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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47화 (147/207)

#147화. Chapter 35. 태풍의 눈 (5)

준비는 철저히 해두었다.

짐도 다 챙겼고, 출격할 시간과 장소도 정해졌다.

“…….”

물끄러미 가방을 내려다보던 유해빈은 아까 서연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잖아? 내가 말해둘 테니까 해빈이도 하루 놀고 와.’

‘저야 좋긴 한데…… 그렇게 해도 돼요? 교수님 곤란하게 만들기는 싫은데요.’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르기엔 망설여지는 제안. 한데 서연희가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답했다.

‘이거 너 신경 써주는 거기도 한데, 도진이 챙겨주는 거기도 해.’

‘네?’

의아해하는 반문에도 서연희는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으로, 이렇게만 일렀다.

‘가서 재밌게 놀면서, 한번 보고 와. 그러고 나면, 언젠가는 보일 거야.’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말이고, 연적에게 듣기에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그런 심정만은 아니다.

‘보스가 나 예뻐하긴 해.’

그녀가 자신을 아낀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나쁜 기분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쁜 것에 가깝고.

“후우…….”

망설임, 고민, 우울함, 결의.

그 모든 감정을 담아 숨을 내쉰 유해빈은 다짐했다.

‘내일도 바보짓만 하다가 오면…… 용용이 말고 용가리로 별명 바꿔 달라고 할 거야.’

용가리.

‘용용이 빡대가리’의 줄임말이었다.

***

너무나 뻔뻔하게도, 뒤늦게서야 마음에 자괴감이 일렁인다.

거의 삼십 분쯤 된 것 같다. 세라가 나를 데리고 물속에 빠지고, 진유리와 세아까지 참전해 같이 논 시간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파혼을 앞두고 있는데.

최근에는 만날 때마다 싸웠는데.

자제했어야 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 세라와 연을 끊으라는 한태강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한데 그걸 어기고,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간 것처럼 세라와 즐겁게 놀았다. 염치가 없다는 말조차 부족한 행동.

하지만 내 옆에 앉은 세라는 무척이나 상쾌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너도 옷 좀 말려야겠네. 해줄까?”

물에 젖었던 세라의 머리칼과 옷은 말끔히 말라 있다. 수준 높은 각성자로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 내게로 거리를 좁힌 세라가 말릴 틈도 없이 옷에 손을 댔다.

슈우우우우-

살갗엔 조금 더운 느낌만 나며 옷이 마르고 나자 이번엔 양해를 구한다.

“잠깐 실례할게.”

스으으으…….

내 머리칼로 올라간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 아까보다는 좀 더 뜨거웠고, 우리 근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아…….”

세라만큼 마력 조절에 능숙하지는 못한지 이제야 물기를 다 말린 세아와 진유리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민망하다면 민망한 모습이긴 하지. 하지만 애들 눈은 신경을 안 쓰는지 머리칼을 다 말려준 세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다 됐어. 아빠한테 메시지 와있는데, 난 그만 가봐야겠네. 산책하다가 너희랑 마주쳤다고만 말씀드릴게.”

“저기 큰길까지만 같이 나가.”

나직이 제안하며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이왕 뻔뻔하게 굴었으니까, 조금만 더. 여태까지 같이 놀아놓고선 얘 혼자 보내는 게 싫어서.

“그럴까?”

세라가 살짝 기뻐하듯 답했고, 계곡을 나선 우리 넷은 아래편으로 걸었다.

딱히 대화는 없었다.

세라는 편안한 표정에, 진유리와 세아는 아직 물놀이의 여운이 남아있는 건지 조금 멍한 기색이다.

얼마간 걷자 평지가 나오며 불빛이 보였다. 세라가 묵고 있는 리조트도 저 멀리 보인다.

같이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지금도 이미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음을 알고, 나는 세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 ……푹 쉬고.”

“응, 너도. 세아랑 유리 학생도, 오늘 재밌었어.”

“언니 잘 가.”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가려던 그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세라가 말했다.

