을 테니 시간을 비워두라고. 하지만…….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까 든 불길한 예감에 그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파혼을 지금 시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놈이…….’

더는 한태강 자신의 예비 사위가 아니게 될 이도진. 가령 심정웅이 손녀사위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던 것.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도진이 그와 더 가까워지면……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한태강은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걱정을 담아 딸에게 물었다.

“세아가 곧 귀국한다고 했지?”

“네. 도진이랑 세아랑 둘 다 저랑 생일 비슷하잖아요. 날짜 맞춰서 귀국해서 여행 간다고 하던걸요. ……세아한테 자세히 들은 거예요.”

“그 여행, 어디로 가는지도 들었느냐.”

“듣긴 했는데…… 왜요?”

딸아이의 물음에 한태강은 답하지 못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왜 따라가야 한다고 느끼는 건지.

어째서 이도진이 그 뻔뻔한 낯짝으로 멀쩡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느끼는 건지.

그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저 한세라에게 말했다.

“어디 좋은 곳으로 가는 거면…… 너도 아버지랑 같이 그쪽으로 휴가를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구나.”

***

7월 26일 월요일.

무려 한 달 만에, 세아가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는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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