“너희도 내일 남이섬 간다고 했지? 우리도 가는데…… 지나가다가 마주칠 일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긴 말일까. 그걸 생각하며 세라와 인사를 나눴고, 숙소로 돌아가며 진유리에게 물었다.

“유리는 내일 언제 가려고?”

“아, 그게요…….”

확답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말에 나는 배려해주듯 말했다.

“차 타기 좋은 데까지 데려다줄게.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괜찮아?”

“그건 괜찮은데…… 근데 수요일이 교수님 생신이시니까, 축하해드리고 가고 싶기도 해서요…….”

“생신?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보이는데. 유리 네가 보기엔 우리가 그 정도로-”

“아앗! 아니, 생신 아니에요. 생신 말고 생일요!”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진유리가 기겁하며 서둘러 정정했고, 한데 이번에는 세아가 친구를 보며 눈을 흘긴다.

표정을 보아하니 딱 그런 생각 같았다.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교수님한테…… 라는 느낌. 본인도 진유리와 동갑이라는 건 내 동생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진 듯했다.

진유리가 퍽 곤란해하며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생신이 맞는데…… 그래도 나이는 일곱 살밖에 차이 안 나고…….”

여기서 장난을 더 치는 건 미안하고, 나는 해줘야 할 말을 차분히 일렀다.

“한 달 만에 한국 온 건데, 부모님이랑 시간 보내야지.”

다른 건 차치하고, 축하를 해주고 싶다는 저 애의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목요일에 출국하는 애가 수요일까지 우리랑 있는 건…… 그건 아무래도 좀 아니니까.

세아도 또렷한 어조로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 내일 가야 해.”

“아…….”

“너랑 놀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오랜만에 뵙잖아.

“응…… 미안.”

진유리가 힘없이 전한 사과가 뜬금없게 느껴지진 않는다.

나와 세아는 부모님이 안 계셔 둘이 여행을 왔다. 한데 부모님 두 분 다 살아계신 본인이, 그런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이틀 가까이 지나서야 돌아간다?

진유리의 사과는 그런 의미였다.

철없는 말을 해서 우리에게 상처를 줬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물론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 저 애의 진심이 느껴져서 되려 고마웠다. 세아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지금 하는 말을 보니 틀림없었다.

“나 오늘 그냥 얘 방에서 잘게.”

“그럴래?”

세아의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소외감이 안 느껴진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단 기꺼운 마음이다. 둘이 저만큼이나 친한 게 보기 좋아서.

“근데…… 지금 자려고?”

숙소 입구를 지날 때쯤 진유리가 꺼낸 말.

나와 세아가 의아해하자 그 애가 다시, 조금 주저하듯이 말한다.

“나 내일 아침에 가야 하는데…… 조금만 더 놀고 싶은데…….”

그러더니 사실대로 실토한다. 여기 올 때 아공간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 챙겨 왔다고.

“게임기도 있고…… 카드 같은 거도 있고, 젠가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고, ……아무튼 여러 개 있어.”

“……나는 괜찮은 거 같아.”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새침한 말투로 세아가 답한다.

아직 늦은 시간도 아니고…… 괜찮으려나. 나도 그러자고 찬성의 뜻을 표하려던 그때.

우웅, 우우웅-

진동이 울렸다. 진유리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한다.

“아, 엄마 전화예요. 잠깐만요……. 여보세요?”

<딸, 재밌게 놀고 있어?>

별다른 일은 아니었다. 안부를 몇 마디 묻고 답하다가, 얼핏 듣기로 세아랑 통화할 수 있겠냐는 말이 들린 듯했다.

<여보세요? 세아니?>

“네…… 안녕하세요.”

오전에 이어 다시금 생일 축하의 말을 전한 진유리의 어머니가 세아에게 묻는다.

<유리가 내일은 남이섬 놀러 간다고 하던데.>

“아, 네.”

<세아 좋겠네. 거기 한 번은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유리 아빠도 나도 아직 못 가봤거든. 유리도 그렇고. 그래, 어디가 제일 예뻤는지 나중에 아줌마한테도 알려줘.>

“꼭 말씀드릴게요.”

그즈음 나는 내심 대기하던 중이었다. 나와도 통화를 할 것 같아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내일 아침에 진유리를 보내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한데…….

“아, 이세아! 잠깐, 나 바꿔줘!”

황급히 외친 진유리가 세아에게서 휴대전화를 받아든다. 그리곤 자기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모레까지 아빠랑 집에 있을 거라고 했죠?”

***

다음 날 오전.

남이섬으로 가는 선착장 앞에서 우리는 진유리의 부모님과 만났다.

“이거, 여행 중이신데 괜히 폐가 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아뇨, 저희야 환영입니다.”

진철민과 내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진유리의 어머니는 덥지 않냐며 애들에게 음료수를 건넨다.

어젯밤에 진유리가 떠올린 계획. 명쾌하고도 간단한 방법이었다.

돌아가기 싫다면, 돌아갈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이쪽으로 데려오는 것.

한마디로 같이 여행을 하자는 거다.

나와 세아. 본인과 부모님 두 분까지 다섯 명이.

이거 뭔가 자꾸 일이 커지는데…….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기실 진유리네 가족만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아마 이제 곧…….

“어? 어…… 교수님?”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비롯한 다섯 사람이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상의는 흰색 티셔츠에 굉장히 얇은 재질의 겉옷까지 걸치고, 하의는 무릎 중간까지 훤히 드러나는 바지에 간소한 샌들을 신은 유해빈이 무척 반가워하며 뛰어온다.

“와, 이런 우연이. 여기서 뵙네요. 이세아 오랜만이다? 아, 안녕하세요! 진유리 너도…… 반갑다?”

나, 세아, 진유리의 부모님, 마지막으로 진유리에게까지 유해빈이 차례대로 인사했다.

“……?”

세아와 진유리는 같은 반응. 여기서 얘를 만나네, 하고 놀라는 눈치다. 진유리야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안타깝게도 세아마저 딱히 기뻐한다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았다.

“아, 유리랑 세아 같은 반 친구입니다.”

“유해빈이라고 합니다!”

대화한 건 처음인 듯하나 진유리네 부모님과 유해빈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그야 유해빈은 국내 최고 수준의 유망주로 아는 사람들은 아는 애고, 진유리네 부모님은 뉴스만 봐도 모르기가 어려우니까. 제1 아카데미 행사에서도 마주치긴 했을 테고.

유해빈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남이섬 가시는 거죠? 저도 지금 배 타려고 했는데.”

이미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운을 띄우는 말. 나도 알고 있었다. 어제 서연희와 연락하며 들었으니까.

‘오늘 어땠어? 보니까 진유리? 걔도 가 있던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해빈이가 말해줬거든.’

‘아, 연락했어요?’

‘응. 그리고 해빈이한테 말해뒀어. 내일 너 가는 데 다녀오라고. 너희가 같이 다녀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줄래? 딱히 위험 부담이 있진 않을 거야.’

‘……죄송해요.’

‘어머, 뭐가?’

‘해빈이 신경은 제가 써줘야 했는데.’

‘아니야, 너 바쁠 땐 내가 챙겨주고, 또 어떨 때는 네가 챙겨주고 그러는 거지. 우리 같이 키우는 애 느낌이잖아?’

‘…….’

‘왜?’

‘아니에요. 근데 내일 저랑 세아만 가는 거 아니고, 진유리랑 걔 부모님도 같이 다닐 것 같아요.’

‘그건 또 몰랐네?’

‘그래도 뭐, 제가 알아서 해빈이 만나면 같이 다닐게요. 그리고…….’

‘응? 왜 갑자기 뜸을 들이고 그래?’

‘아까 산책하다가, 세라랑 만났어요. 아저씨랑 이 근처로 휴가 왔다고.’

‘그래?’

‘얘기 좀 하다가…… 계곡에서 같이 놀았어요. 세아랑 유리랑 넷이서.’

‘음…… 그럼 만약에 너희 둘만 있었으면, 그래도 똑같이 했을 것 같아? 솔직하게.’

‘그건…… 아뇨.’

‘응, 알겠어. 솔직하게 말해줬으니까, 이 건은 이걸로 패스. 대신 다음에, 우리 그럴 수 있을 때, 나랑 물놀이도 가야 한다?’

‘그럴게요.’

그리고 서연희가 아침에 녹음한 내 약속을 재생하려고 하길래 재빨리 통신을 마쳤다.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일행 네 사람과 유해빈에게 제안했다.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인데, 혹시 대표님이랑 어머님도 괜찮으시면…… 해빈이도 같이 다니면 어떨까요?”

“오, 그래도 돼요? 안 그래도 남이섬 좋대서 오긴 했는데 혼자 다니려니까 좀 심심하고 그랬거든요.”

한국 최고의 유망주와 안면을 트는 건 진유리네 부모님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라 그들도 흔쾌히 동의했고, 세아와 진유리는…….

“교수님이 그러고 싶으시면…….”

“근데 왜 혼자 왔어?”

듣고 있는 내가 다 마음이 아픈데도 유해빈이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답한다.

“어, 그냥 심심해서? 근데 이제 안 심심할 듯?”

그렇게 만들어진 여섯 명의 일행. 함께 배를 타고 남이섬에 도착한 우리는 가까운 곳부터 구경해나갔다.

시간은 오전 열한 시쯤.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여기저기 경치를 두리번거리던 유해빈이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근데요, 교수님.”

“왜?”

“메신저에 뜬 거 보니까 내일 교수님 생신이시던데…….”

“어, 그렇지. 왜?”

“아, 다른 건 아니고요. 저는 원래 당일치기로 좀 보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이왕 이렇게 만났잖아요?”

“그래서 본론은?”

“크흠, 으흠, 교수님이 보호자 해주시면 저 숙소 잡을 수 있으니까, 나중에 밤에, 이 애제자가 조촐하게 생일 파티라도…… 가능?”

“…….”

“콜?”

“……일단 보고.”

“흐흐, 교수님이 ‘일단 보고’, ‘그때 가서’ 하시는 건 보통 허락이니까,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죠?”

“너 그냥 외박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엥? 진짜 축하해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진유리와 유해빈도 부모님이 듣는 데서까지 그러진 못하겠는지 적당히 티격태격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잘 꾸며진 산책로를 나와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그때.

“어…….”

세아가 작게 말을 흘렸다.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다섯 사람도 그쪽을 봤고, 다들 아는 두 사람이 보였다.

세라와 한태강. 둘이 팸플릿을 보며 어디로 갈지 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다음 순간에는…… 시선을 감지한 건지 한태강이 우리 쪽을 봤고.

“안녕하세요…….”

저쪽엔 들리지도 않을 텐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진유리. 이어서 진철민이 반색하며 한태강을 불렀다.

“한 대표님!”

몇 초쯤 말없이 우리를 보던 한태강이 이쪽으로 온다. 세라도 함께 걸어왔고, 우리도 마주 그쪽으로 걸었다.

그즈음 유해빈이 내게 눈빛을 보냈다. 꼭 이렇게 묻는 것처럼.

<이거…… 대체 무슨 상황임?>

나는 마주 눈빛으로 답했다.

<좀 많이…… 곤란한 상황?>

***

유해빈은 생각했다.

‘태풍의 눈이라는 말이 있지…….’

태풍의 중심부는 맑게 개어 화창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

정황을 아는 그녀로서는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내부에 들어와 보면 그냥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광경. 하지만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그녀는 조용히 되뇌었다.

‘이 자리에,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선수들이 모였다.’

런던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진유리.

슬럼프를 이겨내고 당당히 자리한 유해빈 자신.

과거에 골인 직전까지 도달했던 듯하나 뭔가 꼬였다는 걸 깨닫고 원인을 살피고 있는 약혼녀 한세라.

치사하게도 자기 친구 한 명만 응원하고 있는 이세아.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예측했을지도 모르는,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듯이 자기 마음대로 경기장을 활보하는 한 사람.

‘보스는 가소로워하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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